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가는 현재 우리는 ‘나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퇴직하면 무엇을 해야 하지?’ 등의 주제로 남은 인생에 대한 희망 또는 고민을 하게 된다.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중장년층의 퇴직 평균 나이는 49.1세라 한다. 이때부터 다시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이나 곧 퇴직을 앞둔 퇴직 예정자들은 노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일자리위원회·관계부처 합동)’을 보면, 신중년 대상 장기근속을 위한 개선방안, 전직 지원 및 신규 일자리 확대 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고용창출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고용안정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등 장년층 이상의 고용 및 일자리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책들은 대부분 만 45~60세 이상의 연령을 대상으로 신규 고용과 정년 연장 또는 임금 보전 형태의 지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청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64세인 중장년층은 평균 49.1세에 실직을 하게 되지만 이들 중 64.1%가 생활비에 보탬(59.0%), 일하는 즐거움(33.3%) 등의 이유로 평균 72세까지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 대상의 나이와 일하기를 희망하는 나이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혹자는 60세 이상의 중장년층에도 정책 지원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정년이 60세인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59세 김OO 씨. 정부의 고용안정 관련 지원금을 받아 정년을 62세까지 보장을 받았다. 김OO 씨는 일하고 싶어도 62세에 퇴직을 하면 실업자가 된다. 이 경우 김OO 씨는 62세 이후 정부지원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자리가 고용유지 기간이 짧거나, 계약직 등으로 불안하다면 김OO 씨는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김OO 씨의 사례처럼 중장년, 특히 60세 이상의 시니어(여기서는 60세 이상을 시니어로 칭하겠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많은 시니어가 소득 단절과 노년기 여가 및 사회활동 부족 등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2016년부터 정년 연령을 넘기 시작해, 2024년에는 정년을 초과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현실화되면서 더 커질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55세 이상의 인구는 1389만 명, 2024년도에는 1843만 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 인턴 제도, 희망인가?
대안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만 45~60세 내외의 고용유지 중심 정책을 지원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60세 이상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2004년 도입 당시 공익참여형과 공익강사형, 인력파견형과 시장참여형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활동 유형이 세분화되고 신규 사업 유형이 개발되어 2011년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 기업 등과 같은 시장자립형 노인일자리사업, 2014년 재능나눔활동, 2017년 기업연계형 사업 등으로 나눠진 일자리 지원 사업이 작동 중이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만 60세 이상인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 직업 능력 강화 및 재취업 기회를 촉진함과 동시에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60세 이상 근로자를 채용한 기업에게 인턴기간(3개월) 중 월 급여의 50%의 급여를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인턴기간 종료 후 계속근로계약(6개월 이상) 체결 시 최대 3개월간 급여의 50%를 추가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시니어 인턴십은 인턴형과 연수형으로 나뉜다. 인턴형은 단기 근로자 신분으로 고용되어 3개월간의 정부 지원 종료 후 기업이 계속고용 여부를 결정한다. 연수형은 기업이 직접 근로자와 계약을 맺고 해당 직무 연수생으로 3개월간 교육을 시킨 후 신규 채용하는 방식이다.
인턴 채용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나 시니어 인턴십 운영기관에서 신청한 뒤 해당 운영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전 교육을 이수하고 기업 상담을 거쳐 결정된다. 현재 전국 100곳의 사업장에서 운영 중이다.
[표1]의 노인일자리사업은 시니어 계층이 ‘일하는 즐거움’을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표2]와 [표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이 강화된 지원 사업 분야는 지속적으로 증가(단, 2017년은 기업연계형이 새롭게 진입해 실적이 하락)하고 있으며, 취업유지율과 계속고용율, 1인당 월평균 소득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시니어 계층에게 긍정적인 일자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노인일자리사업 통계에 따르면, 시니어 인턴십의 경우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 도매 및 소매업 등 단순 기능직 중심의 일자리 연계가 55.1%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시니어 인턴 일자리가 대부분 경비 아니면 운전밖에 없는 것이다. 일자리 지원 사업이 기존 일자리를 기반으로 저숙련, 진입장벽이 낮은 직무로 연계되는 현실은 대체 가능한 인력이 많은 시니어에게 여전히 고용불안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니어만이 할 수 있는 직무 중심의 일자리 창출
그렇다면 시니어 인턴 제도를 디딤돌로 새로운 일자리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력과 역량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17년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수행해왔던 중장년 인턴제는 근로조건, 직무불일치(43.7%), 고령자 고용을 꺼리는 편견(34.8%), 건강상태(20.8%) 등의 문제가 지속되어 ‘신중년 적합 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으로 대체했다. 이는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신중년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선발해 우선지원대상기업 월 80만 원, 중견기업 월 40만 원 등의 수준으로 고용지원을 하는 제도다. 이 사업은 신중년의 적합직무 유형을 경력활용, 역량강화, 신직업 도전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지원된다. 서울시도 이와 유사한 50플러스 보람일자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만 50~67세까지 월 57시간 이내(월 52만5020원) 근무하는 인턴을 위한 공헌형·혼합형 중심의 일자리 지원 체제다.
[표4]에서 보듯이 시니어 계층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선택을 통해 직무와 직업을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 분야를 보다 전문화, 세분화해 취업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니어 세대가 바라는 취업처를 모두 포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전문적이어서 다른 세대와의 일자리 경쟁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 근력 등의 저하가 발생해 높은 노동 강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능직 분야도 제한적일 수 있다.
시니어는 주니어가 경험하지 못한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가졌다. 그리고 퇴직 후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유지한 채 타 직무로의 전직을 해야 하는 노동생산성의 손실을 보고 있다.
이제는 일자리 지원 정책이 직업 또는 고용유지 정책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역량을 일자리 관련 정책과 연계해야 할 시점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각 정부 및 지자체는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부족한 인력이 각 분야에서 활동 경험과 역량이 출중한 산업 현장 전문가들일 것이다. 시니어는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직업 중심의 일자리 지원보다 시니어가 보유한 직무 능력을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대안이 직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직업 발굴과 지원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품질, 마케팅, 경영, 인재선발, 해외진출, 생산관리 등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직업훈련을 받거나 예비 창업자들은 경험이 풍부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재 중장년 또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은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시니어 계층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 유지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 일하고 싶어 하는 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지원 정책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으로 시니어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청년창업자와 중소기업의 경영난 해결을 위한 문제해결 및 대안제공 전문가, 자문 및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산업별, 직무별 전문가 직업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시니어 인턴십 사업과 고용노동부의 장년 인턴제 등을 포함한 시니어 인턴 제도가 복지수혜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도 정착되어야 한다. 시니어 일자리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부처를 통합한 컨트롤타워를 통해 좀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겠다.
고령화 미래 직업을 고민해야 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가 창의융합형 인재라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의 역할이 더 증대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시니어 대상 일자리 지원 방향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오늘날에 앞으로 사라질 직업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일정 교육 과정을 거치고 실무현장에서 은빛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시니어 인턴들에게 재취업 혹은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시니어 개인으로서는 앞으로 다가올 직업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시니어의 축적된 노하우와 기업의 융합은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니어 인턴 제도의 일자리 정책은 시니어가 보유한 노하우나 자원을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직무 기반 직업 마련을 위해 펼쳐나가야 한다.
글 김대중 본부장(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새해가 시작되었다. 늘 그래왔듯 연초가 되면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등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지원 기관들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말에 퇴직한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받거나 취업을 위해 구직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공근로가 끝났거나,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거나, 기업에서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이다.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재취업을 해야 할지, 창업 또는 귀농·귀촌·귀어를 해야 할지, 봉사활동을 하며 살 것인지, 취미생활이나 하며 쉴 것인지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취업을 할 것이냐, 창업을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2019년은 창업보다는 적극적으로 재취업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경제 전망에 있다. 창업은 ‘운7 기3’이라고 말하곤 한다. 즉 창업의 성공은 기술이나 능력, 아이템보다 운이 더 크게 좌우한다는 의미다. 창업을 시작하며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도 대박의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을 1년도 채 안 되어 접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준비도 오래했고 도와주겠다는 지인도 많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국내외의 경기 불황 때문이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외식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출을 줄인다. 소비나 구매에 대한 사고도 ‘있으면 좋겠네, 하면 좋겠네’에서 ‘없어도 되겠네, 안 해도 되겠네’로 180도 바뀐다. 개인들이 하는 사업 중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니어가 취업을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 건강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그동안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이가 들면 육체적 문제나 고령자 일자리 한계 등의 이유로 취업이 매우 어려워진다. 필요하다면 창업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많은 중장년 퇴직자가 재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면서 무모한 창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세대의 재취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준비하고 도전해야 성공한다.
최근 통계상으로 봐도 구직단념자가 증가하고 있다. 경기가 어렵다고, 개인 상황이 안 좋다고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 시니어 계층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경제적으로 온갖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이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고, IMF 외환위기도 지혜롭게 헤쳐 나갔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도 겪었다. 그야말로 만고풍상을 다 겪은 세대다. 이러한 경험과 연륜이 있기에 적극적인 자세로 준비하고 도전한다면 재취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청년실업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모순의 해결을 위해 청년들에게 무조건 중소기업으로의 취업을 유도한다고 해서 욜로(YOLO)족을 꿈꾸는 세대에게 통할 리 없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적합한 일자리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자리는 부모 세대인 중장년들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니어의 재취업은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 가장 빠른 방법은 정부의 지원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퇴직자가 지역아동센터나 사회적 기업 등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도 있고, 민간 취업이나 창업이 어려운 고령자와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공익형 일자리도 있다. 이외 민간 지원 내실화를 통한 시니어 인턴십 사업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올해는 신중년 경력 활용 지역 서비스 일자리 사업이 신설되는 등 다양한 취업 지원 제도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나 참여 방법이 궁금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각 지역 고용복지플러스센터나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일자리위원회에서도 중장년 일자리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다양한 대책들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72세까지 일한다는 통계가 있다. 정년퇴직 후 무려 20여 년을 더 노동하는 셈이다. 앞으로 이 기간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제 나이에 대한 기존의 인식 틀을 깨야 한다. 정년퇴직 연령과 기대수명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50대는 30대, 60대는 40대, 70대는 50대로 봐야 한다. 신체나이와 사회적 나이를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년퇴직이나 일반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학교를 졸업하는 시기로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졸업과 함께 첫 번째 취업 준비를 하고 노력했듯이, 이제는 퇴직 후의 두 번째, 세 번째 재취업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공공형 일자리, 시장형 일자리, 시간제, 인턴제 가릴 것 없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전문기관의 도움을 통해 현재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재취업을 준비한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시니어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대중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본부장
고려대 및 동대학원 졸업(경영학석사), 중앙대 HRD정책학 박사(수료). 노사공동 전직지원센터 본부장,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 본부장, 노사발전재단 국제노동센터장, NCS 및 일자리위원회 전문가 활동 중. 저서로는 춘추전직시대(春秋轉職時代), 전직으로 당신의 인생을 환승하라가 있다.
매월 25일이면 국민연금이 월급처럼 또박또박 통장으로 들어온다. 이번 달에는 금액이 인상되어 162만 원을 받았다. 받을 때마다 국민연금제도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활비로는 부족해 좀 더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국민연금공단에서 발표한 2018년도 수급자 현황을 살펴보니 377만8824명이 연금을 받았고 최고 수령액은 204만6000원이다. 2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인 10명에 불과하다. 그다음 액수는 월 150만 원 이상 200만 원 미만이며 수급자 수는 7477명이다. 내가 이 범주에 든다. 국민연금 총수령자 상위 0.2%에 드는 초고액 수령자 그룹이다. 이 통계를 보면 내가 받는 국민연금 수령액이 생활비로는 부족한 금액이지만 다른 수급자들과 비교해보면 많이 받는 액수여서 투정을 부리기가 미안하다.
수령액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이유는 60세부터 연금을 몇 번 받다가 연금액을 늘리기 위해 연금 수급시기를 65세로 늦춰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식들 모두 출가하고 아내와 단둘이 사는 2인 가족인데도 약간의 문화생활을 포함한 생활비로는 부족하다.
1. 국민연금이 용돈 수준이라면 문제다.
연금수령액 상위 0.2% 범주 안에 드는 수령자도 연금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현행 국민연금제도와 운용에 개선할 점이 있다는 의미다. 월 50만 원 미만의 금액을 수령하는 사람들은 285만9019명. 이들이 전체 수급자의 75%에 달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금액은 연금이라고 부르기에는 보잘것없고 용돈에도 미치지 못하는 푼돈 수준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2.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국민연금 제정목적은 노후생활보장에 있다. 이렇게 퍼주다가는 곧 연금이 고갈된다든가 앞으로 더 내고 덜 받으면 연금기금을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다는 연금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공론이 떠들썩하다. 국민연금이 최저생활비는 될 수 있도록 기준을 먼저 정해놓고 그 방법들을 역으로 퍼즐 맞추듯 풀어나가야 한다.
3. 스스로 하는 자산운용은 위험하다.
국민연금을 받는 은퇴자들이 퇴직금이나 지금까지 모아둔 돈으로 주식이나 창업 등 자산운용을 하려다 실패하면 복구가 어렵다. 곧바로 극빈자 대열에 합류될 수도 있다. 은퇴자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식리스크이고 그다음이 자산관리 실패다. 희망자에 한해 시니어 자산을 연금관리공단에서 받고 연금액을 높여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때다.
4.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고민해봐야 한다.
요즘 취업자들이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두둑한 연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무원 연금 수령액이 국민연금보다 큰 것은 연금보험료를 더 많이 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보험료를 더 내고 더 받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불입액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희망자에 한해서라도 즉시 시행해야 한다. 퇴직금을 맡기고 국민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기준 44.5%인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을 45% 또는 50%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월 보험료도 현행 9%에서 12% 또는 13%를 인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현행 기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당장 생활이 궁핍한 사람들은 보험료 인상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연금 본래의 목적인 노후생활보장을 외면하면 안 된다. 연금보험료를 더 내고 더 받겠다는 희망자만이라도 수용해 편안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마다 살아온 인생 속에서 ‘고수’라 불릴 만한 영역은 존재한다. 스스로 고수라 자부할 만한 재능이 있다면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재야에 숨은 고수들을 널리 알리고, 고수들의 손길이 필요한 소비자를 매칭해주는 O2O플랫폼 ‘숨고’를 소개한다.
도움말 숨고(soomgo)
최근 ‘재능거래’, ‘재능마켓’ 등으로 불리며 전문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늘어났다. ‘숨은 고수’를 뜻하는 ‘숨고’는 이러한 전문가들을 ‘고수’라 칭하며 900여 분야의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900가지라는 숫자에 놀라겠지만, ‘반려견 산책’, ‘주례’, ‘게임레슨’ 등 그만큼 소소한 영역까지 폭넓게 아우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장년 고수들 환영합니다!
은퇴 후 경제활동을 위해 그동안의 경력이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이때 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 등으로 활동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고객유치를 위한 홍보비용이나 중개수수료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 ‘숨고’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수에게 수수료 차감 없는 수입을 보장한다. 게다가 온라인과 앱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홍보하면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까지 가능해 부담 없이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고수들을 선정하는 기준도 따로 정해진 것은 없다. 타 플랫폼과 다르게 소비자에게 고수들에 대한 선택과 평가를 맡기는 시스템. 덕분에 누구나 자기 노력에 따라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고수는 사회 경험이 풍부하고 오랜 경력을 지닌 중장년층. 각종 외국어 과외, 번역, 인테리어, 청소, 컨설팅, 출판 등 대부분 주요 서비스에서 시니어 고수가 주목받고 있다. ‘숨고’ 박성현 마케팅 담당자는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정도 사용하는 시니어라면 충분히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특히 은퇴 후 경제적 부담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고민했던 일에 도전하거나 창업 전 소규모 비즈니스를 시험해보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고수들의 공통점 ‘경험×노력’
‘숨고’를 통해 고수로 활약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거 청소의 고수 김해수(60) 씨. 과거 30여 년 동안 인테리어 관련 중소·중견 기업의 관리직으로 일한 경험과 유난히 꼼꼼한 성격 덕분에 퇴직 후 제2직업으로 ‘주거 청소’ 분야로 전향할 수 있었다. 청소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내 집 아닌 고객의 집을 청소해 만족감을 주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즉, 고수라 자부했어도 타인에게까지 인정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 김 씨는 “청소는 손기술이 전부라 생각하지만,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관련 분야 다른 고수들의 기술을 관찰하거나 새로 나온 세제나 약품 등을 조사하고, 자신만의 청소법을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는 주거 공간 외에 빌딩이나 공장 등으로 영역을 넓혀 진정한 ‘청소 고수’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오랜 세월 주부생활로 갈고닦은 살림 노하우를 살려 ‘정리수납’ 고수로 활동 중인 류현숙(57) 씨. 주거 청소와 더불어 중장년 여성들의 참여가 많은 분야다. 류 씨 역시 평범한 주부였지만, 건강만 유지된다면 노후 자금 마련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에 ‘숨고’에 자신의 재능을 알렸다. 정리수납 전문 자격증도 취득한 그는 “자격증보다 중요한 건 경험치”라며 “정리수납 서비스를 대행하는 업체를 통해 활동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프리랜서로서 개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리수납 일은 거의 하루 종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어린 자녀를 둔 사람은 힘들 수 있다. 자녀가 독립한 중장년 주부들이 도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LG전자 연수원장과 LG플레이 총무팀장 등을 지내며 인사 관리와 교육 관련 일을 해온 권규청(58) 씨는 직장에서의 이력을 바탕으로 ‘취업 컨설팅’ 분야의 고수가 됐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 세대에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도움을 주고 싶었고,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심리 상담이나 멘탈코칭 등 관련 공부를 해나갔다. 그는 “취업 컨설팅 관련해서는 젊은 코치들도 많지만 조직생활 경험이 적어 부서별, 업무별로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자들도 사회생활 노하우가 풍부한 시니어 고수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숨고’ 담당자는 “청년 고수들과 비교해 오랜 경력을 자랑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잘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중장년 고수를 신뢰하는 편”이라며 “꼭 직장 경험이 아니더라도 오랜 취미나 특기를 살려 고수로서 제2의 커리어를 찾길 바란다”고 시니어 고수들의 활약을 독려했다. 숨겨두기 아까운 재능이 있다면, ‘숨고’의 고수가 되어 필요한 이들에게 한 수 발휘해보는 것 어떨까?
요즘 먹방이 유행이다. TV 채널 어디를 돌려도 먹거리 방송이 빠지질 않는다. ‘맛집’으로 소문이라도 나면 줄이 길게 늘어서고 손님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이 먹거리에 대해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 유명한 맛집 골목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남산기슭 장충동 족발집이 유명하다 보니 저마다 ‘원조 할머니 족발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신당동에 가면 ‘떡볶이’ 골목이 있고, 의정부에 가면 부대찌개 골목이 있다. 제주도에는 ‘흑돼지’가 유명하다. 전국 어디든 같은 현상이다.
그런데 줄 서는 집은 따로 있다. 바로 원조집이다. 몇십 분씩 기다리는 건 예사다. 어떤 때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옆에 같은 종류의 음식을 하는 식당이 있어도 그렇다. 나머지 식당들은 대부분 썰렁하다. 먹어보면 맛과 가격에서 그리 큰 차이가 없는데도 그렇다. 한 집은 잔칫집처럼 손님이 넘쳐나고 다른 집은 속된 말로 파리를 날린다. 손님이 없는 식당 주인은 TV를 보고 있다. 왠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식당에 가서 먹어야 잘 먹은 것 같고 그렇지 않은 집에서 먹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기다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붐비지 않는 식당이 서비스도 더 좋고 분위기가 쾌적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되는 식당으로만 몰린다. 하도 사람이 많아 2호점 3호점을 내는 식당도 있다. 가족이 체인점 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점포를 하나 더 내는 것은 전쟁터로 뛰어드는 일이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싸움터,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이러한 싸움터에 아름다운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일본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의 이야기다. 그는 남편과 작은 점포 하나를 운영했다. 장사가 아주 잘됐다. 점포를 키워도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트럭으로 물건을 공급할 정도였다. 매출이 쑥쑥 올라 부자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반면 옆집 점포는 파리를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미우라는 남편에게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우리 가게는 너무 잘되는데 옆집 가게는 문을 닫을 지경이에요. 이건 우리가 바라는 바도 아니고 하느님 뜻도 아닌 것 같아요.”
남편은 아내가 자랑스러웠다. 부부는 가게를 축소하기로 했다.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줬다. 적당한 수의 손님만 받다 보니 시간이 여유로웠다. 미우라는 남는 시간을 평소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하며 보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빙점’이다. 그녀는 그 소설을 통해 가게에서 번 돈보다 몇백 배 넘는 부와 명예를 얻었다.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작은 배려가 부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여유와 배려가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따뜻해진다. 요즘 많은 사람이 힘들어한다. 뭘 해도 먹고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창업을 했다가 접게 되면 그 피해는 막대하다. 잘못하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빚에 쪼들리기도 한다. 이럴 때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우리 가게에 손님이 넘치면 옆집 가게를 소개하는 배려심이 있으면 좋겠다. 잘되는 식당만 고집하지 말고 한 번쯤은 옆집 식당도 찾아주자. 이 추운 겨울, 가난한 이웃에게 배려의 마음이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길 바라면서.
지금으로부터 4년 전,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모였다. 그들은 앞으로 계속 퇴직하는 이들이 늘어날 텐데,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40명이 뜻을 같이하기로 했고, 이름을 ‘엔슬(ENSL)’이라고 지었다. ‘Executive Network for Second Life’의 약자다. 그리고 법적 실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엔슬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공덕동 서울 허브센터에 있는 엔슬협동조합의 배영효 이사장, 송덕호 이사를 만나 고수들의 고민과 이념과 가치,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엔슬의 활동은 인생을 향유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배움을 추구하는 겁니다.”
지난 4년 동안 엔슬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배영효 이사장은 엔슬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밝혔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는 우리 시대의 커다란 과제임이 분명하다. 엔슬은 엔슬의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슬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 우리 사회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또한 우리의 시행착오와 경험도 앞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행, 지식 나눔, 재취업, 스타트업 투자까지 경험
인생을 즐기고, 봉사하고, 배운다는 차원에서 지난 4년 동안 엔슬은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했다. 여행과 답사, 지식 나눔, 재취업, 창업 멘토링과 스타트업 투자까지, 엔슬협동조합 회원들은 퇴직자들의 도전과 실수와 보람 등을 모두 겪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엔슬협동조합의 유의미한 데이터로 쌓여 있다. 예를 들어 serving, 즉 봉사활동을 봐도 그렇다. 그들의 봉사활동은 이웃돕기 같은 차원의 활동이 아니다.
“기업 경력이 30년 넘는 임원이 많다 보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활동을 벌여왔지요. 최근 창업이 붐이잖아요. 대부분의 창업자가 젊은 친구들이고요. 아이디어와 패기를 가진 창업자라 해도 네트워크나 사업 전개 방식 등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죠. 그래서 우리 멤버들과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겁니다. 엔슬은 숙련된 전문가들이 멘토링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 규모는 작아 실험적 단계입니다만, 회원들이 일정 금액을 모아 스타트업 투자도 하고 있고요. 창업 멤버들 중 일부는 투자 전문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루라고 해도 끝까지 성장하고 싶어 한다
내부적으로는 투자 기업 형태의 실험도 진행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엔슬은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엔슬 조직은 위계도 없고, 멤버들이 보상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직이 유지되느냐?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
“조직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해야만 하고, 그 일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기업이라면 계층 구조 아래 급여를 주면서 일을 시키지만, 엔슬은 그런 조직하고는 다릅니다. 멤버들끼리 품앗이를 하면서 일을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의 기대도 다르고,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40명의 멤버가 4년간 활동해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엔슬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을 하자’이다. 송덕호 이사는 ‘사람과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곳’이 엔슬이라고 했다.
“퇴임 후 시간 보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죠. 집에서 쉬고 싶고, 돈이 많으니 골프나 치면서 살겠다는 사람은 엔슬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라든지,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이 오면 됩니다. 공부와 성장은 혼자만으론 힘듭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하니까요. 그 니즈를 아는 사람이면 되는 것입니다.”
엔슬은 녹슬지 않는다
2019년의 엔슬은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는 사람끼리 활동을 해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계획을 갖고 있다.
“2019년의 가장 큰 변화는 신입회원 모집입니다. 지난 4년간은 초창기 멤버들만 활동을 해왔는데 엔슬도 하나의 조직으로서 신진대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신입회원을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상호 작용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품앗이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새해부터는 모든 회원이 하나 이상의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무임승차(free riding)를 줄이는 것이 이런 성격의 조직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엔슬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 의미는 엔슬의 가치가 학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성장과 배움을 이루려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든지 해야죠.”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과거의 관계들로 이뤄져 있다. 과거에 어디서 태어났느냐, 학교가 어디냐, 어떤 직장을 다녔냐 등등. 특히 시니어 세대를 이루는 50~60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 모임, 직장 선후배 모임, 종교 모임, 기타 취미활동 동호회 등이 인간관계의 주된 축이다.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지향적 관계들인 것이다.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야 발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인문학, 물리학, 블록체인 등의 내용을 처음 접하면서 사유를 넓혀가듯 말이죠.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계급장을 떼고 진짜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해보자.’ 엔슬은 그렇게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물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무조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좋은 일도 있겠지만 리스크도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났던 베테랑 엔슬 멤버들이 그런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관계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얻는 게 더 많으리라는 답을 내린 것이다.
당장의 욕구는 인생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배영효 이사장에게 엔슬의 회원이 될 수도 있는 이들, 바로 곧 퇴임할 베테랑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무얼 어찌하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시간을 잘 쓰자’ 정도의 말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시간을 잘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Happiness is not a destination. It is a way of life(행복은 목적지가 아니고 삶의 한 방법이다)’ 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 문제없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마다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지향점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보통 정년이 되어 퇴직할 때가 되면 온갖 욕망들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배 이사장은 그런 욕망이 지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보통은 옷을 벗고 나올 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욕구가 목적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욕구이지요. 억압이 풀리면 그 욕구 역시 의미가 사라져요.”
구루가 되기 위한 출발선에 선 사람들
엔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구루(guru)다. 자신들을 구루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직장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것만으로 구루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엔슬은 구루 모임이 아니라 구루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자리라는 것이다. 즉, 엔슬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그 반대로, 구루로서의 첫걸음을 지향한다.
“구루가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지식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혜가 중요하죠. 지혜로운 사람은 향후의 변화를 읽을 수 있고 그걸 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아는 게 아니라 변화를 마음에 품고 사물을 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 이사장이 인생의 고수야말로 진정한 구루라고 말하자, 송 이사가 받아서 좀 더 구체적으로설명했다.
“구루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봐요. 첫째는 살면서 성장하겠다는 욕구죠. 모든 사람이 성장하려 하지는 않거든요. 둘째는 분야를 정해야 합니다. 분야가 너무 많으니까요. 셋째는 과거와 무관치 않다는 것. 과거를 무시하고 구루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걸 경험해보겠다면 즐길 수는 있지만 구루가 되기란 어렵죠. 넷째는 십 년은 더 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4년을 걸어온 엔슬의 새로운 도전은 2019년부터 전개된다. 신입회원은 최근 1~2년 내에 퇴임한 대기업 임원들을 중심으로, 2019년 1~2월에 걸쳐 모집 선발하고, 3월에는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그들이 바라는 구루의 길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찾는 고수들에게 어떤 모델로 제시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00세 시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제 50대는 청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은 그 이름대로 서울 시민 50세부터 64세까지인 50플러스 세대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 재취업, 일자리, 교육, 정책 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50플러스재단은 지난해 10월 김영대 전 국회의원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향후 3년 동안의 사업 전개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최대 화두가 된 시대, 김영대 대표이사를 만나 50플러스 세대의 일과 삶에 대한 대안을 들어봤다.
새해 이슈는 일자리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조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등 단순 서비스직 업계에서는 사람을 쓰지 않는 대신 자동화 설비, 로봇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니어가 은퇴 후 직업으로 많이 선택하는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카풀 논란 또한 자율주행차가 도입될 미래의 택시 산업과 연결되는 사전적 갈등이다. 이처럼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일자리가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50플러스 세대는 노인 세대도 청년 세대도 아니어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50플러스 세대가 생산적이고 준비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각 방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실 생계형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곳은 이미 많습니다.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죠. 그래서 재단은 인생 후반 새로운 일의 유형으로 ‘사회공헌일자리’를 발굴하고 확산하고자 합니다. 보통 ‘앙코르커리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개인적 보람, 사회적 가치 모두를 만족하는 활동, 일거리, 일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50플러스 세대를 위한 일자리 해법
시니어에게 일자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수명이 늘어나고 부양 의무가 계속되면서 현역으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정무적 책임을 갖고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도 50플러스재단을 발족해 시대적 화두에 동참했고, 최근 김영대 대표이사가 임명되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으로 시민사회단체, 국회의원, 중소기업 CEO 등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남북경제협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임명에서부터 50플러스재단의 방향성에 대한 큰 그림이 느껴졌다.
“재취업, 일자리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십니다. 이제는 많은 분이 칠십까지 노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되는데, 그중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부분에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저소득, 취약 계층의 50플러스 세대를 케어하는 노력을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50플러스재단이 시니어 취약 계층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빈곤율은 OECD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에 달한다. 고령화 속도도 가장 빨라서, 높은 노인 빈곤율과 고령화의 쌍끌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시니어의 일자리 확보가 본인 스스로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로운 틈새시장 공략해나갈 것
일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장년 일자리와 시니어를 매치시키는 것도 만만찮다. 현장에 가면 정책과 현장의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50대 이후의 직업 훈련, 생계를 위한 일자리 알선 등은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노동의 가치를 살려 저소득 취약 소외 계층, 그리고 일하고 싶은 분들을 잘 안내해야겠죠. 또한 서비스직, 문화관광, 기타 영업 마케팅 쪽으로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도록, 구력과 경험 많은 분을 매칭하고 관련 프로그램과 직업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김 대표는 최근의 일자리 대책이 세대 융합 일자리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모범적인 사례를 찾아내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만큼 그런 사례를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창업과 관련해서는 당사자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창업하는 분들 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순식간에 돈을 까먹습니다. 조사해보니 창업자 10명 중 6~7명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창업을 철저히 준비하게 해야 하고, 창업자 수도 줄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진입장벽을 높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전에 꼼꼼히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실행 전에 미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재단에서 올해 개발해볼 생각이에요.”
시니어가 대거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엄청난 손실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잃어서 순식간에 나이 들어버린다는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려온다. 청년 때는 아래로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지만 나이 들면 어렵다. 따라서 선경험을 해보고 안 맞으면 빨리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 설명을 들으며 김 대표가 말하는 “조사, 증명과 함께 새로운 길을 제안하는 방향”이라는 게 어떤 모양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 수를 보면 일본의 성장세를 우리나라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건 관광 서비스하고도 맞물려 있어요. 관광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 중에 50플러스 세대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관광 가이드, 문화관광 해설사, 외국인들을 안내할 수 있는 문화재 해설사 역할 등이 있겠죠.”
은퇴자를 위한 귀촌 일자리 창출
김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 중에는 귀농·귀촌도 있다. 귀농·귀촌이라고 하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농촌에 가서 생활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걸로 하고 귀촌을 하면 생기는 일자리가 있다. 수확기에는 일당 받는 일자리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통, 택배를 도와주는 일도 있다. 그리고 지방에 가면 축제가 많은데 축제에 활용될 인력으로 50플러스 세대가 가장 적합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려고 하면 힘들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농한다고 부부가 함께 갔다가 몇 달 후 아내 혼자만 올라오는 일도 있고요. 차라리 가벼운 마음으로 일정 시간 귀촌해서 살아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일주일 중 월화수목은 도시에, 금토일은 귀촌을 하는 거죠. 경험을 쌓고 그 속에서 익숙해지면 정착하는 걸로 계획을 세우게 해 너무 부담을 갖고 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모아 집단으로 공유주택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귀농·귀촌과 일자리 문제 해결이 함께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북경제협력, 돌파구 될 수 있어
김 대표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이 남북경제협력 부분이다. 현재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분야가 경제협력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제협력 전문가인 김 대표가 50플러스재단 대표로 임명된 것은 남북 간의 경제, 일자리 문제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은 아닐까.
“사실 정년에 걸려 배출되는 50플러스 세대가 많잖아요. 서울만 해도 교통공단, 시설관리공단, 교사, 금융인 등등 꽤 많은데 이분들이 제2인생을 설계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50플러스 세대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습니다.”
김 대표는 남북 간 교류가 진행되면 당장 철도에 대한 시설관리 점검에 들어가야 하는데 개선, 보수 부분에서 나름대로 시장이 꽤 크게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50플러스 세대의 인력들은 기능직이 많다. 북측의 도로 보수, 여러 가지 인프라 조성 등의 기간산업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는 50플러스 세대 기능직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50플러스재단이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강하다면 계속 일할 것
“저 역시 50플러스 세대로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50플러스 세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은 실제 경험해본 사람이 시민들의 피부에 느껴지도록 설계해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0플러스재단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획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50플러스보람일자리’다. 은퇴한 50플러스 세대가 학교, 마을, 복지시설 등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인생 2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2015년 6개 사업 총 442명의 규모로 시작해 지난해는 총 31개 사업에 2236명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상상우리가 재단과 함께 풀어가는 사업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5060세대 1000명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한 후 사회적기업 취업률 50%를 목표로 하는 장기 계획이다.
“저도 칠십 세까지는 일할 계획이 있고 그 이후에는 건강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건강할 때까지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쉬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엄청난 여유가 있어서 여행만 다니며 살 조건도 못 돼요. 그래서 칠십까지는 일하고 이후에는 사회봉사형 일자리, 공헌형 일자리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담백한 목소리로 불필요한 부분 없이 실제를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읽고, 통찰력과 정책으로 다듬어진 김 대표 자신이 무엇보다도 50플러스 세대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늘 그랬던 일과였다. 저녁 종합뉴스가 끝나고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그날의 경기들을 정리해주는 스포츠 뉴스. 수십 년간 그랬듯이 그날도 놓치지 않고 TV 앞에 있었다. 무심코 바라보던 화면에서 머릿속을 번쩍이게 한 소식이 한 줄 지나갔다. 그는 그때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걸어보자”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푸른 잔디 위 다이아몬드에서 땀흘리는 선수들과 함께하는 일. 어쩌면 평생 기다려왔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국내 1세대 프로선수 공익에이전트 이창명(李昌明·55) 씨의 이야기다.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 군산상고, 선린상고 같은 야구 명문 고교들이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부터 야구에 푹 빠져 있었죠. 낮 경기가 있는 날이면 수업 중에도 리시버(이어폰)를 한쪽 귀에 꽂고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고향과 모교가 경기가 열리던 서울 동대문운동장이나 부산 구덕야구장과는 멀어서 저의 유일한 낙은 중계방송을 듣는 것뿐이었죠.”
그렇게 야구에 빠져 있던 까까머리 소년. 하지만 야구와 관련한 일은 할 수 없었다. 운동도 곧잘 했고, 하고 싶은 열망은 컸지만 당장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대학에 진학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길을 걸었다. 그가 LG금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야구와의 인연은 멀어지는 듯했다. 그래도 그는 야구를 향한 시선을 놓치 않았다. 마음은 늘 그라운드에 있었다.
“야구 중계는 가능한 한 놓치지 않고 봤어요. TV와 라디오 속 야구에 푹 빠져 살았죠. 생활이 바쁜 탓도 있었지만 리플레이를 통해 자세히 볼 수 있는 중계가 더 좋았어요. 신문도 3대 스포츠 신문으로 꼽히는 매체의 모든 기사를 봐야 직성이 풀렸죠.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관련 기록이나 경기장 소식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신문에만 의존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다시 시작된 야구와의 인연
시즌의 모든 경기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인생에도 고비는 있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새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은 위기가 된다.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그는 다른 퇴직자들처럼 자영업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고, 취직을 하기도, 창업을 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스포츠 뉴스를 보는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공인선수대리인을 최초로 모집한다는 기사가 떴어요. 이거다 싶었죠. 야구에 대한 상식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고, 늘 동경했던 그라운드 주변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요.”
공인선수대리인은 말 그대로 선수에게 필요한 여러 일들을 공인된 자격을 갖춰 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연봉계약이나 이적협상 등 주요 계약뿐만 아니라 훈련이나 출전 등 구단 내 생활까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 미디어 노출이나 광고계약 등 경기 외 활동에 대한 관리도 맡는다.
“늦깎이 공부가 쉽지 않았죠. KBO의 규약과 리그 규정 등을 달달 외어야 했고, 민법과 도핑 관련 규정까지 숙지해야 했으니까요. 왜 나이 들어 하는 공부를 물 위에 글씨를 쓰는 것에 비유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자신이 어려울 때 노사발전재단 서울 서부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도움이 됐다고 이 씨는 덧붙인다. 이전 직장에 취직이 될 때도, 어엿한 에이전트로 거듭나는 과정에서도 자기소개서나 명함을 준비하는 소소한 일까지 컨설턴트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저연봉 프로선수 위한 대리인 되고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한국프로스포츠협회 공익에이전트 자격 획득에 도전한 것. KBO 공인선수대리인과 한국프로스포츠협회의 공익에이전트 관계를 쉽게 설명하면 국선 변호사를 떠올리면 된다. KBO의 공인선수대리인 자격이 ‘변호사 자격’과 유사하게 선수 대리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격 증명이라면, 한국프로스포츠협회의 공익에이전트는 변호사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이들이 선임하는 ‘국선 변호사’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에이전트 선임 비용이 부담스러운 저연봉 프로선수를 대리하면, 그 수임료는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 부담한다. 비용은 계약을 직접 대리했을 때와 컨설팅만 제공하는 경우에 따라 차등을 둔다. 연봉 5000만 원 미만의 선수가 대상이다. 최근 선발된 공익에이전트는 총 10명. 이 중 KBO의 공인선수대리인 자격을 보유한 이는 이 씨를 포함해 5명에 불과하다. 이제 제도가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이들은 이번 겨울 선수 확보에 나서게 된다.
“문제는 선수 출신이 아니다 보니 선수를 만날 기회가 적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사회생활 경험이 많은 시니어라는 게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해요. 회사에서 바이어를 만나거나, 하청 업체와의 관계도 겪어봤고, 직원들 연봉계약도 해봤으니까요. 협상능력만큼은 오히려 낫다고 생각해요.”
올겨울 그는 누구보다도 바쁜 스토브리그를 치를 것 같다. 뜨거운 동계훈련을 겪을 선수 중 그의 도움이 필요한 인연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은 아무래도 에이전트 선임에 부담이 있을 수 있죠. 구단 눈치를 보는 입장에서 누군가를 내세운다면 자칫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에이전트의 역할은 분명히 있습니다. 선수 대신 구단에 전하고픈 이야기를 하고, 반대로 차마 선수에게 말 못하는 문제들은 대신 접할 수 있으니까요. 이 과정을 통해 선수를 성장시키고 보람을 찾아가려 합니다. 언젠가는 꼭 미국 메이저리그에 선수를 진출시키는 에이전트가 되고 싶습니다.”
김 서린 다관 속에서 따뜻한 잠영을 하는 총천연색 꽃들을 나른하게 바라본다. 꽃다발을 받는 느낌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향긋한 기운과 느긋함이 찻잔 속에 한아름 안겨 담긴다. 추운 겨울 얼었던 손에 꽃차가 담긴 잔을 감싸쥐고 한 모금, 또 한 모금. 몸도 마음도 봄날 꽃처럼 활짝 핀다. 아름다운 모습만큼이나 순하고 착한 꽃차의 매력에 빠진 이들을 만나봤다.
고혹한 색감에 빠져들다
서울시 광진구의 잘 익은 주홍색 감이 탐스럽게 열린 단독주택. ‘한국꽃차문화아카데미’라는 문패가 달린 것을 보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니 형형색색 잘 덖어 말린 꽃차들이 집 안 가득하다. 아카데미 진열대에 모아놓은 꽃차만 해도 100여 개 정도. 잎차나 뿌리차까지 더하면 훨씬 많다. 꽃차는 말 그대로 꽃잎을 따서 다양한 제다법(차를 만드는 방법)을 통해 음용할 수 있는 차로 만든 것이다. 물감을 썼나 싶을 정도로 강렬하고 맑은 색깔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못해 신기하다. 한국꽃차문화아카데미는 송주연 원장의 이름을 따 ‘송주연꽃차문화아카데미’로 시작했다. 2016년 ‘한국꽃차문화아카데미’로 개칭하면서 영역을 더 확장했다고 송주연 원장은 말했다.
“15년 전쯤 꽃차를 처음 알게 됐어요. 몇 년 후부터 문하생을 한두 명씩 만나 가르치고 공부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지금은 꽃차는 물론이고 잼이나 수제청, 디저트, 티플래닝 등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꽃차 잎 면면을 들여다보니 마치 생화가 그대로 담겨 있는 듯 고운 색과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 벽에 거꾸로 매달아 말린 장미꽃과 판이하다. 꽃 원형을 간직한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팬 위에 한지를 깔아 간접 열로 꽃을 덖는데 열을 오래 가할 수도 없다.
“잎차는 몇 번만 덖고 난 뒤 건조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데 꽃은 그럴 수 없어요. 네 번을 덕어도 수분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덖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마음에 드는 꽃차가 나옵니다.”
계절마다 지역마다 피고 지는 꽃이 각양각색인 데다가 꽃마다 특징이 다르니 몇 번을 덖는지 평균치를 말하는 게 쉽지 않다. 그저 꽃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섬세함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만 머리에 새기면 될 듯싶다. 꽃잎의 결은 물론이고 노란 수술도 살아 있는 꽃차도 있다. 정성으로 만든 꽃차는 눈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안정감을 주는 향과 맛, 효능까지 듬뿍 머금고 있다. 이리도 예쁘고 몸에도 좋은 차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과정을 밟아 자격증을 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꽃차문화아카데미 이름을 걸고 제주를 비롯해 전국에 35개 지회가 생겨날 정도이니 말이다. 취미는 물론이거니와 창업과 함께 인생 2막을 열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 셈. 최근에는 한국꽃차문화아카데미 내에서 전 교육 과정을 이수한 차 전문가인 티큐레이터들이 모여 꽃차 브랜드 ‘화려한 수다’를 출시, 11월 열린 ‘2018카페쇼’에서 첫선을 보였다. 꽃차를 만나면서 인생의 색깔도 알록달록해진 이들이 모여 있으니 향긋한 이야기가 쌓여갔다.
누워만 있던 엄마가 꽃차를 덖다
6년 전 우연히 TV에 나온 송주연 원장을 보고 꽃차와 인연을 맺었다는 윤정희 씨. 윤기 나는 피부에 꼿꼿한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꽃차를 처음 알았을 때는 지금처럼 몸이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수술을 많이 했어요. 병원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또 들어가고 할 정도로요. 병원에 있을 때 송 원장님 얼굴을 TV로 한 번 봐서 기억이 나는데, TV에 또 나오시더라고요. 인터넷으로 주소만 확인하고 무조건 찾아갔어요. 인연인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아카데미가 있었거든요. 다리를 다쳐서 수술을 했는데 또 잘못돼 맨날 울던 시절이었어요.”
첫 수업 날,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었지만 7시간 내내 수업을 받았다.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그만해야지 다짐했다가도 일주일 후면 몸이 회복돼 수업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꽃차를 예쁘게 만드는 것에만 신경 썼어요. 잡념도 없어지고 아픈 것도 서서히 잊히더라고요. 병원비도 많이 썼고 가족들한테 미안해서 꽃차 배우는 것을 그만두고도 싶었어요. 그런데 병원에 있는 것보다 좋은 것 같다며 남편이랑 딸들이 도와줘서 자격증 코스도 다 밟았어요. 지금은 서울 1호 지회장을 맡고 있고요.”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꽃길
경기도 하남에서 커피숍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은수 씨도 꽃차를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커피숍만 10년 정도 한 것 같아요. 너무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딘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조금 우울했어요. 그러다 엄마가 신문에서 약용작물협회에서 강의가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2년 전이었는데 거길 다녀오고 나서 곧바로 꽃차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제가 카페를 하니 더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꽃을 몰랐고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게다가 비염으로 꽃을 만지면 콧물이 나와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이때 김은수 씨의 어머니 김영숙 씨가 딸을 대신해 차 만드는 일을 돕게 됐다.
“꽃을 덖는 것은 기본이고 멀리 경북 영주에 있는 땅에 예쁘다는 꽃은 무조건 심어봤어요. 메리골드, 달리아, 한련화를 심었고 내년부터는 더 많은 꽃을 심으려고요.”
힘들게 꽃차를 만들면서 김은수 씨는 큰 꿈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은 커피만 다루지만 언젠가 영주에 내려가서 직접 재배도 하고 덖어 만든 차를 제 이름 걸고 납품하고 싶어요. 그래서 ‘화려한 수다’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제2인생 꽃차로 열다
경기 7호 지회장인 김명례 씨는 전업주부로만 살아오다 꽃차를 알게 됐다.
“노년을 어떻게 살아갈까 구상을 하고 있을 무렵 친구인 송주연 원장이 권했습니다. 커피를 배워볼까 하고 있었어요. 제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꽃을 보면서 그냥 기분 좋은 상상도 할 수 있고, 예쁜 꽃을 만지면 너무 행복해요. 노년이 좀 재밌을 것 같아요.”
간호사였던 박상숙 씨는 아프기 전에 예방 차원에서 잘 먹고 잘 지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마시는 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인체의 70%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고 물을 어떻게 먹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차를 마시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죠. 그리고 꽃차의 매력은 색깔이 아닐까요? 다관에서 우러나는 색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꽃 자체가 매력입니다.”
동생과 함께 노인재가사업을 하는 양미순 씨도 꽃차가 사업에도 새로운 힘을 줬다고 했다. 그냥 커피를 타서 내는 것보다 꽃차가 사무실에 진열돼 있고 또 그 차를 꺼내 마시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는 이도 많다고 했다. 한국꽃차문화아카데미는 본원과 함께 전국의 지회가 꽃차 레시피 등을 공유하고 교육 프로그램 연계를 하고 있다. 창업의 신호탄인 브랜드 사업은 물론 꽃차를 대중적으로 보급하고 알리는 차원에서 예약제로 운영하는 꽃차 쇼룸을 1월 중 강남에 오픈할 계획이다.
mini interview
한국꽃차문화아카데미 송주연 원장
멈출 수 없는 ‘꽃차’를 탔습니다
‘2018 서울카페쇼’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1월 11일, 송주연 원장을 만났다. 한국꽃차문화아카데미 구성원들과 힘을 모아 만든 꽃차 브랜드 ‘화려한 수다’를 세상에 내보이는 중요한 자리였다.
“지금까지 교육에만 집중하다 제품은 처음 내놓았어요. 꽁꽁 숨겨놓고 있다가 이번에 드디어 공개했습니다.(웃음) 10년 넘게 만들어왔던 꽃차를 제품으로 승화시켰어요. 교육 프로그램에서 나아가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 박람회장에 커피 향기와 더불어 향긋한 꽃차 내음이 은은하게 퍼졌다.
“꽃차는 가벼워요. 순수한 차입니다. 갱년기에 좋은 차 등 사람들 각자에게 맞는 것이 있어요. 두통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분은 남색 계열, 위장이 좋지 않은 분들은 노란색 계열의 꽃차가 잘 맞아요. 체질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거죠.”
송주연 원장이 꽃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 년 전. 그때는 꽃차가 아닌 꽃집 주인으로 꽃을 대했다.
“지금 아파트가 쭉 늘어선 왕십리 쪽에서 플라워숍을 2~3년 정도 했어요. 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꽃차에도 눈을 뜬 것 같아요. 계기는 남편의 당뇨와 혈압이었어요. 약차에 관심을 갖다가 꽃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배울 생각으로 찾다 보니 서울에는 배울 만한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여행 간다 생각하고 지방으로 다녔습니다. 꽃차를 배우는 데만 처음에는 1~2년 걸렸습니다.”
꽃으로 시작해 또 다른 꽃길로 갈아탄 송주연 원장이다. 꽃차가 주는 남다른 재미도 있다고 했다.
“꽃집을 하던 시절에는 꽃 이름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꽃차는 하나하나씩 만들다 보니 이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만들면서 이건 무슨 맛이 날까? 무슨 향이 날까? 설레고 두근거려요. 연인이 바뀌는 거처럼요. 지루함 없이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꽃차 관련 강의가 최초로 개설된 곳은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이곳에서 강의할 당시 송주연 원장이 매스컴을 타면서 꽃차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송주연 원장에게 꽃차를 배우려는 이들도 점차 늘었다.
“이곳을 거쳐 간 분들이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더 많이 꽃차를 알리고 이 분야를 넓힐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도 제가 할 일이죠.”
58년 개띠, 올해로 환갑이 된 송주연 원장은 기념 삼아 우롱차로 유명한 대만에 차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차에 대한 전문가로서 한 발짝 더 앞서가기 위해 원광 디지털 대학교에서 차문화학과 학위를 따고 현재는 대학원 휴학 중인데 내년 복학할 계획이다. 시간이 좀 나면 언젠가 꼭 하고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꽃을 따라서 가는 꽃차기행을 하고 싶어요. 강원도 삼척에 해풍 맞은 구절초, 영주 소백산 자락의 국화꽃, 봄이 되면 해남의 목련꽃도 보고 제주는 동백꽃 필 때 가고요. 지회장들도 만나 한마디 인터뷰를 해서 책을 만들고 싶어요. 아직 젊으니 할 일이 많고 지회가 제대로 자리 잡을 때까지 저도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18년이 저물어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전방위적인 국방 개혁이다. 북한과의 관계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현재, 군대의 활용 또한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 속에서 국가보훈산업 또한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훈과 사회발전을 위한 남다른 사명감으로 1994년 ㈜상훈유통을 창업한 후 24년 동안 지속성장을 실현하며 선진유통 전문기업으로 발전시킨 이현옥 회장이 올해 팔순을 맞았다. 지난 20여 년에 걸친 보훈산업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를 만나 기업의 성공 스토리와 경영 철학에 대한 소신을 들어봤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창업’일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러시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고,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청년층의 취업 실패가 누적되면서 모든 세대가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창업 후 3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의 수는 매우 적다. 또한 현상 유지 수준을 넘어 지속성장을 이루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1994년 상훈유통을 창업해 고용 창출과 국가 세수 증대에 기여하며 24년 동안 꾸준한 성장을 실현한 이현옥 회장은 자신의 업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태어나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보내고 인생 말년에 이르러 거대한 전환기의 기업 오너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는 창업을 생각하는 많은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무모한 도전, 과감한 결단
“창업하기 전까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서 20여 년간 재직하며 국가 유공자들에 대한 지원 사업을 추진했는데, 정부의 보훈복지 예산과 사회적 관심 부족 등으로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특히 다수의 국가 유공자가 정부 복지지원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위해 개인적으로라도 무언가 도움을 드릴 만한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마침 기회가 주어져 KT&G 연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이 회장은 사업 초기에는 자본이 부족해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처분했다고 한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모두가 말렸다. 그러나 이 회장은 보훈공단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 신뢰기반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실패할지라도 국가와 사회를 위한 뜻 있는 결단이었던 만큼 큰 후회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것이 현재의 강소기업 상훈유통이라는 보답으로 드러난 셈이다.
20여 년간 보훈단체에서 공직생활을 한 이 회장은 상훈유통을 세울 때 국가보훈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일을 진행했다. 상훈유통은 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면세품 양도 양수 사업, 한국인삼공사 정관장 홍삼 제품 및 홍삼 음료 판매 사업 등을 갖고 있으며 상훈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전문가를 넘어 멀티 플레이어가 되라
이 회장은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멀티 플레이어’가 되라고 조언한다. 전문가 역량만으로는 기업을 이끌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업이란 본질적으로 수익 창출을 위한 조직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마도 수익을 창출하는 일, 즉 돈을 버는 일일 것입니다. 경영자는 이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자신이 맡은 일 한 가지만 잘해도 조직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지만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다른 비즈니스 감각과 리더십, 통찰력, 판단력을 지녀야 함은 물론 생산, 영업, 관리, 고객업무 등 기업 활동의 전 분야를 폭넓게 알고 이끌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성공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그는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비결이란 “결국 고객이 필요로 하는 좋은 제품을 편리한 시스템을 통해 적정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신뢰’라는 가치덕목 또한 강조했다. 기업이 고객들에게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기본 중의 기본에 대한 이야기들이지만 이 기본을 지키는 게 어려운 세상이다. 특히 보훈산업이라는 보수적인 분야에서 이러한 기본 가치들은 다른 산업보다 더 강조되고 지켜져야 한다.
돌발적인 외부 위기를 이겨내는 맷집
물론 상훈유통을 경영하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관리 가능한 내부 요인보다는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치명적인 외부 요인이 기업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든다. 현재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무역전쟁의 장기화로 그야말로 시계 제로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돌발 상황을 견뎌낼 수 있는 맷집이야말로 기업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닐까. 이 회장이 그 어려운 길을 돌파한 것 또한 군인 정신을 연상하게 하는 맷집이었다. 베트남전에서 하사로 참전했던 그의 경력도 무관치 않아 보였다.
“창업 후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관련 정책과 제도 등의 변화로 몇 차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외부 환경 변화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어떠한 노력과 방법을 통해 타개, 극복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입니다. 제 경우에는 그때마다 고객과 직원들, 평소 성원해주신 주변 분들을 생각하며 이들에게만큼은 절대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이분들의 기대와 성원에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각오로 어려움을 참고 이겨냈습니다.”
군 관련 사업을 하는 만큼 정치적 부침에 따른 위기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몇 해 전에는 비즈니스와 관련해 모 기관에서 불거진 사건 때문에 자택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조사관들 때문에 가족들이 놀랐음은 당연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조사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집안 살림이 너무 검소했고 조사를 거듭해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서 조사관들이 오히려 당황했던 것이다.
기업은 내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
온갖 어려움들을 견뎌내며 아직 현역으로 상훈유통을 진두지휘하는 이 회장은 무조건 기업 규모를 크게 키우는 일은 지양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래 상훈유통의 청사진이기도 하다.
“대기업이기보다는 오히려 강소기업, 또는 내실 있는 중견기업이 더 좋은 점이 많습니다. 특히 저는 상훈유통이 일본이나 유럽 기업들처럼 후세에까지 기업의 전통과 문화가 길이 이어지는 장인기업, 장수기업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무리한 욕심을 경계, 절제하면서 내실경영, 안정경영 위주의 경영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이 바라는 상훈유통의 미래는 내실과 안정 기반을 갖춘 수성(守成)의 역사다. 사업 프로세스의 지속적 혁신, 전문 인재의 양성, 시장 및 고객다각화 등 가진 것을 전제로 차분하게 길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그의 생각은 사회를 향한 기여로도 이어지고 있다.
나눔을 통해 더불어 느끼는 행복
상훈유통의 시작이 국가 유공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세워진 만큼, 이 회장은 그동안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12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사회에 내놓은 이 회장은 자신의 막대한 기부활동에 대해 분명한 논리를 밝혔다.
“혹자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 역할에 대해 ‘결과적 기여’, 즉 기업이 지속적인 사업으로 고용과 세수 증대 등에 기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에 더해 ‘의도적 기여’ 역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 기여만으로는 그 파급 효과가 느리고 수혜 범위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장은 사회 각계에 대한 자신의 꾸준한 기부는 특별히 좋은 일을 한다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라 생각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기업은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기업이 추구해 달성하는 수익은 결국 사회로부터 창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눔과 상생의 철학으로 사업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분야에 환원할 것인가는 기업인들 각자가 판단할 몫입니다. 제 경우에는 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국가 유공자분들께 도움을 드리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이 분야의 지원활동을 꾸준히 실천해왔습니다.”
인재 놓치지 말 것
그는 팔순의 나이이지만 회사의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이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사내 인재 양성이다. 이를 위해 상훈유통은 ‘공익 가치를 창출하는 선진유통 전문기업’이라는 비전을 정립했다.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인재는 이 비전에 기준해 선정되고 육성될 예정이다. 또한 미래 인재의 육성과 함께 회사 초창기에 입사해 아직까지 근무하는 장기근속 직원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평소 충효사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회장은 가족애와 효의 모범을 보인직원들에게 특별휴가와 가족여행 전액을 지원하는 등 효 사상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또 신의를 중시해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끝까지 교류를 이어간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알맞은 직장을 소개해주고, 결혼을 못한 사람에게 중매를 서고, 고충이 많은 사람 이야기에 귀를 내어주는 등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선뜻 나서서 기어이 해줘야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천성적으로 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주변에서는 이 회장이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을 도와주고 한결같은 자세로 보훈정신을 되새기고 받들어온 CEO라고 입을 모은다.
팔순의 나이에도 검은 머리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이 회장은 칠순에 골프를 시작할 정도로 그야말로 만년 청춘이다.
“바빠봐, 바쁘다 보면 늙을 시간도 없어요. 가는데 순서없고 빈손으로 다 가는거지. 일을 계속해야 늙지 않아요.”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올곧은 마인드가 우리 독자들에도 훈훈한 미담이 되길 바라면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 회장께 올해가 가기 전에 뜨끈한 생태찌개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