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보기 좋다. 비경이 펼쳐져서가 아니다. 새파란 하늘과 금빛으로 일렁거리는 가을 논, 그리고 저 멀리 있는 초록 산….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관이지만 안락감을 불러일으키며 눈에 살갑게 다가온다. 여긴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위치한 카페의 창가다. 오가는 이도, 차량도 드물어 종일 고즈넉한 시골에, 조막만 한 동네에 모던한 카페라니. 대체 무슨 묘한 역발상에 이끌려 차린 찻집일까? 다들 눈을 끔벅거리며 의아해하기 십상이다. 카페 주인은 2020년에 이 지역으로 귀촌한 이지영(66, ‘카페 산이다’ 대표)이다. 지난 5월 개업했다. 그러니까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장사는 잘되나? 잘된다. 이지영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한 호조다.
이지영에게 시골은 낯설지 않다. 그는 서울에서 주로 살았지만 한때 남편과 함께 전북 무주군으로 내려가 시골살이를 했다. 부부가 합심해 산골에 대안학교를 설립하고서였다. 남편 김경남 목사는 교장직을 맡았고, 이지영은 조역처럼 뒤에서 거들었으며 때로는 농부처럼 논밭에서 일했다. 그러다 불운이 닥쳤다. 2019년 김경남 목사가 심혈관 질환으로 타계한 것. 이지영의 고통이 자심해 더 이상 무주에 머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미국에 사는 자식들은 어머니를 불러들여 함께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지영은 오랫동안 해온 일을 지속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본을 드나드는 걸로 전환점을 삼았다. 일본은 그에게 익숙한 나라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란 사회운동이다. 그는 일찍이 민주화운동의 전위에 섰던 김경남 목사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노동, 인권, 복지 분야 활동가로 활약했다. 일본 여성 활동가들과 연대해 위안부 문제나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일본을 빈번히 드나들었던 거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가로막혀 일본행이 어려워졌고, 그는 숙고 끝에 이곳 괴산 땅을 정처로 삼아 무주에 이은 두 번째 귀촌을 했다.
숱하게 생긴 좋은 인연들
“괴산 소수면엔 귀촌을 원하는 지인들의 공동체 단지가 이미 마련돼 있어 이주가 쉬웠다. 집터에다 집을 짓기만 하면 됐으니까.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 김경남 목사가 만든 ‘들꽃마을 협동조합’ 멤버들이다. 대부분 서울에서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로, 귀촌을 통해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둘 이곳에 내려왔다. 현재 11가구가 거주한다. 앞으로 더 늘어나 30가구가 모여 살게 될 것이다. 난 3번 타자로 입주했다.”
공동체라면 입주자마다 지켜야 할 기본 룰이 있겠지?
“하나가 있다. 집에 대문과 담장을 설치하지 말자는 거. 나머지는 다 자유롭다.”
귀촌 직후엔 어떤 일을 했나? 살아온 이력으로 보면 산골에 홀로 산다 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낼 것 같지는 않은데.
“처음부터 바쁘게 살았다. 그게 성향에 맞는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공동체에 먼저 들어온 아낙들이 있어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더라.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넌 이제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웃음) 그들과 함께 텃밭에서 웃고 떠들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고는 했다.”
사별의 아픔은 깊은 곳에 새겨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짝을 잃은 상심은 대부분 오래간다.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고, 원망도 생기고, 심란한 게 있긴 했다. 반면 뭔가 새로운 기분에 들썩이기도 했다. 왜 사람에게는 이런 거 있지 않나? 혼자 좀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여행가방 하나 들고 떠돌이처럼 살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다.”
떠돌이 대신 텃밭을 택했다? 처음엔 텃밭 농사를 즐길 만하지만 시간이 가면 귀찮아질 수 있다. 늘 풀을 뽑아야 하니까.(웃음)
“내겐 여전히 즐겁다.(웃음) 지난봄엔 강낭콩 씨앗 3000원어치를 사다 심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수확이 나와 놀랐다.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도 남더라. 야, 이거야말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구나! 속으로 찬탄했다. 그런데 텃밭 농사는 일상의 일부일 뿐 내겐 더 분주한 스케줄이 있었다
어떤 일을 했기에?
“평생학습매니저 자격증을 딴 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학습과 상담 활동을 했다.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를 통한 공부 역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초등학생부터 노인대학 어르신들까지, 2년여 동안 참 많은 이들에게 강의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괴산 전역을 샅샅이 알게 되었고. 더 즐거웠던 건 좋은 인연이 숱하게 생겼다는 데 있다.”
노력으로도 쉬 얻을 수 없는 게 좋은 인연이다. 그러나 이지영에겐 인연이 자주 맺어진다. 순해 보이는 인상의 후원을 받은 덕분일까? 아니면 타고난 사교성으로 상대를 일거에 무장 해제시키나? 그의 얘긴 이렇다. “내겐 왠지 사람이 잘 꼬인다.” 괴산뿐만이 아니라 좋은 지인들이 멀고 가까운 곳에 원래 많단다. 그는 24평짜리 집에 산다. 집 앞으로 냇물이 흘러 졸졸졸 명랑하게 노래한다. 기분이 밝아지는 집이다. 하지만 그는 좀 후회스럽다. 왜 더 작은 집을 짓지 않았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가급적 단순하게, 가급적 소박하게, 가급적 실용적으로 살자 했건만 다소 오버해서 집을 지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집엔 작은 방이 여럿이다. 화장실도 두 개다. 이건 지인들의 방문을 고려한 구성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좋은 배려가 좋은 삶의 비결이라고 여기는 이지영의 신념이 반영된 집인 셈이다.
그는 귀촌의 날들을 웃음과 함께 느긋하게 누리고 있다. 이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타자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선의로 자연스럽게 거둔 결실일지도 모른다. 그가 카페를 차려 단기간에 일군 안정적인 상황도 평소의 좋은 인간관계가 데리고 온 행운의 산물일 테다. 지인이 측근이 되고, 조력자가 되는 법이며, 그들은 어떤 일에든 관심과 지지를 보내 힘을 실어주지 않던가. 그런데 카페를 차린 연유가 궁금하다.
“이곳 소수면 소재지엔 지난날 다방이 네댓 개나 있었다지만 주민 수가 급감하면서 다 사라졌다. 그렇다면 뭔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만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카페 운영을 구상했다. 나에게도 좋고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 마침 한 식품회사 건물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오래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중심에 둔 건 아니었나?
“수입원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장사가 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기대를 걸진 않았다. 뭐든 머리 싸매고 궁리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모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잘 돌아가지 않더라. 손님이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처음 두어 달에 그친 부진이었을 뿐이다. 뜻밖에도 손님이 늘면서 석 달째부터 수익이 늘기 시작했다. 빠르게 자리 잡은 셈이다. 오픈한 지 반년이 지난 현재는 직원 두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다.”
소수면 인구는 겨우 2000여 명에 불과하다. 괴산군청 소재지는 멀리 있고, 인근에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어떤 이들이 카페에 오나?
“대부분 면내 주민들이다. 동네 중년과 노년들이 찾아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하다. 요즘은 읍내나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입소문이 나는 것 같다. 얼마 전엔 시골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차림새를 한 청년이 혼자 들어와 노트북을 펼치고 커피를 마시더라. 그건 내게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웃음) 머잖아 청년들을 자주 볼 수 있으리라는 예감도 들었다.”
불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여
이지영은 카페의 매력과 개성을 돋워 문화공간으로 가꿔나갈 참이다. 시골 사람들도 문화 향유 욕구가 강하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다. 이미 두 차례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영화 상영을 위한 스크린도 설치했다. 미술 전시회나 북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지역민이 생산한 농산물이나 공예품 등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채널로 카페를 개방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판이 커질 조짐이 완연하다.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이루고 함께 걸어가는 일의 기쁨을 추구하는 이지영은 카페의 활력에 힘입어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귀촌 생활에 만족을 느낀다. 만족은커녕 귀촌을 통해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까지 있지만 그는 차원이 다르다.
시골에 적응하지 못해 원점으로 돌아가는 귀촌인들도 있다. 원주민과 불화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아 고통을 겪기도 한다.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자세를 좀 낮추면 된다. 내가 먼저 낮추면 상대방도 낮추게 마련이다. 이건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던가? 내 경험으로 보면 시골의 인심엔 여전히 순박성이 깔려 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 단순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게 시골이다.”
독신 여성의 귀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위험요소가 적지 않은데.
“상황을 헤쳐나갈 강한 의지가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러나 심사숙고하는 게 좋다. 가능하다면 지인이 있는 곳으로, 또는 친구나 선후배와 동반 귀촌을 하는 게 한결 안전하다.”
물신을 주님으로 섬기는 세상이다. 이건 시골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흔히 소박한 시골살이를 권장하지만, 믿을 만한 자금력이 없을 경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적은 소유로도 좋은 시골 생활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나?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뭘까.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감이라든가,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서적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난 물질이든 욕망이든 덜 가지고자 했다. 그게 정직하게 사는 방법이라 믿는다. 내겐 오랫동안 통장과 휴대폰이 없었다. 이런 나를 두고 아이들은 ‘대책 없이 사는 엄마’라며 걱정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은 아하, 내가 너무 허당으로 살았나? 이건 좀 그렇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웃음) 하지만 이미 몸에 붙은 생활방식이다. 적게 가진 불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능력도 생긴 것 같고.”
이미 가졌으면서도 더 가지기 위해 진땀 빼다가 무너지는 게 인생이다. ‘모름지기 소박한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걷는 게 어떤가?’ 이지영의 얘기를 난 그런 제안으로 들었다.
이지영이 주는 귀농•귀촌 Tip
•낭만적인 전원생활에 관한 동경은 버려라. 시골 역시 냉정한 삶의 현장이다.
•귀농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풍부한 자금력과 강인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귀농보다 귀촌을 하는 게 현명하다.
•귀농•귀촌지를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 후보지에서 미리 살아보고 정해야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다. 지자체들이 운영하는 ‘한 달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시골살이의 물정부터 익히는 게 필요하다.
•귀농•귀촌에 따른 사전준비는 철저할수록 정착이 쉬워진다. 특히 귀농의 경우엔 농산물 유통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두는 게 중요하다.
•시골 생활은 당당한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보는 사람’에서 ‘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고독(孤獨)과 고립(孤立). 한 글자 차이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고독을 씹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간헐적 단절 상태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립은 대체로 장기간 뜻하지 않게 사회와 차단된 처지다. 그런 점에서 ‘고독 위험’은 어색하지만, ‘고립 위험’은 말이 되는 듯하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쓰는 ‘고독사’라는 단어도 실상은 ‘고립사’에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고립은 사회적 고립과 감정적(정서적) 고립으로 나뉜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연결망 결여로 대인관계나 사회활동 참여가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감정적 고립은 사회연결망이 구축됐고 일원으로 속했음에도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주관적 고립 상태다. 최근에는 가족·이웃 간 유대 약화, 1인 가구 증가, 코로나 등으로 인해 사회적·감정적 고립을 경험하는 이가 늘고 있다. 특히 중장년은 은퇴와 동시에 사회연결망이 사라지고, 자녀의 독립, 배우자와의 사별 등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립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해칠뿐더러 자칫 고독사 위험에 놓이게 된다.
고독과 고립, 뭐가 다를까?
누구나 살면서 고독과 외로움은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잘 다루고 이겨내면 괜찮지만, 아닐 경우 고립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과 고립은 어떻게 구분할까? 임선진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도움을 청할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로 가늠한다”며 “중장년기에 퇴직, 사별 등으로 일시적인 우울, 소외, 고독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을 때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고립’ 상태로 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2’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도’는 위기 상황에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로 정의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있느냐,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느냐 등을 물었을 때 ‘없다’고 응답한 수치를 환산했다. 그 결과 사회적 고립도는 2019년 27.7%에서 2021년 34.1%로 6.4%p 증가했다. 연령별로 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고립도가 높아졌다.
보고서의 원자료가 된 2021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연령 대비 교류하는 사람 수는 반비례했다. 특히 ‘가족 또는 친척 이외 교류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0~30대 13~19%, 40~60대 20~27%, 70대에는 38%까지 늘어나다가 80대에는 51%로 절반을 웃돈다. 같은 조사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묻는 항목을 살펴보면(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는가) 이 또한 나이가 들수록 도움을 청할 사람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2022)에서는 평일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와 접촉 방식에 대해 파악했는데, 해당 조사에서도 고령자일수록 ‘하루에 접촉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졌다. 수치로는 40대(1.6%) 대비 65세 이상(4.7%)이 3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의 과반수가 가족 또는 친척 대상에서도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가 1~2명 정도라 답했는데, 그중 대면 접촉은 3분의 1 미만이었다. 대체로 전화 통화로 접촉하는 상황이었고, SNS나 문자를 이용하기도 했으나 극소수였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고립?
사회적 고립을 말할 때 1인 가구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해마다 이뤄지는 통계청 인구총조사를 보면 2015년 이래 1인 노인 가구 비율은 지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조사인 2021년 조사에서 65세 이상 1인 가구는 36.4%였다.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서도 1인 가구의 어려움울 묻는 항목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어 외롭다’는 응답 비율은 연령대와 비례했다. 물리적으로 혼자 지내기 때문에 외로움·고립감이 더 크다는 건 자연히 수긍이 된다. 그렇다면 함께 사는 가족(또는 동거인)이 있으면 고립을 피할 수 있을까? 임선진 과장은 “가족이 곁에 있다면 사회적 고립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감정적 고립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고 자녀가 출가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주변인은 배우자가 된다. 그럼에도 배우자와 걱정거리를 편하게 이야기하는 중장년은 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가족실태조사에서도 배우자와의 사별 가능성이 적은 40~60대 중장년의 경우 배우자와 고민을 나누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하루 중 대화 시간 또한 1시간 미만인 부부가 과반수였다. 임 과장은 “감정적 고립을 호소하는 분들에겐 가능하면 가족 교육을 진행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고립 대상자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힘든지, 왜 그런지,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해야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등을 설명해드린다”며 “자녀 세대와의 감정적 거리도 멀다. 특히 요즘 세대가 쓰는 약어나 은어 등을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단절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초반에는 소외감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심해지고 마음의 벽이 생기면서 고립을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마음의 문 열고, 관심사 확장하기
고립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대상이 꼭 가족이나 친구일 필요는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나 기관 상담사 등도 해당된다. 가령 종교가 있다면 교회나 절 등에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얻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관이나 제도의 지원을 받는 것도 괜찮다. 최근에는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지자체 프로그램도 활성화된 편이다. 이러한 지원책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서비스가 빈약한 지역에 산다면 고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하고 지역사회 서비스도 마련됐는데, 스스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다면 예후가 좋지 않다. 감정적 고립이 심한 상태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다른 질환이나 증상을 동반할(또는 동반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 과장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못 해본 중장년이라면 주변인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에 경계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는 성격적으로 의심이 많거나, 알코올 중독증이나 우울증, 조현병을 앓는 경우도 타인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지만 새터민이나 다문화가정 외국인 등도 지역사회나 이웃에 대한 신뢰를 갖기 어려워 고립되기도 한다”며 “내원하시는 분들에겐 필요하면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과 의논해 지속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끔 시도한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인도 나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고립 탈출의 첫발을 뗄 수 있다는 게 임 과장의 설명이다. 그는 “중장년이 고립되는 사례를 보면 이러하다. 퇴직 후 의기소침해져 친구들을 멀리한다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해져 약속이 부담스럽거나, 자녀가 취업·결혼 등을 못 했다는 이유로 주변과의 만남을 피하거나, 부부동반 모임이었는데 사별 후 소외를 느껴 나가지 않는 등 다양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원인이 자신에서 비롯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나이 들수록 본인의 정체성에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며 “뭐든 자신을 중심으로 관심을 확대해나가면 좋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 내가 갖고 있는 질환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만약 스스로 고립에 처했다고 느낀다면 이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줄 사람은 누구인지, 기관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렇게 사회와 연결되고 활동 반경을 넓혀나가는 노력을 통해 고립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만성 콩팥병은 3개월 이상 콩팥에 손상이 있거나 콩팥 기능이 저하된 상태의 질환을 말한다. 6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79%를 차지한다. 나이가 들수록 신장 기능이 저하되며, 고령자의 대표적인 만성 질환인 고혈압, 당뇨병 등이 신장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만성 콩팥병에 대한 궁금증을 김소연·권순효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신장내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콩팥에는 사구체라는 혈액 여과기가 있다. 이곳을 지나며 걸러진 노폐물은 소변으로 배출된다. 만성 콩팥병(만성 신부전증)은 콩팥이 여러 이유로 지속적으로 손상을 받아서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을 말한다. 주요 원인으로 당뇨병과 고혈압이 꼽힌다. 고혈압으로 혈관이 손상되면 콩팥에 이상이 생기며, 당뇨병으로 혈액 속에 당이 많으면 신장 조직에 손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성 콩팥병은 ‘많고 비싼 병’으로 통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만성 콩팥병 환자는 2017년 20만 3978명에서 2021년 27만 7252명으로 5년 새 36% 증가했다. 국내 성인 7명 중 1명은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만성 콩팥병 진료 환자 수 및 진료비 모두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849만 원이었다. 진료비가 높은 이유는 ‘투석’과 관련 있다.
만성 콩팥병은 진행 상태에 따라 1~5기로 구분한다. 초기 1~2기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약물 치료와 철저한 관리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 사구체 여과율 60% 미만의 3기에 이르러야 증상이 나타나는 편이다. 특히 가장 심각한 단계인 5기는 ‘말기 신부전’이라고 하며, 투석 치료나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이 시기에는 5년 생존율도 약 61.5%로 떨어지는데, 이는 일부 암의 5년 생존율보다 더 낮은 수치다. 이에 따라 조기 발견이 중요하며, 건강한 습관으로 병을 예방하는 것이 좋다.
Q. 부종과 같이 뒤늦게 나타나는 만성 콩팥병의 증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자신이 당뇨 환자라면 만성 콩팥병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A.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지만, 신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피곤함, 집중력 저하, 식욕부진, 수면장애, 발목 부종, 야뇨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신이 붓는 증상은 신장과 심장, 간 등의 질환이 있을 때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당뇨병 환자 3~4명 중 1명에게 만성 콩팥병이 생기고, 말기 신부전 환자 2명 중 1명은 당뇨병이 원인일 정도로 당뇨병 환자와 신장 합병증은 관련이 깊습니다. 적절한 식이·운동·약물요법을 통해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해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고, 정기적인 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로 신장 합병증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형 당뇨가 있는 사람은 최소 1년에 한 번씩 소변 알부민뇨 검사와 혈액에서 추정하는 사구체여과율 검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Q. 5기 환자의 경우 5년 사망률이 암보다 높다는 통계를 봤습니다. 위험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 5기 말기 신부전 환자들의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은 심혈관 질환입니다.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는 당뇨, 고혈압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심혈관 질환 위험인자인 요독증, 혈관 석회화, 대사성 산증을 가지고 있어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10~30배 높습니다.
Q. 신장이식 수술은 위험성과 부작용이 잇따를 것 같습니다. 현재 의료진이 이식 수술을 권장하는지, 반대로 지양하는지 추세가 궁금합니다.
A.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는 신장이식이나 투석 같은 신 대체요법을 시행합니다. 최근에는 과거보다 신장이식을 받는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신장이식이 투석에 비해 장점이 많습니다. 거의 정상 신장 기능을 가지게 되어 투석으로 잘 빠져나가지 않는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으며, 조혈 호르몬, 활성화 비타민 같은 호르몬이 만들어집니다. 투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거의 정상적인 식사와 생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식할 신장을 제공받기가 쉽지 않으며, 수술에 대한 정신적・육체적・경제적 부담이 있습니다. 또한 이식 후 거부반응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이로 인해 감염이나 암 같은 면역억제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식을 준비하기에 앞서 이식의 장단점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Q.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신장 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데, 이 상태에서 물을 과다하게 마시면 혈액량, 체액량이 늘어 폐부종이나 부종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무조건 수분 섭취를 제한하면 오히려 탈수로 인한 신장 손상을 유발할 수 있어, 만성 콩팥병 단계와 소변량 등을 살펴보고 주치의와 상의해 적정 수분 섭취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Q. 만성 콩팥병을 예방하기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는 무엇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만성 콩팥병의 원인이 되는 당뇨, 고혈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활 습관 개선과 적절한 약물 치료를 통해 혈당 및 혈압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담배는 반드시 끊고 술은 하루에 한두 잔 이하로 줄이는 것을 독려합니다. 더불어 만성 콩팥병 환자는 충분한 열량과 적당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며, 염분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또한 포타슘(칼륨)과 인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다만 이와 같은 식이요법은 증상 악화를 막을 수는 있겠지만, 질환 자체를 고칠 수 없다는 점을 알아둬야겠습니다.
전국 기온이 평균 30도를 넘나드는 가운데 불면증, 냉방병, 소화 장애, 식욕 부진 등 여름철 증상을 겪을 위험이 커지고 있다. 여름철 증상들은 관리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장시간 지속될 경우 더 큰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강도현 자생한방병원장의 ‘증상별 건강 지압법’을 통해 질환을 예방하고, 건강한 여름을 보내보자.
불면증 완화에 대표적인 혈자리 ‘완골혈’, 전신 긴장 풀어 수면유도 효과
열대야가 지속되면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다. 잠이 들어도 더위로 인해 숙면을 하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면 불면 증세와 함께 두통, 피로감, 무기력증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할 때는 ‘완골혈(完骨穴)’ 지압을 추천한다. 완골혈은 귀 뒤쪽 튀어나온 뼈 뒤에 움푹 들어간 지점으로 전신 긴장을 풀어 수면을 유도하는 효능이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완골혈을 10초 이상 지그시 눌러 지압해 주고 이를 5회 이상 반복한다. 완골혈을 중심으로 목덜미를 전체적으로 마사지를 해주면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냉방병 완화에는 ‘대추혈’, 신진대사 촉진하고 면역력 높여
바깥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사무실이나 공공장소, 대중교통에서는 오히려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실내 온도를 낮게 유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냉방병에 걸리면 오한, 발열 등을 포함한 감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럴 땐 고개를 숙였을 때 가장 튀어나온 뼈 바로 아래에 위치한 혈자리인 ‘대추혈(大椎穴)’을 지압해주면 신진대사를 촉진해서 면역력을 높여 기침이나 발열 등 감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대추혈 주변을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부드럽게 누르거나 문지르면서 15초간 지압하면 피로 회복에도 좋다.
소화 장애 회복시키는 ‘대장수혈’, 주변 사람의 도움 받으면 효과↑
겨울에 비해 음식물이 쉽게 상하는 여름철에는 배탈과 설사와 같은 소화기 질환이 많이 발생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찬 음식을 많이 먹는 경우도 배탈의 원인이 된다. 여름철 소화 장애가 지속된다면 적절한 치료와 더불어 ‘대장수혈(大腸兪穴)’을 자주 지압해주는 것이 좋다. 대장수혈은 허리 뒤쪽에 위치한 혈자리로 배꼽 정반대 위치에서 양옆으로 3~4cm 떨어져 있다. 이곳을 누르면 배탈, 설사와 같은 소화 장애, 복부 팽만 등을 줄여주는 효능이 있다. 혈자리가 허리 뒤에 있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 좋다.
무더위에 사라진 입맛을 돋워주는 ‘내관혈’, 소화 기능 회복에 도움
습하고 무더운 날씨로 인해 쉽게 지치고, 피로감이 쌓이다 입맛도 사라졌다면 ‘내관혈(內關穴)’을 지압해보자. 내관혈은 손목 주름의 중앙에서 몸 안쪽으로 3~4c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20회가량 지압해주면 약해진 위장 기능을 강화하고 소화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돼 피로나 스트레스로 입맛이 떨어졌을 때 식욕을 돋워준다.
무더위 스트레스 날려주는 ‘신맥혈’, 우울 증상 타파
여름은 불쾌지수가 높은 시기다. 쉽게 짜증이 나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듯 누적되면 충동적인 행동과 두통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우울 증세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생각을 비우고 발 바깥쪽 복숭아뼈 아래에 위치한 ‘신맥혈(申脈穴)’을 천천히 지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곳을 10회 이상 반복해서 누르면 마음 상태를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을 다스리는 데도 안정감을 준다.
강도현 자생한방병원장은 “더위에 장시간 노출돼 있으면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면역력까지 저하돼 각종 질환을 앓기 쉽다”며 “이 시기에는 더욱 건강에 관심을 갖고 일상 속 틈틈이 혈자리를 지압하는 습관을 길러보자”고 조언했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정신의학적 질환으로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를 말한다. 소아·청소년기에 발병하는 질환으로 알려진 과거와 달리 현재는 성인 ADHD 환자도 많은 상황이다. 성인 환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특히 중장년층에서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다.
ADHD는 주의산만, 과잉행동, 충동성의 3대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성인 ADHD는 소아·청소년기와는 다른 증상 패턴을 보인다. 과잉행동은 감소하며, 집중의 어려움과 충동성이 주 문제가 된다.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2~3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국내 성인 ADHD 유병률은 4.4%로 추정된다. 아동기 때 ADHD 진단을 받는 경우 3분의 2가량이 성인기까지 증상이 지속된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부주의하거나 실수가 잦긴 해도 ADHD인지 모르고 살다가 늦은 나이에 진단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후자의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ADHD 진단 현황’에 따르면, ADHD 진단을 받은 성인(20~80대)은 2017년 7748명에서 2022년 9월까지 3만 9913명으로 늘었다. 매년 증가세를 보였으며, 6년간 5.1배가량 늘었다. 그중 중장년이 가장 가파른 증가폭을 보였다. 50대는 2017년 170명에서 지난해 954명으로 5.6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40대는 686명에서 3816명으로 5.5배 늘었다.
나도 성인 ADHD 환자일까?
50대 방송인 박소현은 지난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 평소 겪고 있는 건망증의 고충을 토로했다. 더욱이 그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얼굴과 생일, 사소한 정보는 너무나도 잘 기억했다.
오은영 박사는 박소현에게 ‘조용한 ADHD’라는 진단을 내렸다. 오 박사는 “행동에 문제가 없는 주의력 저하를 의심할 수 있다. 집중할 때와 아닐 때 정보 저장의 차이가 크다”라면서 “머리가 나쁜 것도, 기억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소현은 자신을 평생 괴롭혀온 건망증이 ADHD 증상이라는 사실에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자기 행동에 대한 답을 알게 되어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그의 모습은 사실 어떠한 이유로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성인들이 ADHD 진단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반응과 유사하다.
성인기의 ADHD 증상은 공존질환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공존질환의 종류로는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조울병, 인격장애, 충동조절장애, 비만, 섭식장애, 수면장애, 편두통,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 등이 있다. 80% 이상의 환자가 1개 이상, 40% 이상의 환자가 3개 이상의 동반 장애를 가진다. 성인 ADHD를 ‘양파’에 비유한 반건호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인 환자는 성장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양파 껍질처럼 켜켜이 쌓여 본질을 알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반건호 교수는 저서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가다가 40~50대가 되어 병원을 찾는 이들도 많다”면서 “보통 연차가 쌓이면서 높은 직급에 오르는 경우 인력 관리와 업무 총괄 같은 조직화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많은데, 이 부분에 취약점이 있는 ADHD 환자는 회사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 승진 누락, 업무 배제 등으로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처럼 ADHD 증상은 나이가 들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건호 교수는 노인이 되어서도 ADHD 증상이 성인기와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짚었다. 자존감이 낮고 욱하는 성질을 보이는 노인 ADHD 환자들이 가장 호소하는 문제는 사회관계 부족 또는 단절이었다. 이에 따라 반 교수는 ADHD 노인을 위한 기반 시설이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인 ADHD, 부끄러워 말아야
ADHD 환자 치료로 약물요법이 권장된다. 나이가 많을수록 약물치료에 반감을 드러내지만, ADHD는 약물치료에 대한 반응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효과가 좋다. 대표적으로 메틸페니데이트, 아토목세틴 성분의 약이 처방된다. 뇌에서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키는 약물이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며, 이에 따라 인지행동 치료가 필요하다. 성인 환자가 가정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용·마음 챙김에 기반을 둔 인지행동 치료가 적용된다. 자신의 문제를 통제하면서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ADHD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다. ADHD를 가진 사람은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창의성은 높은 경향을 보인다. 역사적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인슈타인 등이 ADHD였을 거라고 추측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또한 ADHD를 갖고 있는 사람은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이들이 나이를 먹으면, 은퇴 후 노년기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기면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 늦은 나이에 ADHD를 진단받았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거나 감출 필요가 없다. 다만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개선하고 싶다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
ADHD란? 정신의학적 질환으로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를 말한다.성인 ADHD가 의심된다면 다음 항목으로 확인하자!
◇ 과제 수행에서 중요한 것을 끝내고 마무리 짓는 게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까?
◇ 체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순서대로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 약속이나 의무를 기억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까?
◇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과제는 시작을 미루거나 피할 때가 있습니까?
◇ 오래 앉아 있어야 할 경우 안절부절 못하거나 손발을 꼼지락거릴 때가 있습니까?
◇ 무슨 일을 할 때 지나치게 오버하거나 저질러버릴 때가 있습니까?
세계보건기구(WHO)성인 ADHD 자가진단표
전혀 아님(0점), 드묾(1점), 가끔(2점), 종종(3점), 자주(4점)로 채점
6개 항목 중 4개 항목 이상에서 빈도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ADHD를 의심할 수 있다.
ADHD는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창의성은 높은 경향을 보인다.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개선하고 싶다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50대는 각종 삶의 위기를 마주하는 시기다. 그중에서도 남성 1인 가구는 자신의 고민을 나누지 않고 홀로 이 고독을 버티다가 사회로부터 단절된다. 고독사하는 중장년 남성이 가장 많은 이유는 뭘까.
보건복지부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수는 717만 명, 이 중 고독사 위험군은 152만 5000명이다. 1인 가구의 21.3%를 차지한다. 1인 가구 중 고독사 위험군으로 꼽힌 사람들의 연령대별 비중을 보자. 40대는 25.8%, 50대는 33.9%였다. 40~50대를 합하면 59.7%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60대(30.2%)까지 아울러 보면 89.9%로 약 90%에 이른다. 40~60대가 고독사 고위험군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중장년 남성이 위험하다
보건복지부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고독사로 숨진 사람은 남성이 84.2%로 여성보다 5배 많았고, 이 중 50~60대인 중장년층이 58.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60대(29%)까지 고려한다면 87.6%에 이른다. 40~60대는 고독사 고위험군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장 많이 고독사하는 나이대인 셈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1인 가구 중장년층(40~60대)은 경제적인 문제(39.1%)를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복지부는 건강관리와 가사노동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이 실직·이혼 등으로 삶의 만족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황순찬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중장년 남성의 사회적 고립을 다방면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 교수는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빈번하게 상호작용할 때 자아의 건강성이 유지되며, 고립되면 문제가 생긴다”면서 “(중장년) 남성의 경우 직장 생활을 그만두면서 사회적 관계가 사라지는데, 그렇게 사회와 단절되면서 고립되고 여러 문제가 파생되어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중장년 남성의 사회적 고립은 이들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황 교수는 “사회와 단절되었을 때 유일하게 곁에 남는 게 가족인데, 경제적 문제도 있다 보니 술로 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고 가족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해체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혼자 지내게 되면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어려워진다. 중장년 남성은 내가 갖추어져 있고 반듯하게 생활하고 있다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지만, 내세울 것 없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는 만남을 회피한다. 대체로 자존심이 세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청해야 할 가장 절실한 시기가 가장 자존심이 높을 때이기도 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차단하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고립 심화하는 우울과 남성 갱년기
‘50대 남성’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는다. 이혼, 실직, 퇴직, 부채, 가족과의 불화, 노화 체감, 노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감, 자녀의 독립, 노후에 대한 불안 등 삶의 각종 위기를 마주하는 시기다. 노화의 시작으로 건강도 나빠진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비만, 당뇨병, 고혈압 등 대부분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높다.
또 남성 호르몬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 호르몬이 부족한 남성의 56%가 심각한 우울증이나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면 남자도 갱년기를 겪는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서서히 낮아지면서 발생하는데, 스위스의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갱년기 증상이 심할수록 우울 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40대 남성의 27.4%, 50대의 31.2%가 남성 갱년기에 해당한다.
남성 갱년기의 대표적인 증상은 성욕 저하, 성기능 감퇴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체지방 증가, 탈모, 피로감, 무기력함, 수면장애, 감정기복 심화, 두통, 두근거림, 답답함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된다. 하지만 중장년 남성은 이런 감정을 표현할 곳이 없어 과하게 술을 마시거나 흡연을 하는 등 안 좋은 습관을 키우게 된다.
남성 갱년기는 스스로 알아채기도 쉽지 않다. 여성은 폐경을 겪으며 비슷한 시기에 나타나는 반면, 남성은 개인에 따라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노화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만성질환의 증상 중 하나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또 알게 되더라도 자신이 갱년기를 겪고 있다는 상황을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제때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남성 갱년기는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인식도 부족하다.
최근 만성피로와 무기력함, 우울한 기분이 든다면 다음의 자가진단표를 체크해보고, 갱년기가 의심되면 가까운 비뇨기과나 건강클리닉을 찾아 혈액 검사를 통해 남성 호르몬 수치 등을 확인해보자. 갱년기 진단이 내려지면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남성 호르몬 보충 치료를 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갱년기 진단을 받거나 갱년기가 의심된다면 규칙적인 운동, 적절한 단백질 섭취, 적절한 성생활 등의 생활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생활의 관리를 통해 남성 호르몬 수준을 유지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며, 과도한 흡연과 음주는 금물이다.
중장년 고독사 막아라
정부는 2027년까지 고독사를 20% 줄이기 위해 고독사 예방 대책들을 내놓았다. 이 중에서 가장 위험군으로 꼽히는 중장년의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기적인 보건소 방문 건강관리, 생활 지원 서비스를 신설할 계획이다. 또 조기 퇴직한 중장년 위험군에는 재취업과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고독사 대책은 우리나라에서 이번에 처음 마련되는 것이기에 앞으로 조금씩 관련 정책을 다듬어갈 필요가 있다. 중장년 남성의 경우 사회와 단절되기 쉬운 환경에 놓인 데다, 스스로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황순찬 교수는 “공공의료 지원, 밑반찬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 정책이 있었지만, 중장년 남성은 이런 지원을 불편해한다. ‘내가 이런 처지에까지 이르게 됐구나’라고 생각해 오히려 우울감이 증가하는 모습도 보인다. 실제로 서울시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의료비 지원 정책을 펼쳤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당신들은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다’, ‘당신들에게는 이런 것이 필요하니 참여하시오’와 같은 메시지로는 그들을 움직일 수 없다. 오히려 사회와 더 단절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장년 남성의 특성을 고려해 더 세심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사회적 고립 및 고독사 예방을 위한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 “사회적 연결을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중장년 남성의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결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지원 외에도 안부를 확인하거나, 이들이 사회와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기회와 공간 등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고독사를 최초로 발견하는 사람이 가족뿐 아니라 주변 이웃들도 꽤 있었던 것을 참고해, 각종 지역 네트워크와 다양한 주체를 엮어두어야 한다고 봤다.
황 교수도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이어줘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문제를 상담하는 형태를 취하기보다 ‘자원봉사’, ‘일자리 찾기’ 등 어떤 매개를 통해 문제 해결을 확장해나가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히 일을 매개로 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다. 그는 “일자리가 없으면 설 자리가 없고, 설 자리가 없으면 살 자리가 없고, 살 자리가 없으면 삶의 끝자리에 놓이게 된다. 일자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건강 문제가 있다면 건강에 관한 지원을 하면서 일자리를 찾아가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또 전적인 재취업보다 하루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씩 주기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우선 사회로 나오도록 하는 두 가지 형태의 재취업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실제로 이 과정이 사회적 관계를 다시 형성하는 데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면서 사회와의 관계 유지를 위한 장치들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중장년 남성을 상담으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다. 황 교수가 설명한 것처럼 ‘상담’을 목적으로 모이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예를 들면 커피 미팅, 런치 미팅, 스포츠 미팅, 반려견 미팅, 작업장 미팅 등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반려견과 모이거나, 목공 등의 작업을 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상담으로 연계되기도 한다. 많은 연구에서 중장년 남성의 경우 1:1 상담보다 또래 무리와의 집단 면담이 더 효과적이며, 전문의보다는 멘토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더 좋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중장년 남성의 또 하나 특징은 혼자 생활하면 식사 관리가 안 된다는 점이다. 지자체에서 중장년 남성을 위한 요리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시민단체에서 공동 부엌 등을 운영하는 이유다. 하지만 황 교수는 혼자 사는 중장년 남성의 경우 집에서 요리를 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거 문제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도 사회와 연결고리를 만들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다. 이를테면 셰어하우스 등의 형태로 공유 주방을 사용하거나, 생활체육을 즐기면서 주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법이 있다.
중장년 본인도 사회와 벽을 쌓기보다 조금이라도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황순찬 교수는 “직장을 그만두었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갈 곳을 만들어두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사회성만은 단절되거나 끊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자원봉사를 해보는 것도 좋다. 자원봉사를 통한 야유회나 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해 다른 삶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고 당부했다.
“노인들이 달라지고 있어요. 과거의 인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은 노인의 정신 건강과 복지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과거의 노년 세대를 지금은 액티브 시니어라고 지칭하듯,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생애주기 확대와 함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는 말 그대로 전국의 독거노인 현황을 조사하고 생활관리사를 파견해 생활을 돕는 기관이다. 2011년 처음 기관이 설립되었을 때는 독거노인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2020년부터는 노인 부부 세대까지 아우르는 중앙노인돌봄지원기관으로 발전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기관의 역할이 재평가되는 계기였죠. 전염병 공포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어르신들이 저희 생활지도사들만은 환영했으니까요. 단지 마스크나 생필품을 전달해서가 아니라, 바깥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저희가 유일한 사회와의 소통 창구였죠.”
마음의 병, 우울증이 대표적
특히 노인 세대의 정신 건강 관리에 한몫했다. 독거노인들은 여러 가지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고 김 센터장은 지적한다.
“우울증이 가장 흔하죠. 아무래도 노년 세대의 상당수는 독거노인이고, 홀로 지내다 보니 우울증에 시달리기 마련이에요. 특히 코로나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어요.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은둔형 질환자도 많아요. 이 밖에도 최근에는 감정기복이 심한 조현병이나 저장강박증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센터가 참여하고 있는 노인 맞춤돌봄 서비스는 일반적인 직접 서비스 외에 우울형과 은둔형 노인을 대상으로 한 특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기관에서도 이들을 가볍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우울감을 가진 분들은 일단 우울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죠. 자존감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본인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요. 그래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력이 생기니까요.”
이를 위해 센터에서는 매일 안부를 확인하며 우울감을 줄이고, 집단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유도한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게 하고, 식사를 함께 만드는 등의 방식이다. 우울감이 심하면 의료기관과 연계해 진단과 처방이 이뤄지도록 한다. 우울감 해소를 위해 기업들과 협력해 첨단기기를 보급한 것도 센터의 성과다. 센터는 SKT와 업무협약을 맺고 인공지능 기반인 NUGU 비즈콜을 보급해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의 안부를 확인했다.
우울증은 이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인식도 과거에 비해 나아져, 노인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거나 치료에 협조적인 편이라고 김 센터장은 설명한다. 문제는 은둔형 어르신이다.
찾기도, 대하기도 어려운 은둔형
“은둔형 어르신은 남성이 많아요. 황혼 이혼을 했거나 비혼인 상태에서 퇴직 후 사회와 단절된 경우죠.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파악하기도 어려워요. 전입 절차를 밟지 않은 무연고인 경우엔 더더욱 그렇죠. 쪽방이나 여인숙에서 장기 투숙하거나 고시촌 같은 곳에 머물러 외부와의 접점을 찾기도 힘들고요. 문제는 이런 분들이 식사 같은 기본적인 생활도 어려워하고, 위생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으며 자살률도 높다는 점이에요.”
이런 은둔형 노인들은 생활보호사들도 대하기 어려워한다고 설명한다. 라포(신뢰관계)가 형성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문전박대는 기본이고 협박이나 욕설은 예사이기 때문이다. 또 돌봄 인력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성범죄 대상이 될 수 있어,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수고까지 발생한다.
최근에는 저장강박증과 관련한 문제도 자주 발생한다. 말 그대로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물건의 가치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많은 물건을 집 안에 쌓아두는 증상이다.
“원주에서 저장강박 어르신을 직접 뵌 적이 있어요. 인지장애까지 앓고 계셨죠. 물이 끊겨 위생도 엉망이었는데, 고장 난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고 계셨어요. 벌레 꼬인 고기를 봤을 땐 경악할 수밖에 없었죠. 저장강박증은 위생적으로 문제를 야기해 본인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문제가 돼요. 그분의 경우엔 지자체와 함께 수도 공사도 다시 하고, 냉장고도 고치고, 물건도 치워드렸어요. 이런 저장강박증은 물리적으로 물건을 치운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병행해야 재발하지 않아요.”
조현병이나 치매도 노인의 ‘마음의 병’에 자주 등장하는 질환이다. 문제는 이런 병의 경우 본인이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해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반발이 엄청나게 심해요. 우울증은 순순히 인정하시는데, 치매나 조현병은 흥분하면서 화를 내고 대화를 단절해버려요. 심지어 이미 진단을 받았음에도 저희에게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생활지원사들이 의심스러운 소견을 발견하면 지역 의료기관과 연계해 전문적인 진단과 검사를 받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심하면 노인 범죄로 발전
이러한 정신 건강 악화는 단순히 노인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노인 범죄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경찰청이나 보험연구원 보고서를 살펴보면, 중장년층의 범죄는 계속 증가세에 있다. 50대는 강력범죄 증가가 눈에 띄고, 65세 이상의 경우 폭력과 절도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증가율은 남성을 웃돌기도 한다.
“힘없고 노쇠한 노인만 생각하면 안 돼요. 이제 체력적으로 중년 못지않은 노인들도 많아요. 성욕이 유지되면서 성범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범죄 이력이 있는 분들이 노년에 접어들면서 주변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죠.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문제로 부각되고 있어요. 때문에 기관에서도 생활보호사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이런 문제들이 쌓이면 결국 돌봄 인력 부족과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질환이 아니어도 생활보호사들을 곤란하게 하는 노인들이 있다. 공짜를 좋아하거나 생활보호사를 가정부 정도로 여기는 경우다.
“소통을 좋아하시는 분은 생활보호사와 금방 친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딸보다 더 가깝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적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정신적으로 가까워지면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는 경우예요. 금전 거래는 절대 안 된다고 교육하지만, 소액의 무언가를 사다달라고 한다든가 소액을 요구하면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집안일을 시키기도 하죠.”
때문에 센터에서는 돌봄 인력의 이런 정신적 ‘소진’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한다. 관련 교육은 물론이고, 1일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해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다. 상담이 필요할 경우 일부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 있어도 고립 사례 발생
김 센터장은 노인 맞춤돌봄 서비스 대상자가 아니지만, 사회와 단절되고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노인들도 살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일종의 복지 사각지대죠. 자녀가 부동산을 부모 명의로 돌려놓고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재산이나 소득 때문에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예외 대상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쌀 등을 긴급 지원하기도 합니다. 이번 하반기에는 경제적 여력은 되지만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범사업도 준비 중입니다.”
정부는 노인들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2021년 고독사예방법을 시행하고, 지난 5월에는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돼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전체 사망자 100명당 1.06명꼴인 고독사 발생을 20% 줄여 2027년까지 0.85명 정도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물론 그 중심에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도 있다.
마지막으로 김 센터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 문제에 이웃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마음의 병은 다각도에서 지켜봐야 합니다. 이제 노인들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생활 형태까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요. 정부의 복지 체계가 꼼꼼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이웃이 함께 돌봐주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과학 기술과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인해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 속에서 현대인의 삶은 지속적으로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으며 변수도 늘었다. 끊임없는 갈등과 지나친 경쟁, 소통 단절로 생겨나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저마다의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사납게 일렁이는 사회의 굴곡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온 몇 가지 증후군을 소개한다.
기침 한 번에 불안해하는 건강염려증
건강염려증은 자신의 실제 몸 상태보다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강박장애다. 사소한 증상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의사의 진단도 믿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몇 년간의 팬데믹을 거치며 TV나 신문, 책, 유튜브 등 의학 정보를 다루는 채널이 늘고,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의학 정보가 난무해 나타난 결과다.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에 따르면, 건강염려증의 원인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신체적 불편에 대한 인내심이 낮아 감각을 강하게 느끼는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당면해 환자 역할을 함으로써 책임과 의무를 피하려고 하는 경우, 상실이나 배신으로 인한 분노와 죄책감 등의 방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질환의 변종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건강염려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공통적으로 병원을 돌아다니며 CT, MRI 등 각종 검사를 반복하는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을 한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며 질병이 없다고 진단한 병원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나름의 치료를 진행하며 건강식품 섭취나 민간요법에 심취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오히려 건강 정보를 지나치게 접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평소 자신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일상의 모든 것이 걱정 램프증후군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에 대해 마치 알라딘이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듯 근심이나 걱정을 불러내 스스로 괴롭히는 현상이다. 과잉 근심이라고도 한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접한 범죄, 사건 사고, 재난 소식뿐 아니라 뉴스에 보도되지도 않은 추측성 글이나 루머에서도 대리 외상을 겪는다. 더 나아가 실제보다 과장해 받아들이고 막연한 공포감을 느낀다.
다수의 광고에서는 대중의 불안한 심리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다년간의 흡연으로 폐암이 발생한 사람의 인터뷰를 공익광고로 활용하고, 특정 제품 또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주입한다. 금융·보험 업계에서도 가난한 노인의 모습을 제시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유발하며 상품을 권유한다.
우리는 핵가족화·고령화로 인해 독거노인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개개인이 가족이나 공동체의 보호 속에 있지 못하고, 충격과 불안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따라서 과한 걱정이나 불안 때문에 장기간 학업, 대인관계, 직업 생활 등에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사람이 하는 걱정의 4% 정도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96%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니 96%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일상의 평화를 되찾아보자.
순간의 소비와 쾌락 좇는 도파민중독
현대로 올수록 세상은 결핍에서 풍요의 공간이 됐다. 손가락 움직임 몇 번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답이 나타나고, 필요한 상품을 주문하면 당일 혹은 다음 날 바로 받아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더불어 SNS, 게임, 유튜브·OTT 시청, 음식 섭취 등 중독적인 행동을 반복해 뇌의 도파민 생성을 자극하고,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여졌다.
도파민은 뇌의 시상하부에 의해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주로 행복감이나 만족감,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애나 렘키(Anna Lembke) 스탠퍼드 의과대학 중독의학 교수는 적절한 도파민 분비는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지만, 폭발적으로 분비될 경우 신경회로가 손상돼 정상적인 작동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한다. 뇌는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시소와 같은 성질이 있다. 쾌락을 느끼는 순간 해당 행위를 다시 하고 싶은 욕구, 즉 고통으로 이어진다. 특히 현대인은 순간적인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대가를 더 많이 치르게 된 것이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맞추고 정상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기 위해 자극을 찾게 된 셈이다.
그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헐적 단식, 찬물 샤워, 운동, 학문적 노력, 창의력을 발휘할 만한 일 등 ‘미리 수고하기’를 제안한다. 일부러 어려운 일을 먼저 함으로써 도파민 수치를 건강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중독된 것이 무엇이든 4주간 완전히 끊어보는 구속을 통해 뇌의 항상성이 회복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4주가 지난 후에는 각자에게 맞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면 된다.
정신질환 초기에는 환자가 스스로 상태를 파악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가족·친구·지인 등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징후를 발견하고 치료를 독려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 잘못된 생각으로 치료를 말리거나, 민간요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신질환을 겪는 당사자의 회복을 넘어, 가족 구성원이 서로 건강한 관계를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해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정신질환 당사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고, 시민들이 정신 건강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도움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더불어 서울시 정신 건강 브랜드 ‘블루터치’를 통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에게 정신질환 당사자와 그 가족의 마음 건강을 위한 방법에 대해 물었다.
Q. 내가 주변인이라면, 정신질환 당사자에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A. 친구·가족·친척·지인 등 주변인을 통해 당사자의 사회 연결망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의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는 게 핵심이거든요. 대화를 통해 고민을 나누고 일상을 교류하면서 마음을 돌보는 거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지지해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기도 하고요. 다만 정신질환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이나 인식을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행동은 조심해야 합니다.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더 나아가 “그 증상은 네가 예민해서 그러는 거야”,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어” 등 비당사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건 ‘건강한 주변인’의 역할이 아닙니다.
Q. 갑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면요?
A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등 정신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도록 도와야겠죠. 자녀나 부모님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 마음의 문제가 의심되지만, 막상 병원에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둑이 무너져서 강물이 넘치는 것을 정신증이라고 생각해볼게요. 넘칠까 말까 아슬아슬한 상태일 때 빨리 물길을 돌려 압력을 줄이고, 둑을 더 높이 쌓거나 지지대를 설치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어요.
Q. 만약 상담이나 치료를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우선 당사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데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자신이 정신질환자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거나, 혹은 병원에 가지 않고 증상을 해결해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치료받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일 수도 있겠죠. 혹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겁이 날 수도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고 거기에 맞춰서 유도해야 합니다. 걱정하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거나, 비슷한 사례를 들어 설득하는 방법을 써보는 거죠. 차근차근 접근하면서 당사자에게 신뢰를 줘야 해요. “너는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고, 내가 이야기하는 게 맞아”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순순히 인정하고 따르는 건 아니거든요. 치료를 위한 태도와 방법에서 갈등이 생기는 건 좋지 않습니다.
Q. 가족의 오해나 편견 탓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A. 지금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지만, 어르신들은 정신질환을 타인과 공유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익숙해서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정신 건강이라는 주제를 편안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얼마 전이잖아요. 부모나 자녀에게 탕약을 먹이거나,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 사례도 있어요. 결국 가족이 나의 인권을 무시한다고 여기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중증이나 만성질환이 될 가능성이 작지 않죠. 물론 당뇨나 치매, 암과 같은 신체 질환처럼 정신 건강과 관련한 문제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정신적 증상은 가족의 문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증상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중요합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각 자치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 혹은 의료기관에 문의하거나, 그곳에서 제공하는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권합니다. 사실 전문가들이 당사자 가족의 적절한 대응과 태도에 대해 홍보하고 전달하는 게 맞죠.
Q. 실제로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A.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꾸준히 변화하고 있고요. TV를 봐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ADHD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방송인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을 이분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신질환도 당뇨나 고혈압처럼 건강 문제 중 하나이고, 개인이 잘못해서 발병하는 것이 아닙니다.
Q.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사회적으로 위축되거나 생활에 지장을 받는 사례도 종종 보이는데요.
A. 임상 현장이나 센터에서 상담할 때 주로 듣는 이야기인데요. 가족들은 보통 자녀 혹은 부모가 정신질환으로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꺼려해요. ‘엄마가 어떻게 키웠길래 애가 그러냐’는 말을 들을까 무섭고, 내가 잘못해서 딸이 이렇게 됐다며 자책하기도 하고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좋지만, 힘들더라도 가족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주변에 나눴으면 합니다. 상실감이나 불안감, 우울감을 품고 지내기보다 가족지원활동가나 관련 기관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가족들과 공유하는 거죠. 더불어 보호자로서의 역할만큼이나 비당사자인 본인의 행복도 중요해요. 걱정되고 옆에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짧게라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취미 생활을 한다거나 생각을 전환할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Q.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A. 초고령화 시대 진입을 앞둔 데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라,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점점 사라질 겁니다. 대신 친구나 지인, 정신 건강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종사자들이 당사자의 주변 사람이 되겠죠. 나라에서는 접근성이 좋은, 통합 지원책을 선보여야겠고요. 기업은 정신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당사자나 그 가족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면 배려할 만한 사규를 정해도 괜찮겠습니다. 언론에서도 정신질환과 범죄의 인과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성급히 보도하거나, 정신질환에 대한 공포·불안·혐오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지 않아야 해요. 지역사회와 기업, 의료기관, 정부가 잘 연결돼 정신 건강에 대한 기반이 마련되고 사회적 분위기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당사자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
◎당사자 가족지원가 양성 교육
당사자 가족지원가는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를 둔 가족이 다른 가족을 지지하고 심리적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 정신 건강 증진 및 관련 시설을 이용하는 당사자의 가족 중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해 10명을 선발하고, 가족지원가로 양성한다. 교육 내용은 가족 활동의 이해, 정신질환과 가족의 상황, 가족 상담의 이해와 실제, 회복과 가족의 역할, 지역사회 활동 이해, 가족지원 활동기관 현장 방문, 가족지원 서비스 제공 과정 및 활동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 습득으로 이어진다. (23년 교육 진행 완료)
◎당사자 가족대표단(리더) 모임 및 역량 강화
가족은 당사자를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생계를 꾸리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당사자 가족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적으로 환기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격월 1회 가족대표 모임을 진행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보호자로서 힘든 역할과 고충을 서로 토로하고 위안받는 시간이다. 더불어 가족들이 희망하는 주제로 연 2회 교육을 실시해 역량 강화를 돕는다. 자세한 사항은 각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문의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