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제주 출신 나이 든 사람들은 고향의 빙떡이 생각난다. 빙떡은 제주의 메밀전병이다. 강원도, 경상북도 등지의 메밀전병과 또 다른 맛의 전병이다.
메밀전병은 지역마다 소가 다르다. 강원도에서는 갓김치를 넣으며 배추김치와 돼지고기도 넣는다. 경북에서는 표고버섯과 실파를 소로 넣는다. 충북에서는 당근과 쇠고기, 우엉 등을 넣는다. 그러나 제주도의 빙떡은 소도 가장 단순하고 부침개에 가깝다.
제주 빙떡은 한마디로 “삶은 무나물을 메밀전으로 싼 것”이라고 보면 된다. 소는 무채만을 넣는 것이다. 메밀가루를 반죽해 돼지비계로 지진 전에 약간의 간을 한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다. 반죽에 무채를 넣어 '빙빙 만다'고 해서, 또는 '빙철(빙떡이나 전을 지질 때 사용하는 번철)'에 짓는다 하여 빙떡이라고 부른다. 또 멍석처럼 말았다고 해서 '멍석떡'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지역의 메밀 생산량은 전국 시.도 중 가장 많아 전국 전체 생산량의 35.5%를 차지한다. 지난해의 메밀 재배 면적이 845Ha(헥타르)로 메밀 생산량이 321톤이다. 제주에서 옛날부터 메밀 음식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설이 되면 제주도에서는 빙떡과 함께 메밀묵 등을 많이 해 먹는다. 명절과 잔치, 제사 등의 큰일이 있을 때는 메밀 빙떡과 메밀묵을 만들어서 상에 올리고 제사 후에 나누어 먹는다. 메밀 빙떡을 보관하는 것도 습기가 돌면 빙떡이 떠지기 때문에 대나무로 만든 차반지에 보관한다. (*차반지 : 공기가 잘 통하고 떡이 달라 붙지않음)
제주도 서귀포시 지역에서는 빙떡을 전기떡 또는 쟁기떡, 멍석떡이라고도 한다.
예전엔 큰 프라이팬이 없어서 깨끗한 무쇠솥 뚜껑을 뒤집어서 불 위에 올려 달군 후 미지근한 물에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얇고 둥글게 전을 부쳐내곤 했다. 요즘은 당연히 프라이팬을 사용한다. 메밀과 무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이 간편식의 역사는 약 700여년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의 옛 정취를 그대로 담아낸 제주 토속음식 중의 하나다. 단맛을 내는 성분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는 은은하고 은근한 맛이라고들 한다.
빙떡을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식재료는 메밀가루 5컵, 반죽 물 1.6L(8컵 정도), 무 800g(한 개), 쪽파 100g 그외 소금, 참깨, 참기름 등을 적당하게 양념하면 된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메밀가루에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물을 섞어서 메밀 반죽을 한다.
②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을 한 후 프라이팬에서 둥그런 모양으로 전을 부쳐낸다.
③ 익힌 메밀 전을 깨끗한 도마나 큰 쟁반 위에 넓게 편 후 속을 준비한다.
④ 속에 들어갈 무채를 약간의 양념(파, 깨, 소금 등)과 함께 버무린다.
⑤ 만들어진 속을 익힌 메밀 전의 가운데에 놓고 메밀 전을 빙빙 말면 메밀 빙떡이 완성된다.
제주의 토속 음식 중에서도 빙떡이 대표 음식 격이다.
이번 설에도 제주도 사람들은 빙떡과 메밀묵을 차례상에 올릴 것이다.
그 섬에 서면 느리게 출렁이는 시간을 본다. 느릿한 바람 속에서 태고와 현재가 넘실거리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가을이면 풍성한 갈대와 억새꽃이 군락을 이루어 눈부신 곳 ,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무인도 비내섬에서 알싸한 겨울을 맛보는 건 자신에게 때 묻지 않은 겨울을 선물하는 시간이다.
억새꽃 피어나던 섬으로 떠나는 겨울여행
충주에서 앙성면의 비내섬까지는 자동차로 약 30분 정도 달리면 나타나기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남한강 줄기와 함께 어우러진 섬이 보이고 벌써부터 가슴이 탁 트인다. 입구의 섬을 향한 다리를 건너서면 바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구 형식의 99만 2천㎡(약 30만 평)의 광활한 무인도가 펼쳐진다. 울퉁불퉁한 길에는 요즘 어디든 놓인 그 흔한 인위적인 데크길이나 여행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문도 없다. 초입의 길 옆에 비내쉼터 하나 있을 뿐이다. 오지(奧地)와도 같은 비내섬의 자갈밭과 흙길을 따라 억새의 숲에 파묻힐 일만 남았다.
인적이 드물다. 한적함이 어울리는 섬이다. 언제까지나 덜 알려져서 늘 이랬으면 싶다. 숨겨놓고 나만 알고 싶은 곳, 그 섬에 들면 금방 자연 속으로 푹 잠기는 자신을 본다. 억새 사이로 난 부드러운 흙길에 사람의 발자국과 자동차 바퀴 흔적이 있다. 드넓은 갈대숲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취하는 조용한 휴식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갈대와 억새꽃이 만발한 가을에 비해 겨울 들판에 서면 자연스럽게 차분함을 장착시켜 준다. 그 사이로 군데군데 서 있는 버드나무 뒤로 섬을 휘감아 도는 남한강 줄기가 흐른다. 산이나 들에서 주로 자라는 억새와 습지나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가 이곳에서는 사이좋게 공생을 한다. 사람들의 손 타지 않은 이런 풍경 덕분에 드라마 사극이나 사색적인 배경의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엔 이곳 비내섬과 이 지역의 탄금호 무지개길에서 촬영된 배우 현빈과 손예진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방송되고 있는 중이다.
비내는 갈대와 나무가 무성해서 비어(베어) 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큰 장마가 지는 바람에 내(川)가 변했다 해서 비내라고 불린다는 말도 있다. 갈대숲을 지나던 마을 어르신이 “예서 뭐 볼게 있어서 이렇게 왔남? 하면서 가던 길을 익숙하게 지나가신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갈대와 억새가 무리를 이루어 일렁인다. 그 너머로 강변을 끼고 나지막한 산과 들이 배경을 이룬다. 그리고 멀리 몇 채의 시골집과 다 따낸 휑한 사과밭이 겨울 속에 오롯하다. 모든 것을 비운 사람의 멋을 떠올리며 꽃도 잎도 열매도 떨군 겨울 풍경을 본다. 우리 기억 속의 유년기의 마을 풍경처럼 아련하다. 이 모든 것이 제각각 따로 분리되어 보이지 않고 시간이 멈춘 듯 순하고 평화로운 정취로 눈에 들어온다.
발길 닿는 대로 옮기다
이토록 때 묻지 않은 이 섬에는 생태자원이 풍부하다. 람사르 습지 보호지역으로 관리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지자체의 입장이다. 생물의 다양성과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서식·도래 지역, 지형·지질학적 가치를 위해 환경부에 비내늪의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건의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군사 훈련과 캠핑 차량 통행 등에 따른 훼손이 아직 남아있는 문제로 알려져 있다.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헤매듯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끝없이 호젓하다. 바스락거리며 흔들리는 억새 수풀 사이에서 길을 잃고 싶다는 생각조차 든다. 천천히 걷다 보면 간간이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나 곤충들의 조용한 움직임이 숲의 정적을 깬다. 이곳이 계절마다 찾아오는 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비내섬 갈대밭의 자연은 우주만물이 공생하는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신경림 시인은 ‘갈대’를 이렇게 노래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한겨울이다. 실내에서만 옹송거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경직되기 쉽다. 하루 코스로 훌쩍 떠나볼 수 있는 곳 충주 비내섬을 향해 달려보자. 그 섬의 억새 수풀 속에 서서 아스라한 태고의 겨울바람 소리를 들어보라. 뒤엉킨 머릿속이 은은하게 평정된다. 그리고 차분한 겨울 추억의 결을 하나 더 보태는 날이다.
-비내섬 : 충북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412
△가볼 만한 곳
충주 ‘중앙탑’
비내섬에서 자동차로 20분쯤 거리에 중원 탑평리 칠층 석탑(일명 중앙탑)이 있다. 넓은 잔디밭에 사적공원(史跡公園)이 멋지게 조성되어 산책을 하거나 휴식공간으로 더없이 좋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국보 6호 중앙탑이 시원하게 우뚝 선 공원엔 예술적 조각 작품들을 비롯해서 야외음악당, 음악분수대, 향토민속자료관 등 볼거리가 많다. 호수 쪽으로 걷기 좋은 코스 탄금호 무지개다리가 있고, 호수 저 편에 [대한민국 중심고을 충주(CHUNG JU KOREA)]이란 글자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이 나라의 중간 지점이다.
탑 주변을 벗어나면 그 옆으로 한옥이 보인다. 의상 대여소 '입고 놀까'는 중앙탑공원에서 인싸 되기 놀이마당이다. 이미 sns상에서 핫플레이스로 이슈가 되고 있다. 거길 나오기 전에 술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 세계무술공원이 있다.
*중앙탑: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남한강 물길의 중심 목계나루, 그리고 종댕이길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지만 그 옛날 남한강 수운을 따라 물류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던 충주가 전국 동서남북 교통의 요지가 되는 역할을 했던 엄정면 쪽의 목계나루터. 오늘날 그 가치를 살리고자 복합 문화공간이 형성되었고 목계나루의 옛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다.
*목계나루: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산35-8
그리고 산책 코스로 좋은 충주호 종댕이길은 1~3코스로 30분에서 4시간까지의 코스의 트레킹이 가능한 행복한 둘레길이다. 2코스의 조망대에서는 해맞이를 할 수 있고 출렁다리도 있다.
*충주공용버스터미널 농업기술센터 정류장에서 514번(용관,시외버스터미널), 515번(터미널,국민은행) 버스 타고 마즈막재 삼거리 주차장 하차.
그 외에도 시내 중심의 충주 호암저수지, 관아공원은 물론이고, 잘 알려진 탄금대와 이화령을 지나 멋스러운 한지박물관과 주변의 문경까지 냅다 달려 볼 수 있다. 하루나 이틀쯤 선비의 풍류가 흐르는 곳 충주에서 겨울여행을 즐긴다면 정감 어린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충주의 맛
뭐니 뭐니 해도 사과를 빼놓고는 충주의 맛을 이야기할 수 없다. 충주의 사과 작가로 유명한 강병미 화가는 말한다. 대학교 때부터 사과를 그리다 보니 운명처럼 사과의 고장 충주에 와서 살게 되었고 이곳에서 사과 그림 작업은 당연한 일상이라고.
충주시 농업기술센터와 농업회사법인 페트라가 공동 개발한 사과빵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하면 오븐에서 직접 구워 식혀서 포장해 준다. 호두과자에는 호두가 들어있듯 사과 빵에는 당연히 충주 사과가 들어간다. 부드러운 빵 속에 상큼한 사과 필링이 입안 가득 퍼지는 맛, 따뜻할 때 더 맛있다.
*애플스토리 : 충북 충주시 지현동 963
(충주휴게소, 수안보 휴게소, 주암휴게소, 수안보 상록호텔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가을에 수확한 사과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도록 저장도 하지만, 충주에서는 다양한 제품으로도 나온다. 사과 한과, 사과 손약과, 사과 강정 외에도 사과 국수와 주스나 와인 등이 있다. 충주 버스터미널 안에 충청북도 우수 판매전시장이 있어서 귀갓길에 구입할 수 있다.
맛있는 한 끼
올갱이(다슬기)요리는 주로 충주와 괴산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다. 푸르스름한 올갱이국이 일품이다. 그리고 충주 부근으로 드라이브 삼아 나가면 그 산에서 나는 산채비빔밥집이 많다. 직접 발효한 효소를 넣은 양념장과 청포묵을 넣은 비빔밥의 맛.
만일 여유있게 하루나 이틀쯤 머문다면 숙소는 비내길에서 20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앙성 탄산온천지역이 있다. 수안보 온천도 멀지 않아서 온천욕을 하며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겨울여행의 알찬 마무리다.
희망찬 새해 새날이 밝았건만, 들뜨는 마음과 달리 몸은 온기를 찾아 문에서 멀어집니다. 창밖은 여전히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느 순간이든 눈보라가 휘몰아칠 수 있는 겨울의 한복판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절에 ‘꽃 타령’이라니, 제정신이냐고 힐난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런 시기에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야생의 식물이 있습니다. 겨울 눈보라 속에서 야생화 동호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발길을 사로잡는 신비의 나무가 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의 선물이 물론 꽃은 아닙니다. 꽃 못지않게, 아니 꽃보다 더 예쁜, ‘꽃의 결실’ 열매입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가장 아름답게 불타는 단풍으로 물들여 아낌없이 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의 황금빛 열매가 찬란하게 빛나는 독야청청한 모습을 세상 밖으로 드러냅니다. 바로 꼬리겨우살이의 샛노란 열매입니다.
설악산과 소백산 등 심산유곡에서 드물게 자라는 희귀종 꼬리겨우살이가 강원도 영월의 산 정상부에 풍성하게 달렸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가지 끝에 치렁치렁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이 동물의 꼬리 같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꼬리겨우살이. 주렁주렁 늘어진 열매가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멋진 광경을 기대하며 산 초입에 당도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비포장 임도에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였습니다. 이왕 나선 길,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걸어서 올라가기로 합니다. 한 시간여쯤 오르니 이번엔 눈이 내립니다. 영하의 날씨에 사위는 적막한데, 바로 그런 겨울의 거친 날씨가 참으로 근사한 ‘설중화’(雪中花)를 선사합니다. 눈발이 거칠게 휘날리고 꼬리겨우살이의 열매가 파스텔 톤의 노란색 수를 놓는, 멋진 수묵담채화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겨울에도 잎이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해서 ‘겨울+살이>겨우살이’라 불린다지요? 다른 나무에 기생해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국내에는 겨우살이 외에도 붉은겨우살이, 동백겨우살이, 참나무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등 다섯 형제가 자생합니다. 그런데 다른 종과 달리 꼬리겨우살이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잎이 있을 때는 자신도 광합성을 하는 반기생식물이지만 잎이 지는 겨울에는 전기생식물로 변합니다. 주로 밤나무나 참나무류의 가지에 기생하고요. 마주 나는 잎은 주걱 모양의 긴 타원형으로 길이 2~3.5cm, 너비 1~1.5cm. 꽃은 6월에 길이 3~4cm의 이삭 모양 꽃차례에 자잘한 녹색으로 드문드문 핍니다. 9월 옅은 노란색으로 맺는 열매는 겨우내 황금색으로 익어갑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설악산과 지리산, 제주도 등지에 분포한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최근 야생화 동호인들이 꼬리겨우살이를 보기 위해 찾는 곳은 조금 다르다. 꼬리겨우살이를 무단으로 채취해 약재 등으로 판매하면서, 알려진 자생지가 상당수 파괴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갈수록 희귀해지는 꼬리겨우살이를 아직도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는 홍천과 양양을 잇는 구룡령 옛길, 그리고 태백과 삼척을 오가는 문의재 터널 주변 등 강원도 내륙의 백두대간 줄기가 첫손에 꼽힌다. 그 바로 밑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소백산 일대에서도 한겨울 꼬리겨우살이를 관찰할 수 있다.
생활이란 우리가 자주 착각하는 것처럼 멍에가 아니라 사방으로 열린 활공장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향에 있다. 오체투지처럼 궁구하는 삶이 있으며, 경주마처럼 각축하는 삶이 있고, 바람의 사주를 받아 가뿐히 떠도는 삶이 있다. 연극인 최영환(49)은 아마도 바람과 동맹을 맺은 계열에 속할 것이다. 그는 한결 자유로운 삶을 원해 귀촌했다.
누군들 자유로운 삶을 갈구하지 않으랴. 단 한 번 주어진 생을 가급적 자유롭게 쓰고 가고자 하는 갈망. 이는 거의 가당찮은 꿈일망정 고달픈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과 탄력을 가져다준다. 인생이란 근본적으로 고(苦)라지. 그러나 고통 속에 나뒹굴 때라야 비로소 자유로운 지평을 절박하게 찾아 나서는 게 사람이다. 최영환이 그랬다. 요컨대 그는 삶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자유롭다고 믿었던 그간의 삶에 섞인 혼선에 몹시 식상했던 것 같다. ‘괴로운 자각’이라 할 만한 격렬한 회의가 우레처럼 그의 머리를 쳤던 모양이다.
그는 서울에 살며 연극판에서 땀 흘려 뛰었다. 극단 ‘죽죽’에 소속, 연기활동을 해왔다. 일찍이 열일곱 나이 때 연극에 입문했던 그는 1991년, ‘부산연극제’ 최연소 신인연기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배우로 나섰다. 이후 서울의 대학로를 근거로 삼아 20여 년간 연극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대차게 덤벼들어 긴 세월 비지땀을 쏟은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한 현실을 발견하고 남몰래 울상을 지었던 것 같다. ‘나, 연극배우 맞아? 이건 뭐 이룬 게 없질 않은가?’ 그는 아마도 그렇게 독백했을 게다. 그간 수없이 무대에 서서 대사를 읊조렸겠지만, 오직 자신에게만 들려준 그 독백의 톤은 연극이 아니라서 한결 절절했을 것이며, 번뇌의 산물이었기에 그 맛은 유감스럽게도 소태처럼 쓰디썼을 테지.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날마다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극활동을 해왔고, 딴에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점점 퇴행하고 있다는 회의가 몰려들었던 거죠. 딱히 스케줄 없는 날이 늘어났고, 그저 술이나 마시게 되고. 야, 이건 참 무의미한 생활이구나, 타성에 젖어 휩쓸려가고 있구나, 그런 자각으로 괴로웠지요. 연기자다운 활동의 미비와 열악한 생계 상황, 이중고가 있었던 겁니다.”
그는 새로운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황급히 활로를 찾아야 했다. 궁리 끝에 찾은 대안이 시골살이였다. 그즈음 마침 일단의 대학로 연극인들이 단양군의 농촌으로 귀농을 했다. 최영환도 거기에 합류했다. 적적하고 적막한 농촌에 연극판을 펼쳐 고독한 시골 사람들의 삶을 어기영차 북돋우고, 손수 농사까지 지어 생계를 해결함으로써 연극과 농사가 융합된 새로운 문화 공동체의 모델을 본때 있게 구축하겠다는 취지를 표방한 동아리였다. 독특한 패기에 찬 이 공동체에 동참한 최영환은 서울의 집과 단양을 오가며 지냈다. 즉 절반쯤 귀농한 상태로 3년여를 살아왔다. 그러다 성향이라는 게 맞질 않아 동아리를 탈퇴했단다. 그리곤 팍팍한 서울생활을 아예 싹 청산, 처자를 대동하고 단양군 영춘면 면 소재지로 본격적인 귀촌을 했다.
달랑 3000만 원 들고 귀촌
이후 2년이 흐른 현재, 그는 찻집을 운영하며 낯선 객지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용을 쓰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건 언제 어디서건 자유로운 영혼. 해서, 사방팔방으로 자신을 개방하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척척 받아들이기 위해 그간의 반백년 인생에서 쌓은 모든 재능을 쏟아 붓고 있다. 이번 여로의 종착만큼은 근사한 것이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게 귀촌생활이다. 또 그러나 최영환 역시 만만치 않은 인간이 보유할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을 터인즉, 이 사람이 펼쳐 보이는 귀촌생활의 양상이란 어쩌면 연극보다 흥미진진할지도.
“이곳에 내려온 지 불과 2년이 지났지만 5년 이상이 지난 것처럼 친숙함을 느낍니다.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 결과죠. 서울은 머릿속에서 거의 지워졌어요. 전화통화량을 가만히 따져봤더니 서울 지인들과는 10%, 이곳 주민들과는 90%. 어느 사이에 그렇게 변해 있더라고요.”
“별안간 대학로를 떠난 당신을 두고서 지인들이 아쉬워하지 않았어요? 연극 동네 특유의 동지 의식이라는 게 있을 텐데.”
“웬 귀촌? 그러면서 다들 놀라는 눈치이던걸요. 아예 인생 포기한 걸로 알더라고요.(웃음) 사실, 연극인들의 이탈은 흔합니다. 대략 60% 정도가 중도에 분야를 바꿔 빠져나가죠. 경제문제 등 여러모로 한계 상황에 봉착해서.”
“연극배우란 배고픈 직업이라고 알려졌죠. 유능한 데다 열정마저 겸비한 인재들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가는 건 참 섭섭한 현실이에요.”
“이름난 배우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난감하기 마련이죠. 대리운전 기사를 하는 식으로 생활비를 벌며 버텼으나, 뭔가 확실한 타개책이 아니면 더 가혹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렇다면 시골에 가서 소박한 생활을 하자, 그런 작정을 했던 겁니다.”
혼자 살 때엔 그럭저럭 지냈더란다. 혼밥과 혼술도 홀가분한 자유의 증빙으로 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40대 중반, 좀 늦은 나이의 결혼으로 아이까지 얻은 뒤론 사정이 급박해졌다. 아자아자! 시골에서 나를 맘껏 풀어놓고 생활의 야전 속으로 들어가자! 그는 그리 자신과 담판을 짓고 귀촌했던 것이다.
연극이야 버릴 수 없는 동행. 미련 이상의 관습으로 삶에 이미 들러붙은 것이라서 이삿짐에 실려 함께 시골에 내려왔다. 연극 행위가 없는 삶은 식물인간처럼 절망적일 지경은 아닐지라도 좌우간 탁 놔버릴 수 없는 애착이 이미 깊었기에, 그는 귀촌의 나날을 연극을 위해서도 사용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어엿이 먹고 살 수 있는 생활 방편을 찾고, 덩달아 연극활동에도 새로운 피를 수혈하자는 것. 최영환의 귀촌 청사진엔 그 두 가지 목표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 오자마자 이웃들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무얼 하기 위해 귀촌했는가를 기탄없이 밝혔지요. 연극단체를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모두들 귀를 기울이더군요. 물론,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아하, 그 무슨 극단을 만들어 지원금이나 빼먹으려는 속셈 아니여? 그런 의심에 찬 소문들이 돌기도 했으니까.”
“낯선 사람 하나가 시골에 등장한다는 건 시골이라는 무대 위에 배우 하나가 올라선 것과 같은 효과를 낳게 마련이죠. 모두가 그의 동태를 예의주시 감상하게 되니까. 감상 평론도 중구난방으로 무성하고요.”
“통과 의례라는 게 있게 마련이죠. 면 소재지 상가 거리 복판에 찻집을 차리자 주변 상인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도 완연했어요.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영세한 상가에 경쟁자 하나가 출현했다고 본 거죠.”
“다양한 자영업 중에 찻집을 선택한 건, 그게 가장 유망하다 판단해서?”
“아내가 바리스타예요. 커피집이 적격이라 봤어요. 소자본으로 오픈할 수 있는 업종이기도 했고요. 저희는 달랑 3000만 원을 가지고 귀촌했는데, 가게를 차리고 셋집 주택을 얻는 데 다 썼지요. 찻집 운영으로 연 1500만 원 정도의 매상을 올립니다. 월세 나가지, 겨울 비수기엔 힘들지,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차차 호전될 거라 봐요.”
찻집엔 ‘꽃피는 커피’라는 상호가 걸려 있다. 아담하고 소박해서 정겹다. 가게 좌우로는 식당, 옷집, 식육점, 주점, 빵집 등속이 있고, 맞은편엔 하나로마트가 있다. 상업이 성행할 리 없는 고즈넉한 시골이지만 그나마 요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더라도 세 식구의 믿을 만한 호구지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해서, 최영환 부부는 찻집일 외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치운다. 가게는 한 사람이 지키면 되기에 나머지 한 사람은 일거리가 생기면 쪼르르 달려간다. 의외로 일거리가 많은 게 시골이란다. 주로 막노동이지만 최영환은 가리지 않고 일을 찾아 전전해왔다. 아로니아 가공공장에 단기 취업을 하기도 했다. 아내는 인근 사찰에서 총무 일도 봤다.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 절박한 진실이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
첫발 내딛은 ‘청춘극단’
면 소재지의 하오 풍경은 나른하다. 부스스 마른 볏짚처럼 광택 없는 거리. 별 목적 없어 보이는 한가한 걸음새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를 드나드는 몇몇 아낙네들. 수족관처럼 조용한 정경이지만 스피커로 외쳐대는 물오징어 판매 차량이 등장하자 별안간 사람들이 북적이며 몰려든다. 최영환도 덩달아 바빠진다. 아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일을 참을 수 없어서다. 2년여 사이에 발휘한 사교성 덕분에 이미 그는 이 동네 사람 다 됐다.
“제가 서울에서보다 더 바쁘게 삽니다. 이웃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사는 것이죠. 청년회나 탁구동호회 등 소소한 모임들에 참여하고 있으며 감투를 쓰기도 했어요. 시골의 배타성이나 텃세에 대해 많이 듣고 내려왔지만 여기는 다르더라고요. 상당히 개방적이고 우호적이에요.”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 이건 귀촌 성공 필살기 1칙이라 할 만하죠.”
“제가 원래 가만히 있질 못하는 스타일입니다.(웃음) 체육대회나 축제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 춤을 신나게 추기도 했어요. 이웃과 어울려 살지 않고선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극단을 꾸려 키워나가기 위해서도 주민 속으로 파고드는 일이 필요해요. 부지런히 눈도장 찍으며 살아왔어요.”
“서울의 연극단체들도 흔히 가시밭길을 걸어요. 도발적인 투지가 아니고선 시골 극단을 착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 아니겠어요? 현재 어떤 연극활동을 하고 있죠?”
“겨우 첫발을 내딛은 단계입니다. 천천히 가되 충실히 기반을 다지고자 해요. 참여 인력은 이 지역 사람들로 영입할 생각이고, 우선은 제가 연기와 연출 등 모든 걸 도맡아 해나갈 참입니다. 구상과 포부는 크지만 재정 문제 등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요. 극단 이름은 ‘청춘극장’입니다. 올여름엔 낭독공연물 ‘절대사절’을 선보였지요.”
“단원은 몇 명이나 되죠?”
“저를 포함, 세 명입니다. 당분간은 2인극 정도 공연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단원 중 한 명은 제 아내이지요. 연극에 대한 아내의 열정이 은근히 대단해요. 작은 동네이지만 열심히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을 거라 굳게 믿으며 함께 노력하고 있지요. 일단은 생활 안정이 화급한 과제이지만, 부부가 공히 추구하는 가치 있는 일과 목표를 가지고 산다는 게 즐겁습니다.”
최영환은 대학로 극장에서 아내 이동순을 만났다. ‘관객모독’이라는 작품에 출연 중 관객으로 찾아온 이동순과 눈이 맞았던 것. 연극 애호가였던 이동순은 ‘관객모독’을 자그마치 100여 회나 관람했더란다. 그 바람에 극단 단원들의 환대를 받았는데, 유독 최영환에게 필이 꽂혔던 거다. 부부 사이엔 어여쁜 유치원생 딸 하나가 있다. 아내의 나이는 올해 33세로 최영환보다 열여섯 살 연하. 남녀의 가슴에 연정이 돋으면 술 취하듯 흥겨운 황홀이 밀려드는 법이니 그걸 사랑이라 한다. 여기엔 경계나 모순이 없어 나이 차 따위는 무의미하다. 세상을 보는 촉에선 세대 차가 있겠지만.
“아내가 워낙 긍정적인 스타일이라서 매사 공감대가 넓은 편입니다. 다소 이견이 있어도 합리적이다 싶으면 곧바로 긍정하지요. 어! 그래? 해보지 뭐! 이게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뭐든 두려움 없이 해보자는 것, 하다하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것, 그런 낙관을 공유하며 사는 겁니다.”
오랫동안 스타 등극을 소망하며 연극배우로 진력했던 사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흥흥거리며 살아왔으나, 이제야 세상 무서운 걸 알겠노라’고 술회하는 남자. 그, 최영환은 여전한 물적 부실 앞에 서 있으나 훌훌 벗어던져야 할 껍질은 이미 벗어던졌다.
◇ 최영환이 주는 귀촌 Tip ◇
•이민보다 더 힘든 게 귀촌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목적 설정부터 정확하게 하자. 막연한 낭만이나 도피적 망상에 의한 귀촌은 절대 금물이다.
•경관을 기준 삼아 귀촌 지역을 선택하는 건 위험하다. 충분한 사전답사와 원주민 접촉을 통해 지역의 인심과 풍토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소읍이나 면 소재지에서의 자영업은 그리 이상적이지 않다. 친척이나 동창 등 인맥 중심으로 고객이 형성되는 게 시골의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원주민과의 융화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누군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같이 거들어줄 수 있는 정도의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11월의 첫 날 충북 보은군 속리산 국립공원내에 있는 세조길을 걷기 위해 속리산으로 향했다.
몇몇이 함께 몇 번 와본 적이 있던 곳이어서 이번엔 혼자 걷기로 했다.
단풍이 절정임에도 평일 오전이어서 단체 관광객들 몇 팀만 보였다. 단체팀을 운 좋게 피하면 속리산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등산 복장이 아닌데도 호기롭게 입장했다.
세조길은 법주사에서 시작하여 세심정까지 계곡옆을 따라 조성한 길로 왕복 5Km 가량의 거리다. 2016년에 조성되어 국립공원의 품격에 맞는 경치는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고 특히 장애인 등을 배려한 무장애 탐방로 구간이 있어 호평을 받는 길이다.
법주사 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조선의 7번째 임금인 세조가 피부병을 치유했다는 목욕소, 세조가 잠시 바위에 머물며 생각에 잠겼었다는 눈썹바위, 세심정 등을 만날 수 있다.
올라갈 때는 세조길로 가고 내려올 때는 도로 옆의 오래된 나무로 우거진 단풍을 만나는 것도 속리산 단풍을 예쁘게 즐기는 방법이다.
지난날 왕위와 권력을 얻기 위해 저질렀던 모든 악행과 잘못을 참회하며 걸었을 세조의 속내를 더듬어보며 아주 천천히 걸어봤다.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에 위치한 ‘보은 우당 고택’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리는 삼가천의 물줄기 가운데 있는 국가민속문화제 제 134호로 지정된 99칸의 한국 전통 가옥이다.
서원계곡 끝자락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지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담으로 둘러친 사랑채가 있다. 오른쪽에 다시 안담을 가진 안채가, 그리고 두 본채 사이를 걸어가면 별도의 담을 가진 사당이 자리해 있는 구성이다. 안채 뒤켠으로는 전국8도의 장독대 800개가 모여 장관을 이룬 모습도 보여진다.
선민혁(72세)의 말에 의하면 이 고택은 전남 고흥 일대에서 부를 쌓은 보성 선씨 집안의 18세손 우당 선영홍공이 1900년 초에 이곳에 터를 잡고 당시 유명한 궁궐 목수 방대문을 도편수로 참여케 하여 십여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또한 선씨 집안은 선을 행하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위선최락(爲善最樂)’이라는 가풍에 걸맞게 사비로 우수한 인재를 양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마을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많이 베풀어 주위에 배고픈 이들이 없었다고 한다.
삼천평이 넘는 이 고택 이곳 저곳에는 잘 익은 감이 주렁 주렁 열려있고 그윽한 향을 풍기는 노란 탱자나무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돌담들을 따라 피어난 꽃들과 담쟁이, 영글어 익은 빨간 나무 열매들과 함께 풍성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캠핑정보 사이트 ‘고캠핑’(www.gocamping.or.kr) 기준 전국 캠핑장 수는 2300여 곳에 이른다. 과거 강가나 계곡 주변에서 텐트를 치고 즐기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요즘은 펜션이나 휴양림, 카라반 등 다양한 편의시설에 체험활동이나 액티비티 등을 운영하는 캠핑장도 늘어났다. 산, 바다, 도심 등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휴식, 취미, 관광 등 그 목적까지 고려해야 선택지를 좁혀가며 만족스러운 캠핑장을 고를 수 있다. 캠핑장 찾기 팁과 더불어 테마별 추천 캠핑장 정보까지 담아봤다.
도움말 및 자료 제공 캠핑퍼스트(김한수 이사)
캠핑은 야외에서 먹고 자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안락하고 깨끗한 편의시설을 갖춘 캠핑장이 많아졌지만,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예견했던 불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즉, 어떤 캠핑장을 고르느냐에 따라 캠핑의 질이 달라지는 셈이다. 캠핑장을 고를 때는 캠핑의 목적을 먼저 염두에 둔다. 휴식을 위한 것인지,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함인지, 취미활동을 병행할 것인지 등에 따라 산, 바닷가, 계곡 등 주변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가족 등 동반자의 특성을 고려해 서로의 취향을 잘 반영한 캠핑장을 고른다.
◇ 캠핑장 선택 시 주요 고려사항
① 접근성 캠핑장에 머무는 시간에 비해 이동시간이 길면 피곤할 수밖에 없다. 거리나 교통 상황 등을 확인해 무리가 가지 않는 위치를 선정한다. 새벽에 출발해 밤에 돌아오는 일정을 선호하는 캠퍼들도 많다.
② 예약 가능 여부 아무래도 예약을 해야 더 안정적이다. 몇몇 캠핑장은 예약자에 한해서만 입장 가능하다. 선착순 운영 캠핑장을 간다면 대안으로 근처 다른 캠핑장들도 미리 알아두자.
③ 편의시설 캠핑장 인근에 식료품이나 캠핑용품을 구입할 만한 편의시설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에 따라 캠핑 짐을 쌀 때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정리해 빠짐없이 챙기자.
◇ 캠핑장 찾기 Q&A
❶ 초보 캠퍼가 캠핑장을 찾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실제로 캠핑장을 보고 선택하기는 어렵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을 참고하게 된다. 이러한 캠핑장 후기의 경우 주관적인 견해이거나, 간혹 대가를 받고 호의적인 글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가급적 다양한 리뷰를 살펴보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글이거나 홍보성 내용들은 걸러서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❷ 중장년이 캠핑장을 고르며 특별히 더 살펴봐야 할 것은? 지병이 있거나 건강이 염려되는 중장년의 경우 위급 상황에 찾아갈 인근 병원 위치를 파악해두도록 하자. 거동이 불편하다면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한 지형이 좋다. 자식이나 손주 등이 찾아올 계획이라면, 방문자 출입이나 인원 추가가 가능한지의 여부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❸ 가을철 캠핑장(캠핑사이트) 선택 요령은? 가을은 비교적 쌀쌀하기 때문에 해가 잘 드는 자리에 텐트를 설치하면 좋다. 마른 나뭇잎이 많거나 마른 잔디인 경우 작은 불씨에도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한다.
◇ 테마별 추천 캠핑장
Theme#1 자연환경 취향 따라 Pick!
[01]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캠핑장
행복한나드리 캠핑장 |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소규모 캠핑장이다. 가을에 찾는다면 알록달록 물든 주변 풍경과 더불어 코스모스도 만끽할 수 있다. 캠핑장 인근의 배론성지나 치악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단풍 구경을 가도 좋다. 솔방울 공예품 만들기, 목공예 등 시기별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 286-1)
달숲 캠핑장 | 산속에 단풍나무와 밤나무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을이면 절경을 이룬다. 주변 소음이 적고, 캠핑장 내에서도 고성방가 등을 엄격히 제한해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청풍호와 청풍문화재단지, 도담삼봉 등이 가깝고, 제천 시내와 인접해 대형마트 등을 이용하기 편리하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89-1)
[02] 숲속 힐링&자연휴양림 캠핑장
춘천숲자연휴양림 | 서울에서 1시간 이내에 닿는 거리로, 잣나무와 참나무 숲이 우거진 아늑한 자연휴양림이다. 산림휴양관, 숲속의집을 비롯해 야영데크, 글램핑장, 오토캠핑장 등이 마련돼 있다. 데크 이외에도 고급텐트와 캠핑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대여 가능해 초보자도 부담 없이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강원 춘천시 동산면 종자리로 224-104)
편백힐 치유의숲 | 치유의숲 내에 캠핑장이 있어, 편백나무 사이사이 텐트 설치가 가능하다. 피톤치드를 가득 내뿜는 조용하고 깨끗한 숲을 즐기기 제격이다. 야영장과 함께 편백나무와 황토로 벽을 만든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한다. 방 내부에도 나무보일러를 설치해 향긋한 편백의 기운을 따뜻하게 만끽할 수 있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 하남실길 212)
[03] 바다를 한눈에 오션뷰 캠핑장
몽돌바다 캠핑장 | 서해 몽돌해변과 인접한 500m의 전용 해변을 보유한 곳으로,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감성돔, 우럭, 도다리, 숭어 등이 잡히는 갯바위 낚시 포인트가 여러 곳 있고, 인근 갯벌에서 짱뚱어와 바닷게 채집 등 바다를 즐기기 좋다. 해질녘 노을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꼽힌다. (전남 신안군 암태면 신석리 413-1)
욕지도 파라다이스 오토캠핑 | 욕지도 유동마을의 한 폐교를 개조한 곳으로 민박과 야영장을 함께 운영한다. 캠핑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동해수욕장이 나온다. 인근 방파제에서 바다낚시를 즐기거나 조개, 고동, 소라 등 해산물을 채집할 수 있다. 섬에 있는 캠핑장이기 때문에 예약 전 통영 삼덕항에서 배편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경남 통영시 욕지면 유동길 111)
Theme#2 다양한 즐길 거리 따라 Pick!
[01] 역사·문화·관광지 인근 캠핑장
화적연 캠핑장 캠핑장 | 바로 옆 한탄강이 흐르고, 근처에 명승 제93호 화적연이 있어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도 옮겼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화적연은 영평8경중 제1경이자 포천 한탄강8경 중 제3경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그밖에 산정호수, 철원제2땅굴, 고석정 등이 인접해 주변 볼거리가 풍부하다. (경기 포천시 관인면 뗏마루길 43-116)
별을 다는 아이 | 온전히 캠핑을 즐기게끔 캠핑장 내에는 별다른 놀이 공간이 없지만, 인근의 다양한 문화 시설과 접근성이 좋다. 장흥유원지 내에 위치해 있고, 장흥자생수목원, 송암천문대, 권율장군묘,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장흥아트파크, 조각공원, 두리랜드 등이 인접해 아이들과 함께하기 제격이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309번길 132)
영월 느티나무 캠핑장 | 영월 내리계곡에 위치해 청량한 자연 경관이 매력적인 곳이다. 물놀이를 즐기는 여름에도 좋지만, 주변 볼거리 덕분에 언제라도 지루하지 않은 곳이다. 김삿갓문학관, 별마로천문대, 고씨동굴, 청령포, 장릉, 모운동마을, 아프리카미술박물관, 호안다구박물관 등 찾아갈 명소가 즐비하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계곡로 1061)
[02] 농촌·텃밭·공예 체험 캠핑장
귀한농부학교 | 농부체험, 민속체험, 미꾸라지 잡기, 쿠키·피자 만들기, 목공예, 식물공예, 숲해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말체험농장의 경우 당일 또는 연간 회원권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캠핑장 내 민속체험장, 동물농장, 허브농장, 수생원 등이 마련돼 있다. (경기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422)
다릿재농원 | 캠핑장 천등산과 장병산 사이 기슭에 위치한 곳으로, 가을이면 사과(홍로) 따기, 밤 줍기, 모과청 담그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번 가을에는 매주 토요일 선착순으로 인근 충주 고구려 천문과학관 견학도 진행한다. (충북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765-4)
신화 가족목공체험 캠핑소 | 목수 부부가 운영하는 목공체험 캠핑장.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책상, 가족이 만드는 식탁 등 원하는 품목을 정해 오랜 기간 숙박하며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캠핑장 내 카페와 가구 작업소, 갤러리, 수확체험농장 등도 이용 가능하다. 목공예 비용은 실비로 책정된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 강상로 326)
Theme#3 특별한 편의시설 따라 Pick!
[01] 글램핑·카라반 캠핑장
새연카라반 리조트 |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은 리조트형 캠핑장으로, 반려견과 함께하기 좋은 곳이다. 계곡 럭셔리 카라반, 프리미엄 폴딩도어 카라반, 스파 카라반 등 여러 콘셉트의 카라반과 감성 글램핑, 오페라 글램핑 등 다양한 글램핑도 즐길 수 있다. 짚바이크, 클라이밍 등 독특한 액티비티도 운영한다. (경기 가평군 조종면 운악청계로333번길 86)
생각 속의 집 | 모던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눈에 띄는 글램핑장이다. 복층형 펜션 2동과 독특한 구조의 글램핑 사이트 5동이 자리하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기 좋다. 원주 레일바이크가 캠핑장을 지나고,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간현관광지, 한솔 오크밸리 등 관광지도 가까워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강원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 52-5)
[02] 스파·찜질방 겸비 캠핑장
원주 참숯가마 캠핑장 | 힐링존, 피크닉존, 스카이워크존 등 다양한 콘셉트의 사이트가 마련된 이곳의 백미는 바로 ‘참숯가마 찜질방’이다. 캠핑장 입장객에 한해 무료로 이용 가능한데, 매주 불 빼는 날에는 참숯가마에 구운 ‘3초 삼겹살’도 맛볼 수 있다. 깡통열차 체험장, 모래놀이터 등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무료로 개방한다. (강원 원주시 신림면 솔치로 88)
그린콩 캠핑장 | 깔끔한 농장형 캠핑장으로 오토캠핑과 일반캠핑 사이트 모두 운영한다. 사이트마다 느티나무가 한 그루씩 있어 그늘 걱정이 필요 없다. 여름엔 캠핑장 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쌀쌀한 가을엔 따뜻하게 야외 스파를 즐기면 좋다. 스파 시설은 총 3동으로, 1회 5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경기 가평군 북면 소법리 627-54)
◇ 캠핑퍼스트가 제안하는 캠핑장 매너 15가지
1. 캠퍼들이 잠드는 밤 10시~아침 7시까지 매너(에티켓)타임을 지킨다(매너타임은 캠핑장에 따라 다를 수 있음).
2. 고성방가는 자제한다. 음악은 볼륨을 낮추거나 이어폰을 사용한다.
3. 쓰레기는 분리수거하고, 샤워실, 개수대 등 공용시설을 깨끗하게 쓴다.
4. 주변에 피해를 주는 과도한 음주는 자제한다.
5. 불꽃놀이 금지. 텐트에 불꽃이 떨어지면 장비 손상이나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6.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캠핑장이라도 통제가 안 된다면 출입을 삼간다.
7. 캠핑장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곤 한다. 자전거든 자동차든 꼭 서행한다.
8. 도난사고에 유의하자. 귀중품은 휴대하고 캠핑장을 벗어날 때 고가의 장비는 차량에 보관한다.
9. 드론은 항공법에 준수해 사용하자.
10. 풍등 날리기 금지. 나무가 많은 캠핑장 특성상 풍등은 자칫 화재로 이어진다.
11. 남녀노소 불문 노상방뇨 금지. 아무리 급해도 용변은 화장실을 이용한다.
12. 지정된 장소에서만 흡연하기.
13. 다른 옆 캠퍼의 생활공간인 사이트를 허락 없이 지나치는 일은 삼간다.
14. 각종 공놀이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즐긴다.
15. 캠핑장 내 과도한 애정행위 자제하기.
10월 하늘은 맑고 높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짙푸릅니다. 하늘과 강 어느 편이 더 파란지 내기라도 하듯 날로 그 푸름이 짙어가는 가을날, 강변에는 연보랏빛 꽃들이 가득 피어나 단연 지나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일순 저 멀리서 모터보트 한 대가 정적을 깨고 달려와 하늘과 강, 연보랏빛 꽃 무더기 사이를 무심히 지나쳐갑니다. 작은 배에는 고기잡이 나서는 것으로 보이는, 사내와 아낙이 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더없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강촌 마을의 전형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림 같은 풍경의 정점을 찍은 것은 다름 아닌 단양쑥부쟁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자생지가 파괴돼 자칫 ‘야생 절멸’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시끌벅적한 ‘뉴스의 꽃’이 되었던 단양쑥부쟁이. 그 단양쑥부쟁이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한가롭고 목가적인 강마을 풍경의 주인공으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중장비 소리 사라진 강변에 이파리가 솔잎처럼 가느다란 단양쑥부쟁이가 가득 피어난 것을 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납니다. 물론 예전의 자생지는 당시의 지적과 우려대로 상당수 파괴되고 사라져, 지금 우리가 보고 만나는 단양쑥부쟁이는 대체지에 옮겨 심거나, 증식한 씨를 인위적으로 뿌려서 키워낸 것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전, 복원된 단양쑥부쟁이가 몇 년간의 ‘이사 몸살’을 이겨내고 다시 야생의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이니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단양쑥부쟁이. 충북 단양에서 처음 발견돼 ‘단양쑥부쟁이’란 이름을 얻었으나, 1980년대 충주댐이 건설될 때 단양과 충주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그곳의 자생지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2005년 남한강 여주 일대에서 자생지 몇 곳이 발견돼 큰 환영을 받았는데, 4대강 사업으로 최대 자생지가 또다시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됐다고 야단법석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래와 자갈이 적당히 섞인 강변에서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첫해는 줄기가 15cm까지 크고, 이듬해 꽃대가 계속 자라 높이 30~50cm까지 이릅니다. 키나 꽃은 다른 쑥부쟁이에 비해 큰 차이가 없지만, 잎은 한탄강 바위틈에서 자라는 포천구절초나 높은 산 바위 절벽에서 자라는 가는잎향유 등과 마찬가지로 솔잎처럼 가늘어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9월에서 10월까지 지름 4cm 크기의 머리 모양 꽃이 꽃대마다 여러 개씩 달립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한국(경기도 여주시, 충청북도 단양군과 제천시)에 분포한다고 돼 있다. 즉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데, 여주는 물론 단양과 제천에서도 자란다는 뜻이다. 일본인 우치야마가 1902년 수안보에서 처음 발견해 채집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안보, 단양, 제천에서 단양쑥부쟁이의 자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남한강이 흐르는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일대가 단양쑥부쟁이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생육지다. 강천섬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연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을 가진 단양쑥부쟁이가 가을 인사를 한다.
충북 제천의 한 마을 산자락. 작은 집 짓기 마무리 작업을 위해 모인 한겨레작은집건축학교 수강생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18㎡(5.5평) 규모의 목조 주택을 8일 만에 완성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들여다보니 침실, 욕실, 주방은 물론 작은 거실까지 갖춰져 있다. 일명 자크르 하우스를 통해 미니멀 라이프의 철학을 배우고 실천하는 현장이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벌써 300여 명이나 이 학교를 다녀갔다고 한다.
‘3대에 걸쳐 사는 집’이라는 말이 있다. 조부모가 산 집의 빚을 손자 세대에 가서야 비로소 갚는다는 의미다. ‘사는(live) 공간’이어야 할 집이 ‘사는(buy) 물건’으로 변질된 지는 이미 오래. “집 한 채 구입하려면 은행의 노예가 되어 인생 절반을 꼬박 바쳐야 한다”는 자조 섞인 푸념도 쏟아지는 현실이다.
어쩌다 현대인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괴상한 꿈까지 꾸게 된 걸까.
다행히도 다른 한편에서는 망치와 못을 들고 자기 삶의 진짜 주인이 되어보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들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한 이도 있다. 한겨레작은집건축학교(이하 작은집학교) 교장 문건호(文建晧·53) 씨가 바로 그이다.
살인적인 집값에 지쳐가고 허리케인, 지진 해일과 같은 대형 자연재해로 살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자 사람들은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의 운동으로 나타난 것이 타이니 하우스(Tiny House) 열풍. 이동식 초소형 주택인 타이니 하우스는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무엇보다 빚을 지지 않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매력도 크게 작용했다. 바람은 금융위기로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미국에서 먼저 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거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스몰하우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학교
작은집학교는 올 연말까지 수강생이 다 찼다. 혹여 예약자에게 사정이 생겨 자리가 나면 추가 모집도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문을 연 첫해(2015년)에는 수강생보다 스태프가 더 많았지만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입교를 원하는 사람들이 넘쳐 접수마감 문패를 일찌감치 내다 걸 때가 많다.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시니어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여성 수강생 비율도 10%나 된다고 한다. 이곳에 오는 목적은 다 다르지만 8일 동안 이론 강의도 듣고 건물 내·외장, 전기 설비, 도배, 도장, 난방 시공 등 집 짓기의 전 과정을 실기로 배운다. 숙식을 같이하면서 짓는 집. 목조 바닥과 벽체를 만들고 지붕을 올리면서 함께 땀을 흘리다 보면 첫 만남에 서먹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진다. 수강을 끝내고 돌아간 뒤에도 동기생 중 누가 집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기꺼이 달려가 품앗이도 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자크르 하우스(‘딱 알맞게 좋다’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에서 한솥밥 먹은 사람들의 우정이고 힘이다.
제대로 판 벌인 부부 작가
문 교장은 아내 손정현(孫禎賢·51) 씨와 학교에 마련된 11㎡(3.4평)짜리 집에 살면서 강의도 하고 수강생들 밥도 챙겨주고 시시콜콜한 정도 나눈다. 이곳에서 부부는 ‘작가님’으로 불린다. 알고 보니 문 교장은 홍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했고 아내도 동양화를 전공한 미술학도. 자신들도 건축의 길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할 줄 몰랐다.
“젊었을 때는 작품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뒤에는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했어요. 공연 무대장치, 광고 세트장 등 손기술로 가능한 일들은 다했죠. 그러다가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크게 망했습니다. 빚이 5억 깔려 있으면 3억짜리 일을 수주해서 돌리는 식으로 무리하게 운영했지요. 그러다 어느 날 어린 딸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사는 게 괜찮나?’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밤낮없이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는 사업에 회의감도 들었고요. 접어야 하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당장 손을 떼면 빚만 떠안게 되는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어요. 결국 고민 끝에 접었죠.”
이를테면 자발적 파산이었다. 그 후 부부가 힘들게 마련했던 집은 전셋집에서 월셋집으로 바뀌었고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은 지인이 내어준 반지하 방이었다. 급기야는 쌀 살 돈도 없어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는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아야 했다. 그 시절 아내가 시집살이를 좀 했다고 문 교장이 우스갯소리로 말하자 손 작가는 손사래를 친다.
“오히려 저희를 많이 헤아려주셨죠. 그래도 여자들에게 시집이 편한 곳은 아니잖아요. 시부모님도 불편하셨겠죠. 방 한 칸 내어주셔서 1년 정도 살았는데 죄송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과수원 한쪽에 우리 세 식구 지낼 수 있는 조그만 집을 한번 지어보자 했어요. 곧바로 시동을 걸었죠. 둘 다 실패를 미리 걱정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그때는 돈 한 푼 없어 누구한테 공사를 맡길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어요.”
물질적으로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풍족했다. 부부는 작은 집을 지으며 미대 출신자들답게 맘껏 솜씨를 겨뤘다. 창 하나의 위치를 두고 즐거운 실랑이도 벌였다. 그렇게 방 두 칸에 화장실과 거실이 딸린 15평짜리 집이 완성됐다. 두 사람이 손수 지은 첫 번째 집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동이 밀려오는지 손 작가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어요. 첫눈이 펑펑 내렸던 날이었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창밖으로 흰 눈에 덮인 산과 들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눈 위를 뛰어다니는 노루를 보는데 가슴이 마구 뛰더라고요. 그 순간의 감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돼요. 제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풍경이에요.”
자연 속에서 살며 무엇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알게 된 부부는 도시생활에 대한 미련을 말끔히 접었다. 물론 그 뒤에도 몇몇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인생의 전환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충북 제천으로 오면서 시골살이는 더 깊어졌다. 귀촌한 사람들과 건축 협동조합 법인을 만들었다가 공중분해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작은 집 짓기 운동을 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보자고 프로그램을 짜고 머리를 맞댔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심신이 고단했어요. 빚도 또 졌고요. 하지만 못 견딜 정도로 절망스럽지는 않았어요. 건축 일 하면서 자기 집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제대로 읽었거든요. 저로서는 아주 중요한 해답을 얻은 셈이죠. 작은집학교의 기반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때 마침 지인이, 조합 만들 때 짜놓은 프로그램이 아깝다면서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 한번 넣어보라는 조언을 했고,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도전을 해봤다. 그 결과 1기생 수강생 8명 모집. 그는 뜻밖의 화답에 놀라 부랴부랴 교장이 되었다.
작은 집에 담은 큰 철학
작은집학교에서는 주문을 받아 집 짓는 일이 없다. 클라이언트와 건축가의 관계는 갑을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건축, 인테리어 관련 사업을 하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문 교장의 목표는 클라이언트와 건축가의 경계를 없애는 것. 그래야 집 짓는 과정이 행복하다는 지론을 펼친다.
“집을 짓는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로망을 펼치는 일이에요. 여기에 그 꿈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해결하겠다는 계산도 끼어듭니다. 반면 건축가는 무조건 이익을 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서로 다른 욕구가 충돌하게 되는 이 필드에선 어느 누구도 쉽게 물러서지 않으려 합니다. 팽팽한 기 싸움이 시작되는 거죠.”
도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클라이언트는 입체적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뒤늦게 ‘창이 여기 있어야 하는데 저기 있네’ 하면서 불만을 터뜨리곤 한다. 문 교장은 집을 직접 지어보지 않으면 이런 분쟁은 영원히 피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작은집학교가 클라이언트를 원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서 수강생들이 지은 집은 수강생들에게만 판매가 됩니다. 집을 가져가는 사람은 동기생들과 땀 흘리며 지은 집이라서 내부 구조를 잘 이해하고 어디가 고장이 나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관리는 이제 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집 짓기의 전 과정을 단기간에 가르쳐주는 곳은 없어요. 여기 오면 다들 빡빡한 작업량에 힘들어하지만 수업료와 노동이 아깝지 않다고들 말합니다. 내 집 마련의 계획을 작은 집으로 수정한 사람도 꽤 돼요.”
그러나 궁금해졌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싶어도, 세컨드 하우스를 구입한다 해도, 땅이 없으면 장밋빛 환상일 뿐이지 않을까. 문 교장은 괜찮은 정보 하나를 귀띔해준다.
“시골에는 10년, 20년 임대 가능한 토지들이 있어요. 땅을 살 때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하기도 하니까요. 일단 마을 이장님을 만나 빌릴 수 있는 땅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좋아요. 요즘은 농사짓기 힘들어서 그런지 몇 년간 내주고 월세 받는 걸 더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1년에 100만 원 정도 연세로 계약하면 이동식 주택 가져다 놓고 살 수 있어요. 그렇게 살다가 정들면 그때 가서 땅을 사도 늦지 않아요.”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동안 문 교장에게서 은퇴자들의 열정과 꿈, 잠재력, 융복합, 작은 집 마을 등의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바탕 고민한 시간들이 전해주는 통찰의 메시지다. 그 속에는 기발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우리 사회가 시니어의 에너지와 지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아쉬워요. 은퇴 후 여기 오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렇지 기회가 되면 참여하고 싶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저는 이곳에서 집 짓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선순환 관계로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젊은이들 집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주고, 그 해결 방안들도 같이 모색해보고요. 작은집학교가 그 구심점 역할을 적극 해나가겠습니다.”
젊은 시절 호숫가 숲속으로 들어가 5평도 안 되는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2년 여를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언제까지 집 짓는 즐거움을 목수에게 넘겨줄 것인가?” 일단 그 즐거움부터 되찾아 와야 할 것 같다. 물론 교장선생님과 함께.
연기를 하는 것이 평생 꿈이던 시니어 세대에게 연극을 할 기회는 종종 있다. 몇몇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민배우 제도와 다양한 세대들이 모인 연극 동아리들. 가끔 소극장을 빌려 그들만의 공연을 열어 이루지 못한 이상에 잠시 동안만이라도 빠지는 사람들. 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우고 더 늦기 전에 열정을 담아 무대에 서기를 응원하기 위해 (사)한국생활연극협회가 문을 열었다.
‘생활체육’은 있는데 ‘생활문화’는 없다? 이 질문은 (사)한국생활연극협회를 있게 한 초석과도 같은 질문이었다. 생활체육은 동네마다 지자체에서 시설도 마련해주고 뭐든 다할 수 있게 해주는데 생활문화는 미비하기 이를 데 없다. 알음알음 만나 무대를 찾고 조명 아래 서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을 제대로 이끄는 단체나 체계적인 방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사)한국생활연극협회의 정중헌 이사장은 무대에 서고 싶은 욕망이 있거나 꿈이 있는 아마추어를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협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는 미주 지역을 포함해 12개 지회와 30여 개 지부가 있습니다. 전문 연극인들이 임원진으로 구성돼 있고, 회원은 200여 명 됩니다. 여성들은 대부분 50~60대이고 남성들은 은퇴하신 분들이 참여하고 계신데 60대가 많습니다. 78세 최고령자도 있습니다. 이분들이 젊은 시절부터 바라던 꿈을 이루면서 노후 설계를 하고 인생을 더 풍요롭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게 하자는 게 협회의 취지입니다. 특히 공연 전문가들과 비전문 연극인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마추어 연극인에게 무대 본능을 깨우다
협회는 2017년 7월 창립 기념 세미나를 열고 생활연극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부터 계획은 확실했다. 기자 출신에 문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사장의 기획력을 바탕으로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전문 스태프가 장을 마련해놓으면 비전문 연극인은 그 시스템 속에 들어와 순수하게 연극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공연은 반드시 대학로에서 올린다. 비전문인이 이루고 싶은 소망이 바로 한국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 무대에 서보는 것이기 때문. 실제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 작·최영환 연출)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은 동숭동의 크고 작은 극장에 올려졌다.
“대학로 바닥에서 공연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지도합니다. 전문 연극인이 아닐지라도 그분들이 가진 능력을 더 최대한 이끌어내려고요.”
덕분에 우리나라 연극계 대가인 강영걸 씨가 연출했던 ‘작은 할머니’(엄인희 작)는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작품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가와 함께하는 연극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 알게 됐다.
“지난 6월에 ‘강영걸 연기·화술 아카데미’를 열었어요. 연극 연습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수업으로 보충하기 위해서죠. 제대로 기초를 배우며 발성과 발음, 똑바로 서기, 앉기, 방향 바꾸기 등 대사 분석과 동작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송년 공연은 강영걸 씨가 연출할 예정입니다. 이번 수업을 들은 분들 중에서 우선적으로 캐스팅할 계획입니다.”
연극의 맛을 알아가는 생활연극인들
한국생활연극협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곳을 통해 새로운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회원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무대 위 특별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만큼 순수한 열정이 넘치는 곳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인공의 여동생인 스텔라 역을 맡았던 이주연 씨는 국어선생입니다. 1년만 있으면 연금이 나오는 상황인데 연극을 하겠다며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어요. 학교보다 연극이 좋다면서요. 물론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말리고 다독여서 지금 잘 참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생활연극인으로 무대로 멋지게 돌아오겠죠.”
회원들과 함께 서울 인근으로 단합대회를 갔을 때 저마다 ‘왜 생활연극을 하게 됐는가’를 이야기하면서 서로 감동하고 깊은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어떤 분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서 변두리로 이사를 갔답니다. 삶의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전봇대에 연극 포스터 하나가 붙어 있더라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나 같은 아마추어도 활동할 곳이 있을까?’ 궁금했답니다. 그러다가 우리와 함께 연극을 하게 되신 거죠. 연극을 시작하고 사업도 잘되고 삶의 활력을 얻었다는 분도 있어요. 다들 참 많은 사연들이 있더군요.”
아이 셋 키우고 남편 시중만 들다 연극을 통해 세상을 접했더니 잔병도 없어지고 근심도 사라졌다는 여성 회원부터, 연기자 지망생이던 20대 시절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그곳에서 살다가 사별 후 4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된 회원까지. 모두가 크고 작은 아픔도 있고 은은한 삶의 향기도 지니고 있었다.
“누군가는 쉽게 기회를 얻기도 하겠지만 열정과 능력이 있어도 무대에 못 서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우리 협회의 생활연극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양적, 질적인 면에서 큰 성장을 하고 관심을 받게 된 것은 평생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회원들의 꿈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8월 말에는 한국생활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생활연극축제(8.30.~9.1.)가 충북 영동군 심천면 영동국악체험존에서 열린다. 이번이 2회째다. 전국의 생활연극인의 공연은 물론이고 국악, 춤, 시낭송, 버스킹 등을 하면서 즐기는 한판 놀이마당이 될 것이라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대사를 따라하는 독자가 있다면 지금 바로 생활연극협회 문을 두드려보는 것 어떨까? (생활연극협회 k-ac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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