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의 중견 배우 윤여정이 인기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바로 젊은 연예인과 신세대 스타들의 전쟁터로 변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예능 프로그램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윤여정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관찰 예능으로 담아낸 tvN 에서 사장 겸 요리사로 나섰다. 윤여정은 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꼰대 짓을 하지 않는 바람직한 어른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상승한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함께 현명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81세의 신구 역시 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젊은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KBS 에 출연해 기상천외한 입담을 과시하며 장·노년 연예인 예능 스타 붐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70세의 여배우, 81세의 원로 남자 연기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계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일까. 이 나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은커녕 비중 있는 조연 맡기도 힘들다. 가족이 밥 먹는 장면에만 출연하는 ‘식탁용 배우’로의 전락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견 연예인들의 의미 있는 반란과 도전이 시작됐다. 그 반란과 도전의 진원지는 바로 젊은 연예인의 전유물이자 10~30대 젊은 시청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중장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끼, 면모를 보여주고 친근감을 배가시키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이미지의 확장과 인기 상승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으로 나서는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중장년 연예인의 재스타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중장년 연예인의 재발견 창구로 부상시킨 것은 바로 2013년 방송된 tvN 다. 황혼의 해외 배낭여행 포맷으로 진행된 는 파격적으로 노년(老年) 예능을 표방하며 당시 78세였던 이순재, 77세 신구, 73세 박근형, 69세 백일섭을 출연시켰다.
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했다. 중장년 예능 프로그램이 전무한데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주로 젊은 층이었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원로 연기자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씨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에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의외의 재미있는 모습을 드러낸데다 연륜이 주는 현명함까지 전달돼 할배 신드롬이 일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장·노년 출연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의 성공 이후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중장년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예인들과 함께 고정 멤버로 출연하는 중장년 연예인도 많아졌다.
결혼을 졸업했다는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졸혼(卒婚)’을 화두로 던지며 공론화했던 백일섭(73)과 이혼 이후 혼자 살며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행을 하며 활기차게 장년의 삶을 사는 김용건(71)은 각각 KBS 과 MBC 를 통해 살림살이에서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혼자 사는 장·노년 사람들의 생활 트렌드를 이끌 뿐만 아니라 유익한 삶의 정보까지 제공해 사랑을 받고 있다.
김국진(52), 강수지(50) 등이 출연하는 SBS 과 김건모(50)가 나오는 SBS 는 중년 연예인의 이미지 확장과 인기 부활 예능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들이 여행을 하거나 미션, 놀이를 하면서 싱글 중년의 삶과 문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실태와 인식을 보여주는 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로맨틱한 김국진의 모습, 소탈한 김완선의 이미지 등을 엿보면서 많은 사람이 중년 연예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의 출연을 통해 천진무구한 모습과 충격적인 행태를 보인 김건모에게 대중은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순재·윤여정, 백일섭·신구·김용건·이한위·김구라를 비롯한 중년 및 장·노년 연예인들이 이미지를 확장하고 새로운 모습과 끼를 선보이며 예능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다.
김용건은 “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년, 장·노년 연예인의 재발견과 인기 부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중장년, 노년층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노년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인 나영석 PD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장·노년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시청자들이 이들 세대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게 되고 이해의 범위도 넓어져 세대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섭은 “드라마와 영화를 할 때는 중장년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와 등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10~30대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사인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70세의 중견 배우 윤여정이 인기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바로 젊은 연예인과 신세대 스타들의 전쟁터로 변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예능 프로그램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윤여정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관찰 예능으로 담아낸 tvN 에서 사장 겸 요리사로 나섰다. 윤여정은 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꼰대 짓을 하지 않는 바람직한 어른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상승한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함께 현명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81세의 신구 역시 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젊은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KBS 에 출연해 기상천외한 입담을 과시하며 장·노년 연예인 예능 스타 붐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70세의 여배우, 81세의 원로 남자 연기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계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일까. 이 나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은커녕 비중 있는 조연 맡기도 힘들다. 가족이 밥 먹는 장면에만 출연하는 ‘식탁용 배우’로의 전락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견 연예인들의 의미 있는 반란과 도전이 시작됐다. 그 반란과 도전의 진원지는 바로 젊은 연예인의 전유물이자 10~30대 젊은 시청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중장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끼, 면모를 보여주고 친근감을 배가시키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이미지의 확장과 인기 상승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으로 나서는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중장년 연예인의 재스타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중장년 연예인의 재발견 창구로 부상시킨 것은 바로 2013년 방송된 tvN 다. 황혼의 해외 배낭여행 포맷으로 진행된 는 파격적으로 노년(老年) 예능을 표방하며 당시 78세였던 이순재, 77세 신구, 73세 박근형, 69세 백일섭을 출연시켰다.
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했다. 중장년 예능 프로그램이 전무한데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주로 젊은 층이었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원로 연기자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씨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에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의외의 재미있는 모습을 드러낸데다 연륜이 주는 현명함까지 전달돼 할배 신드롬이 일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장·노년 출연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의 성공 이후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중장년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예인들과 함께 고정 멤버로 출연하는 중장년 연예인도 많아졌다. 결혼을 졸업했다는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졸혼(卒婚)’을 화두로 던지며 공론화했던 백일섭(73)과 이혼 이후 혼자 살며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행을 하며 활기차게 장년의 삶을 사는 김용건(71)은 각각 KBS 과 MBC 를 통해 살림살이에서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혼자 사는 장·노년 사람들의 생활 트렌드를 이끌 뿐만 아니라 유익한 삶의 정보까지 제공해 사랑을 받고 있다. 김국진(52), 강수지(50) 등이 출연하는 SBS 과 김건모(50)가 나오는 SBS 는 중년 연예인의 이미지 확장과 인기 부활 예능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들이 여행을 하거나 미션, 놀이를 하면서 싱글 중년의 삶과 문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실태와 인식을 보여주는 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로맨틱한 김국진의 모습, 소탈한 김완선의 이미지 등을 엿보면서 많은 사람이 중년 연예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의 출연을 통해 천진무구한 모습과 충격적인 행태를 보인 김건모에게 대중은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순재·윤여정, 백일섭·신구·김용건·이한위·김구라를 비롯한 중년 및 장·노년 연예인들이 이미지를 확장하고 새로운 모습과 끼를 선보이며 예능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다. 김용건은 “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년, 장·노년 연예인의 재발견과 인기 부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중장년, 노년층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노년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인 나영석 PD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장·노년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시청자들이 이들 세대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게 되고 이해의 범위도 넓어져 세대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섭은 “드라마와 영화를 할 때는 중장년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와 등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10~30대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사인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국민 드라마 의 바르디바른 둘째 아들 용식,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무대에서 빛나는 베테랑 연극인, 그리고 막말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문화체육부 장관까지. 어느새 올해 67세를 맞이한 유인촌의 이미지는 이렇듯 여러 갈래로 만들어져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매스컴의 요란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 연극인으로 돌아간 그는 OBS의 대담 프로그램 MC를 맡아 3년째 드라이빙하고 있다. 광대로서, 그리고 뼛속까지 순간예술인임을 자각한 유인촌과의 만남 뒤로 생각보다 진중한 얘기가 있었다.
유인촌은 자신이 맡은 OBS 의 방향성이 최근의 방송 트렌드와는 다르게 진중한 점이 좋다고 한다. 뭐든지 예능화되는 요즘 TV 프로그램들과 비교하면 그가 과거에 진행자로서 인기를 얻었던 에 가까운 느낌이다.
“요즘 방송은 장점보다는 단점을 드러내고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그래서 이 프로그램만은 정말 좋은 점, 장점, 들어서 감동할 수 있는 점을 중심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물론 그렇다 보니 방송이 원하는 자극은 없어요. 그러나 보고 나면 따뜻해져요. 다행히 OBS가 그걸 지켜주고 있습니다. 매주 다른 분을 만나기에 그분들에게 보고 배우는 게 많아요.
1년에 50여 명을 만나니 지금까지 150여 명을 만난 셈이죠.”
그는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지만 특히 이어령 박사,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김희수 건양대학교 총장을 꼽았다.
“이어령 선생은 첫 방송에 모셨고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분이죠.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은 과거에 김영삼 정부 시절에 교육부 장관을 하셨던 분인데 인생 스토리가 너무 놀라웠어요. 한국전쟁 전에 걸어서 월남한 뒤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시다가 검정고시로 서울대 철학과를 입학한 분이죠. 김희수 건양대학교 총장은 김안과를 만드신 분인데, 지금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죽을 때까지 연구할 게 생겼다
유인촌을 의 영원한 둘째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어느새 67세라는 나이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아주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제가 공직에서 나와 다시 연극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지금이 전성기다.”
유인촌에게 전성기라는 개념은 철저히 연극인 유인촌으로서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연극에서의 시간은 보통 삶의 시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영상은 젊은 사람들이 잘할 수 있지만 무대는 달라요. 희곡 작품 자체가 일상이 아니라 어렵거든요. 그런 것들이 소화되고 공감대를 가질 수 있으려면 남자는 40이 넘어야 해요. 그 전에는 아기 같아요. 사실 40대까지는 대학생 역할을 했었어요. 성인 남자의 역할은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되어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이 전성기’라고 얘기한 거죠.”
그것이 4년 전 얘기. 지금 유인촌은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개인으로서 하려 했던 일은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해요.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동안 했던 걸 모두 지우고 연기자로서 새로운 뭔가를 다시 시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연기 외의 다른 사업이라든지 기관장이라든지 말고요. 순수하게 내가 배우로 뭘 한다고 하면 그동안 쭉 쌓아왔던 걸로는 다 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배우 훈련입니다. 발성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연극인 유인촌이 발성부터 다시 배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해왔던 작업이 겉으로만 보였던 거라면 이제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어요. 특히 저는 우리만의 전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양복을 입고 있어도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전통의 멋이나 깊이를 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제부터 그런 연구를 시작하고 정리해 죽을 때까지 할 계획입니다. 수련하는 느낌으로.”
아이들에게 자아를 찾는 기회 주고파
근본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그는 올해부터 의미와 가치에 중점을 둔 계획을 여러 가지 세우고 있다.
“사실 극장도 내가 퇴직하고 나와서 대관료를 만원 받으며 운영했었어요. 젊은 친구들 하라고. 그걸 3년을 했네요. 올해는 청소년, 특히 소년원과 쉼터에 있는 아이들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자아를 찾는 기회를 주기 위해 자전거 여행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어요. 여름방학 기간에 4박
5일 동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라이딩 투어를 준비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 그는 소문난 자전거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와 자전거는 어떻게 인연이 맺어진 걸까?
“오래전부터 탔죠. 그런데 옛날에는 그냥 설렁설렁 타다가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건 한 15년쯤? 늘 탔지만 취미 내지는 생활처럼 된 건 그 정도 됐죠. 저는 배우를 했잖아요. 연기를 하기 위해 모든 기능적인 걸 다 배워야 했어요. 수영, 자전거, 바이크, 펜싱, 검도,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다 연기할 때 필요한 것들이었죠. 그러다 보니 적당히 한 게 아니라 업계에서 알아볼 정도로 했죠. 승마도 장애물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다는 못하고 걷기, 자전거, 수영, 스키, 스노보드 정도만 하고 있죠.”
그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단다. 취미도 운동도 생활 속에 깊숙이 배어 있다. 특히 걷기는 그가 여전히 좋아하면서 계속할 수 있는 취미이자 운동이다. 670km를 걸어서 종단한 경험이 있는 그는 아직도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 장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보람을 일깨운 마지막 햄릿
연극인으로서의 성공, 정치인으로서의 논란. ‘개인적으로 할 건 다했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유인촌의 삶의 그래프는 급격하다. 그가 ‘내가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였을까?
“작년에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들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나는 햄릿을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60대 중반 넘어선 사람에게 왕자 역할 하라고 하면 욕먹는다고. 그런데 이해랑연극상 받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이 없었어요. 윤석화가 전체에서 가장 막내였고 내가 그다음이었으니. 그래서 결국 내가 햄릿 역할을 하게 됐는데, 굉장히 책임감이 느껴졌죠. 다행히 유종의 미를 거뒀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저의 햄릿 역할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내 연기 인생의 전반부가 으로 정리가 됐어요. 그러면서 연기하고 연극하길 참 잘했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계산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정의했다. 물질적 계산보다는 명분과 충분한 목적과 필요성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가 세운 극장도 처음에는 한 달에 2500만원씩 빠져나갔는데 그때마다 다른 곳에서 일한 돈으로 메꾸면서 운영했다고 한다. 꼭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저질렀다는 그의 말에서 평소의 신념과 의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일에 더 집중하려고 해요. 주변에 여러 가지가 연관이 되어 있는데 정리하고 있어요. 제게 섭섭한 것도 있고 아쉬운 것도 있겠지만 좀 좁히려고요. 이제 와 일을 벌이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연극도 1년이나 2년씩 구상하고 준비해서 하려고 해요. 작년에는 의도치 않게 연극 일이 많았지만, 올해는 쉬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는 책을 써볼까 합니다.”
나이는 장애가 아니다
“젊다는 것은 젊어서 좋은 거예요. 그것 외에는 크게 장점이 없어요. 그러니까 늙는다는 것은 핸디캡이 아니에요.”
그는 ‘어차피 늙는 건데 (인생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 그가 주연과 연출을 맡았던 연극 중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를 원작으로 한 라는 작품이 있는데, 늙어감에 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유난히 애착을 가진 작품이기도 했다.
“제가 를 1997년에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했는데 지금까지 매번 적자였어요. 그러나 작품의 의미나 형식이 너무 좋아서 적자가 나는데도 계속 공연을 하고 있어요. 이 작품의 대사 중에 ‘중후하게 늙을 것인가 가련하게 늙을 것인가, 중후하고 가련하게 늙을 것인가’라는 말이 나와요. 그 질문을 관객에게 계속하는 거예요.”
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삶을 관조하는 늙은 얼룩말을 맡았던 연기자 유인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간이다.
는 병든 말 ‘홀스또메르’를 통해 인간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화자인 얼룩말은 다양한 역경을 겪은 늙은 말이다. 이 얼룩말의 시각을 통해 이야기되는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등은 인간사 희로애락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술의 보람과 감동을 알기에 놓을 수 없다
“‘인간은 자기 땅이라고 하면서 밟아보지도 않아. 자기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욕해. 내 여자라고 말하면서 다른 여자와 살아.’ 는 이런 인간의 속성을 말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어요. 관객 중에 홀스또메르가 말하는 이런 사람이 꼭 있어요. 그 사람은 나와 눈을 못 마주쳐요. 그래서 흥행은 안 되죠(웃음). 하지만 나이 들어 이 연극을 보신 분들은 공연이 끝나도 일어나지를 못해요.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울기도 합니다. 저도 그 작품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근두근해요.”
한번은 사업을 하다 부도를 내고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친구 때문에 를 보게 됐는데 이 연극을 본 후 죽으면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거지. ‘내가 꼭 성공하겠다, 그리고 당신을 후원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어요. 그걸 보면서 예술로서의 목적이 달성됐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런 편지 하나 때문에 연극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거니까요.”
궁금했다. 유인촌은 어떤 이유로, 어떤 힘으로 연극이라는 자신의 세계를 이렇게 끌고 올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이 다소 풀리는 순간이었다.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가 같은 작품을 했는데 어떻게 늙어갈지를 왜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렇다. 지금의 유인촌은 그 고민의 결과다. 예술은 사람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고 그 화두를 접한 사람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운동을 하기 싫지만 취미를 갖고 싶으면 예술을 가까이 하는 게 좋아요. 일본의 단카이 세대들은 동호회가 많이 활성화돼 있어요. 그래서 박물관의 날, 미술관의 날 등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예술을 접합니다. 돈을 모아서 강연회를 열기도 해요. 아주 지적인 취미생활인 거죠. 우리도 할 게 많아요.”
기자가 늘 놓치지 않고 묻는 마지막 질문, 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예전부터 그랬어요. 저는 기억되지 않는 게 좋다고. 가족에게도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뿌리라고 말해뒀어요. 광대 팔자라는 게 그런 거예요. 남기지 않는 게 좋다. 연극은 순간예술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거죠. 저는 저를 영상으로 남기는 게 어색하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안 했어요. 필름은 50년, 70년 돼도 남는 것이라 부담스럽거든요.”
방송에 나오지 않으니 젊은 사람들은 이미 자신을 몰라서 지하철을 타도 아무 불편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살짝 웃었다.
“사람마다 저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겠죠. 누군가에게는 방송인으로, 누군가에게는 배우로. 그냥 그렇게 각자의 나름대로 가벼이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좋겠어요.”
유인촌과 ‘홀스또메르’가 오버랩되면서 옳다 그르다 선을 긋기 전에 인생역정 겪고 마침내 거울 앞에 선 그에게 다시 오는 것과 오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편협한 생각으로 나눴던 대화, 그끝에 알게 된 건 그가 영원한 연극인이라는 거다.
유장휴(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전략명함 코디네이터)
삶이 복잡해졌다면 재정비가 필요하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계획을 세우거나 재정비하는 시기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쌓이기 마련이다. 물건도 쌓이고, 추억도 쌓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쌓이면서 생활이 복잡해진다. 단순히 정리만 하면 가벼워지는 것도 있지만, 정리보다는 리셋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리셋은 초기화라는 의미다. 처음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리셋이란 용어가 종종 쓰인다. 컴퓨터가 오래되고 느려지면 파일 몇 개 지우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컴퓨터를 처음 산 상태로 초기화, 즉 리셋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성능을 어느 정도 살려낼 수 있다. 그런데 컴퓨터만 리셋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생활 속에서 도구가 너무 많아서 복잡하거나 매시간 울리는 의미 없는 단체 톡이나 밴드 알람에 짜증이 난다면, 생활은 물론 인간관계에서도 리셋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카톡, 밴드 단체방 홍수 시대! 단체톡 늪에서 빠져나오자!
카톡 단체 방이나 네이버밴드 모임 리스트를 보면서 모임 좀 줄여야지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대부분 단체 방을 만들기는 잘하는데 단체 방에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체 방 숫자만 늘어나고 대화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눈으로 보는 눈팅만 하게 된다. 불필요한 단체 방을 나오는 것이 관계 정리의 시작이다. 중요한 모임은 활발히 교류하고 방치된 방에서는 바로 나와야 한다. 모임 공지나 빠른 답변을 할 때는 이런 단체 방이 좋은데 깊이 있는 소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필요 없는 모임은 과감히 정리하고 정말 중요한 모임에만 집중하는 게 관계 리셋의 시작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활동하지 않는 밴드와 카톡방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나오는 순간 상대방이 알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 밴드에는 탈퇴 대신 밴드 숨기기 기능이 있다. 탈퇴는 안 하지만 내 눈에는 안 보여서 정리하는 효과를 준다. 티 안 나게 탈퇴하면서 방치된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간을 리셋하는 새로운 방법, 한달살이
관계 리셋 다음에 필요한 게 공간 리셋이다. 요즘은 심플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집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을 비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런데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물건을 버리고 정리한다 해도 또다시 원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건을 좀 줄인다고 삶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이럴 때는 물건을 정리하는 대신 공간을 바꿔 삶의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요즘 뜨고 있는 트렌드가 새로운 공간에서 살아보는 ‘한달살이’다. 한달살이는 여행지에서 한 달 동안 집을 빌려 사는 방식을 말한다. 낯선 곳에 살면서 색다른 일상을 만들어보는 한달살이는 지금 제주도에서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한달살이를 하려면 한 달 동안 써야 할 물건만 챙겨가야 하므로 많이는 못 챙겨간다. 꼭 필요한 물건만 선별해서 가져가야 한다. 공간이 바뀌면 사용하는 물건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설거짓거리가 가장 줄었다고 한다. 집에 있을 때는 무심결에 이런저런 그릇이나 요리 도구들을 펼쳐놓고 썼는데 새 공간에서는 꼭 필요한 그릇만 꺼내서 쓰고 음식도 간단하게 먹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설거짓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덕분에 여유시간이 늘어나면 책을 읽거나 취미생활에 집중할 수 있다. 한달살이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제야 불필요한 물건들이 눈에 띄고 정리를 하게 된다. 삶에 변화를 주려면 생활 패턴을 조금씩 바꿀 필요가 있다. 연초에는 과감하게 인간관계와 공간을 리셋해보자.
◇ ‘밴드모임 숨김’으로 관계 정리하기
1. 밴드 어플을 실행시킨다.
2. 밴드 모임 리스트 중에 숨기고 싶은 모임을 선택한다.
•모임 이름을 확인한다.
•모임 이름에 있는 점 세 개 모양의 메뉴를 누른다.
3. 메뉴 중에 ‘이 밴드 숨김’ 기능을 선택한다.
•해당 밴드가 모임 리스트에서 숨겨진다.
4. 밴드가 숨겨지면 완료 메시지가 나온다.
•다시 보려면 내 밴드 편집 메뉴의 ‘숨김 밴드 관리’에서 변경 가능하다.
“YOLO! You Only Live Once.” 2016년 3월 4일 방송된 tvN 프로그램 아프리카 편에서 신세대 스타 류준열이 혼자 캠핑카를 몰고 아프리카를 여행 중인 외국 여성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건네자 돌아온 대답이다. 이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YOLO(욜로)’의 뜻을 잘 몰랐다.
그런데 , 등 트렌드 분석서들이 올해 유행할 트렌드로 한결같이 ‘YOLO’를 꼽았다. 욜로는 이제 생활뿐만 아니라 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두문자어(acronym)로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의미다. 2011년 미국의 인기 래퍼 드레이크의 노래 ‘The Motto’의 가사 중 한 구절인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nigga, YOLO(인생은 한 번뿐이야. 이게 인생의 진리지, 욜로)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2016년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인 ‘오바마 케어’ 가입을 독려하기 위한 홍보 영상에 사용돼 눈길을 끌었다. 2016년 9월에는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등재됐고 이후 ‘헬로(Hello)’나 ‘굿럭(Good Luck)’ 대신 사용하는 인사말이 됐다. 또한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욜로는 일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지칭하는 용어다. 욜로 트렌드의 부상으로 장기적인 미래 계획보다는 현재 느끼는 ‘즉시적 행복’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더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를 즐겨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비슷한 의미처럼 들리겠지만 카르페 디엠은 삶의 태도에 대한 격언이고, 욜로는 현실적 삶에 대한 버전인 셈이다.
욜로는 오늘은 불행해도 내일을 위해 참고 산 기성세대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 잡는 삶을 살아온 많은 사람에게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희생하기보다는, 후회 없이 즐기고 사랑하는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에서 “욜로와 관련한 문화와 소비는 단순히 물욕을 채우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활동을 넘어 자신의 이상향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또한 김용섭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장은 에서 “욜로는 한 번뿐인 인생이니 하루하루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다. 막살자는 것도 아니고, 대책 없이 오늘을 흥청망청 보내자는 것도 아니다. 오늘을 충실히 살다 보면 내일도 충실해질 수 있다. 오늘의 행복을 찾으면 내일도 행복해질 수 있다. 내일이 막연한 미래라면, 오늘은 구체적인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욜로 트렌드의 부상으로 전세금을 털어 1년간 세계여행 길에 오르거나, 월셋집에 살면서도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신만의 취미생활에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쓰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통장의 잔고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신한카드가 ‘욜로 아이(YOLO i)’라는 상품을 출시했고 금융기관, 유통업체, 여행사 등도 욜로 트렌드에 부합한 상품과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욜로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현재의 ‘즉시적 행복’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데일리 디톡스(Daily Detox·일상에서 찾는 휴식)’,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 ‘맞춤형 휴가’,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식사 그 이상)’, ‘홈퍼니싱(Home Furnishing·소품으로 집 꾸미기)’ 등 소소한 생활 속 만족을 지향하는 문화를 유행 트렌드로 부상시키고 있다.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인식하고 더 즐겁고 행복한 오늘을 보낼 수 있게 하는 문화 콘텐츠도 속속 제작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을 통해 인간애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다루면서도 의미 있는 오늘을 충실히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KBS 3부작 다큐멘터리 , 살 수 있는 시간이 48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가정 아래에서 행하는 것들을 보여주면서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tvN의 웰 다잉(Well Dying) 리얼리티 프로그램 ,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tvN의 힐링 프로그램 , 혼자서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달하는 스카이트래블의 등 욜로 트렌드와 관련된 방송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방송뿐만 아니라 소설, 에세이,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일상의 즉시적 행복과 소소한 기쁨을 강조하는 콘텐츠가 대중들과 만나면서 욜로를 더욱 강력한 트렌드로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욜로 트렌드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욜로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와 같은 충동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삶은 문제가 있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욜로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힘든 현실을 참고 견디면 미래에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7년 정유년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떠오른 욜로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무조건 희생하는 삶의 스타일이 지배적인 대한민국 사회에 적지 않은 긍정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 때문일까. 영국 시인 로버트 헤릭의 시 ‘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아가씨들이여, 시간을 잘 활용하라)’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Old time is still a-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너희들이 할 수 있는 동안/ 장미 봉오리를 모아라/ 늙은 시간은 끊임없이 날아가며/ 오늘 미소 짓는 바로 이 꽃도 내일이면 죽으리라…)’
또한 시인 윤동주의 ‘내일은 없다’라는 시에 눈길을 주는 사람도 늘었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knbae24@hanmail.net)
산업구조와 사회 상황의 변모,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 이혼·비혼 증가 등 사회, 경제, 문화적 요인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최근 발표한 ‘2016년 9월 주민등록 인구 통계 현황’에 따르면 전체 2121만4428세대 중에서 1인가구가 738만8906세대(34.8%)로 가장 많다. 2인가구는 452만1792세대(21.3%)로 그 뒤를 이었고, 4인가구 397만1333세대(18.7%), 3인가구 391만8335세대(18.5%) 순이었다.
1인가구의 증가세는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솔로 생활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사는 연예인들이 방송을 통해 1인가구 생활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트렌드를 제공하고 솔로 생활 풍속도를 보여줘 눈길을 끌고 있다.
연예인 역시 이혼, 비혼, 사별, 직업적인 특성 등의 이유로 1인가구가 많이 늘었다. 방송사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앞다퉈 혼자 사는 연예인, 특히 중·장년 연예인 1인가구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MBC의 , SBS의 , , 채널A의 등의 프로그램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생활을 통해 1인가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식주와 생활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트렌드를 전달하고 있다.
1인가구 시청자들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생활과 정보를 접하면서 실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는 방송인 전현무, 개그우먼 이국주 등 혼자 사는 유명인의 솔로 생활과 풍속도를 통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의식주와 인간관계 형성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요령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의 출연자 중 이혼 후 혼자 지내면서 1인가구 생활을 하는 중견 탤런트 김용건(70)은 많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김용건은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 생활에서부터 취미, 사교활동, 문화생활, 건강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의상 구입에서부터 착용 방법에 이르기까지 패션감각이 뛰어난 패션니스타로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장·노년의 건강관리에 영향을 주는 음식 구매와 식사 잘하는 요령까지 알려준다. 또 행복한 장·노년 솔로 생활의 필수요소인 드라이브, 패러글라이딩, 록페스티벌 관람을 비롯한 취미생활과 지인들과의 정기적인 모임 등 사교활동과 인간관계 유지법 등도 제공한다.
김용건은 “시대와 상황이 변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살 때보다 혼자 살면서부터 패션에서 식사까지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 혼자여서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혼자여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동안 못해본 것을 해보며 생활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행복한 1인가구 생활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예능인 김국진(51), 가수 강수지(49) 커플의 오작교 역할을 해 관심을 모은 SBS 은 중·장년 솔로 연예인들이 여행 등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혼자 생활하는 중·장년과 노년층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인간관계 단절에서 초래되는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을 여행과 이성 혹은 동성 친구와의 교제를 통해 잘 극복하고 즐거운 1인 솔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바로 이다. 김동규(51), 이연수(46), 김광규(49), 김완선(47), 김도균(52), 김국진, 강수지 등 이혼을 했거나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아 혼자 사는 중·장년 연예인들은 제주, 강원 등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서로 마음을 나눈다. 또한 솔로 생활의 어려움이나 외부의 시선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더 즐거운 1인가구 생활의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김완선 등 솔로 생활을 하는 연예인들은 결혼하지 않더라도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등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에 출연하면서 연인이 된 김국진-강수지 커플은 “이혼 후 혼자 사는 생활을 오래 해왔다. 을 통해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도 연애나 교제 등을 통해 이성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외로움 극복은 물론이고 행복과 즐거움, 건강함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동성 혹은 이성과의 교제 외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극복하거나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느끼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바로 반려견 등 동물 키우기다. 주병진(57)은 종편 채널A의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개를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활의 변화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병진은 방송에서 “애완견을 키우고 함께 생활하면서 내 삶이 달라졌다. 식사하는 것부터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까지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애완견 등 동물을 키우면 삶과 1인가구 생활이 더 행복해질 것임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JTBC의 , tvN의 등 쿡방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김국진 등 혼자 사는 일부 연예인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1인가구 생활에서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식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건강 증진을 위한 요리법을 터득한다. 김국진은 “혼자 살면서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요리 만들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요리법을 배웠다. 혼자 사는 사람들도 요리법을 배우면 여러 가지 요리를 하며 건강을 챙기는 식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건모(48) 박수홍(46) 등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의 생활과 이를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심경을 듣는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SBS에서 방송하는 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심경,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솔로 연예인들의 심경과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도 솔로 생활을 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경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과 오해가 존재하는 것이 보인다.
1인가구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부모 등 가족들이 오해나 편견, 고정관념이 많아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솔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혼자 살면 외롭다거나 불행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가족들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한다는 1인가구 생활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박수홍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행복하고 혼자 살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가족과 가족 형태에 대한 생각과 인식도 많이 바뀌고 혼자 생활해도 결혼한 사람 못지않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1인가구로 혼자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이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연예인들의 솔로 생활을 보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제가 어린데 (노래가)좋네요. 저도 나이 곧 들겠지요.”(박혜인) “올해 29세인데 이 노래가 심금을 울려요.”(lemon77) “나이 들어 들으니 정말 와 닿는 가사네요.”(강경숙) “중학교 때 눈물 흘리며 듣던 곡인데 50 가까운 지금 들어도 눈물이 나요.”(원석정)…
한 노래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이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올해 초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에 OST로 삽입된 출신 가수 김필과 김창완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통해 재탄생한 ‘청춘’이다. 신세대 가수 김필과 중견 가수 김창완의 콜라보레이션곡 ‘청춘’은 원곡이 발표된 지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으로, 신세대에게 요즘 대중음악에서 접할 수 없는 정서와 의미가 담보된 노래로 다가간다.
최백호와 후배 가수 린이 5월 14일 방송된 KBS 에서 1982년 발표해 대중의 폭발적 사랑을 받은 김수희의 ‘멍에’를 새로운 감각으로 편곡해 신선한 콜라보 무대를 선보여 관객과 시청자의 큰 박수를 받았다.
요즘 대중음악의 가장 큰 트렌드이자 키워드는 콜라보다. 콜라보레이션은 마케팅에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지명도가 높은 둘 이상의 브랜드가 손잡고 새로운 브랜드나 소비자를 공략하는 기법으로, 주로 패션계에서 디자이너 간의 공동 작업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됐다. 최근 들어 콜라보는 대중음악에서 가수와 가수 등 음악가끼리, 혹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 등과 일시적으로 팀을 이뤄 작업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2014년 남자 가수 정기고와 걸그룹 씨스타 멤버 소유의 콜라보곡 ‘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가수들의 콜라보가 하나의 인기 트렌드로 강력하게 부상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미쓰에이 수지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엑소 백현을 비롯한 소속사가 다른 가수들, 록그룹 국카스텐의 하현우와 트로트 가수 주현미 등 장르가 다른 가수 등 다양한 형태의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탄생한 노래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김창환-아이유의 ‘너의 의미’, 비와 태진아의 ‘라송’등 세대가 다른 가수들의 콜라보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1980~1990년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독특한 음색의 이광조와 인디 가수 요조의 ‘케이팝 클래식(K-POP CLASSIC)’을 비롯해 아이유와 양희은, 이문세와 슈퍼주니어의 규현 등 40~60대 가수와 10~20대 가수 및 아이돌 그룹의 콜라보 음반에서부터 공연까지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 작업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음반 기획자들은 “대중음악계에서 요즘 전개되는 가수들의 콜라보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돼 앞으로 더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아이돌 가수의 경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가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고, 중견 가수의 경우 젊고 역량 있는 후배와 신선한 조합으로 색다른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며 대중음악계에서의 가수들의 콜라보 전망을 긍정적으로 진단했다.
이처럼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를 비롯한 가수들의 콜라보가 성행하는 이유는 뭘까. 성격이 다른 가수들의 콜라보는 기존 활동했던 모습이나 음악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전달할 수 있고, 음악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양희은, 김창완, 이문세 등 선배 가수들과 콜라보를 자주한 아이유는 “선배들과의 콜라보는 또래 뮤지션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음악적 정서와 감성, 스타일을 배울 소중한 기회다. 선배 가수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내 음악의 스펙트럼도 확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음원과 디지털 싱글 등 대중음악 시장이 디지털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가수들의 콜라보가 급증한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디지털 중심의 대중음악 환경에서는 적은 제작비로 쉽게 디지털 싱글을 제작할 수 있어 다양한 콜라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KBS , SBS , MBC , JTBC 등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늘어난 것도 다양한 가수들의 콜라보 등장을 낳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음악과 게임, 경연 등 다양한 예능 장치를 음악과 혼합한 음악 예능이 늘어나면서 가수들의 콜라보 무대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서 1970~1990년대 복고 바람이 강타한 것도 가수들의 콜라보를 대중음악의 인기 트렌드로 부상시킨 원동력이다. 최근 드라마 , 예능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 전반에 복고 바람이 불며 1970~1990년대를 소환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의 복고 신드롬은 자연스럽게 1970~1990년대의 노래와 가수들의 소환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과거 전성기를 누린 가수들의 원곡 그대로가 아닌 원곡 가수와 신세대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새롭게 재탄생한 노래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때문에 대중문화 전반에 복고 코드 득세와 함께 가수들의 콜라보 특히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가 성행하게 됐다.
대중음악에 강력한 트렌드이자 키워드로 떠오른 콜라보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다른 장르 간, 신구 세대 간, 다른 소속사 간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면서 대중음악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고 가수들 역시 자신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대할 수 있다.
록밴드 국카스텐과 콜라보 무대를 가졌던 트로트 가수 주현미는 “국카스텐과 콜라보하면서 내 노래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국카스텐과의 콜라보를 통해 내가 하는 트로트도 얼마든지 젊은 감각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한, 콜라보를 통해 대중음악 수용자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가수들의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가 진행되면서 작업에 참여한 가수들의 팬덤이 합쳐지며 시너지를 내고 이것이 팬층의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특히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의 경우, 선배 가수들이 인기가 높은 신세대 가수와의 콜라보를 통해 신선한 감각과 신곡에 민감한 젊은 층을 공략할 수 있고 신세대 가수들은 전설적인 선배 가수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음악 완성도를 높이고 기성세대에게도 존재감을 알리는 효과가 크다.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는 음악 시장의 주요 소비층인 10∼20대에게 부모 세대의 음악을 이해하게 하고, 기성세대에게는 젊은 스타의 최신 음악에 관심을 끌게 해 10~20대 젊은 층 위주의 국내 음악 시장 한계를 극복하는 돌파구 역할도 한다.
회사원 장동수(48) 씨는 “의 OST ‘청춘’을 통해 김창완과 콜라보한 김필이라는 가수를 처음으로 알게 됐고 그의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됐다. 고교생 딸은 반대로 ‘청춘’을 통해 김창완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고 음반까지 구입했다”고 말했다. 가수들의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는 무엇보다 취향 간, 세대 간, 스타 팬덤 간의 벽과 단절을 허물고 이해와 교류, 소통의 접점을 확장하는 의미 있는 결과도 낳고 있다. 아이돌과 7080 가수와의 콜라보는 신세대는 부모 세대의 문화를, 부모 세대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아이유, 장기하와 얼굴들, 김필 등 젊은 가수들과의 왕성한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는 김창완은 “가수들의 콜라보는 상이한 연령, 취미 등을 가진 사람들 상호 간의 이해의 장을 마련해줘 대중음악 소비층의 확장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 등 사회적 문제 해소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에서 양장점을 경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새벽에 동대문 원단시장에 도착하여 온종일 원단과 패션 트렌드를 익히던 여고생은 어느 순간 학생들에게 의상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교수가 될 때까지 걸린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어머니는 단 하루도 옷을 만드는 자신의 일을 허투루 대하지 않았고, 50년 동안 직접 옷본을 뜨며 옷을 만드는 현역이다. 도미패션하우스 정옥순(鄭玉順·74) 대표와 호남대 의상학과 장소영(張昭詠·46) 교수는 모녀이자 일생을 함께하는 동지로서 긴 세월 광주 패션의 역사를 지탱해온 산증인들이다. 때로는 힘이 되고 때로는 함께 길을 만드는 모녀의 이야기.
정옥순 대표는 74세라는 자신의 나이를 말하는 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40여 년간 국선도로 단련된 자세와 여전히 매끄러운 피부와 풍성한 머리숱이 나이를 잊게 만들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외모 이전에 여전히 현역에서 있으면서 핸드프린팅으로 옷본을 뜰 정도로 작업에 깊게 개입하는 그녀의 일상은 과거와 현재가 별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정 대표의 젊음은 무엇보다도 현업 장인이라는 기반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딸이 따라갈 수 없는 어머니의 저력
“50대까지 장사하는 분들을 보면서 ‘난 절대 일하는 걸 50살을 안 넘겨야 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50살이 지나니 벌써 오십 됐네 싶고 앞으로 더 할 수 있는데 왜 계속 일하는 사람 마음을 몰랐을까 싶었죠. 그때 10년이 지나 회갑이 되면 그만두자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회갑이 지나니 눈 감고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더군요. 그래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벌써 74세가 됐어요.”
옆에 있던 딸, 장소영 호남대 의상학과 교수가 ‘앞으로 10년은 더 하실 것 같다’고 한마디 거든다. 정 대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일하는 거 외엔 취미가 없어요.”
장 교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아~무 취미가 없으세요. 오로지 일하고 주무시고.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세요. 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제가 어머니와 같이 일하면서 어머니를 굉장히 닮아가게 됐어요.”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삶을 따르다
패션이라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어머니와 딸은 비록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지이지만 서로에게 100% 딱 맞는 관계는 아니었다.
어쩌면 원래는 달랐던 두 사람이 세월의 힘에 의해 계속적으로 닮아진 건지도 모른다. 장 교수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정 대표는 그녀를 데리고 동대문 원단시장을 다녔다고 한다, 원단과 자재를 익히는 법을 일찌감치부터 체험을 통해 교육시켰던 것이다. 장 교수가 의상학과를 들어가게 된 것도 어머니의 뜻이었다.
“제가 미술을 되게 좋아했어요.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으로 옮겨가게 됐죠. 어머니 따라다니면서 일을 배웠고, 의상학과를 가게 된 것도 자연스러웠어요. 단 원단이나 재료를 보기 시작하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계속 걸어야 했죠. 그건 너무 힘들었어요.”
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그때는 고생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만큼 할 사람이 없어.”
어머니의 업(業)을 통해 길을 찾은 장 교수가 어머니가 부지런히 일궈놓은 것을 아무 노력없이 받은 것 같아 죄송스럽다는 말을 하지만 모녀간의 이해와 배려가 그 어떤 관계보다 더 남다르게 느껴졌다.
서로를 마주하며 동행해온 대물림
정 대표의 어머니, 그러니까 장 교수의 외할머니는 함경북도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어머니가 옷을 굉장히 잘 입었고 염색, 짜깁기 등등을 잘하는 분이었다고 회고한다. 장 교수가 정 대표의 업을 이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정 대표 또한 어머니의 삶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렇게 의상을 업으로 삼은 3대에 걸친 흐름이 연결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어머니에게 교육받은 장 교수는 최근의 의상학과 학생들을 보며 근심이 많다.
“요즘 고교생들을 상담을 해보면 의상학과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거 돈 잘 벌 수 있어요?’라고 물어봐요,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경우죠. 자기가 정말 좋아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중간에 그만 두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볼 것, 뭐든지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을 강조해요.”
다른 듯 닮은 두 모녀는 삶이 하나가 되다
정 대표는 ‘직업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해요’라고 덧붙였다. 일찌감치 자신의 길을 정하여 묵묵히 장인의 길을 걸어온 그녀의 담담한 한마디에는 남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함께 같은 길을 계속 걷게 될 딸 장 교수야말로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고 체득하여 지켜왔던 가장 훌륭한 제자이지 않을까.
“소영이가 교수 정년퇴임하고 나면 함께 일하며 현역 디자이너로로 살았으면 해요.”
“그럼 엄마는 아흔 살 넘게 사셔야겠네(웃음).”
역사상 중년이란 연령층이 이처럼 주목을 받은 적이 있을까? 중년은 생물학적으로 꺾이면서 신체적 노화가 본격화되는 시기다. 여기에 조기 퇴직 등으로 사회경제적 위기와 불안이 가세하는 시기다. 위기의 중년에 주목해온 사회학자 김찬호는 중년에 부딪히는 난감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오로지 앞으로만 내달려왔건만 인생의 절반에 이른 가파른 고비에서 이정표가 갑자기 사라진다. 앞길은 온통 오리무중, 가속 페달을 밟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중년은 이렇듯 위기와 불안을 표상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찬미되고 있다. ‘꽃중년’ 등 중년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중년을 과거와 다른 ‘새로운’ 세대로 호출한다. 유례없는 일이다. 지금의 중년담론은 이렇듯 두려움과 찬미, 불안과 영광의 양면을 지닌다.
그동안 세대담론은 늘 청년의 몫이었다. 청년은 시대의 아픔이자 시대정신의 표상이었다. 청년은 수구와 기득권의 저항에 맞서는 변화를 상징했고 펄펄 끓는 청춘은 그 자체로 사회의 ‘희망’이었다. 반면 중년은 노년과 청년 사이에 끼어 묵묵히 자식 뒷바라지나 하고 부모 부양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특별한 자기 정체성을 갖기 어려운 연령층이었다.
중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40대부터 50대 초반까지가 생물학적 중년에 가장 가깝다. 이 연령대 중 상당부분이 80년대 대학을 다녔거나 그 시기의 직·간접적 문화권에 있었던 386세대와 겹친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이 청년일 때는 학생운동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로 별다른 스펙과 준비 없이도 사회에 진출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20대에서부터 30대까지 한국사회의 변동기에 정치적, 사회경제적으로 열린 기회를 맘껏 누릴 수 있었고 역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지금의 중년담론은 80년대 청년담론의 주역이었던 386세대가 중년이 된 시대, 이들을 주연으로 다시 호출하는 담론인지도 모른다. 이미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이 사회의 주류가 되거나 기득권이 된 386세대는 이렇게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지평 위에서 중년을 조망할 때만이 중년에 대해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 중년여성, 당당한 주체로 성장한 세대
현재 중년담론의 가장 큰 축은 중년에 맞닥뜨리게 되는 신체적,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것이다. 중년의 위기와 불안은 여러 방면과 층위에서 엄습한다. 일자리 불안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 불안한 노후와 건강 문제, 그리고 자식세대인 청년층의 불안도 지금의 중년층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중년의 위기와 불안에 대한 담론은 대체로 남성을 염두에 두고 전개된다. , 등과 같이 중년남성을 염두에 둔 힐링서는 도처에 깔려 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작 지금의 자신은 초라하고 지질해져 버린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와 토닥임이 주 내용이다. 물론 ‘꽃중년’ 등과 같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도 세련되며 외모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남성들이 등장해 갈채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극히 소수의 예외적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중년의 위기를 담고 있는 담론에서 중년여성은 비켜서 있다. 중년여성에 대한 서술은 다른 결을 지닌다. 기존의 중년여성은 육체적으로 퇴화한 ‘여성’ 아닌 ‘여성’으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중년여성은 그냥 ‘아줌마’일 뿐이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인해 아름다움에서 젊음이 차지하던 절대적이고 독보적 위치가 약화되고 있다. 경제적 여력이 뒷받침된다면 의학의 힘을 빌려 얼마든지 시간을 멈추거나 심지어 되돌릴 수도 있다. 여기에 내면의 성숙미와 우아함까지 가세할 경우 20대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카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중년여성은 과거의 중년여성과 다르다.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중년여성이 청년이었던 80년대와 90년대, 성장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시기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민주주의가 본격화된 시대였다.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성평등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남성과 대등한 여성으로서의 주체성, 가부장제에 속박되지 않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오로지 아내로서, 엄마로서 ‘희생’해온 엄마 세대와 달리 지금의 중년은 이미 청년시절부터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고민해온 것이다.
중년여성들이 청년이었던 시기, 한번쯤은 접했을 공지영의 소설 는 가부장제 문화와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한 반감과 아울러 여성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보여준 상징적 작품이다. 가족의 행복, 자식의 행복에 앞서 하나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과 행복을 고민하기 시작한 세대, 그것이 바로 지금의 중년여성이다.
◇ 문화와 소비의 주체
문화의 영역에서 중년여성은 중요한 향유층이자 소비 주체다. 이들은 성장기였던 80년대와 90년대 대중문화를 즐기면서 문화적 감수성을 습득했다. 취미와 여가도 적극적으로 즐기며 자신에 대한 투자에도 인색하지 않다.
엄마 세대들에게서 종종 나타나곤 했던 ‘여고 동창회’에서의 과시적, 사치적 소비와는 달리 그 소비는 ‘나’라는 자아, 주체를 향한다. 1968년생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는 중년여성들을 극장으로 대거 불러냈다. 극장을 가득 메운 중년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환호했고 공감했다.
등 중년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는 불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한 여성이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서 일어나는 과정에서 ‘불륜’을 설득력 있는 소재로 삼았다. 많은 중년여성들이 주인공 김희애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열광했다.
최근 중년여성의 불륜이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잦은데, 소위 ‘막장’ 성격보다는 여성이 주체로 일어서는 과정에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소재로 활용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한 드라마 평론가의 분석처럼 “결혼이란 제도로 자기 정체성과 삶의 결정권을 잃어버리는 여성이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 발단을 만드는 자극제로서 ‘불륜’만큼 강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 행복의 주체로서 중년여성
행복에 대한 조사를 보면 특이한 대목이 있다. 40대 중년 중에서도 남성과 여성 간 차이가 극과 극에 이른다는 점이다. 한국심리학회가 2010년 발표한 한국인의 행복지수에 따르면 전 연령층 중 40대 남성이 가장 불행했고 40대 여성이 가장 행복했다.
이 조사에서 40대 남성들은 다른 집단과 비교할 때 자신의 성취·성격·건강 등과 같은 개인적 측면은 물론 인간관계·소속집단과의 관계와 같은 사회적 측면 모두에서 만족 수준이 가장 낮았고 삶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도 전 연령층 중 가장 낮았다.
반면 가장 행복한 집단인 40대 중년여성은 긍정적 정서면에서 모든 연령집단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40대 중후반이면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여유가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안정기에 이르는 시기다. 40대 여성의 높은 행복도에는 이러한 점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중년여성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행복을 갈망하고, 고민하며, 일상에서의 실현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바라는 행복은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한 소박한 것에 가깝다.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지지와 공감을 할 수 있는 친구, 기댈 수 있는 이웃 등. 이처럼 중년여성의 행복은 외부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직접 찾고 얻어낸 것이다. 행복에 이르는 길과 방법을 아는 중년 여성, 그래서 이들은 행복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다.
◇ 행복의 조건과 장애물
중년여성들에게 행복의 조건은 단순하다. 이들은 경제적 안정, 사회적 성공 등과 같이 이루기 어려운 세속적인 욕망을 좇기보다 일과 여가의 조화,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 다른 길을 찾고 있다.
여가와 놀이는 중년여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 여가를 통해 자신을 성찰할 여유와 힘을 얻게 되고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이들은 문화적 소비와 자신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다.
그동안 가족에 헌신하느라 잊고 지냈던 ‘자아’를 돌아보고 친구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여행을 통해 지나온 삶을, 그리고 함께 나이 들어감을 나누고 공감하는 중년여성들은 도처에 있다. 여기에는 한비아, 김남희 등 여성 여행 작가들의 기여가 적잖다. 자유롭게 자아를 찾아 떠나고 여행을 통해 당당하고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은 중년여성들의 로망이다. 이들은 지침 없는 성장과 변화를 꿈꾼다.
공동체에 헌신하는 중년여성들도 이전과 달라진 변화다. 가족 안에 갇힌 시선을 외부로 돌려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중년여성이 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앵그리맘들이 자기 자식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차고 나와 부당함을 제기하고 변화를 외칠 때, 이들의 존재감은 그 누구보다 묵직하다. 이들의 사회적 지평의 확대는 정치사회적 사안에서도 남편이나 자식에게 속박되지 않고 주체로 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년여성의 달라진 위상은 일터에서도 확인된다. 임원 및 관리자급 중년여성들이 많아졌다는 양적인 측면을 넘어 질적인 측면에서 이들은 과거와 다른 존재감을 뿜어낸다. 공감능력, 수직적 위계가 아닌 수평적 연대, 위로와 치유 능력 등은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해진 덕목들이다. 공감과 배려를 갖춘 여성의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하며 힘이 된다. 수직적 위계 속에서 가파르게 승진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와 교감하며 함께 가는 법을 체득한 중년여성이 존중받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중년여성들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일까? 역시 자식이다. 이들의 주체성과 자아가 자식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헬리콥터맘’과 같이 자녀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고 엄마 마음대로 설계하려는 경우 불행한 결과는 예정되어 있다. 이는 자녀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자녀를 통해 대리충족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식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분리 불안증은 중년여성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다.
◇ 중년여성, 새로운 ‘이륙’이 준비된 층
인생의 절정을 누리고 있는 그들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원칙은 중년의 정체성 확립, 일과 여가의 조화, 용감한 현실주의와 성숙한 낙관주의의 조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조화,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의 조화, 자신만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의 조화였다. 이는 중년여성의 삶 속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항목들이다.
중년은 착륙의 시기가 아니라 또 다른 ‘이륙’이 가능한 시기라고 한다. 역사상 어느 세대보다 행복을 갈망하고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 개인의 행복을 넘어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이 바로 지금의 중년여성이다. 착륙이 아닌 새로운 이륙을 위해 중년여성은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
>> 글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를 다녔고 여론분석전문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를 거쳐 지금은 한겨레신문사 경제사회연구원에서 사회조사센터장을 맡고 있다. 사회적 변화와 트렌드를 여론이란 프리즘으로 분석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에서 정치사회적 이슈는 물론 세대와 문화 등을 주제로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시계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시계는 자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생기는 자연의 순행에서 인간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함께 이를 물리적으로 표시하는 시계라는 도구를 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글 장세훈(張世訓)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학계에서는 기원전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해시계를 시계의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영국의 전설적인 거석기념물인 스톤헨지 또한 실제 용도는 해시계였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한편 고대 그리스인들은 날씨가 흐리거나 야간에도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클렙시드라라는 물시계를 발명했고, 1434년 장영실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완성한 자격루 또한 물시계의 작동 원리를 응용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밖에도 모래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래시계와 기름의 연소량을 시간 계측에 활용한 램프시계도 중세시대에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시계의 역사는 이토록 오래되었지만, 근대적인 개념의 기계식 시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7세기 중반부터다. 물리학 및 관측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기계식 시계의 이론적 토대인 진자의 등시성 원리를 16세기 말에 발견한 것을 기점으로, 네덜란드 태생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는 이를 최초로 시계에 적용해 시계 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그가 1675년 개발한 진자시계는 후대의 과학자들과 시계 제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들의 손을 거치며 점차 다양한 종류의 시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탁상시계와 휴대가 간편한 회중시계가 유럽의 귀족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시계가 인류의 생활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의미했다. 물론 그 시절만 하더라도 휴대용 시계는 일반 서민들은 쉽게 볼 수조차 없는 사치품이었다. 유명 시계 제작자들은 주로 왕가나 귀족들을 위해서만 소량씩 주문제작방식으로 시계를 제작했고, 긴 체인을 연결해 양복 포켓 안에서 수시로 꺼내 볼 수 있는 회중시계는 특권층의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면서 귀금속 케이스로 제작한 시계들이 각광을 받았다.
한편 회중시계는 기술적으로도 당대 시계제작자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크기가 큰 추시계류와 달리 회중시계는 부품들의 사이즈부터 매우 작고 더욱 정밀한 가공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마이크론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 절삭할 수 있는 기계들이 앙트완 르쿨트르 등 몇몇 선구적인 인물들에 의해 19세기 초반에 개발되었다.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스위스 태생의 시계 제작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18세기에 등장한 가장 중요한 시계 제작자이자 시계 역사상 어쩌면 가장 영향력 있는 발명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최초의 셀프와인딩(로터의 회전에 의해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형태의) 시계였던 퍼페추엘(1780년)을 비롯해, 훗날 브레게의 상징이 된 정교한 패턴의 기요셰 다이얼(1786년)과 파랗게 열처리를 한 브레게 핸즈(1783년), 충격 흡수장치인 파라슈트(1790년), 브레게 헤어스프링으로 불리는 탄성과 내부식성이 탁월한 밸런스 스프링(1795년), 그리고 지지대 역할을 하는 케이지 안에 끊임없이 밸런스 휠을 회전시켜 중력을 상쇄하는 혁신적인 설계의 투르비용(1801년)에 이르기까지 현대 기계식 시계 제조의 기틀이 되는 여러 중요한 발명들이 브레게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브레게는 회중시계 시대를 앞당긴 인물이면서 훗날 손목시계의 등장까지 예견한 진정한 의미의 천재였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시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가시화된다. 바로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의 세대교체가 그것이다. 최초의 손목시계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1904년 루이 까르띠에가 친구인 조종사 산토스 뒤몽을 위해 제작한 까르띠에의 ‘산토스’를 최초의 현대적인 손목시계로 꼽는다. 케이스 모서리를 둥글린 사각에 가까운 케이스, 두툼한 러그, 착용감을 고려한 아담한 사이즈는 산토스를 당시의 어떠한 시계와도 차별화시켰다. 까르띠에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프랑스의 전투 장갑차에서 착안한 아이코닉한 사각시계 ‘탱크’를 1917년 탄생시켜 일찍이 손목시계 제조사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IWC, 론진, 호이어(태그호이어의 전신) 등 여러 제조사들이 손목시계 제조에 발 빠르게 합류했다. 특히 롤렉스는 세계 최초의 방수 케이스인 오이스터(1926년)를 비롯해, 오토매틱 무브먼트인 퍼페추얼(1931년), 자정 무렵 날짜창이 자동으로 변경되는 시계 데이트저스트(1945년), 최초의 다이버 시계 서브마리너(1953년) 등 몇몇 선구적인 발명으로 손목시계 시대를 앞당긴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손목시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시계로 인기를 모으면서 대중적으로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됐다. 종전 직후인 1950년대에는 이미 스위스 시계업계가 주류로 군림했다. 1960년대 말까지 스위스 시계 산업은 전례 없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고 시계는 더 이상 사회 고위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도 향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세이코를 필두로 한 쿼츠시계의 광풍에 밀려 스위스 시계 산업은 1990년대 초까지 기나긴 암흑기에 접어들게 된다. 기계식 시계와 달리 수정자와 배터리로 작동하는 쿼츠시계는 적은 제조비용으로 훨씬 더 많은 시계를 생산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특유의 정확함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쿼츠시계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기계식 시계를 찾기 시작했고 2000년대 접어들면서 기계식은 쿼츠와 사이좋게 시장을 양분할 만큼 다시 예전의 선호도를 되찾는다. 각종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의 주축이 된 요즘 수백 년 방식 그대로 제작되는 기계식 시계가 다시 높은 인기를 누리는 현상은 어찌 보면 난센스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기계식 시계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쿼츠시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계식 시계만의 예스러운 감성과 장인정신, 그리고 예술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좋은 시계란 무엇인가? 명품 시계에도 트렌드가 존재하는가?
좋은 시계의 기준이란 어찌 보면 상대적이고 자의적인 개념이다. 기술적으로나 미적으로 그리 훌륭하지 않은 시계일지라도 한 개인의 관점에선 충분히 최고의 시계로 비칠 수 있다. 또한 소중한 추억이 담긴 시계라면 가격대를 떠나서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갖게 마련이다. 특정 시계에 ‘명품’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 또한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주저 없이 명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시계들이 분명 존재한다. 단지 고가라서,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을 해서, 누구나 알 만한 유명 브랜드라서 꼭 명품이 아니라, 정제된 디자인과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클래식한 다이얼, 우수한 설계의 무브먼트와 같은 요소들이 명품 시계를 규정하게 한다.
세상 돌아가는 순리가 그렇듯 명품 시계 시장에도 소위 말하는 트렌드라는 게 있다. 가령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사이즈가 크고 대담한 디자인의 시계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만 해도 신생 브랜드였던 위블로, 벨앤로스 등이 이러한 트렌드에 힘입어 시계 업계에 완전히 자리를 잡는가 하면, 전통적으로 빅사이즈 시계를 브랜드의 개성처럼 강조해온 IWC, 파네라이 같은 제조사들도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명품 시계 업계의 트렌드는 과거로의 회귀로 규정지을 수 있다. 빅사이즈 트렌드에 대한 반발로 시계 사이즈를 다시 줄이기 시작한 제조사들이 늘어났으며, 지나치게 화려하고 스포티한 디자인 대신 단순하면서 고전적인 디자인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수십 년 전의 헤리티지 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각하는 것도 업계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블랙, 화이트 다이얼 일색인 고급 시계 업계에 최근 들어서는 블루, 그레이, 브라운, 옐로 등 다양한 컬러가 도입되고 있으며, 단순히 색만 입히는 차원이 아니라 기요셰, 그랑푸 에나멜링, 핸드 페인팅 등 다양한 전통 다이얼 제작 기법까지 적용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바쉐론 콘스탄틴, 파텍 필립,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예거 르쿨트르, 율리스 나르당, 샤넬 같은 제조사들은 자체적으로 양성한 전문 에나멜러와 인그레이빙 장인, 주얼리 세팅 장인들을 활용해 다이얼에 예술성을 가미하는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시계들로 고급 시계 제조의 또 다른 예술적인 경향을 선도하고 있다.
시계와 사회성
시계를 순수하게 취미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소위 명품으로 분류되는 고급 시계 소비자들 중에는 해당 시계에 담긴 진정한 가치나 스토리텔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해당 브랜드가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아우라와 이름값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고급 시계가 사회 통념상 일반 소비재가 아닌 사치재로 통하기 때문에, 종종 신문의 사회면이나 방송에서는 부정부패한 방식으로 돈을 축적한 이들이 가진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혹은 불법 로비를 위해 고급 시계를 구입하고 선물했다는 식의 가십성 기사도 종종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시계가 어찌 수천, 수억 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일 수 있는지에 관해 묻기에 앞서 우리는 해당 시계가 지닌 본연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계 칼럼니스트로서 스위스 주요 시계 브랜드들의 시계가 제작되는 매뉴팩처(공장)를 방문할 기회가 있는데, 매뉴팩처 투어를 거치는 동안 가장 먼저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 제작된 시계가 비싸지 않을 이유를 발견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고급 시계에 지불하는 금액 속에는 해당 브랜드의 오랜 역사와 전통, 제조 노하우가 담겨 있는 데다, 기계식 시계의 경우 수백 개의 작은 부품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되어 조립되고 나아가 각각의 부품들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다듬고 장식을 하기 때문에 주변의 흔한 대량생산형 저가 시계들과는 확연히 다른 프로세스로 완성됨을 알 수 있다. 오랜 경력과 출중한 실력을 가진 시계제작자를 가리켜 ‘마스터(장인)’라고 칭하는 것도 고급 시계 제조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계는 분명 재화만 있다면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지만, 때로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시계들도 있다. 하이엔드 시계 제조사들 중에는 시계를 단지 판매 목적이 아닌 브랜드가 지닌 기술력과 추구하는 가치를 최대치로 구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험적인 시계를 제작하는 곳도 있다. 까르띠에가 2009년에 선보인 유니크 피스 ‘아이디 원(ID One)’과 2012년에 발표한 ‘아이디 투(ID Two)’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시계 제조 방식에 새로운 혁신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는 더욱 완벽에 가까운 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까르띠에처럼 시계 제조 기술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예가 있는가 하면, 바쉐론 콘스탄틴이나 반클리프 아펠처럼 최상의 예술적인 시계를 완성하기 위해 전통 공예 장인이 최소 2주에서 길게는 몇 달간에 걸친 수작업으로 완성한 유니크 피스들도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시계애호가 및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는 MB&F, 그뤼벨 포시, 로랑 페리에 등의 독립 시계브랜드들과 필립 듀포, 카리 보틸라이넨과 같은 존경받는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시계도 매우 한정된 수량만 제작되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시계로 손꼽힌다. 이러한 귀한 시계들은 차후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세계 시계 경매에 출품돼 애초의 금액대를 훨씬 상회하는 경매가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한다.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흔히 볼 수 없어 희소하고 기술력과 예술적 표현의 한계에 도전한 마스터피스급 작품들은 반드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마련이다. 고급 기계식 시계가 세계 주요 경매에 단골손님이 된 것도 하나의 완성도 높은 시계는 예술품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귀한 시계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부류일까? 물론 기본적으로 부(富)도 따라야겠지만, 단지 부유해서만은 가질 수 없는 탁월한 감식안과 시계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열정, 그리고 좋은 시계를 가치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애티튜드(자세)를 지닌 자야말로 진정한 주인이 아닐까 싶다.
>>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타임포럼 주 필진으로서 시계 각 분야의 뉴스 및 심층 리뷰와 칼럼을 담당하고 있으며, 매년 바젤월드, SIHH, 워치스 앤 원더스 등 주요 시계 박람회를 취재해 기사화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시계 전문지 스페셜을 번역 보완 출간한 를 감수 및 추가 저술했으며, 주요 시계 제조사와 대표작을 선별한 e-북 를 저술했다.
>> 타임포럼 소개
2006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시계에 관한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1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직접 시계 구입 후기와 착용 소감, 다양한 질문과 답변 등을 주고받음으로써 시계에 관한 국내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방대한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time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