노인 인구 1000만 명 시대가 다가오면서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 모두 ‘정년 연장’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시각차가 존재한다. 노동계는 줄곧 ‘법정 정년 연장’을 주장하고 있고, 경영계는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계속고용 방안을 모색 중이나 아직 정해진 것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 계속고용이 가능하려면 노사정 간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부는 지난해 초 ‘제4차 고령자 고용 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 초고령사회 대비 계속고용 논의를 요청했다. 그러자 한국노총은 ‘법정 정년 연장만이 답’이라며 논의에 불참했다. 이후 8월, 2033년까지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내용의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대한 국민 청원을 진행하기도 했다.
경사노위 의사결정 구조상 노동계나 경영계 위원 중 과반수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의제 설정 및 의제별 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경사노위는 지난해 7월 전문가 중심의 ‘초고령사회 계속고용연구회’(이하 계속고용연구회)를 발족했다. 노동 시장, 노동법, 연금, 복지, 직업훈련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와 관계 부처가 참여해 논의를 진행했다.
계속고용연구회 공동 좌장을 맡고 있는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계속고용에는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다만 노동계가 주장하는 법정 정년 연장은 부작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노사정 논의를 통해 현재 노동 시장과 노사관계 특성을 고려한 계속고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정 정년 연장의 부작용
계속고용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덕호 상임위원은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의 노동력 손실이 발생하고, 이는 성장률 저하로 이어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두 번째로는 은퇴 후 연금 수급 시점까지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는 점을 꼽았다. 우리나라 55세 이상 65세 미만 인구의 고용률은 66.3%로, 일본 76.9%, 독일 71.8%에 한참 못 미친다. 세 번째 이유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 개인의 삶의 질이 저하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법정 정년 연장이 아닌 계속고용을 논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만의 특수한 노동 시장 때문이다. 김덕호 상임위원은 “우리나라는 통상 해고가 굉장히 제한적이며, 은퇴 시기에는 생산성에 비해 임금 수준이 매우 높아진다. 입사 시기 대비 은퇴 시기 임금을 보면 유럽은 1.6배, 일본은 2.1배, 한국은 2.9배 수준이다.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이 그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때문에 임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노동 시장의 구조가 양극화되는 것도 생각할 지점이다. 1차 노동 시장은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2차 노동 시장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이다. “청년들이 2차 노동 시장에서 훈련받아도 1차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연장을 주장하는 노조가 있는 곳은 대부분 1차 노동 시장이라 정년을 늘리면, 청년들의 취업의 문이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김 상임위원은 말했다.
또한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법정 정년과 상관없이 60세 이후에도 계속고용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한다. 대기업의 평균 정년 연령은 60.2세지만,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은 61.5세다. 김덕호 상임위원은 “법정 정년 연장은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기성세대의 욕심으로 미래 세대를 좌절케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사정 사회적 논의 필요
정부는 일본의 정년 연장 방식을 좋은 선례로 보고 있다. 일본은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를 통해 사실상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한다. 기업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고용 중 어느 한 가지 형태로든지 고령자를 고용해야 한다. 이 중 계속고용은 종래의 근로관계를 청산한 후 재고용하는 것으로, 임금 수준 등을 포함한 근로 조건에 변화가 발생한다. 일본 기업 81.2%는 계속고용 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며, 2005년 52%였던 60~64세의 취업률이 지난해 73%까지 올라갔다. 정부는 임금 체계 개편이 일본의 성공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경사노위 계속고용연구회는 올 상반기 ‘계속고용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본 방향은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조기 은퇴를 막고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은퇴 전에 직업전환 훈련을 통해 전문직을 수행할 역량을 키우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김 상임위원은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정년 연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20%는 도산하는 경우가 많고, 금융계는 희망퇴직을 원한다. 실제로는 정년이 되기 전에 퇴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정년 연장 이전에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국노총이 지난해 11월 13일 경사노위에 복귀한 터라 이목이 쏠리고 있다. 12월 14일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를 통해 사회적 대화의 시동이 걸렸으며, 이르면 올 1월 본위원회를 개최해 의제별 위원회 구성 등을 의결할 예정이다. 김덕호 상임위원은 “방법론에는 시각차가 있지만, 초고령사회의 계속고용 방안을 노사정이 대화로 마련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세대가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계속고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연령주의와 근로계약 기본 원칙을 이해하고 나면 정년 문제는 퍽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과 속사정은 다르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봐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경영계와 노동계 입장이 다른 것은 물론, 노동자 사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이 문제는 고령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돈다.
정년 연장 논의는 거대한 미로 같다. 사회복지교육협의회장, 노년학회장, 사회복지학회장 등을 역임한 ‘국내 사회복지 분야의 원로 학자’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도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사안이 복잡다단하다. 단, 희소식이 있다. 미로에 입구와 출구가 있는 것처럼 정년 논의도 큰 틀에서 시작점과 끝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출산ㆍ고령화의 나비효과
문제의식은 저출산ㆍ고령화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2020년 이미 인구 데드크로스(사망자 > 출생자)에 진입했다. 총인구 5000만 명 선은 머지않아 붕괴된다. 통계청은 앞으로 50년간 총인구가 1550만 명가량 급감하면서 3600만 명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노동 시장은 이 위기에 공감하고 있다. 경영계는 ‘고령 인력 활용 활성화로 초고령사회를 대비한다’는 정년 관련 기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동계도 통감한다. 정년 연장 법제화를 촉구하는 한국노총이 가장 먼저 든 청원 이유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와 인구구조 변화 대비’다. 인구구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우리 사회와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ISSUE 1
임금 체계 개편 / 부담인가, 부당한가
문제의식이 같다고 대응책까지 같을 수 없다. 정년 연장 논의도 그렇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임금 체계 개편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경영계는 ‘임금 체계 개편을 전제’로 ‘계속고용’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근속 연수에 비례해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형 임금 체계가 비용 부담을 크게 가중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우리나라의 근속 30년 이상 장기 근속 근로자 임금은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임금보다 3배가량 높다”며 일의 가치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 체계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계는 임금 체계 개편은 고령 노동자의 임금 삭감과 고용불안을 가속화할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임은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 부본부장의 말이다. “우리나라 임금 체계는 생애 주기를 반영해 설계됐습니다. 직무쪾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가 ‘일의 가치와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담보도 할 수 없습니다. 기업 비용 부담을 줄여 고용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국 질 낮은 일자리와 낮은 임금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팽팽한 주장을 듣고 있던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변호사는 통계의 맹점을 지적한다. “근속 30년 이상 장기 근속 근로자 임금과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임금의 격차가 크다는 이야기를 바꿔 말하면, 우리 노동자들이 비교 국가군에 비해 젊어서 아주 낮은 임금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 사실을 간과한 채 30년 이상 장기 근속한 근로자 임금이 많다고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노동자들이 아주 많은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직무쪾성과급제로 개편된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도 김 변호사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년 연장 논의 첫걸음부터 다른 길로 들어선 기업과 노동자. 둘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여력이 없다.”
ISSUE 2
노동 시장의 이중화 / 누구를 위한 정년 연장인가
법정 정년 연장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누구를 위한 정년 연장인가, 정년 연장은 과연 정의인가’ 하는 물음이다. 시쳇말로 요즘 세상에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정년과 실제 퇴직 연령이 크게 괴리되어 있다. 법정 정년에 한참 못 미쳐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상황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정년 60세 법제화가 이뤄진 2013년 이후 정년퇴직자 증가율보다 조기 퇴직자 증가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경총은 “법정 정년 연장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 집중돼 오히려 노동 시장 이중구조를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년 연장과 관련된 상당수 연구 결과를 들어 ‘고학력, 남성, 300명 이상 기업,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의 정규직’에 가까울수록 정년 연장 혜택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정년 연장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다.
정년은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만의 문제일까. 김기덕 변호사는 “정년은 모두의 문제”라고 반박한다.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리라는 전망이 없다 해도 결국엔 어느 사업장에 가서든 일을 해야 합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직장을 구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옮긴 회사에서 정년이 또 문제가 됩니다. 자영업자가 되겠다는 각오가 아니라면, 정년은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는 당장 혜택을 받을 이들이 정년 연장을 외치는 것을 귀족노조의 제 밥그릇 챙기기로 보지 않는다. 한꺼번에 정년 연장이 가능하지 않다면, 가능한 노동자부터 정년 연장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은주 부본부장도 동의했다. “정년 법제화 혜택을 중소기업 노동자도 많이 받았습니다. 정년 연장을 통해 혜택을 받는 이들은 현재 소수일지 모르겠으나 제도는 어느 집단만의 것이 아닙니다. 도입 후 많은 이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ISSUE 3
일자리와 세대 갈등 / 각자도생해야 하는가
정년 연장의 불똥은 여기저기로 튄다.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세대 갈등이다. 경영계는 “정년 연장 혜택을 받는 고령 근로자가 많아질수록 체감실업률이 20%에 달하는 청년층의 취업난을 더욱 악화시킨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경총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근거로 든다.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 실업률은 최근 10년간 평균 8.7% 수준이다. 정년 60세가 단계적으로 시행된 2016~2017년에는 2000년 이후 최고치(9.8%)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 역시 심각하게 보고 있는 노동계는 세대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임은주 부본부장의 말이다. “정년 연장을 선택한 많은 나라에서 세대 간 일자리가 대체된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기업은 좋은 일자리라는 낙수효과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금자산으로 보유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임금피크제 도입 후 삭감한 임금만큼 청년 고용을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청년 일자리로 순환되는 구조가 아닌 것입니다. 세대 갈등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도 고령자도 모두 약자입니다. 약자와 약자 사이에 경쟁을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경총은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 자체를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반론한다. 2022년에도 ‘최근 고령자 고용 동향의 3가지 특징과 정책 과제’를 통해 정년 연장 수혜 인원이 1명 늘어나면 채용되는 정규직 근로자가 거의 1명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임금 연공성이 높은 사업체에서는 정년 연장 수혜 인원이 1명 늘어나면 정규직 채용 인원이 거의 2명 줄어든다는 추정을 하기도 했다.
최성재 교수는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국가와 제도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개인이 그에 맞춰 대응하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하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로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정년 논의의 기본 전제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개인 능력 위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봅니다. 연령주의는 뿌리 깊은 의식 속 문제이기 때문에 없애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인구가 많고 출산율이 높으면 크게 걱정할 것 없겠지만 출산율 문제는 해결하기 더 어렵습니다. 결국 답은 개인이 경쟁력을 갖추는 것뿐입니다.”
‘각자도생’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에 한국노총은 의문을 던졌다. 반문은 계속됐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인가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없나요? 국가는 왜 쏙 빠지나요? 고령자들이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임금만 깎는 것이 과연 대안으로 적절한지 궁금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해서 지속 가능한가요?”
갈 수밖에 없는 길
세상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있다. 저출생ㆍ고령화는 사회쪾경제는 물론 노동 시장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메가트렌드’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정년 연장 논의는 돌고 돌겠지만, 그 끝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중위연령이 계속해서 치솟는 상황 속에서 연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성재 교수는 현실적으로 폐지 수준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발등에 불붙은 문제는 아니지만, 이것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25년쯤 후면 인구의 절반 정도가 물리적으로 정말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옵니다. 현실적으로도 정년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기덕 변호사도 동의했다. “정년 연장은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인구구조상 정년 연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 세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고, 폐지하겠습니까? 국가 예산을 들여서 운영해야 하는데 고령화로 그럴 수 없으니 연장을 택한 것입니다. 정년 연장은 노동자에게 혜택도,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국노총은 더 늦기 전에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인구구조 변화의 ‘초위기’ 속에서 한국식 정년 연장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는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인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이전에 정년을 맞는 것입니다. 소득 공백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합니다. 60~64세는 사회보장이나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로 볼 수 있습니다. 법정 정년 연장은 노동계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사회적 논의도 필요합니다. 노동계 안에서 논의도 필요합니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왜 우리나라 노동자는 정년을 연장하면서까지 더 일하게 해달라고 아우성인지 말입니다.”
도움말 최성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변호사, 임은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 부본부장
참고 한국경영자총협회 ‘정년 60세 법제화 10년, 노동시장의 과제’
정년 60세가 법제화된 지 어언 10여 년.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연계한 법정 정년 연장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전에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몇 살부터 노인일까? 왜 그 나이가 노인일까? 과연 나이로 차별해도 될까?
‘몇 살’부터 노인일까? 노인을 정의하는 일반적인 연령 기준은 65세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며 경로우대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정했다. 세계도 노인을 정하는 나이에 대해선 이견이 크지 않다. 국제연합(UN)은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를 구분하는 연령 기준을 65세로 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로 분류하고,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까지 치솟으면 초고령사회라 한다. ‘몇 살부터 노인일까?’라는 질문은 이제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난이도가 꽤 올라간다. 그럼 ‘왜’ 65세부터 노인일까?
연령주의와 연령 차별
“혹시 연령주의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최성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가 취재 취지를 들은 뒤 맨 처음 한 말이다. 정년 연장 논의에 앞서 노인을 정의하는 기준 나이부터 짚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인=65세’의 기원은 프로이센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의 재상’이라 불리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889년 세계 최초로 공적 연금제도를 시행하며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자본주의 확산으로 사회주의 역풍이 불고 노동운동이 득세하자, 그 투쟁 의지를 꺾기 위해 연금보험을 도입한 것이다. “일정 연령까지 일한 뒤 퇴직하면 연금으로 생활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본인 나이를 토대로 70세 이상이면 수급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었어요. 문제는 비스마르크가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때까지 산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당시 70세면 굉장한 장수예요.”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친 프로이센은 1916년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낮춘다. 이후 공적 연금을 도입한 나라들이 프로이센을 따라 사회 은퇴와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로 정했다. “지금도 선진국에선 노인을 정하는 일반적인 연령이 65세입니다. 그런데 왜 65세인지에 대해서는 그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애초에 비스마르크 나이를 기준으로 했고, 그게 너무 많아서 낮춘 것뿐이니까요.”
우리나라는 노인을 65세로, 정년을 60세로 본다. 2013년 4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정년 60세가 법제화됐다. 그전까지 정년은 개별 기업이 자율로 결정쪾운영했다. 정관에 따라 40~50대에 퇴직해야 했고, 심지어 결혼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정년의 최저기준을 마련하고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여기까지 꽤 논리적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머리도 굳고 몸도 노쇠해진다고 생각한다. 최성재 교수는 이를 연령주의(연령에 따라 고정관념을 갖거나 차별하는 사상의 표현이나 과정)라고 지적한다. “사람은 개인 차이가 굉장히 심합니다. 정년 제도는 개인차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나이로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판단하는 거죠. 근본적으로는 나이가 많아지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그 근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65세를 노인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생산성은 보상이나 업무 분위기 등 다른 요인에 의해 훨씬 더 많은 차이가 납니다. 오히려 그런 연구 결과는 아주 많아요. 나이 가지고 일률적으로 생산성을 논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상당히 희박합니다.”
고령자고용법의 역설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변호사 역시 취재 취지를 듣고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정년 연장을 논하기 전에 근로계약 기본 원칙을 설명한 이유다. “근로관계에서 기본 원칙은 ‘기간제로 맺는 계약을 제외하고 사용자는 근로자를 기간에 정함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정년 문제에 해당하는 이들은 전부 기간에 정함 없이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입니다. 그런 근로자에 대해서 나중에 정년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즉 기간을 제한한다는 의미입니다.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에 비춰볼 때 기본적으로 정년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나이에 따른 생산성 저하는 법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 근로계약상 노무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61세 1일째부터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59세에도 정상적으로 일했고 60세에도 정상적으로 일한 사람의 능력이 61세가 됐다고 갑자기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점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정년 60세 의무화를 정한 법의 목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용자고용법 제1조(목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고용 차별을 금지하고, 고령자가 그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촉진함으로써,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입법 취지는 제한이 아니라 보장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정년
학계가 비논리성을 지적하고 법조계가 법리적 부당함을 꼬집어도 여전히 우리네 인식 속 ‘나이’에 의한 판단은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 나이에 유독 민감한 나라다. 연령주의와 연령 차별이 머릿속 깊은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다. 그래서 나이를 이유로 취직이 안 돼도, 해고를 당해도 대부분 당연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분위기다. 팍팍한 현실이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를 보이고 있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독일은 30년 이상, 일본은 15년이 걸렸다. 2018년 고령사회로 들어선 한국은 7년 만인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시니어 보릿고개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0.4%로 나타났다. 노인 자살률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 와중에 기대수명은 2022년 기준 남자 79.9세, 여자 85.6세, 평균 82.7세로 집계됐다.은퇴 후 20년 넘는 노후가 기다려지기보다 두려워지는 것이다.
최근 정년 연장을 외치는 이들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한 법제화를 요구한다. 법정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맞지 않아 연금을 받을 때까지 3~5년 동안 소득이 없는 ‘연금 크레바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보전할 수 있도록 소득 공백기를 없애달라고 호소한다.
논쟁은 제쳐둔 채, 그 요구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근본적인 의문은 남는다. 65세여야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나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차별해도 되는가? 김기덕 변호사는 이렇게 반문한다. “국민연금을 61세부터 받을 수 있다고 하면, 60세에 퇴직하는 것이 합당한가요? 그 논쟁으로 돌아가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계속 존재합니다. 나이를 65세로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정년 문제의 본질은 이것 하나입니다. ‘연령에 따라 차별해선 안 된다.’”
도움말 최성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변호사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권종하 씨는 신체 상태나 경제 상황 탓에 밥을 잘 챙겨 먹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한다. 그 도시락에는 애정 어린 말 한마디와 배려 깊은 관찰 등 따끈한 밥 그 이상의 무언가가 들어 있다.
권종하 씨는 서울시에서 공직 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한 뒤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을 돕는 건강 코디네이터,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주민을 위해 다양한 복지 정보를 전달하는 시니어 지역상담가, 어르신 지역 돌봄 등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에 참여해왔다. 2023년 보람일자리 저소득어르신급식지원단 사업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현역 시절에 사회복지와 관련한 업무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은퇴 후 보람일자리를 포함한 여러 활동을 통해 수혜자들을 마주할 때면 구체적으로 필요한 제도가 무엇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자연스레 머릿속을 스치더라고요.”
몸 상태에 맞춘 균형 잡힌 식사
저소득어르신급식지원단 사업에 참여하며 권종하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이나 신체 조건 등으로 인해 식사를 거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맞춤형 도시락을 지원했다. 도시락은 당뇨식, 신장식, 저염식, 일반식으로 나누어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수혜자들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3월까지는 도시락 업체에서 납품받아 음식을 전달했지만 4월부터는 복지관에서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매일 배달했다. 대부분 2인 1조로 팀을 이뤄 활동한다. 수첩에는 들러야 할 어르신의 이름과 특이사항, 상태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낯선 이를 반기는지, 조심스러워하는지까지 말이다.
“우선 수혜자들에게 건강형 식사지원사업 참여 동의를 받고 질환, 키, 몸무게, 혈압 등 건강 상태를 측정합니다. 어떤 음식을 언제, 몇 끼에 나눠 먹는지 살핀 뒤 애로사항을 확인해요. 가끔 냉장고•전자레인지 등 기본적인 전자제품조차 없이 지내는 분도 있어요. 최대한 지원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죠. 한 가구당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서 힘든 부분을 꼼꼼히 체크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요. 음식량은 1인분보다 넉넉히 드리는데 보통 두 번 혹은 세 번에 나눠 드시는 분이 많아요.”
수혜자마다 사연이 각기 다르다 보니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쉽지 않단다. 어느 날 권 씨는 지원 대상에 선정된 65세 남성의 가정을 방문해 건강형 식사지원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아 신체 정보와 건강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수혜자는 20년 전 이혼 후 노모와 함께 생활하다 4년 전쯤 노모를 여의고 혼자 남게 되면서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린 터라, 갑작스러운 외부 접촉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결국 지원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권 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덥수룩한 머리에 긴 수염, 지저분한 방 안 풍경이 눈에 아른거렸다. 성실히 살피고 애쓴 끝에 수혜자는 이발과 면도를 하고 집 안 청소도 부지런히 하며 무난히 지내고 있다.
한 끼에 담은 관심
지난 9월 7일, 그날도 권 씨는 도시락을 챙겨 동료와 함께 수혜자의 집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20분 남짓 가는 길에도 쓰레기를 줍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아이를 따뜻한 눈으로 마주하고, 유모차를 끈 엄마의 짐을 대신 들어주기도 했다. 꼬불꼬불 언덕을 올라 도착한 구옥 지하실 단칸방에서도 그 눈빛은 여전했다. 문을 열자마자 “어르신, 밥 왔어요. 요즘 어떠셔? 기운이 좀 없으신가? 얼굴이 푸석해진 것 같네. 요즘 주민센터나 시에서 연락 얼마나 자주 와요?”라며 다정하고 힘찬 목소리로 건넸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80대나 90대예요. 도시락 들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우연히 예전에 도와드렸던 어르신을 길에서 만나기도 해요. 언제 또 오냐고, 우연이라도 만나서 참 반갑다는 진심 어린 말을 들을 때면 하루 종일 걸은 2만 보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져요. 중간에 힘들면 단골 마트에 들러 캔 커피 하나 사 들고, 빌라 건물 사이 그늘에서 마시며 숨을 골라요. 나름의 여유를 만끽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캔 커피를 비우자마자 그는 다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늦더위가 기승이었지만 수혜자들의 집은 대부분 언덕 위나 등산로 근처에 위치해 있다. 힘든 기색을 비칠 새도 없이, 어르신들의 끼니가 늦어질세라 분주한 모습이다.
“함께 활동하는 동료는 제게 하루라도 봉사를 하지 않으면 다리에 쥐가 나는 것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전 그저 쌓아온 경력을 활용해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쁩니다. 공직 생활도 정년을 채우고, 67세까지 지원 대상인 보람일자리도 정년을 꽉 채워 마무리하게 됐네요. 대상자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고 교감하면서 아주 뿌듯했습니다.”
“저는 환갑이 지났는데도 귀에 거슬리는 게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네요, 허 참. 나와 생각이 달라도 그렇고, 옷차림도 말투도 여전히 거슬리는 것투성입니다. 공자님은 60을 이순(耳順)이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간 철남 씨가 주문한 순댓국이 나오기 전에 툭 내뱉습니다.
공자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산전수전 다 겪고 70세가 넘은 공자(孔子)가 자신의 삶을 회고합니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에 스스로 섰고(三十而立), 40세에 미혹되지 않았으며(四十而不惑), 50세에 천명을 알았고(五十而知天命), 60세에는 귀가 순해졌고(六十而耳順), 70세에는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나이가 육십갑자(六十甲子) 한 바퀴 돌면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 될까요? 공자 나이 60세가 되어 천지 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하게 된 데서 나온 말이 ‘이순’이라고 합니다. 남의 말을 듣기만 해도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고, 남이 하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고도 해석되는 ‘이순’. 필자도 앞으로 4년이 지나면 예순이 될 텐데 ‘이순’ 경지에는 감히 이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디쯤 속하는지 떠올리면서 같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열다섯에 왜 공부해야 하는지 도통 몰랐고, 서른에 등 떠밀리듯 결혼했고, 마흔에는 유혹에 빠져 미친 듯이 방황했고, 쉰에 겨우 정신 차릴 즈음 가족이 흩어졌고, 육십엔 여차하면 시비에 휘말리는 꼰대가 되더니, 이제 칠십 바라보며 노망날까 두렵기 짝이 없네요.”
그날 저녁 자리에 함께 있던 순욱 씨가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쉽니다.
60·70·80대 1000만 시대
올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가 950만 명(전체 인구의 18.4%, 통계청 발표)에 이르면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추세라면 2025년에는 고령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 환갑을 넘어 칠순, 팔순, 구순에 이르는 인구가 불과 2년 뒤엔 1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귀도 순해져야 하고(60, 耳順), 하고픈 대로 해도 민폐가 되지 않아야 하고(70, 從心), 정말 나이별로 숙제가 태산입니다.
반면 유엔(UN)은 2015년에 이미 체질과 평균수명, 사회적 역할과 역량의 변화를 고려해 인간 생애주기에 따른 새로운 연령 기준을 정의했습니다. 태어나서 17세까지가 ‘미성년’(Underage), 18~65세 장장 50년 가까이 ‘청년’(Youth or Young People), 66~79세가 ‘중년’(Middle Aged)이랍니다. 80세 넘어서야 겨우 ‘노인’(Elderly or Senior) 축에 들고, 100세를 넘겨야 ‘장수 노인’(Long-lived Elderly) 대접을 받습니다.
8년 전에 나온 새로운 연령 기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웃고 말았습니다. 당시 필자는 40대였기 때문에 5060 세대랑 한 집단으로 묶이는 게 매우 불쾌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세월 무서운 줄 모르는 철부지였으니까요. 2023년 만으로 쉰다섯 살 먹은 필자는 이제야 유엔이 정한 나이 기준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백세시대, 환갑에 다시 시작하는 청춘
유엔 연령 기준대로 생생히 살아내신 분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1920년 4월 23일생으로 현재 103세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입니다. 지팡이 없이 꼿꼿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청중을 만나는 김 교수는 책과 강연,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인생에서 제일 좋고 행복한 나이는 60에서 75세까지이고,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65세에 정년 퇴임한 뒤 할 일이 더 많았다는 그.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내기 시작했고, 이후 정부기관, 기업체, 사회단체 등에서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대학에서 강의할 때보다 훨씬 많이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전 누굴 만나든지 90세 전엔 늙지 마라, 늙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30, 60, 90세까지 세 단계를 살게 됐으니까요.”
30세까지는 내가 나를 키워가는 단계이고, 65세까지는 직장과 더불어 일하는 단계이며, 90세까지는 그동안 받은 것을 나누며 사회를 위해 일하는 단계라고 구분합니다.
김 교수는 60세쯤 되니까 조금 철이 드는 것 같고, 75세쯤까지는 성장을 하는 것 같다며, 76세 즈음에 제일 좋은 책들이 나왔다고 자평합니다. 그는 99세가 되어서야 일간지 두 곳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연간 100회 넘는 강연과 글쓰기로 일상을 보내는 그는 늙지 않는 정신력으로 신체와 균형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95세쯤 되니 정신력이 쇠락한 신체를 업고 가더라며, 50대가 되면 기억력은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창조하는 능력인 사고력은 오히려 그때부터 올라간다며 우리를 안심시킵니다.
나이에 주눅 들지 않기
그렇다면 필자처럼 코앞에 닥친 예순, 이순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103세 김형석 교수가 60대에게 준 말씀을 다시 새깁니다. “인생에서 열매를 맺은 기간은 60대였던 것 같다. 그래서 60대엔 제2의 출발을 해야 한다. 독서로 대변되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놀지 말고 일하라. 과거에 못 했던 취미 활동도 시작하라.”
올해 구순인 필자의 시어머니, 87세 친정아버지, 82세 친정어머니 세 분 모두 60대에도 현역이었고, 지금도 일터에서, 밭에서 일손을 놓지 않고 계십니다. 친정어머니 김초자 여사는 최고령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1020 손주 세대와 얘기하는 게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오늘 점심에 전화했더니 어제 노인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부석사로 졸업여행 중이라고 자랑하시네요. 친정아버지 박성옥 선생은 젊어서부터 보던 ‘명심보감’(明心寶鑑)이며 일본어 교과서를 몇 번이고 필사하며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엄살을 부리십니다. 겉절이 담근 이야기를 하다 어떤 낱말이 맴돌기만 하고 퍼뜩 떠올리지 못하는 제게 ‘우거지 아니냐’며 보란 듯이 건재함을 증명해내시는 분이 바로 시어머니 조진실 여사입니다.
귀가 순해지기 위한 방법을 한참 궁리하던 차에 김형석 교수부터 필자의 양쪽 부모님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총명’(聰明)이 그것입니다. 귀 밝을 총(聰)과 눈 밝을 명(明)이 합쳐진 총명은 남의 소리를 잘 듣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고, 남의 입장과 처지도 밝게 살피는 지혜를 뜻합니다. 때로는 같이 사는 강아지나 길에서 만난 고양이, 시들어 말라가는 관음죽이 내는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것이 총명입니다. 비단 밖의 소리뿐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줄 줄 알아야 총명과 이순이라는 경지를 맞이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물어볼 줄 아는 마음 : 공자의 구슬
공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 어떤 사람한테 귀한 구슬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뿐인 구멍에 실을 꿰려는데 구슬 구멍이 아홉 구비나 구부러져 있어 아무리 해도 꿰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민하던 공자는 마침 뽕잎을 따고 있는 아낙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낙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꿀을 이용하면 가능할 것이니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공자는 시키는 대로 곰곰이 생각하다 그 말뜻을 깨닫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러고는 개미 한 마리를 붙잡아 허리에 실을 잡아맨 다음 개미를 구슬 한쪽 구멍으로 밀어 넣고 다른 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놓고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꿀 냄새를 좇아 반대편 구멍으로 나온 개미 덕분에 실을 꿰는 데 성공했다는 이 고사는 ‘공자천주’(孔子穿珠)라고 합니다. 송(宋)나라의 목암선경(睦菴善卿)이란 선사(禪師)가 편찬한 ‘조정사원’(朝廷事苑)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공자님 일화로 가르쳐줍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신분이 높든 낮든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든 묻고 스승으로 삼으려는 공자의 마음을 우리도 배운다면, 나이 먹는 두려움과 서러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위로해봅니다.
청춘 제대로 즐기는 법 : 여여여 인생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나이에 구애됨 없이 멋지게 청춘을 즐기려면 여백과 여유, 여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백(餘白) - 글씨나 그림이 꽉 들어차면 보는 사람이 숨이 막히고 답답해집니다. 빈자리나 행간이 적당히 있어야 숨통이 트이고,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 말만, 그것도 일제강점기부터 피난 시절까지 고생한 얘기 수백 번 한다고 알아주는 자식 드뭅니다. 대화에도 여백을 주어야 쌍방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여유(餘裕) -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차분하게 생각하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실수를 줄여서 시간을 벌 때가 많습니다. 나이 들수록 조급증이 생겨서 젊은이들이 늦다고 재촉하고, 더디다고 성화를 낼 게 아니라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를 부려봅시다.
▶여지(餘地) - 평소에 “난 한번 한다고 하면 여지없이 확실한 사람이야”라고 자부하다가 큰코다친 경험이 있다면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말의 틈이나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고 상대방을 가차 없이 몰아세우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지가 있어야 그 사이로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오르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 서로가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남이 하는 말이나 내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귀도 순해지고, 우리 삶이 순풍에 돛 단 듯 멋진 항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환갑 만세! 청춘 만만세!
곧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가 된다. UN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에 초고령화 국가로 접어든다. 내년이면 노인 인구 천만 시대라고 한다.
백세 시대를 모두가 평온하게 누리는 생활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50대 후반부터 명예퇴직을 걱정해야 하고, 60대부터는 정년퇴임 후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은퇴의 의미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인데, 평생 인생에서 진정한 은퇴가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은퇴 후의 삶은 아름다운가
일본에서는 지역마다 노후연금이 입금되는 날이 대목이어서 이에 맞춘 연금 비즈니스가 활황이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안정된 연금으로 평온한 노후를 즐길 수 있을까.
한평생 열심히 일했으니 여행이나 다니며 편하게 쉰다는 것은 일부 부유한 고령자에 한정된 이야기다. 설상가상 대부분의 고용조건은 고령자에게 가혹하기만 하다. 젊고 쌩쌩한 사람보다 느리고 생산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의 고용조건은 고령자를 정당하게 대우하기보다는 ‘집에서 노느니 이런 거라도 하셔야죠’라는 식으로 후려치는 느낌이 있다. 그야말로 ‘어차피 돈 못 버는 은퇴 상황이니 적은 돈이라도 악조건에 벌어라’는 식이다.
직장이라는 안정된 울타리에서 벗어난 것도 서러운데 허허벌판에서 나 홀로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두려움, 나보다 어린 사람과 근무조건을 조정해야 하는 당혹스러움, 빠르게 변하는 기술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은 모두 개인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속편하게 공공근로를 하는 게 차라리 나을까, 그나마 일이라도 구할 수 있으니 조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할까 하는 어수선한 마음도 모두 개인의 부담이다. 과연 이게 맞는가.
고령자 채용 생태계
일본 제일의 고령자 채용 기업 가토제작소(기후현)는 2000년 초부터 적극적으로 고령자를 채용해왔다. 주말 한정 채용이긴 했지만 단지 고용에 그치지 않고 지역 내 기업에도 채용 노하우를 공유하며 고령자 고용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지역에서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고령자가 1000명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된 회사 대표가 마침 주말에도 가동하는 공장에 필요한 고령자들을 채용했다. 지원자는 100명이었고 그중에 15명을 채용했다. 지금은 전체 직원의 절반이 60세 이상 고령자다.
가토제작소의 성공적인 고령자 고용 사례를 보고 지역의 기업들도 앞다퉈 고령자를 채용하고 있다. 연금으로 파친코에서만 시간을 보내서 인구 대비 파친코 매장 수가 일본 최고 수준이었던 지역인데, 고령자 채용으로 의료비 지출까지 줄어든 지역으로 환골탈태했다.
‘젊은이가 돌아오는 마을’에 소개된 도쿠시마현 가미가쓰에서는 할머니들이 요리에 쓰이는 잎을 가공하는 사업으로 연 수입 1억 원을 벌기도 한다. 단지 매출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지역 성공 사례를 보고 이주도 증가했으며, 노인들이 일하다 보니 건강해져서 지역 공공의료원이 필요 없어질 정도의 놀라운 효과까지 나타났다.
슈퍼 에이지, 액티브 시니어
‘더 슈퍼 에이지’ 창립자이자 ‘슈퍼 에이지 이펙트’의 저자 브래들리 셔먼은 고령화에 대한 부정적인 통념을 부정한다. 고령자가 시장의 주요 참여자가 되면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된다고 주장한다. 은퇴는 서구의 연금제도 때문에 형성된 개념으로,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사람들은 더 오래 일해왔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에서 셔먼이 말하는 슈퍼 에이지는 65세 이상을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기준으로 인도, 멕시코, 브라질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초고령사회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는 50~74세 인구가 소비시장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취업률은 34.95%로 OECD 1위다. 수치만 놓고 보면 고령자 고용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수입 수준과 일자리의 질을 보면 별로 행복한 수준이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전히 고령자를 사회의 짐으로 여기고 있고, 노인이라는 무기력한 말로 부르며 젊은이들이 부담해야 할 연금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수혜자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울하고 가혹한 시나리오다.
이제는 은퇴, 노인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능동적인 용어가 필요하다. 정년 연장을 통한 계속고용 안정화 및 복지 프레임을 벗어난 고령인구 정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노동 공유(Work Sharing), 손자양육 휴가 등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모두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고령자는 부양 대상이나 일방적으로 대접만 받는 수혜자가 아니라, 정당하게 존재하는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15세 이상 고용률은 2000년 58.5%에서 2021년 60.5%로, 지난 20여 년간 약 2.0%p 상승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환경적 요인이 국내 노동시장에 단기간 영향을 미치기도 했으나, 전반적인 고용률은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고용률 상승세에 주도적 역할은 한 건 누구일까? 바로 50대 이상 중장년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 연구보고서 ‘고령자 노동시장 현황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동 기간 10대와 20대는 고용률이 하락한 반면, 30대 이상에서는 고용률이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50~59세의 증가폭이 가장 컸고, 60세 이상의 증가폭도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나영돈 한국고용정보원 원장은 해당 보고서의 발간사를 통해 “최근 20년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고용률의 변동, 다시 말해 고용률의 증가 추세는 50대 이상 연령층의 노동시장 진입에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층 편입과 더불어 가속화하는 고령화 흐름으로 볼 때, 그 상승을 주도하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에 대한 노동시장 정책의 중요도는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2025년 한국 인구추계가 절반가량이 50세 이상이고, 약 20%는 65세 이상으로 예상(초고령사회)됨에 따라 노동력의 고령화는 지속적인 사회 문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구통계학적 측면으로 보자면, 10년 전 베이비붐 이전 고령세대에 비해, 1차 베이비부머가 포함된 고령세대의 경우 고학력 비중이 높아졌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위 보고서에서는 “길어진 교육 기간에 상응해 이들의 인적자본이 더 높게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특성은 기존에 획일적으로 이뤄져왔던 고령층 역량 개발 정책이나 재취업 지원 정책, 일자리 알선 체계 등이 인적자본 손실이나 사회적 비효율을 억제하기 위해 보다 세분화되어 설계돼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지적했다.
세분화된 정책 설계를 위해서는, 고령층 가운데서도 ‘누가 일자리를 희망하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경제활동 인구 변화를 통해 유추 가능하다. 10년 전과 비교해 (베이비부머가 포함된) 세대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하는 양상이다. 그중에서도 생애 무직자나 경력 단절자들의 노동신장 진입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즉, 과거에 비해 여성노인의 일자리 희망 비중이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여성 노인을 포함한 고령층의 경우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 보다 오래 잔류하고자 하면서도, 건강이나 여가를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전일제보다 시간제를 선호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과거 ‘임금 수준’이나 ‘계속 근로 가능성’ 등 일에 대한 보상이나 고용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과 달리, ‘일의 양과 시간대’ 등 유연한 근무 환경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흐름이다.
보고서에서는 소결을 통해 “이들 세대의 희망 일자리 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60세 정년 의무 제도의 강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조기 이탈을 방지할 필요가 있으며,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전직 지원 강화를 위해 재취업지원 의무 및 전직 훈련 프로그램의 내실화, 중고령층 잡 케어 서비스의 강화 등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시사했다.
아울러 “고용 환경을 유연화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경력형 일자리 △사회적기업 △노인일자리 △귀농일자리)를 개발하고, 근로 시간 유연화를 통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개발 및 지원 환대가 보완된다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고령인력의 활용 촉진과 고령자 고용의 질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인구구조에 관한 한 낙관론은 없다. 무너지고 있고, 앞으로도 무너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붕괴’ 할 것이라고.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챌린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때의 투자법은 달라야 한다고 했다.
가장 확실한 투자법, 1인 1기
영화 ‘첨밀밀’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틋한 감성 로맨스물이지만 김경록 고문에겐 호러물에 가깝다. 주인공 장만옥이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잔고를 확인하며 한숨 쉬는 장면을 김 고문은 공포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생애 자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힘들게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다 날렸으니 얼마나 안됐어요? 정말 남의 일이 아닙니다.” 김 고문이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점은 전 재산을 잃은 장만옥이 안마시술소에 취업하는 신이다. “본인에게 투자했더라면, 조금 더 나은 기술이나 전문성을 길렀더라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 겁니다. 돈은 잃을 수도 있고, 누가 훔쳐 갈 수도 있지만 전문성이나 기술은 그럴 수 없어요.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입니다.”
김 고문은 1인 1기(1人1技)를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7% 이상)이던 2014년, ‘1인 1기’라는 책을 출간하며 “쓸모 있는 기술 하나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9년여가 지났다.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 이상)에 들어선 한국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전히 그는 기술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고령화는 사회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잘못 대응하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질 겁니다. 단, 잘 대비해두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답을 기술, 즉 전문성으로 봅니다.”
김 고문이 제시하는 전문성 기르는 방법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자격증 취득이다. 자격증 중에서도 ‘좁은 문’을 통과하라고 조언한다. 손해사정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등 취득하기 어려운 국가공인 자격증이 그 예다. 또 다른 방법은 오랜 시간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는 것이다. 실제 그는 후자를 택해 지금도 열심이다. 노후 문제 전문가로 일하며 일본어 능력의 필요성을 느껴 지난해 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김 고문은 기술이 스스로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노후 인생을 바꿀 기회에 다시 한번 고3처럼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투자라고 말이다. “승부를 해야 할 때는 자기를 던질 정도로 해야 합니다. 한 단계 올라서겠다? 그럴 때는 사투리로 말하자면 ‘오지게’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데모테크’ 투자 3법칙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치즈가 사라지자 한 쥐는 ‘어? 내 치즈, 어디 갔지?’ 하고만 있었고, 한 쥐는 쫄래쫄래 치즈를 찾아갔습니다. 치즈를 찾아간 쥐처럼 하면 됩니다.” 고령화 시대 자산 투자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물음에 대한 김 고문의 답이다.
그는 투자에 앞서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적 정년 60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맞추고 있는 고정관념부터 통화나 자산을 국내 기준으로 보는 관점까지 완전히 새롭게 재고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근거는 인구구조의 붕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독일은 30년 이상, 일본은 15년이 걸렸다. 2018년 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은 7년 만인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인구구조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우리나라는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 큰일 났다. 붕괴되겠다… 어, 어, 붕괴된다’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심하게 말하면 자폭하는 셈입니다. 우리 인구구조가 붕괴되면 인구구조가 튼튼한 다른 나라의 자본을 가지면 됩니다.”
김 고문이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자산의 서식지를 옮기라”는 말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어디에 많은지, 위험이 닥쳤을 때 어디가 충격을 적게 받을지, 충격을 받고서 어디가 회복탄력성이 좋을지 살펴보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에 글로벌 분산투자하라는 뜻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기술 혁신이 만나는, 이른바 ‘데모테크’(DemoTech)라는 흐름에 올라타야 합니다. 이 위기 속에서 왜 한 곳에 올인을 합니까?”
1. 한국 혁신 기업에 투자하라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있을 기업이나 섹터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직 국내엔 자본 차익에 대한 과세가 없습니다. 그 점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종합지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2. 미국 지수에 투자하라
“미국은 경쟁력 있는 기업도 많고, 위험에 충격도 덜 받고, 회복탄력성도 좋습니다. 개인이 개별 종목은 알기 어렵기 때문에 S&P500, 나스닥 등 지수에 투자하는 게 좋습니다.”
3. 인컴형 자산에 투자하라
“특히 배당주는 앞으로 중요해질 겁니다. 국내는 배당을 1년에 한 번 하는 연 배당이 대부분입니다. 그럼 1년 내내 들고 있을 이유가 없지요. 미국은 75% 이상 분기 배당을 하고 있습니다. 배당 주기는 투자자들의 성향을 가릅니다. 인컴형 자산에 주목하고, 이런 점들을 비교해보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국민의 30% 가까이가 65세 이상인 나라, 일본.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합니다.
일본 맥도날드 구마모토 시모토리점에는 여성 최고령 크루(직원)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90세, 혼다 다미코 씨입니다.
23년 전 혼다 씨는 67세 나이로 정년퇴직한 뒤 맥도날드 크루에 합류했습니다. “더 일하고 싶다”는 혼다 씨의 말에 딸이 크루 모집 공고를 알려준 것이 계기였습니다. 지난 28일 일본 매거진 에쎄 온라인에 혼다 씨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구인을 보고 전화해서 신청하자마자 ‘내일부터 와주세요’라고 들었습니다. 고맙게도 그 이후 일하게 해주었네요.”
정년 제도가 없는 맥도날드에서 혼다 씨는 2000년 7월부터 청소 크루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 5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10시 반경까지 일합니다. 동료는 모두 젊습니다. 점장은 손자뻘. 심지어 15세 크루도 있지만 혼다 씨를 부르는 호칭은 ‘다미짱’으로 격의 없습니다.
최근 혼다 씨는 미디어에 소개되며 지역 명사가 됐습니다. “‘늘 깨끗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주는 분도 많습니다. ‘저도 일하고 싶은데 70세라서 거절당합니다. 90세인데 일할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라고 하는 분도 있고요. 그 말을 듣고 아직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럴 때마다 회사에 감사하지요.”
일하며 살아있는 보람을 느낀다는 혼다 씨는 “100세까지” 맥도날드 크루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남고 싶다고 합니다.
“손님이 기뻐해 주는 모습에 매일 마음 가득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능하면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은 사람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자신의 미래를 안정화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저를 포함해 어느 세대도 스스로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가 주위에 폐를 끼치게 되면 그만 둘 때인가 하고 생각할 겁니다. 제 자신도 그 의식을 가지고 일을 마주하고 싶네요”
고령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지난해 우리나라는 60세 이상 취업자와 창업자가 역대 최다라는 기록을 썼다. 그러나 고령자 일자리는 여전히 저임금에 단순 노무가 많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재, 고령자의 노후를 위한 장기적인 일자리 대책이 필요하다.
고령자 취·창업자, 역대 최다
지난달 통계청과 중소벤처기업부, 행정안전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취업자는 585만 8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취업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20.9%로 처음으로 20% 선을 웃돌았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3년 이후 사상 최다의 취업자 기록이다.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2004년부터 매년 늘었다. 최근 몇 년간은 증가 폭이 계속 커졌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증가 폭 4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60세 이상 취업자 수의 급증을 의미한다.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1987년 100만 명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이후 14년이 지난 2001년에 200만 명을 넘었고, 2012년 300만 명이 넘기까지는 11년이 걸렸다. 그러나 400만 명을 넘는 데는 5년, 500만 명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평균 근로 희망 연령은 73세였다. 이를 입증하듯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일하는 노인 역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 70대 취업자 수는 171만 8000명으로 70세 이상 취업자를 따로 분류하기 시작한 2018년 이래 최고 기록을 썼다.
지난해 고령층의 창업도 역대 최고로 많이 이루어졌다. 지난해 60세 이상 창업 기업(부동산업 제외)은 12만 9000개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6년 이후 가장 많다. 2016년 7만 3471개와 비교해 보면, 무려 76.1%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창업 기업이 20.3%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와 같은 고령층의 취업과 창업 기록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이유는 인구 고령화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 인구로 진입하면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주민등록인구 5125만 9000명 중 60세 이상은 1315만 4000명으로 전체의 25.7%에 달했다. 60세 이상 비율이 25%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고령 노동자 일자리 개선 필요
즉, 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일하는 고령자도 늘어난 것이다. 통계청이 발간한 ‘2022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79세 고령자 685만 6000명 중 절반 54.7%는 근로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취업을 원하는 사유는 ‘생활비 보탬’(53.3%)이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일하는 즐거움’(37.3%), ‘무료해서’(5.2%), ‘건강 유지’(3.0%) 등이 이었다.
‘생활비 보탬’이 일하는 가장 큰 이유지만, 고령자들은 만족스러운 일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22년 65~79세 취업자 직업 분포 현황을 보면, 전체 301만 명 중 단순 노무 종사자가 103만 6000명으로 34.4%를 차지한다. 농림어업 종사자는 70만 1000명(23.3%), 서비스·판매 종사자는 51만 5000명(17.1%), 기능·기계 조작 종사자는 49만 4000명(16.4%)으로 나타났다. 반면, 관리 사무직은 16만 명(5.3%), 사무직은 10만 4000명(3.5%)에 그쳤다.
특히 그중에서도 60~64세는 ‘고령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구 집단으로 통한다. 법정 정년 60세와 기초연금 등 다양한 노인 대상 복지 정책의 연령 기준인 65세 사이의 나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공개한 ‘고령 저임금근로자의 노동공급 분석’(진성진·오지영)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국내 60~64세 인구는 약 396만 명(남성 195만 3000명 여성 199만 7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7.6%를 차지했다.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 60~64세 인구 중 임금근로자는 36%에 달하는 14만 2000명가량이다. 또 이들 중 저임금근로자는 33.2%에 이르렀다. 같은 해 전체 임금근로자의 저임금근로자 비율이 20.3%로, 고령자 중 저임금근로자가 많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고령 저임금근로자는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해 일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2020년 기준 저임금 평균은 166만 7000원이었다. 남성은 단순 노무, 기능원, 장치 기계 조작 및 조립에 약 73.3%가 분포되어 있었고, 여성은 서비스 종사자와 단순 노무 종사자가 약 73.1%에 해당했다.
즉, 일하는 고령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에 따른 양적 일자리가 필요하고,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기본적으로는 고령자의 노동 참여를 장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취업장려제도나 고령자를 위한 지자체별 일자리 센터 등 정책과 인프라를 알리고 더 발전·확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현행 60세의 정년을 연장하고 계속고용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