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 프로젝트가 이태원에서 시작을 알렸다. 소상공인들을 1조 원의 기업가치가 있는 유니콘 기업형으로 육성하고, 지역의 상권이 글로컬(글로벌+로컬)로 거듭나도록 만들 계획이다.
지난 1일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이자 이태원 상권 회복 프로젝트로 진행된 팝업스토어 ‘헤리티지 맨션’이 문을 열었다.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은 로컬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의 협업으로 지역의 인적·물적 자산을 연결하고, 상권관리 모델 도입과 자체 역량 강화를 통해 골목상권을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어반플레이), 인천 개항로(개항마을), 공주(제민천), 군산 영화타운((주)지방)을 ‘로컬브랜드 상권 창출팀’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2일 이태원에서 간담회를 열어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시작을 알리고, ‘헤리티지 맨션’을 둘러보며 이태원 소상공인을 응원했다.
이영 장관은 “퇴근하고 대중교통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어떨까? 동네가 바뀌면 온 동네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생활 속 창업에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태원의 독특한 문화, 역사, 가치들을 모아 상권을 개발하고자 했다”면서 이태원 상권 회복을 응원했다.
이태원에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해 헤리티지 맨션을 기획한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는 “우리나라 로컬크리에이터의 시작은 이태원”이라면서 “이태원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상인 700여 명의 감사의 뜻을 담아 제작한 감사패를 이영 장관에게 깜짝 전달하기도 했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참사 이후)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중기부 지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희망을 보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기부는 소상공인을 기업가로 키우는 지원 사업들을 연계할 계획이다. 지역의 상인들을 ‘라이콘’(라이프스타일 유니콘)으로 성장시키고, 지역이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는 글로컬 상권으로 재도약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번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에 선정된 지역 중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을 시작으로 공주 제민천 창업실험실, 마계인천 유니버스, 군산 술익는 마을 순으로 팝업스토어, 축제, 네트워킹 데이가 연속 개최된다.
이태원의 낮과 밤 담은 “헤리티지 맨션”
헤리티지 맨션은 도시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가 이태원의 로컬크리에이터, 소상공인과 협업해 만든 팝업스토어다. 독특한 지역성을 가진 이태원의 문화와, 시대를 선도하는 문화를 제안해온 이태원 구성원들의 유산을 담은 공간이다.
이날 헤리티지 맨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오후 4시가 되자 DJ의 디제잉이 이어지며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느낌도 주었다. 헤리티지 맨션 자체가 곧 이태원이었다.
최은지 어반플레이 PD는 “9월 한 달 동안 앵커스토어인 헤리티지 맨션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8군데의 지역 상인들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헤리티지 맨션에 방문하면 누구나 웰컴키트를 받을 수 있다. 이 안에는 이태원의 헤리티지(유산)를 보여주는 헤리티지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을 수 있는 키링이 들어있다. 봉투 안의 키링을 가지고 쿠폰에 적혀있는 공간을 방문해 1만 원 이상의 소비를 하면 각 카테고리별 색깔의 열쇠 모양 키링을 받을 수 있다.
맨션 1층에는 웰컴레코즈(WELCOME RECORDS), 웝트(WARPED)의 제품들을 볼 수 있다. 한 편에는 이들을 지원하는 위스키 브랜드 짐빔의 하이볼을 맛볼 수 있는 부스가 있고, 옆에서는 매주 금, 토, 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DJ들의 릴레이 공연이 이어진다.
2층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믹스미디어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윤일 작가가 이태원에서 7일 동안 실제로 살면서 담은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태원의 색깔을 담은 F&B 부스가 운영된다.
3층에서는 비슬라(VISLA) 매거진의 ‘이태원의 낮과 밤’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에 담겨있지 않은 이태원 사진들은 포스터로 구매할 수 있다. 한편에는 관광특구도시인 이태원의 특징을 담은 굿즈가 판매된다. 보이롱페이스 작가와 협업해 그래피티를 넣은 티셔츠와 이태원 도시 명칭과 함께 헤리티지 맨션의 위도와 경도가 그려진 수건 등이 있다.
또한 매주 금요일에는 댄스 등의 공연이 열리며 매주 일요일에는 플리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오는 9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단연 DJ 문화일 것이다. 웰컴레코즈는 DJ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헤리티지 프로젝트에서도 DJ를 지원하기 위해 헤리티지 맨션과 컬래버레이션 한 LP를 선보이며, 볼레로(BOLERO)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웝트는 서브컬쳐나 발굴되지 않은 문화를 옷으로 표현한다. 홍콩, 뉴욕 등 전세계 아티스트들의 러브콜을 받는 팀이다. 헤리티지 맨션에서 선보인 옷들은 해외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것들로 국내에는 없는 수입 제품들이다.
전윤일 작가는 7일간의 이태원에서의 생활을 기록했다. 실제 이곳에서 소비한 영수증, 필름, 가게의 소품으로 만든 오브제 등을 선보인다. 또한 이태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태원의 헤리티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태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 이태원 곳곳에 그래피티 작업을 한 작가의 그래피티도 감상할 수 있으며 매주 달라지는 F&B도 즐길 수 있다.
종이 잡지로 시작해 글로벌 에이전시로 활동하고 있는 비슬라 매거진은 서브컬쳐를 주류로 끌어오는 힘이 있다. 이태원 출신의 사진작가들을 섭외해 ‘이태원의 낮과 밤’을 담았다. 낮에는 조용하고 비어있는 듯한 이태원이 밤이 되면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이태원의 매력이라는 점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평생 현역 시대. 인생 후반전 일자리는 첫 직장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과거보다 업그레이드된,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내 일’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오프라인 캠퍼스와 온라인 포털을 통해 중장년의 제2 진로에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희소식 중 하나는 생애 전환기인 40대도 참여 가능해졌다는 것. 이들 세대에 맞춘 지원책과 기존 50+세대를 위한 프로그램까지,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의 긍정적 변화에 주목했다.
소위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는 이라면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하 50+재단)에 대해 들어봤을 테다. 이미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이하 캠퍼스) 생활을 경험해봤다면, 올해는 더 기대해볼 만하다. 50+세대의 인생 후배인 40대 중장년이 함께하며 프로그램은 더 풍성해지고 활력은 배가 됐기 때문. 아울러 서울시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서울런4050’의 주요 12개(일자리·사회공헌·직업교육·생애설계 등) 사업 진행을 통해 보다 체계적인 서비스를 누리게 됐다.
새내기 중장년, 직업 교육부터 탄탄하게
40대는 중장년기 진입 세대인 만큼, 인생 후반전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직업역량 교육이 핵심이다. 40대는 대부분 직장 생활 중이고, 부서장 등 조직 내 주요 인력이다. 때문에 노후 준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막상 별도로 시간을 내긴 어려운 상황. 이렇듯 현업으로 여의치 않은 새내기 중장년을 위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직업전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미네르바형 직업전환 전문교육’이 마련됐다. ‘디지털 동화책 작가 도전하기’(강북50플러스센터), ‘중장년 전문셀러 도전하기’(동작50플러스센터) 등 오프라인 수업을 비롯해 온라인 ‘서울런4050포털’에서 400여 개의 직무 교육 콘텐츠를 들어볼 수 있다.
40대라면 직업 전환보다는 현재 직무의 연장선상에서 취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이직을 희망하는 중장년이 중소기업·스타트업으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 과정을 개발해 집중 훈련부터 기업 매칭까지 통합 지원하는 ‘런앤잡4050’도 운영한다.(만 40~55세 퇴직(예정)자 대상 선발) 또 차후 경력 전환의 기회를 노린다면 ‘중장년 인턴십’에 지원해 민간·공공 분야에서 새로운 일의 경험을 쌓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동년배를 위한 생애설계 서포터가 되다 -백낙현(59) 중부캠퍼스 컨설턴트
“대기업에서 33년 일하다가 퇴직 후 올해부터 중부캠퍼스 상담센터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생애 전반에 대해 상담하는데, 크게 일·활동·재무·관계 영역으로 나뉩니다. 현역 때 기획, 홍보, 재무, 해외 지사 업무 등을 했고, 사회적 기업에서도 일했죠. 다양한 경력과 경험이 현재 상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저 역시 퇴직 전후 걱정이 많았는데, 이곳을 찾는 중장년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더군요. 동년배라 공감대 형성이 잘 되는 편이고, 더 실질적인 조언이 가능한 것 같아요. 최근에는 40대들도 방문하는데, 노후 준비를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에게 컨설턴트로서, 때론 인생 선배로서 최대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드리려 해요. 특히 중장년이 재취업에 도전하는 과정은 외롭고 힘든데,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고들 해요. 그런 내담자들을 위해 저 또한 전문 지식을 쌓으며 충실한 서포터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일해보고 싶다 캠퍼스 참여자 송순임(49) 씨
“결혼 전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아이가 태어나며 전업주부로 지냈어요.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한 선택이었지만 한편으론 일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죠. 저처럼 경력단절 여성들은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일단 기술을 익히거나 전문성을 갖춰야겠더라고요. 우연히 ‘데이터 라벨러’(AI가 학습 가능한 형태로 데이터를 가공하는 일)라는 직업을 알게 됐는데, 마침 캠퍼스에 교육 과정이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신청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도 제법 컸고, 저도 스스로를 위한 일을 해볼 시기가 된 것 같아요.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는 목표를 정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교육을 들으며 그 길을 찾아가려 해요. 현재 캠퍼스 생활은 정말 만족스러운데요. 주변에 저처럼 재도약을 꿈꾸는 여성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캠퍼스’라는 명칭이 마음에 듭니다. 아직은 복지관이나 노인기관을 가기엔 좀 이르잖아요. 딱 우리 세대만을 위한 특화 공간이 이곳 캠퍼스가 아닐까 해요.”
취·창업 원한다면 전문 컨설팅으로 든든하게
캠퍼스 활동을 앞두고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먼저 상담센터에서 컨설턴트를 찾길 바란다. 우선 온라인 생애설계 자가진단을 통해 영역별(일·활동·재무·관계) 준비도를 확인 후, 관심 영역에 대한 전문 컨설턴트의 1:1 맞춤 상담을 받아볼 수 있다. 불안, 스트레스 등 전반적인 심리상담을 비롯해 연금, 재무 등에 대한 심층 상담도 진행된다. 생애설계 분야별 전문가가 제공하는 경력·생애설계 프로그램도 유익하다.
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노후 진로에 갈피가 잡혔다면, 취업 정보·이력서·면접 등 구직 활동을 지원해주는 개인별 맞춤 취업 컨설팅도 받아보자. 사회공헌 일자리를 희망하는 이들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시 보람일자리’나 ‘중장년 지역사회돌봄단’ 활동에도 도전해볼 수 있다. 만약에 취업이 아닌 창업이나 창직이 목적이라면 전문가 컨설팅과 창업 교육 프로그램 등을 아우르는 중장년 창업컨설팅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와 더불어 각 지역 캠퍼스별로 운영하는 공유사무실을 창업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밖에 직업능력개발교육을 비롯해 실용성을 높인 기술교육원 연계 프로그램, 대학 연계 맞춤형 교육 등 미래 취업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직업역량 강화 교육도 진행한다. 워낙 프로그램이 다양해 어떤 과정이 나에게 맞을지 선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캠퍼스 상담센터 방문 시 컨설턴트를 통해 교육 및 훈련 정보를 안내하고 지원받을 수 있으니 이를 활용해도 좋겠다. 디지털에 취약한 중장년이라면 디지털 전환 교육을 통해 활용법과 비즈니스 실무 등을 익히며 전문성을 키워볼 수도 있다. 또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올해 6월 개최)나 채용·직무 설명회 등 관련 행사도 종종 열리니 수시로 50+포털을 통해 관련 정보를 확인해보면 더욱 빈틈없는 캠퍼스 생활이 될 것이다.
올해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서울런4050’의 시행으로 50+재단은 다채로운 변화를 맞았다. 이성수 사업운영본부장은 기존 50+세대부터 신규 40대까지 아우르는 사업을 통해 중장년의 인생 후반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본부장에게 더욱 새로워진 재단의 면면에 대해 물어봤다.
Q .올해 50+재단 사업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중장년 일자리 발굴과 디지털 역량 강화 및 직업 교육에 초점을 두고 사업을 운영한다는 점, 그리고 40대까지 지원을 확대했다는 점입니다. 현재 이들을 위한 서비스는 일차적으로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서울런4050 포털’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캠퍼스와 센터에 상담을 신청하는 40대도 조금씩 눈에 띄는데요. 하반기에는 여러 교육 시설에서 대면 교육을 통해서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Q. 50+재단 사업을 운영하며 무엇에 주안점을 두시나요?
첫째, 중장년의 요구가 높은 일자리 지원 사업을 더욱 강화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중장년 채용 수요가 있는 기업들과 구직을 원하는 중장년을 매칭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둘째, 중장년층이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데 뒤처지지 않도록 돕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디지털 전환을 돕는 교육과정을 확대 운영합니다. 끝으로, 중장년이 더 편하게 서비스를 누리도록 캠퍼스 공간을 업그레이드하려 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에 주목해 사업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Q. 중장년이 캠퍼스 활동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요?
인생 후반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등을 점검해볼 기회를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체계적인 상담을 통해 경력설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들으며 동년배들과 고민을 나누다 보면 어느덧 새로운 길을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개인의 상태와 욕구에 따라 알맞은 도움을 받아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Q. 올 상반기에는 어떤 프로그램의 만족도가 높았나요? 하반기 사업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시나요?
기업 연계 채용 설명회나 인턴십, 보람일자리 등 일자리 관련 사업과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았습니다. 사무에 필요한 컴퓨터, 엑셀 사용법 등 사무자동화(OA) 기술 교육에도 많은 분이 참여했습니다. 또 한창 뜨는 드론 조종법 교육도 열기가 대단했고요. 하반기에도 이러한 수요가 많은 사업을 가능한 한 더 편성, 확대해나갈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중장년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몰래 치매 검사를 받고 왔다. 경도인지장애라고 하는데,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 환자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실비아헬스는 치매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맞춤형 두뇌 건강관리 방법을 제안한다.
“경도인지장애요? 어떻게 해야 하죠?”
대한치매학회가 실시한 ‘경도인지장애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8%는 ‘경도인지장애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이 시기가 치매 예방에 중요한 시기인지 모른다는 응답자는 78%, 진단을 받으려면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응답자도 88%에 달한다. 경도인지장애에 대해 거의 모르는 셈이다.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는 경도인지장애, 치매라는 질병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실비아’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이 서비스는 고 대표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됐다. “저희 할머니가 혼자 치매 검사를 받으셨더라고요. 치매가 아닌데도 불안해하시면서 지금까지 약을 드세요. 그런데 보호자로서 뭘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고 대표의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의대 재학 중 다닌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에서도 많은 분이 치매를 걱정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대부분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에 대해 잘 몰랐다. 진단을 받아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치매는 완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할머니와 하던 두뇌 활성화 활동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미국에는 치매 환자들이 두뇌 활성화를 위해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회상요법이라고 하는데요. 할머니가 치매 검사를 하고 온 걸 알고 회상요법을 혼자 공부해서 한국판으로 만들었어요. 이 과정을 매뉴얼로 만들어 다른 봉사자들도 독거 어르신들과 할 수 있도록 교육했죠.”
이런 고 대표의 시도는 결국 실비아헬스 창업으로 이어졌다. 고 대표는 “알고 관리하는 것과 모르고 관리하는 것은 다르므로 환자나 보호자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심부전 환자가 약을 먹으면 살 수 있는데도 부작용을 걱정해서 약을 먹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부작용보다 약을 먹는 게 왜 더 중요한지 알아야 하는 거예요. 암 조기 검진은 왜 받아야 할까요? 조기에 암 진단을 받으면 큰 수술이 될 것을 내시경 치료로 해결할 수도 있거든요. 치매도 마찬가지예요.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로 가기 전 골든타임이에요. 관리해야 하는 이유를 알면, 어르신들이 정말 열심히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인지 강화 훈련을 하세요.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효과가 다른 이유입니다.”
두뇌 건강관리의 초개인화
실비아헬스 앱 가입자는 약 5만 명. 고 대표는 한국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꾸준히 쌓고 있다. 인지 기능 등의 연구가 대부분 해외에서 진행돼 한국인 맞춤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간 쌓은 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연령대와 성별에 따라 각자의 니즈가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인지 저하 원인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맞춤형 두뇌 관리 솔루션이 필요한 이유다.
실비아헬스 서비스는 어디에서나 쉽게 무료로 경도인지장애 검사를 할 수 있고, 전문가 해석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이용료 3만 원) 더 깊이 있게 상담 후 두뇌 건강관리까지 받고 싶다면 전문가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실비아헬스의 두뇌 건강관리 솔루션은 치매안심센터, 대학병원 등에서도 이용 중이다. 최근에는 KT, 대한노인회, 현대해상 등의 기업 고객 맞춤형 서비스도 시작했다. 기업이나 기관이 원하는 조건별 이용자에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중 생활습관개선형으로 시범 인증도 받았다.
고 대표는 “인지장애가 오는 경로가 매우 다양한데,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알지 못하면 엉뚱한 곳을 파게 된다. 콜레스테롤이 높은데 견과류를 엄청 먹는다든지, 노니즙을 많이 먹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개인별로 해야 할 두뇌 관리 우선순위도 다르다. 아직은 그룹화한 건강관리 솔루션을 제안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초개인화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비아헬스 앱 내 프로그램은 기억력 증상이 좋아졌다는 임상 연구 결과를 얻었다. 스트레스 지수와 불안감도 낮춰 삶의 질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병원에서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제도 임상 시험에 들어갔다.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일상에서 관리가 가능한 실비아헬스 앱과 디지털 치료제를 병행해 평생 두뇌 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목표다.
고 대표는 “‘루이소체 치매에는 이런 특성이 있으니 두뇌의 이런 부분을 강화하는 운동을 하루에 한 번씩 해보시면 어떨까요?’라는 맞춤형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의 고민을 확실하게 해결해줄 수 있도록 나아가려 합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사람의 뇌에는 학습과 기억을 만들고 저장하는 세포들이 얽혀 있다. 뇌는 기억이 사는 집인 셈이다. 기억이 오래도록 뇌라는 집에 머물도록 지켜주고 싶은 의사와 과학자가 있다.
디지털 치매 치료제를 만든 이준영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오른쪽)와 노유헌 이모코그 공동대표(이하 대표, 왼쪽)의 이야기다.
가슴 뛰는 삶, 이모코그의 시작
‘내가 병원에서 의사로 사는 이유가 뭘까?’ 문득 이준영 교수는 생각했다.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기관지 천식은 그를 잠 못 들게 했다. 거의 매일 자지 못하고 외래 진료를 보면서도 그가 놓지 않았던 건 뇌에 관한 연구였다. 치매와 기억력 연구다.
이 교수는 2002년 국내 최초로 치매 발병률을 연구해 데이터를 구축했다. 문맹 노인의 치매 검사 도구도 처음으로 만들었고, 그들을 위한 훈련 도구도 만들었다. 컴퓨터로 치매 평가 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2004년에는 윤정혜 차의과대학 상담심리학 교수와 함께 치매를 막기 위한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메타 기억 교실’은 그렇게 탄생했다. 치매 센터를 중심으로 보급한 프로그램은 꽤 결과가 좋았다. 뇌의 기억력 주변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기억력이 좋아졌다. 특히 문맹 노인들은 머리에 기억을 띄우는 ‘작업 기억’ 기능이 떨어지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는 걸 확인했다. 이렇게 유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이 교수는 여전히 대학병원 의사로 산다는 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바닥으로 끝없이 내려가던 시기”라고 표현했다.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이 시기에 이 교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저녁 남산을 올랐다. 보통은 20분이면 갈 곳을 천식때문에 1시간씩 오르면서. 그러자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이 보였다.
“어떻게 되더라도, 누가 뭐래도, 뇌를 고치는 의사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더라고요. 노인 정신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어요. ‘잠자리에 누워 다음 날을 기다리는데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늙은 거다’라는 거예요. 저에게는 뇌를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이 가슴 뛰게 하더라고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쑥스러웠지만 ‘뇌를 고치는 의사로 살겠다’고 선언하기 위해 명함을 만들고 주변에 나눠주었다. 그때부터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SKT에서 스마트 스피커 몇백만 대를 보급했대요. 여기에 윤 교수님과 만든 ‘메타 기억 교실’, 그러니까 기억 훈련 프로그램을 넣고 싶다는 거예요. 처음으로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스마트 스피커만으로 시도한 것이었죠. 기억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이걸로 논문을 썼는데, 학교에서 창업을 권유하더라고요. 노유헌 대표에게 바로 함께하자고 했죠.”
진짜 환자를 위하는 삶
노유헌 대표는 중앙대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다. 이 교수로부터 창업하자는 전화를 받은 날, 노 대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 교수를 향한 굳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 대표는 ‘과연 내가 하는 연구가 정말 환자들을 위해 쓰이는 걸까?’라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 역시 당시를 “바닥을 찍던 시기”라고 표현했다. 그런 와중에 여동생이 출산을 하다가 암을 발견했다.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며 만난 교수들이 동생의 치료를 도왔지만, 모든 예후가 좋지 않았다. 자신의 연구가 진정 환자를 위한 것인가 고민하던 찰나에 아픈 여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자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노 대표는 “모든 것이 다 끊어지는 시기였죠. 아마 다른 분이 제안했다면 거절했을 거예요. 이 교수님의 제안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이라면 믿고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교수님은 지금까지 제가 도와달라고 할 때 한 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거든요.”라고 회상했다.
노 대표와 이 교수의 인연은 2008~2009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원생이자 과학자를 꿈꾸었던 노유헌 대표는 러닝 메모리를 연구하고 싶었다. 학습과 기억의 작동 원리를 배우고자 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잘 몰랐던 분야로, 뇌세포의 구조나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일이었다. 학습과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분자적으로, 구조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컴퓨터공학부터 생물학, 물리학, 심리학 전공자까지 모아서 ‘브레인’이라는 소모임 활동도 했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은 그를 다른 길로 이끌었다. 박학다식했던 노 대표는 해부학, 줄기세포, 건강기능식품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다. 임상 연구를 할 때마다 그는 늘 이준영 교수를 떠올렸다.
“마치 어제 통화한 것처럼 반갑고 다정하게 늘 받아주셨어요. 교수님만큼 안정적이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임상 시험 설계를 잘 해주시는 분이 없었어요. 덕분에 연구 성과들이 계속 잘 나올 수 있었죠. 교수님이 가끔 환자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가족에 대해 말할 때 그 마음이 이해가 됐어요. 뇌를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는 교수님의 소명과 목표가 저를 이끌어가는 느낌이에요. 교수님이 ‘이 방향으로 가자’고 하면 그 방향이 정말 진심으로 환자와 가족을 위한 방향이라고 믿어요. 그 신뢰가 저의 소명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고요.”
노 대표는 2007년부터 10년 넘게 야학에서 노인들을 가르쳤다. 국비 지원으로 석·박사까지 마칠 수 있었던 그는 공짜로 배웠으니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야학 불빛을 보게 된 날 바로 찾아갔다. 노 대표는 그때의 경험이 이모코그를 꾸려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야학에 오는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지만, 결국 자신이 도움을 받은 셈이라 했다. 이준영 교수를 향한 노유헌 대표의 무한한 신뢰는 지난 15년 동안 쌓아온 두 사람의 우정에서 비롯됐다. 처음에는 이 교수를 향한 믿음으로 창업에 뛰어든 것이지만, 노 대표도 이모코그를 통해 ‘노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루고 있다.
기억력 높이는 디지털 치료제
2021년 1월 19일 이준영 교수, 노유헌 대표, 윤정혜 교수는 디지털 치매 치료제를 만드는 회사 ‘이모코그’를 공동 창업했다. 연구 결과가 좋아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이 기억 때문에 고통받는 어르신들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억을 검사하거나 훈련받는 과정을 간단하게 만들어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창업이었다. 이 교수는 “저의 인지 훈련, 윤 교수의 심리, 노 대표의 생화학이 콤비를 이루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모코그’(Emocog)는 감정(Emotion)과 인지(Cognition)의 영어 앞 세 글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감정과 인지를 평가하고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임을 보여주는 사명이다. 두 사람이 목표하는 바는 치매 진단과 인지 훈련을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준영 교수는 현재 치매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내가 치매인지 아닌지 고민된다고 생각해볼까요. 먼저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야 하는데, 기다리면서 몇 개월이 지납니다. 병원을 가면 의사를 만나고 기억력 테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검사를 합니다. 피 검사를 해서 나쁜 단백질이 쌓였는지도 보고요. 검사를 하면서 몇 개월이 또 흐릅니다. 만약 치매라는 결과가 나오면 약을 처방받는데요. 기억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고, 기억력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을 뿐입니다. 본인은 기억력이 점차 나빠지니까 뭐라도 하고 싶죠. 그런데 훈련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치매 센터를 가야 하는데, 가도 프로그램이 없는 곳도 있고요. 혹은 6개월이고 1년이고 대기하기도 합니다. 치매가 있다면 생활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문제는 가족이 짊어지고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물어볼 곳도 없어요. 병원에 물어보려면 또 몇 개월을 기다려 예약을 해야 하죠. 그래서 병원에 가서 물어보지 않고도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디지털로 구현하고 싶습니다. 치매 선별부터 진단, 훈련, 도움까지 전 과정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이모코그’는 치매 검사 도구, 디지털 치료제, 기억력·인지 케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치매 조기 선별 도구인 ‘코그스크린’(Cogscreen)은 3~5분 내로 셀프 검사가 가능하다. 집에서 스스로 인지 기능이 저하된 것인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코그노시스’(Cognosis)는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감별진단 도구다. 약 40분에 걸쳐 검사가 진행된다. 노유헌 대표가 코그노시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검사라고 강조했다.
“기존에 1시간 반 정도 하던 검사를 40분으로 줄였어요. 병원에서는 검사 후 보고서를 받기까지 한 달에서 여섯 달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요. 코그노시스는 디지털을 적용해 보고서도 자동으로 나옵니다. 병원에서 종이로 하는 검사를 직접 해본 적이 있는데요. 한 시간 넘게 집중해야 하고, 검사 방법도 어렵더라고요. 내가 치매일까 무서운 마당에 시험 보는 기분까지 들어요. 코그노시스는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직관적으로 하라는 걸 하다 보면 40분이 금방 흘러갑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더 쉽고 편안하게 치매 검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디지털 도구인 만큼 자동으로 검사 후 치매를 종류별로 원인에 따라 분류하는 기술도 특허화했습니다.”
이모코그 서비스의 핵심은 ‘단순화’다.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할 필요 없이 문자로 링크를 받아 웹으로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경도인지장애 개선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인 ‘코그테라’(Cogthera)는 말로 하는 인지 훈련 프로그램이다. 병원에서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면 처방을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처음 코그테라를 만들었을 때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노인 중 이 훈련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혼자 살면서 인지 저하가 있는 상태의 노인이어도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아야 기억력 개선도 이어지는 것. 목소리 속도, 색깔, 글씨 크기 등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나온 코그테라는 경도인지장애 노인의 95%가 혼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준영 교수는 앞으로 기억 훈련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4년 말쯤이면 치매 항체 치료제가 나올 거예요. 치매 항체 치료를 하면 치매의 진행이 아주 느려질 겁니다. 경도인지장애인 상태로 보내는 기간이 엄청 길어지는 거죠. 이때 기억 훈련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코그스크린, 코그노시스, 코그테라는 개발을 마치고 임상 시험 단계에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기술력과 해외 상용화를 기대하며 초기 투자부터 시리즈A 투자까지 모두 참여했다. 코그테라는 임상 시험 승인 자체가 최초인 치매 디지털 치료제로, 국내에서는 2024년부터, 해외에서는 2026년부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모코그는 경도인지장애 전 단계인 주관적인지저하가 있는 사람들도 기억력을 개선할 수 있는 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윤정혜 교수와 함께 개발했던 ‘메타 기억 훈련’ 프로그램이다. 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인지 중지 치료와 동일 기술임을 확인받았으며, 병원에서 치료 기술로 사용할 수 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은퇴한 무용수들이 프로그램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이준영 교수가 발레 줄거리에 단어와 문장 수를 정해 외우도록 하는 특허를 낸 기억 훈련법이다. 이 프로그램을 마치면 ‘백조의 호수’ 무용 작품 하나를 기억하게 된다. 이 교수는 기회가 된다면 치매 안심 지역을 만들고 싶은 바람도 있다. 인지와 기억에 관한 콘텐츠를 종합해 지역의 치매 발병률이 줄어드는 ‘치매 안심 구역’을 만드는 것. 이렇게 이준영 교수와 노유헌 대표는 이모코그를 통해 뇌를 고치는 의사와 과학자로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저희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꿈을 좇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꿈이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고령사회 속 중장년 인구가 늘어나며 이들 세대를 위한 전유 공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기 남부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이하 행복캠퍼스)는 인생 후반전 일·취미·사회공헌 등을 아우르는 생애전환 플랫폼으로 발돋움 중이다. 특히 ‘캠퍼스’라는 명칭처럼 강남대학교 내에 위치해, 대학생과 교류하며 풋풋했던 시절을 다시 만끽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행복캠퍼스는 1955~1974년생 경기도 주민을 대상으로, 이들 세대의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단순히 프로그램 제공에 그치지 않고, 동년배가 함께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지역공동체로 거듭나게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행복캠퍼스 내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비슷한 관심사를 발견한 이들이 함께 동아리를 만들고,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나가는 식이다. 그 예로 이곳 캘리그래피 수강생들은 뜻을 모아 용인세브란스병원 어린이 환우들을 위한 ‘캘리그래피 선물 행사’를 열었고, 치매예방지도사 자격증 취득자 동아리에서는 지역 주간보호센터, 종합사회복지관 어르신을 위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정근 경기 남부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센터장은 “불안한 노후를 함께 고민하고 헤쳐나갈 전우(戰友) 같은 동년배들을 만난다는 점에서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압축성장 시대를 정신없이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에게 성공적인 나이 듦을 준비할 ‘인생 에너지 충전소’를 제공해 기쁘다”고 말했다.
일·취미·사회공헌 세 마리 토끼를 잡다
행복캠퍼스 참여가 망설여진다면 일단 현장부터 찾아가 보자. 캠퍼스로 향하는 동안 교정을 거닐며 얻는 활력과 낭만에 매료될 것이다. 도착하면 도심 속 북카페를 연상케 하는 전용공간이 눈에 띈다. 용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 자리는 커피 한잔하며 책 한 권 읽어봄 직하다. 캠퍼스 생활을 더 알아가고 싶다면 상담을 신청하면 된다. 행복캠퍼스는 학기제로 종합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1학기 3~6월, 2학기 9~11월). 개별상담과 집단상담으로 이뤄지는데, 동년배 상담사를 통해 캠퍼스 활동 등에 대해 들을 수 있다(필요시 전문 상담기관 연계).
행복캠퍼스를 다니면 인생 재설계 및 생애전환 교육(정규 교육) 참여가 가능하다. 일·취미·교양·예술·사회공헌 등 다양한 분야의 트렌드를 반영한 인생 재설계 교육이 이뤄진다. 이 또한 학기제로 운영되고, 1학기 5개 이상 교육과정이 열려 1인당 2개 강좌까지 수강 신청할 수 있다. 모든 수업은 무료이며, 과정별 재료비 및 자격증발급비, 교재비 등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대부분 수업은 커리큘럼의 70% 이상 수료시 행복캠퍼스 센터장 명의 수료증을 발급하는데, 이후 사회공헌이나 일자리 참여, 동아리 등 사회적 활동으로의 연계도 꾀할 수 있다.
먼저 일자리에 관심 있는 중장년에게는 취·창업 프로그램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모티콘 작가, 스마트스토어 및 디지털 마케터 양성과정 등 교육을 통해 수익 창출 역량을 강화해볼 수 있다. 이케아, 한국야쿠르트, GS편의점 등 기업과 함께하는 취업설명회나 자기소개서쪾이력서 작성 특강 프로그램도 계속해서 발굴 중이다. 만약 창업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창업설명회나 관련 프로그램을 비롯해 공유사무실(인큐베이팅)을 통해 사무공간 및 컴퓨터, 프린터 등 각종 집기 사용이 가능하다.
커뮤니티나 사회공헌 활동이 목적인 이들을 위해 그에 따른 서비스도 마련됐다. 현재 운영 중인 동아리는 총 7개(행복캘리, 책사랑, 청춘서당, 채티, 보드라미, 행캠SNS, 하모니 등)로 교육 이수 후 인원을 구성하면 한 학기에 5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캠퍼스에서는 동아리 회원들이 당사자 중심의 사회공헌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양성교육을 통해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중장년 스카우트’를 운영한다. 그밖에 원데이 힐링특강이나 동아리 체험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중장년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공간을 활용하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캠퍼스에서 얻은 활력, 갱년기 우울도 떨쳐내 -최혜정(56) 씨
“여자라면 누구나 갱년기를 겪죠. 저도 한 3년은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보냈어요. 다시 활력을 찾고 싶었고, 나를 위한 투자를 해보기로 결심했어요. 주변에 이런저런 기관들을 가봤지만 맞춤한 교육을 찾긴 어려웠죠. 마침 온라인을 통해 행복캠퍼스를 발견했어요. 브이로그, 스마트스토어, 드론 등 제가 원했던 분야의 교육을 강남대학교에서 들을 수 있다니 너무나 기뻤죠. 처음 캠퍼스에 왔을 때 우리 세대를 많이 배려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시설 면에서도 그렇고, 강사나 관리자분들도 중장년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주셨죠. 저는 스스로 ‘도저너’(도전+er)라고 말하는데요. 이제 인생의 정오를 갓 넘긴 나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진정으로 내 삶을 사는 건 오십 이후라고 봐요. 많은 동년배가 저와 함께 이곳에서 멋지게 나를 위한 도전을 해나가며, 행복한 후반전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N잡러를 꿈꾸며 두 번째 스무 살을 보내다 -최병준(50) 씨
“아버지 병간호를 한 5년 했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시길 ‘지금처럼 살다 은퇴하면 어떻게 되겠냐. 아버지처럼 남겨줄 게 없는 사람 되지 마라. 예전에 너 하고 싶어 했던 글도 쓰고 노래도 만들어봐라’ 하셨는데, 순간 확 깨달았어요. 그 후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다니며 블로그도 운영했죠. 꾸준히 하다 보니 책도 냈고, 북클럽을 운영하거나 강의할 기회도 생겼어요. 그러다 행복캠퍼스도 알게 됐죠. 교육 시스템이 훌륭하고, 무엇보다 동아리 활동이 마음에 들더군요. 저는 아직 퇴직 전인데, 인생 2막 ‘N잡러’라는 꿈을 위해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며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외형적인 것들 말고 내면을 채워줄 무언가도 필요하잖아요. 그걸 캠퍼스 활동을 통해 얻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느끼는 젊음, 활기, 즐거움으로 마치 ‘두 번째 스무 살’을 사는 것 같아요.”
캠퍼스의 활기 속, 젊은 세대와 교류도 활발
행복캠퍼스의 일부 수업은 강남대학교 강의실을 이용한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20대 학생들을 만나며, 캠퍼스의 활기를 경험할 수 있다. 아울러 대학생들 또한 행복캠퍼스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전공 관련 실습(사회복지학과, 실버산업학과, 평생교육학과 전공)을 통해 이곳 중장년과 교류한다. 지난봄 강남대학교 축제가 열리던 날, 행복캠퍼스에서도 세대통합을 위한 특별한 행사가 펼쳐졌다. 바로 ‘2356 세대통합 행캠 페스티벌’이다. 7개 동아리가 운영하는 체험 부스를 비롯해 다양한 이벤트와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중장년과 대학생은 너나 할 거 없이 나이를 잊은 채 함께 어울리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세대 어울림이 가능하다는 게 행복캠퍼스의 최대 장점일 테다. 김정근 센터장은 “세대통합 페스티벌 같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기획하고 실현해나갈 방침”이라며 “우리가 직면한 고령화 이슈는 단지 특정 세대만의 이슈가 아닌, 온 세대가 함께 이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때문에 다양한 세대가 만나는 물리적·심리적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세대단절을 해소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재 행복캠퍼스 1학기는 막바지 단계다(6월까지). 방학 중에는 ‘동년배 특강’이 열린다. 9월부터 시작될 2학기 참여를 희망한다면 캠퍼스를 방문해 상담 신청을 권한다.
위치 경기도 용인시 강남로 40 강남대학교 심전2관 9~11층
경기 남부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가 문을 연 지도 3년이 지났다. 20년 넘게 행복한 노년의 삶을 연구해온 김정근 센터장, 그가 그려나가는 행복캠퍼스에 대해 물어봤다.
Q. 중장년의 어떤 특성에 주안점을 두고 캠퍼스를 운영하시나요?
A. 행복캠퍼스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학 내에서 20대 학생들과 어울리며 연령 친화적 생애전환 교육, 동아리 및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는 점인데요. 나이가 들어도 위축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끔 독려하고 있습니다. 또 참여자들이 지역공동체 활동을 통해 나이가 들어도 사회적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자존감과 존재감을 얻길 바랍니다. 아울러 중장년이 행복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자원을 모으는 중추적 전문기관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Q. 이곳에서 중장년과 대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나요?
A. 어찌 보면 부모와 자녀 세대죠. 아직 한국에서는 두 세대가 공적인 장소에서 만나는 일이 드물고 낯선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어색함을 조금씩 해소해보려 합니다. 가령 중장년은 요즘 젊은이가 관심 있어 하는 스마트스토어나 SNS 활용 사진찍기 등을 배워나가고, 대학생들은 부모 세대가 갖는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고 자신의 느낌이나 경험을 공유해나갑니다. 특히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이러한 교류를 통해 중·노년층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관련 서비스와 제품을 기획하는 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Q. 행복캠퍼스를 운영하며 더 강화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앞서 얘기한 세대교류를 더 강화할 수 있는 행사나 프로그램을 꾸준히 기획해나갈 계획입니다. 아직 3년밖에 되지 않아 발돋움 단계지만, 지역 내 비영리기업, 영리기업, 스타트업 등과 협력해 퇴직을 앞둔 중장년이 지역사회 재취업 및 사회공헌, 취미 활동 등을 이뤄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그렇게 ‘노후 준비 리빙 랩(Living Lab)’ 역할을 수행하려 합니다.
Q. 캠퍼스를 찾는 중장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이곳에 오면 노후에 대해 막연히 갖던 고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해결해갈 수 있습니다. 개인 맞춤형 노후 준비는 물론, 공감대를 느낄 동년배를 만나는 즐거움도 얻게 되죠.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요. 행복캠퍼스에 발을 내딛기까지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나이 듦의 불안’을 ‘나이 듦의 기쁨’으로 변화시켜줄 첫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단 한번 와보세요.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재취업을 앞둔 중장년이라면 ‘중장년내일센터’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담당 커리어컨설턴트를 통해 생애경력설계 및 구직·전직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총 30여 곳이 마련돼 다채로운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올해부터는 중장년내일센터에서 좀 더 특별한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전국 17개 중장년내일센터를 ‘중장년 청춘문화공간’(이하 청춘문화공간)으로 지정, 쾌적하고 품격 있는 공간에서 중장년을 위한 문화·고용 서비스 제공할 방침이다. 계획대로라면 연간 3만 여 명의 중장년이 150시간 내외 인문·예술·문화 프로그램을 즐기게 된다.
노사발전재단 서울서부중장년내일센터 최성희 책임 컨설턴트는 “청년 특화 공간에 비해 중장년을 위한 공간은 부족한 편이다. 때문에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동년배들과 교류할 만한 장이 많지 않다. 청춘문화공간은 고용부와 문체부가 중장년이 삶의 활기를 찾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중장년이 홀가분히 자신의 현재 삶과 미래를 위한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공간과 서비스가 생겼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0~11월 서울중장년내일센터와 부산중장년내일센터에서 청춘문화공간을 시범 운영, 중장년 인문·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참여자들에게 기분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 달 31일 부산 동구에 위치한 청춘문화공간이 개소식을 열고, 운영을 개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사전에 신청한 중장년 100여 명이 함께 참석했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식학대학원 교수의 특별강연 ‘지금 미래를 준비하라’와 가수 최백호의 ‘낭만콘서트와 중장년과의 대화’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부산에 이어 서울, 경기 등 지역별 청춘문화공간도 순차적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청춘문화공간에서는 중장년이 문화를 통해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식함양 △심리치유 △인간관계 △인생설계 △인문탐구 △문화향휴 △직업전환 등 7가지 카테고리를 △강의형 △체험형 △커뮤니티형 △탐방형 등으로 나눠 다채롭게 운영한다. 올해는 은퇴 전후 중장년을 대상으로 인생 2막 설계를 돕는 단기, 중기, 장기 프로그램을 혼합해 진행할 계획이다.
최성희 책임 컨설턴트는 “그동안은 경력관리 및 이·전직을 위한 재취업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구직 활동에 필요한 역량강화 내용 중심의 콘텐츠가 많았다. 청춘문화공간으로 통합 운영되는 올해부터는 생애경력설계뿐만 아니라 삶 전반을 조망하도록 인문, 여가, 문화 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갈 예정이다. 이전까지는 재취업을 향한 목적과 몰입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도전의 기회를 마련하기 전 재중천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도 발돋움하리라 기대한다”며 달라진 부분을 설명했다.
달라진 것은 콘텐츠만이 아니다. 공간 리모델링을 통해 물리적인 변화도 꾀했다. 지난해에는 독서실 형태의 PC 공간을 지원해 개인 경력 관리와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면, 현재는 개발형 테이블과 안락한 가구를 배치해 카페테리아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난다. 방문객들은 달라진 공간에서 다른 동년배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편안한 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가오는 6월 말부터는 출판문화진흥원이 서가(書架)를 마련해 공간이 더욱 풍성하게 꾸며진다.
최 컨설턴트는 “40세 이상 중장년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서가에서 책도 보고, 매월 진행되는 청춘문화 강좌들도 들으며 활력을 충전하시길 바란다. 아울러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전문 컨설턴트들이 운영하는 중장년내일센터 생애경력설계, 전직스쿨, 재도약 프로그램 등 경력관리 서비스에도 적극 참여해보면 좋겠다. 일단 편안한 마음으로 가까운 중장년내일센터를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중장년내일센터는 지난해 9월부터 시범 운영 중인 ‘내 일 패키지 프로그램’을 통해 경력목표에 따른 4개 유형(전직준비형, 재취업준비형, 창업도전형, 경력개발형)의 맞춤형 서비스 및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중장년의 직업역량 증진을 위한 ‘내 일 부스터’ 등을 통해 개인의 역량을 진단, 이에 따라 적합한 교육 과정에 참여하도록 지원한다. 올해 청충문화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비롯해 사업주 대상 일자리 컨설팅 및 맞춤형 훈련, 채용지원까지 통합 서비스를 지속·확대할 방침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 34.1%로 2019년(27.7%)보다 6.4%p 높아졌다. 사회적 고립도는 주변에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사회적 고립도가 높았다. 19~29세의 사회적 고립도는 26.7%지만 60세 이상은 41.6%로 높아졌다. 독거노인 비율도 늘었다. 2000년 16%였던 독거노인 비율은 2022년 20.8%에 달했다.
5060 취미플랫폼 ‘오뉴’(ONEW)를 운영하는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는 우리나라 노인 외로움이 왜 다른 나라보다 높을까 고민하다 2020년 8월 로쉬코리아를 설립했다. ‘시니어는 소중하니까’의 줄임말 ‘시소’로 시작해 최근에는 ‘오뉴’로 플랫폼을 리뉴얼하고 삼청동에 ‘오뉴하우스’라는 공간을 열었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감과 외로움이 모두 없어지는 날을 꿈꾼다는 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로쉬코리아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로쉬코리아(LOSH KOREA)는 ‘외로움이 여기서 멈춘다’(Loneliness stops here)는 의미에요. 왜 우리나라 시니어가 겪는 외로움과 고립이 다른 나라보다 높을까 고민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세 명이 공동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국가에서 복지 차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긴 한데요. 이 경우에는 경제적 혹은 사회적 약자여야 이용할 수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용하면서도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세요. 왜 그럴까 살펴보니 이분들이 원하는 활동이 아닌 거예요. 활동을 통해 성장하거나 영감을 받지 못하는 거죠. 아무래도 복지 차원의 프로그램들은 예산이 정해져 있고 최대한 많은 분에게 혜택을 드리려다 보니 퀄리티를 높이기가 어렵더라고요. 몇 번 가보고 맞지 않으니 집에서 TV를 보거나 경로당으로 가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가 은퇴 전후인 것 같아요. 그때가 골든타임이라고 봐야 하는데요.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디서 활동해야 할지, 정보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이때 발견하지 못하면 그렇게 사회와 멀어지면서 노후를 보내게 되더라고요. 민간에서도 이런 부분을 누가 바꿔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로쉬코리아를 시작했습니다.
Q 처음에는 어떤 서비스로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디지털 교육 서비스를 먼저 했어요. 그럼 스스로 정보를 찾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삶이 변화가 안 되더라고요. 들여다보니 정보를 찾긴 하는데, 내가 원하는 정보가 없는 거예요. 복지관은 70대 이상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문화센터나 살롱은 40대 타깃이 많고요. 동호회는 문턱이 너무 높은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이 아주 즐겁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시소’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은 즐겁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던 거예요. 그래서 콘텐츠를 보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지역 근처에 어떤 문화, 여가 프로그램이 있는지 요즘 MZ들에게 보내는 것처럼 똑같이 안내해드렸어요. 또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서 교류하실 수 있도록 장을 만들기도 했어요. 저희와 오프라인에서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실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서비스가 점점 커지더라고요.
우리가 만든 서비스가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한 번 더 확인하고자 마지막으로 생활도움서비스를 해봤어요.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면 집에서 필요한 어려움을 무엇이든 해결해드립니다’라는 콘셉트였습니다. 병원 이동, 집안 수리 등 다양한 도움을 드렸는데요. 경제적·사회적 약자인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누구나 성장하고 발전하고 싶어 했고, 사회에 참여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집에 방문하면서 저희 서비스를 알려드렸거든요.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서 얼굴이 밝아지시고 삶이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서비스를 업으로서 더욱 명확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은퇴 후에 복지관, 문화센터를 갔다가 좌절을 경험하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하셨던 분이 있었어요.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일상에 활력을 찾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인플루언서가 되어 저희를 통해 찾은 활력을 저희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희의 팬이 되신 거죠. 그럴 때면 벅찬 기분을 느껴요.
Q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오뉴’ 서비스까지 하게 되신 거군요. ‘오뉴’에 대해 알고 싶어요.
‘오뉴’는 5060을 뜻하는 숫자 5, 6을 이어서 발음한다는 의미도 있고, 영어로 ‘Oh, New!’라는 뜻도 있어요. 오늘도 이곳에서 새로운 여가 활동을 찾고 삶을 새롭게 액티브하게 보내시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으시면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개인에 맞춰 ‘큐레이션’을 하고 있어요. 관심 있는 분야에 연관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가 뜨도록 해 활동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푸쉬 알림을 통해서 여가와 관련된 콘텐츠를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브런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채널을 통해서는 다수의 5060분들에게 여가, 문화를 제안하는 콘텐츠들을 보여드리고 있어요.
매월 1만 2000명 정도의 시니어 분들과 만나고 있고요. 저희 프로그램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5000명 정도 됩니다.
Q 복지관, 문화센터, 살롱 등 다른 문화 서비스들과 차별화된 ‘오뉴’만의 특징은 어떤 걸까요?
고객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 제안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특히 첫 키워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을 제안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A 고객이 건강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취미를 찾는다고 생각해볼게요.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라면 음식, 운동, 병원 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중 운동을 검색해서 운동 중에서도 춤을 고르고 춤 중에서도 발레, 훌라댄스, 현대무용 등을 보다가 훌라 댄스를 선택해 취미로 즐겼다고 해볼게요. 그러면 대부분 맞춤 서비스는 그다음 서비스로 춤에 관련된 것들을 제안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다시 첫 번째 건강 키워드로 돌아가요. 다음에는 건강한 음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안하거나 운동 중에서 춤이 아닌 다른 것을 보여주는 식이죠.
맞춤 프로그램을 제안할 때는 먼저 콘텐츠로 만들어서 이용하시는 분들의 반응을 살펴요. 관심이 많은 것은 기획해서 원데이 클래스로 먼저 해보고요. 거기서 반응이 좋은 것들은 정규 클래스로 편성합니다. 지금 이슈가 된다고 무작정 제안하기보다는 고객별 성향 등을 반영한 데이터들을 보고 제안하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업계에서 유명한 선생님들도 모실 수 있었고요. 클래스 퀄리티도 높아지게 됐습니다. 기획을 탄탄하게 하면 좋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고객들의 피드백을 단계적으로 반영해서 조금 더 뾰족하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인데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면 추천 데이터도 더 많이 쌓일 것이고 ‘오뉴’만의 색깔이 확고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Q 그동안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셨는데요. 지난해부터는 삼청동에 ‘오뉴하우스’라는 멋진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고 계시네요!
저희 서비스를 더 많은 분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문화, 여가 프로그램은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은평구에 있을 때 점점 은평구에 사시는 고객분들의 비율이 줄더라고요. 성동구, 왕십리 등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여쭤보니 사는 지역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젊은 친구들이 여러 지점을 다니며 문화생활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다니고 싶다는 힌트를 주셨어요. 그래서 공간에 방문도 하고 주변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찾다 보니 삼청동으로 오게 됐어요.
‘오뉴하우스’는 삼청동에서 북촌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목에 있는데요. 이곳이 5060의 성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뉴하우스 1층에서는 유명 카페 바리스타가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고요.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2층에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화장실이 2층에 있는데, 1층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화장실에 갈 때 자연스럽게 수업하는 모습도 보고 회원들이 그린 그림 전시도 볼 수 있어요.
또 오뉴하우스를 중심으로 맞은편에 비정기적으로 빌려서 사용하는 공간이 있고요. 옆 건물은 지금은 1층만 사용하고 있는데요. 재봉틀, 미술처럼 도구가 필요한 클래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미술품 전시를 열기도 해요. 나중에는 2, 3, 4층도 다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에요.
Q ‘오뉴하우스’ 공간을 만들 때는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고객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국에 유명한 ‘어니언’ 빵집을 간다면 아침 10시에 문을 열자마자 가신다는 거예요. ‘런던베이글’ 같은 곳은 갈 생각도 못 하고요. 그 공간이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머무르지는 못하시는 거예요. ‘스타벅스’는 가도 ‘블루보틀’은 부담스러운 거죠.
시니어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블루보틀’ 보다 커피도 맛있고, 다른 곳보다 더 재미있는 콘텐츠도 있고, MZ들의 커뮤니티보다 훨씬 즐거운 곳이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오로지 시니어를 위한 공간인 거죠.
Q 1층 카페에는 여러 상품도 전시되어 있네요?
저희 수업 중에 조향 클래스가 있었는데요. OEM으로 만든 '오뉴' 제품이 있고요. 와인 클래스에서 다룬 와인을 전시하기도 하고요. 책도 두었습니다. 또 저희가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레코드와 재봉틀 클래스를 하거든요. 오뉴하우스를 찾는 분들이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하실 수 있도록 가져와서 두었어요. 저희 공간에 있는 상품들은 이렇게 스토리가 담겨 있고요. 주기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Q 최근에는 기업들과 협업해서 사이드 프로젝트도 많이 하신다고요?
CJ에 건강식 브랜드 라인이 있는데요.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한 제품을 먹을 고객들이 포만감을 느낄지 궁금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저희랑 프로그램을 열어서 협업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용자분들이 식단 챌린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이 과정에서 피드백과 데이터를 모아 CJ에 넘기면 이런 내용을 반영해 제품을 만드시는 거죠.
예를 들어 제주도에 있는 호텔이 5060 고객을 타깃팅 하고 싶다고 하면, 저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거예요. 그냥 이용료를 저렴하게 해드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숙박 플랫폼과 저희가 다를 게 없잖아요. 여행 가서 클래식 듣고, 트래킹 하고, 수업도 넣고, 호텔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서요.
‘어딩’이라는 트래블 커머스 플랫폼과 업무협약을 맺어서 5060을 위한 상품을 기획하기도 하고요. 최근 이렇게 기업과 고객을 연결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들이 종종 생기고 있어요.
Q ‘오뉴’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궁금합니다.
5060 시니어 분들의 여가생활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취미를 잘 큐레이션 해드리는 것’이에요. 개인의 상황, 성향, 경제적 여력에 맞는 여가 콘텐츠를 정말 잘 제안해드리고 싶어요. 무료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밖에 없는 줄 아시지만, 삼청동에만 하더라도 퀄리티 좋은 무료 전시가 정말 많거든요. 이런 큐레이션을 잘 해드리면 여가 생활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잖아요. 그러려면 저희의 업을 좀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가의 범위를 펼치는 거예요. 지금은 문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행도 있을 거고요. 오프라인에서 경험하는 소비가 결국 다 여가와 맞닿잖아요. 저는 미식도 여가 문화의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경험제를 연결할 수 있는 회사, 소상공인들과 함께 기획해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안하고 싶어요.
아직은 저희 수업이 서울 지역에서만 열리는데요. 앞으로 지역도 넓힐 생각이고요.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수업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복합 문화 공간도 지역별로 하나씩 늘려갈 생각이에요. ‘오뉴하우스’에는 유명 카페 출신 바리스타, 프로그램 기획자, 디자이너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15명의 팀원이 진심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여러분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공간입니다. 1층 카페에 그냥 놀러 오셔도 좋고요.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모두가 오뉴 프로그램에 대해 잘 설명해 줄 거예요.
자신의 업에서 전문성을 가진 팀원들이 모였으니까, 모든 시니어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사라질 때까지 정말 우직하게 나아갈 거예요. 저희가 하는 일을 공감하고 응원하신다면 많은 분이 아이디어를 주시고 필요한 걸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후기청년기에 들어선 40·50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일자리다. 120세까지 산다는데, 남은 시간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또래의 명예퇴직 소식이 들려오고, 50세가 되기 전 은퇴를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는데, 연금 수령 시기를 더 늦춘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후기청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김병숙(75) 한국직업상담협회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는 150세까지 살 테지만, 기자님은 170세까지 살 거예요. 지금부터 10년에 한 번씩 직업을 8번 바꿔도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남은 50년은 뭐 할 거예요?”
순간 멍해졌다. 100세 시대, 아니 12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그때까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사실 ‘설마 그때까지 살겠나?’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 기자를 보며 “설마가 현실이 되는데, 다들 내 이야기가 아닌 줄 안다”는 김병숙 이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기청년기를 보내는 40·50세대의 이야기를 하러 왔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150세 시대 준비하려면
김병숙 이사장은 40여 년간 직업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경기대학교에 직업학과를 설치해 교수로 활동했다. 직업상담사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한국직업상담협회를 설립했다. 책을 25권 집필했으며, 은퇴 후에는 4050을 위한 전직 지원 등 직업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0년 전, 65세의 나이로 교수직을 은퇴하면서 김병숙 이사장은 150세 인생 계획을 선언했다. 75세까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정시 근로를 하고, 95세까지는 시간제로 일하고, 100세까지는 봉사활동을 하고, 150세까지는 화가로 살겠노라고. 그리고 3년 뒤 계획을 바꾸었다. 95세까지 정시 근로를 하겠다고. 김 이사장은 2012년 ‘은퇴 후 8만 시간’이라는 책을 쓸 때부터 150세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15~2019년 우리나라 최빈사망연령(한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실제로 사망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은 남성이 85.6년, 여성이 90년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기대수명은 평균 83.6세지만, 사고 등으로 조기 사망하지 않는다면 평균 85세 이상 산다는 말이다.
“90세 가까이 살다 간다면 지금 40·50세대는 앞으로 최소 40~5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50년 뒤면 2073년이죠? 그런데 미래학자들은 20세기에 이미 ‘2050년이면 인간 수명은 150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30년이 지나면 2050년이네요.”
150세 시대를 산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60세, 80세, 100세를 각각 20세, 40세, 60세로 봐야 한단다. 40·50세대라면 한창 청년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생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프라임 시기에 일을 그만두는 평균 나이가 47세입니다. 2~3년 내에 43세까지 낮아질 거예요. 최근 은행권에서 명예퇴직한 사람 중에는 20대도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주된 일자리 은퇴 연령이 40대고, 노동시장에 굿바이를 외치는 시점은 73세입니다. 연금을 65세부터 받는다고 하면 47~65세까지 18년을 더 일해야 합니다. 이때 노동시장에 나가서 경제생활을 하려면 경쟁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150세 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나’를 잃어버린 낀 세대
2023년 현재 40·50세대를 사는 이들은 X세대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풍요를 동시에 누린 첫 번째 세대’라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세대이자 신(新)인류’라고 불리곤 했다. 이전 세대보다 개인의 취향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은 세대로 평가받지만, ‘낀 세대’인 이들은 정작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 안에서 40·50세대는 ‘낀 세대’죠. 최고의 생산량을 내는 시기에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해요. 윗세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회사에서 일했지만, 그들처럼 회사에 오래 남을 수 없습니다. 아랫세대인 MZ세대는 어때요? 30대는 주어진 시간에만 충실히 일하고 20대는 월급만큼만 일합니다. 그 사이에서 인적 관리를 해야 하는 40·50세대는 위아래로 치여 참 어려워요.”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지만, 사회와 조직의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 자녀를 돌보거나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데다 자신의 노후까지 준비해야 하는 가장 힘든 시기에 직장에도 적응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없다.
“보통 60세까지는 사회, 가족을 위해 살다가 은퇴를 앞두고 혹은 은퇴하고 나를 위한 삶을 찾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와 보니 퇴직금은 3년이면 사라져요. 앞으로 50년은 더 일해야겠는데, 직업 세계가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으니 얼마나 기가 막혀요? 그런데 별안간 ‘너 뭐 좋아해? 좋아하는 거 해’ 하니까 방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어느 세대든 나이를 먹으며 40대, 50대를 산다. 후기청년기는 누구나 거치는 시기다. X세대라고 불린 지금의 40·50세대는 120세 시대를 맞아 후기청년기를 보내는 첫 세대가 됐다. 김 이사장은 조직에 젖어들다 보면 누구든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직업을 8번 바꾸며 살 것을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기존의 조직을 벗어나는 것도 좋다는 조언이다.
“누구든 후기청년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해요. 어느 날 삼성전자 수석이라는 분이 찾아왔어요. 회사에서 그동안 인공지능(AI)을 공부하라고 했는데 하기 싫어서 안 했대요. 이제 모든 곳에 AI가 쓰이기 시작했잖아요. 그러니 회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거예요. 변화의 맨 앞에 서 있는 삼성전자 직원도 그럴진대, 우리는 어떻겠어요? 퓨처 타임 퍼스펙티브(Future Time Perspective). 미래 시간 전망을 길게 하세요. 미래 시간을 길게 보는 사람일수록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스스로 구해야 하는 시기
우리나라에는 7번의 진로 분기점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갈 때, 대학 졸업 후 취업할 때 등이다. 김병숙 이사장은 이 진로 분기점에 도달해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본다며 안타까워했다. 직장 3년 차에 이직하고 싶어질 때에야 닥쳐서 생각한다는 것. 40대 후반에는 또 한 번 분기점이 온다. 이때 어떻게든 버텨서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오면, 오히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40대 후반에 승부를 봐야 한다.
“분기점에 섰을 때 고민하면 늦어요. 프라임 시기 이후에는 돈을 적게 벌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내가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급여 하락세가 달라질 거예요. 10년을 분기점으로 두고 3년은 새로운 역량을 키워내는 공부를 하고, 5년은 키운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는 식으로 다리를 놔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청년 지원 정책이나 노인 일자리 지원 정책 등 여러 정책을 쏟아놓지만, 정작 중장년을 위한 정책은 많지 않다. 50세에 은퇴하고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은퇴 후 퇴직금으로 창업하는 건 내 돈으로 내 직업을 사는 셈이다. 바야흐로 스스로 구해야 하는 시기다. 김병숙 이사장은 고령화 시대에는 기업들도 점차 50대 이상의 인력을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하죠. 인력이 없다는 뜻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이 든 사람을 써야 할 시기가 올 겁니다. 대신 나도 그만큼 실력이 있어야 해요. 요즘은 융합 시대입니다. 세 가지 영역을 알고 통합할 줄 알아야 해요. 배움을 축적하면 나의 자본이 되는데요. 40·50세대에는 여가가 중요한 자본이 됩니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등산이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그냥 산에 올라 정상에서 ‘야호’ 외치고 내려오는 여가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등산하면서 보는 주변 식물에 관심을 두다가 내가 직접 키운 차나무로 차를 내려주는 찻집을 구상한다든가 하는 식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후기청년기는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기다. 김 이사장은 이때 집에서 편하게 쉬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40·50세대의 재취업은 80% 이상이 지인 추천으로 이뤄진다. 매일 출근하듯이 차려입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내가 이러이러한 기술이 있어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싶은데, 관련 일자리 정보를 알게 되면 나에게 말해달라’며 나를 홍보하라는 팁이다. 더해서 건강을 챙기는 건 필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 타령을 너무 많이 해요. ‘이 나이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부디 호기심을 잃지 마세요. 인생 40년 살아보고 직장 20년 다녀보면 다 경험해봤다고 생각해 모두 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요.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 건강, 재무, 여가, 사회망, 인간관계에 관해 150세 시대를 계획해보세요.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입니다.”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실패’일 것이다. 경제적 타격도 상당하고, 이로 인한 정신적 타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이들이 있다. 지난해 창업진흥원 재도전 성공 패키지 우수 사례에 이름을 올린 중장년 재창업가 3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료 제공 및 도움 창업진흥원
[1] 경영 파트너와의 호흡으로 기술에 탄력 더하다, 새솔테크(주) 한준혁 대표
ㆍ회사설립 2021년 5월 13일 ㆍ매출액 6억 원(2022년 기준)
ㆍ주요사업 자율주행, V2X 보안 토탈 솔루션 공급
한준혁 대표는 새솔테크 창업 이전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했었다. 한때 유행하던 피처폰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주로 맡았는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관련 사업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시대 흐름에 대응하지 못한 채, 자금난까지 더해지며 결국 폐업의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폐업 후 10여 년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프리랜서 생활도 하고, 직장도 몇 군데 다니며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Q. 폐업 이후 재창업 과정은 어땠나?
마지막 직장에서 자율주행 분야를 접했다. 기술적으로 노하우가 생기고 인적으로 네트워크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관련 분야의 창업을 준비하게 됐다. 이전 사업에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다양한 지원 사업의 존재 자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 후회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법인 설립 전 개인사업자를 내자마자 창업진흥원의 재도전 성공 패키지를 포함해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아봤다. 그렇게 얻게 된 경제적 지원 덕분에 본격적인 사업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개발자 출신이라 경영적인 역량은 부족한 편이다. 사업의 방향성을 설계하고 운영해 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성공 경험을 지닌 이재성 대표님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현재는 이 대표님이 경영총괄, 내가 개발 총괄을 맡고 있다. 덕분에 이전보다 좋은 성과를 내는 중이다.
Q. 새솔테크(주)는 자율주행 V2X 보안기술 회사다. 이는 어떤 기술인가?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려면 사이버 보안이 전제돼야 한다. 이에 대한 글로벌 규제들도 생겨나는 추세다. 새솔테크(주)의 자율주행 V2X 보안기술은 인간의 생명 보호와 교통 효율화라는 큰 목표를 지닌다. 2021 하반기 ‘C-ITS 상호 호환성 시험행사’를 통해 국제보안규격 IEEE 1609.2 & SCMS 1.0(CAMP) 기반의 V2X 보안인증서 발행과 단말 탑재를 성공시키며 기술적으로 신뢰를 쌓았다. 앞으로 우리가 자부하는 기술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객관적인 수치로 증명해 나갈 예정이다.
Q. 본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 한다면?
일단 혼자서는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즈니스란 너무 복잡해서 본인이 가진 기술 역량만으로는 사업체를 이끌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보완해줄 파트너와 함께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프런트엔드(Front-end)와 백엔드(Back-end) 기술을 모두 섭렵하라는 거다. 사업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다른 개발자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기술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2] ㈜예성글로벌 김경태 대표, 독보적인 기술로 세계무대 꿈꾸다
ㆍ회사설립 2018년 12월 18일 ㆍ매출액 19억 1000만 원(2022년 기준)
ㆍ주요사업 친환경 생활용품군과 첨단 소방용품군을 개발·생산·유통
만 18세에 기술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경태 대표는 서른 살이 되던 해 사직서를 냈다. 퇴직 후 10년은 아내와 디지털 도어록 대리점을 운영했다. 점차 디지털 도어록 보급률이 높아지며 역으로 고객이 줄었고, 그동안 터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 대표는 문에 부착하는 소방용품인 자동폐쇄장치와 도어 클로저를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사업은 생각만큼 풀리지 않았고, 결국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Q.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이 폐업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뭐라 생각하나?
기술력이 있으니 얼른 자체 제품을 출시해서 도어록 대리점 운영하듯 유통하면 되겠다는 다소 안일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제품 개발이 늦어졌다. 투자금은 자꾸 늘어나는데 비용 회수가 안 되니까 힘들어지고 결국 문을 닫게 된 거다. 또, 엔지니어로서 기술력은 자신 있었는데 경영에 관해서는 무지했다. 경영이나 재무, 조직 관리 등의 지식과 노하우가 좀 더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후회를 많이 했다. 그래서 폐업 이후 6년 정도 회사에 다니면서 제품 개발과 동시에 경영도 공부했다. 또 이전 사업에서 오로지 대출로만 사업 자금을 확보했던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재도전을 준비하면서 각종 지원 제도를 꼼꼼히 알아봤고 이를 통해 일정 부분 사업 자금을 만들었다. 폐업을 통해 배운 교훈인 셈이다.
Q. 폐업 이후 재도전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나?
회사는 폐업했지만, 제품 개발에 대한 의지는 멈추지 않았고 인적 인프라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재창업을 결심하고 창업진흥원 재도전 성공 패키지 사업을 신청했다. 현재는 공압식 도어클로저와 방화문 자동폐쇄장치, 두 제품에 주력하고 있다. 공압 도어클로저는 특허 및 디자인 등록이 20여 건, 출원 13건, 해외특허출원(PCT)이 1건이다. 특허는 출원 신청 이후 평균 1년 반 정도 지나 공개되는데, 자체 기술을 보유하면 남들보다 1년 반 정도는 앞서간 셈이다. 도어클로저는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이고, 올 가을 쯤 출시를 앞두고 있다. 방화문 자동폐쇄장치는 지난해 9월에 글로벌 기업에 공급 계약을 체결해 연간 40억 원 이상 매출이 발생하게 됐다. 두 제품 모두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관심이 높아 세계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Q. 기술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기술력, 아이템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술 창업인으로 제조업에 뛰어들고 싶다면 더더욱 그렇다. 독자적인 기술력이 없다면 창업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본인이 가진 기술, 만들고 싶은 제품이 없다면 차라리 기존에 잘 만들어진 제품을 사서 유통업을 하는 편이 나으니까. 또, 엔지니어 정체성을 지닌 대표라면 반드시 경영 관련 공부를 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나 좋은 제도들이 많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경영을 너무 모르면 그 무지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3] 두 번의 폐업 후 세 번째 도전, 토미코리아 김성진 대표
ㆍ회사설립 2020년 10월 26일 ㆍ매출액 매출액 12억 원(2022년 기준)
ㆍ주요사업 고양이용품의 프리미엄 브랜드 묘우묘우 고양이 정수기
김성진 대표는 청년 시절 아파트 청소용역업체를 개업한 적이 있다. 그러다 트럭에서 떨어져 허리는 다치는 바람에 육체노동이 필요했던 해당 사업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이후 지인 추천으로 차량용 방향제 사업을 시작해 월마트 입점까지 내다볼 정도로 승승장구했지만, 이 역시 좋지 않은 결과를 맞았다. 안일했던 독점거래로 적자를 떠안게 된 것. 다시 직장인이 되어 성실히 빚을 정리해가며 반려동물용품 사업으로 재도약을 꿈꾼 김 대표다.
Q. 두 번의 폐업 후, 새로운 창업 아이템으로 반려동물용품을 택한 이유는?
새로운 사업은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일로 하고 싶었다. 자동차 방향제 시장이 200억 원 정도였는데, 반려동물용품 시장은 6조 원에 육박하더라.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속에서 반려동물 인구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 바이어를 통해 강아지 패드를 수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드 머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돈이 될 만한 물품은 무엇이든 수입해서 판매했다. 그러던 중 자체 브랜드 묘우묘우를 만들어 OEM으로 생산한 고양이 관련 제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체적으로 기획과 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두 담당한 고양이 정수기까지 이르렀다. 고양이 정수기 사업계획서로 창업진흥원의 재도전 성공 패키지에 응모해 지원금을 받아 곧바로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2022년 1월에 브랜드 ‘묘우묘우’를 론칭했는데, 10년 후에는 고양이 정수기 하면 묘우묘우가 떠오르게 하고 싶다.
Q. 세 번째 창업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쓴 것은 무엇인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쿠팡, 옥션 등 각종 온라인 마켓의 성장세가 놀라웠다. 이 플랫폼에서 물건을 팔아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컴퓨터라면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칠 정도의 실력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 무상 교육을 찾아다니며 온라인 마켓 관련 수업을 듣는데, 답답한 마음에 처음엔 그야말로 울면서 배웠다. 열심히 배운 덕에 이제는 온라인 스토어의 메커니즘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 포토샵으로 기본적인 일러스트 작업도 가능하다. 또 창업진흥원의 재도전 성공 패키지를 포함해 여기저기 정부 무상 교육을 찾아다니며 100시간 넘는 수업을 들었다. 컴퓨터는 물론 직원 관리 방법이나 세무회계, 노무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다. 사업은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회계, 영업, 경영, 디자인, 관리 모든 분야를 다 알고 있어야 한다.
Q. 현재의 성과가 있기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나?
2022년 기준 매출액이 12억 원 정도다. 중국, 일본으로 제품 수출도 하고 미국 아마존 입점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 현재는 감사한 마음이 큰데, 사실 젊은 시절에는 감사함을 잘 몰랐다. 한때 매출 20억을 달성해도 감사하기보다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가난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 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물건이 팔리는 것도, 이런 감사한 마음을 갖고 계속 해나가려 한다. 무엇보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다. 그러려면 열린 마음으로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용기만 있다면 몇 살이 됐든 도전 가능하다고 믿는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스페인은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인이 많은 국가에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2017년에 발표한 ‘불평등 노령화 예방 보고서’(Preventing Ageing Unequally)에서 스페인의 65세 인구 비율이 2050년에 40%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초고령화시대를 문제없이 헤쳐 나가기 위해 고령층 건강 대책을 시행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또한 노인복지청(IMSERSO)을 정부 부처 내 독립 부서로 두고 국민들의 노후를 지원하고 있다. 노인복지청의 사업으로는 1985년부터 이어진 ‘고령자 여행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65세 이상 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를 대상으로 하며,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스페인 관광지의 교통, 숙박 시설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지난 2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의 보도에 따르면 여행 상품과 여행지를 다양화해 스페인 내 52개 지방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램은 문화나 자연 경관을 선호하는 노인의 요구에 근거해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사회인권부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용 요금 인상이 이뤄질 수 있지만, 지난해 연금 인상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스페인 대학들은 55세 이상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험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를 경험과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쉽게 접근하고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대학 내에서 사회적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나가게 하고 △노인이 아닌 다른 집단에게도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태도를 취하도록 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인문학, 과학, 사학, 예술 분야 등의 강의를 제공하는 이곳의 이름은 노인을 단지 나이든 존재로 보지 않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외에도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고령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수도인 마드리드와 주 도시 바르셀로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드리드, ‘영원한 현역’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
스페인에는 기업의 전 임원을 지내고 은퇴한 중년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비영리법인 ‘세콧’(SECOT)이 운영되고 있다. 1989년 마드리드에서 처음 설립돼 현재는 스페인 내 도시 외에도 유럽 연합(EU) 22개국의 조직이 모여 30세 미만의 실업자 혹은 실직자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45세 이상 중년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세콧 회원은 창업, 마케팅, 기업 경영에 필요한 지식이나 재무 관리 방식 등에 대한 강의를 무급 자원봉사로 제공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며, 전 직장과 업무를 고려해 업무를 배당한다. 또한 실전 강의를 나가기 전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 번의 모의 강의에서 통과해야 기업에서 강의할 수 있다.
마드리드 내 자치지역인 트레스 칸토스(Tres Cantos)에서는 지난해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도와 공원 내 벤치, 횡단보도 등을 점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당 사례를 소개하며 60세 이상 지역 주민 50명이 직접 18개 구와 2개 공원의 GPS 사진을 수집해 정비가 필요한 부분을 확인했으며,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웃에게 이동 편의나 접근성에 대해 직접 확인하는 등 사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온‧오프라인서 1인 고령가구 챙기는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2017년 말 기준, 총인구 160만 명 중 65세 이상 30만 명이며 이중 4분의 1은 홀로 거주한다. 시 정부는 홀로 거주하는 노인을 위해 ‘빈끌레스바르셀로나’(VincleBCN)와 ‘내 나이가 어때서?’(Soc gran, i que?) 프로그램을 도시 전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빈끌레스바르셀로나는 노인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관계를 형성, 강화하고 노인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시행됐다. 행정상 바르셀로나에 주민으로 등록된 65세 이상 주민이 이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사는 곳이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노인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어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여자는 프로그램과 이름이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가족과 친구,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커뮤니티 구성원과 일상을 공유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스마트 기기가 없지만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시에서 기기를 대여해주고 있다. 앱은 노인의 사용 편의를 위해 메시지를 텍스트 외에 음성으로도 입력할 수 있고, 커뮤니티 구성원과의 일정을 기록해 알림을 받을 수 있는 등의 기능이 탑재돼있다. 2021년 10월부터는 청력이 좋지 않은 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WhatsApp) 연동 기능을 추가했으며, 수화가 가능한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디지털 세대 격차를 없애기 위한 프로그램도 시행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나는 블로거다’(soy blogger). 바르셀로나 시의회의 아동‧청소년‧노인 서비스국의 노인 홍보부서에서 추진하는 시민 저널리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바르셀로나 노인들은 소셜 네트워크와 시니어 시민을 위한 시 웹사이트 블로그에 기고하는 자원봉사 기자 및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이들은 활동 전 디지털 및 저널리즘 교육을 사전에 이수한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오늘날 자주 쓰이는 SNS 중 하나인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나, 최종적으로는 이들이 직접 도시에 얽힌 콘텐츠를 취재해 제작하고, ‘시니어 웹’(Web de la Gent Gran) 블로그와 바르셀로나 시립 SNS 계정에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이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