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의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했다. 함께 탄 구급대원은 쉴 새 없이 무언가 물었지만 너무나 혼란스러워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시끄러운 구급차의 신호음을 비집고 들리는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짐작케 했다. 그저 가족이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 뿐이었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서 만난 김해임(金海任·57)씨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불과 몇 달 전인 6월 6일의 일이다.
해임씨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우려가 앞섰던 것은 당연한 걱정이었다. 뇌출혈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는 대부분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라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일이다. 당연히 뇌와 관련한 장애가 생겼다면 인터뷰 진행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각오를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김해임씨의 모습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건강해 보였다. 의외였다. 그의 이런 건강한 모습 뒤에는 마치 드라마 속 우연처럼 기적을 만들어낸 몇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수영에 한창 재미 붙였는데…”
김해임씨가 수영을 시작한 것은 사건이 벌어지기 6일 전의 일이었다. 지난해에는 남편과 친오빠를 두 달 간격으로 하늘로 보내야 했다.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올봄에는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는 일로 진절머리를 앓기도 했다. 즐거운 일은 조금도 찾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럴 때 친언니가 권한 것이 수영이었다.
“수영에 푹 빠져 있었던 언니가 권하더라고요. 나이 먹을수록 체력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들고, 운동을 좀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수영이 딱 맞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까운 동네 문화체육센터에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했죠. 올해 6월 1일부터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 사달이 난 것은 며칠 후인 현충일이었다. 그 전날까지 전조증상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다음 날 수영 수업이 기대될 뿐이었다. 수영패드를 쥐기는 했지만 물에 떠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대견하기만 했다.
“콧속에 물이 들어가면 좀 찡하잖아요. 그날은 그렇게 찡한 기분이 수영 시작하자마자 들더라고요. 물을 들이마시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냥 이상하다 싶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팠어요. 수영장 안전요원에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심각성을 느꼈는지 바로 119에 신고하겠다고 했어요. 이 정도 일로 구급차를 불러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안 가 뒷목이 너무 아팠어요. 그 이후로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죠.”
보기 드물게 운 좋은 환자
김씨를 치료한 인천성모병원 신경외과의 장동규(張東奎·44) 교수는 “정말 운 좋은 환자”라고 말했다.
“이렇게 치료 결과가 좋고 후유증이 없는 뇌출혈 환자는 보기 드물어요. 빠른 대처가 환자를 살린 셈이에요. 119에 신고가 접수된 것이 오후 3시쯤이고, 병원에 도착한 것이 3시 30분이었어요. 증상이 나타난 지 30분 만에 의료진이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초기 대응이 신속했던 거죠. 또 하나 운이 좋았던 부분은 환자의 출혈량이에요. 뇌출혈의 위험도를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가 출혈량인데 환자의 출혈량은 매우 적었어요. 여러모로 행운이었습니다. 처치가 늦었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장 교수가 설명하는 김씨의 정확한 병명은 내경동맥박리로 인한 뇌지주막하출혈. 쉽게 설명하면 뇌의 우측 내경동맥 일부분이 찢겨 피가 혈관 밖으로 새어나간 것이다. 자발성 뇌출혈은 주로 고혈압에 의해 자발적으로 터지는 자발성 뇌내출혈과 뇌지주막하출혈 등으로 나뉘며, 뇌지주막하 출혈은 뇌동맥류의 파열에 의한 경우와 혈관이 찢어지는 뇌동맥박리에 의한 경우로 나뉜다. 물론 모두 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그 중에서도 뇌동맥박리로 인한 출혈의 경우 출혈량이 많으면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 뇌지주막하출혈 환자 중 내경동맥박리에 의한 뇌출혈 환자는 0.3% 미만일 정도로 흔치 않다.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약간의 출혈이 있었지만 더 이상은 없었어요. 뇌혈관조영술을 통해 찢어진 부위가 의심되는 부위가 있었지만 뚜렷하지 않아, 일단 환자의 혈압을 안정시키고 나서 이틀 후인 6월 8일에 뇌혈관조영술을 다시 시도했어요. 혈관 모양이 변화된 것이 확인돼 뇌동맥박리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이라고 확진하고 스텐트 삽입술을 진행했습니다. 더 이상 출혈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요.”
혈관용 스텐트는 금속으로 된 원통형의 그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스텐트는 제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며칠 후 확인해본 결과 혈관의 모습이 기대와는 달랐다. 가성동맥류라고 부르는, 피로 찬 주머니가 혈관 밖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재출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치가 필요했다.
1m 퍼팅, 하지만 홀컵이 3mm라면
장 교수는 코일색전술이라는 치료법을 선택했다. 피가 고이지 않도록 주머니에 백금으로 만들어진 아주 얇은 실을 타래처럼 꼬일 때까지 삽입하는 방법이다. 백금사가 자리를 잡으면 피가 응고돼 더 이상 터질 염려가 없는 작은 혹으로 남게 된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시술 방법이 매우 까다롭다. 허벅지에 있는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했다가 피가 고여 있는 부위까지 미세 카테터를 병변부위까지 삽입하고, 백금사를 넣는 방법이다. 스텐트 삽입술과 비슷하지만 난이도가 훨씬 높다.
허벅지에서 뇌동맥까지 거리는 약 1m 남짓. 일반적인 골프의 퍼팅이라면 초심자도 도전해볼 만한 거리이지만, 이 수술의 목적지는 108mm 홀컵과는 완전히 달랐다. 혈관에 튀어나온 부위는 높이가 1.45mm, 너비가 2.9mm로 여드름 크기에 불과했다. 1m 밖에서 얇은 실을 여드름 안에 넣어야 했다. 게다가 터지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시술은 6월 22일에 이뤄졌다.
“아무래도 긴장이 많이 됐죠. 코일색전술은 3mm 이상의 환부에 시술하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카테터가 들어가다 출혈이 생길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생명 살려
다시 김씨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로 돌아가보자. 김씨가 완벽에 가깝게 생명을 살리고 몸을 회복할 수 있었던 그날, 또 하나의 비밀이 있었다. 김씨가 응급실에 도착하고 나서 의료진이 치료를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 악다구니에 가깝게 절규하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씨의 언니 김해자(金海子)씨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씨 자매를 공포로 몰았던 것의 바탕에는 집안의 가족력이 있었다. 자매의 어머니와 큰언니도 뇌혈관이 막히는 병인 뇌경색을 앓았다. 지난해 친오빠도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입원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자매는 당시 병원에서 좀 더 서둘러줬다면 오빠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생 해임씨마저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지켜본 해자씨는 극도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진이 서두르고 있었는데도 해자씨는 다급하게 외쳐댔다. 1분 1초가 억겁 같았다. 해임씨는 응급실에 실려와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는데도 언니의 그 모습을 또렷이 봤다고 했다.
“저도 머리가 아파오자 돌아가신 오빠 생각이 났는데, 언니도 마찬가지였겠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고 해요. 저도 두려웠고요.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가려는 구급차를 규모가 큰 이곳으로 돌린 것도 언니였어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큰 병원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골든타임 맹신하면 안 돼
그렇다면 뇌출혈은 왜 발생하는 걸까. 장 교수는 그 원인을 기본적인 데서 찾았다.
“혈관성 질환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고혈압이에요. 혈압이 높으면 혈관에 문제가 생기기 쉽죠. 특히 나이가 들면 특별한 질환이 없어도 혈압이 오를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한두 해 전의 검사결과로 안심하고 자신의 건강을 맹신하곤 하는데, 혈압이 오르는 이유는 다양해요. 그러므로 자주, 정기적으로 혈압을 체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거나, 흡연 및 기름진 식습관으로 인한 고지혈증도 고혈압의 원인이 됩니다. 신장과 같은 장기의 이상으로도 혈압이 오를 수도 있고, 운동 부족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밖에 장 교수가 지목한 원인은 바로 가족력이다. 김씨의 경우처럼 가족력이 있다면 본인의 상태도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 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또 한 가지는 빠른 대처라고 했다.
“흔히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시간 전까지 오면 언제든 괜찮다는 뜻은 아니에요. 한시라도 빨리 와서 의료진의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해요. 빠른 시간에 적절한 처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부분 후유증이 남게 돼요. 너무 늦거나 상황이 심각하면 환자를 살릴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매초마다 뇌세포는 죽어가고 있다고 여겨야 해요.”
장 교수가 말하는 후유증이란 우리가 흔히 중풍(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다. 뇌졸중은 뇌출혈과 뇌경색을 아울러 표현하는 말이다. 후유증에는 전신의 한쪽만 마비되는 편마비나 언어장애, 삼키는 데 문제가 생기는 연하장애, 혈관성 치매 등이 있고, 심하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 보행장애가 오면 이동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주님이 내게 기회주신 것
김씨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크게 걱정한 사람들 중에는 그의 학생들도 있다. 매주 하루씩 부광노인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의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학생들이 병실로 달려와 안부를 물었다. SNS 메신저에는 쾌유를 비는 기원들로 가득했다. 또 그가 다니는 교회 교인들로 병실이 가득 차기도 했다고.
병실에 방문했던 지인들이 멀쩡히 대화하고 행동하는 그를 보고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었던 것도 병원에서의 좋은 기억 때문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교회 지인분들은 저 때문에 두 번이나 놀랐다고 해요. 처음엔 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놀랐고, 또 한 번은 퇴원해서 교회를 나갔을 때 너무나 멀쩡한 제 모습에 또 놀라신 거죠.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 열심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노인대학 강의도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고요. 또 다른 삶을 살게 된 것과 마찬가지니까 한 사람의 몫을 더 하며 살아야겠죠.”
[창간기획 시리즈] 풍요 속 극한 고통 ‘치매 대재앙’ 온다
①젊은 치매, 삶의 지옥이 열리다-上
치매는 노년기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지 가장 두렵고 무서운 질병으로 대두되고 있다 .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인 시대다. 치매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노령인구 증가가 가장 큰 이유지만, 치매 예방이나 극복 노력이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탓도 있다. 치매는 처음 진단 후 12년~15년 이상의 기간을 앓게 되는 동안 가족들이 부담해야 할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은 곧 사회의 재앙이다. 의학적으로 치매를 조기 발견하여 진행을 2년만 늦추어도 병원이나 시설에 입소하는 치매환자들의 50%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학문적 정설이다. 치매의 조기발견과 예방 그리고 환자가족들의 애환과 치료법 치료 시설, 전문 명의, 전문병원, 보험 등 통합적인 대처법을 시리즈 9회로 나눠 집중 분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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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초기치매’
젊은 치매, 삶의 지옥이 열리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초기 치매 자가진단 테스트
② 뇌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되지 않아
조기진단 예방이 절실
: 치매 연구 어디까지 와 있나?
③ 대한민국 명의가 밝히는 치매의 진실과 오해
:치매 각 분야 전문 치료영역 및 전문의 소개
④ 숨기고 싶은 고뇌-배우자의 치매
:당신은 내 남편이 아니라고요
⑤ 치매 요양사가 밝히는 치매환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
⑥ 치매환자에게 좋다는 음식과 처방치료제는 안전한가?
:치매 요양병원과 치료기기 및 제품 소개
⑦ 정부 지원책- 요양보험 혜택 -치매등급판정 심사 어떻게 하나?
요양사의 역할과 역량- 전문적인 치매 요양사 양성
⑧ 치매를 극복한 행복한 가족이야기
⑨ 치매보험 무엇이 적합할까?
: 가입조건 및 상품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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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치매’다. 2013년 58만명이었던 국내 치매 환자는 2025년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를 유형별로 보면 알츠하이머가 71%, 혈관성치매가 24%, 기타 치매가 5%를 차지하고 있다.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병이 아니다.
이르면 20대, 30대, 40대 무렵에 잉태된 치매의 씨앗은 느닷없이 소리없이 찾아와 조직이나 사회생활에서 큰 장애를 불러일으킨다. 뇌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되지 않는다. 때문에 조기진단이 절실하다.
일본 대뇌생리학 대가인 마쓰바라 에이타 박사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40ㆍ50대 가운데 무려 80%에서 이미 치매의 싹이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구에게든 소리 없이 찾아오는 치매, 미리 부터 건강 및 뇌 관리를 해야 한다는 시점에서 예방과 대비를 위한 통합적 대처법을 분석해본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초기치매’
급증하는 노인 인구와 고령화 시대의 도래는 자연스럽게 노년의 삶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있다. 노년의 삶에서 가장 큰 화두를 꼽으라면 노화가 주는 공포로서의 치매를 꼽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치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인지 기능이 지속적-전반적으로 저하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치매 전문의에 따르면 “치매는 서서히 뇌에 독성물질이 쌓이다 발병하는 병”이라며 “10∼20대부터 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치매 없는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삶의 공포로서의 치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사회에서 치매는 굉장히 익숙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회는 오랫동안 유교 사상에 바탕한 대가족 사회였으며 지금도 상당 부분 그러한 형태가 변형된 양상으로나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3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문화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노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치매 현상을 보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치매는 노년에 맞이하는 급작스러운 폭탄 같은 공포로써 다양한 소설, 드라마, 영화들 속에서 등장하곤 했었다. 드라마에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노인 캐릭터가 갑자기 쓰러져서 가족도 못 알아보면서 헛소리를 하는 장면, 흔하지 않던가.
그러나 사실 우리가 치매에 대해 익숙하게 기억하는 강렬한 장면들이 막연한 공포심만 심어줌으로써 직접적인 접근을 어렵게 만든 점도 없지 않아 있다. 치매에 대하여 어차피 나이 들면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리 포기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치매는 원인 질환을 세분화할 경우 무려 70여 가지에 이르는 복잡한 증상이어서 개개의 경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치매는 신경과와 신경외과와 같은 물리적인 분야에서의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과적인 측면에서의 치료도 수반되어야 효과적일 수 있기에 종합적인 방면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점진적인 치매, 알츠하이머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은 매우 서서히 발병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초기에는 기억력에서 문제가 생기며 점차 언어기능, 판단력 등 다른 인지기능의 저하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감정적으로도 영향을 미쳐서 성격변화, 초조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수면 장애 등이 일어난다. 말기에는 경직과 보행 이상 등의 신경학적 장애, 대소변 실금, 욕창 등 신체적인 합병증도 수반된다.
안타깝게도 알츠하이머병의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치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건 치매가 한동안 삶의 치명적 위협으로 작용하리라는 걸 예상하게 만든다. 다만 증상을 완화시키고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는 약물들이 임상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수반되는 망상, 우울, 초조, 불안 등의 정서적 문제들에 대한 대처도 중요하다. 사실 함께 사는 보호자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부분이 이것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환자와의 교감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간병의 보람도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들은 환자가 보여주는 신체적 어려움들에 대해 약과 식습관 개선 등으로 개선되도록 하고 주변의 환경적인 부분이 보다 편안한 물리적, 정서적 환경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물론 이 과정에서 환자가 약물에 너무 의지하게끔 만들면 절대 안 된다.
환자 개인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을 막기 위해선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의 문제들을 치료할 필요성이 있고, 과음 및 흡연을 하면 안 된다. 자신이 정기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이나 취미활동, 운동 등이 필요하며 의식주에 대해서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처리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과도한 음식 섭취는 피하며 오메가3, DHA, 리놀렌산 등 좋은 지방분과 딸기, 시금치, 근대 등 색이 짙은 과일과 채소로 이뤄진 항산화 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꾸준한 운동, 규칙적 습관이 치매 예방의 왕도
치매 현상에서 두 번째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에 의해 뇌조직이 손상을 입어 치매가 발생하는 경우다. 혈관성 치매는 갑자기 발생하거나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소혈관들이 점진적으로 좁아지거나 막히는 원인에 의한 경우 서서히 치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알츠하이머병과는 달리 초기부터 한쪽 마비, 구음 장애, 안면마비, 한쪽 시력상실, 소변 실금 등 신체적 증상들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혈관성 치매는 다른 치매들에 비해 예방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위험 요인들로는 고혈압, 흡연, 심근경색, 당뇨병, 고콜레스테롤 혈증 등이 꼽힌다. 혈관성 치매의 예방 방법이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인지하고, 그를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 그 자체다.
혈관성 치매는 비교적 급격하게 그 증상이 나타나고 진행 경과에서도 계단식 악화 또는 기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상당 부분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결과로써 드러나는 것으로, 혈관성 치매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애 하는 것은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의 유지다.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흡연 등의 혈관성 위험 요인은 철저히 치료하고 관리하는 게 급선무다.
혈관성 치매에 걸리게 돼도 위에서 설명된 규칙적 생활은 충실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또한 환자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환자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한 일이나 많은 선택권을 환자에게 줘서 혼란을 주지 말고 일은 단순하게 정리하여 할 수 있는 것만 하게끔 하는 정서적 케어가 필요하다. 무기력한 환자의 경우 치료 의지를 북돋는 것도 필요한데, 꾸준한 대화를 통해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심어주고 소소한 성공 사례라도 환자 스스로 해냈다는 걸 느낄 수 있게끔 구성해 주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치매는 생활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중첩되고 중첩되어 마침내 신체가 견딜 수 없어졌을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일찌감치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통해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발병 후에는 완전한 치료가 불가능한 치매에 있어선 예방을 왕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치매는 이미 개인의 문제를 떠났다
치매에 걸리면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뒤늦게 치료하기 시작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이미 치매는 개인의 문제 범위를 넘어섰다. 국립중앙치매센터는 전국에 있는 65세 이상 노인 613만 명 중 치매 환자 수가 58만6천여 명이라고 밝혔다. 즉 노인 11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얼마 전 서울시에서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중 10만6600명이 치매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또한 그 외에 30만800명, 27.8%에 달하는 노인들은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서울시에 사는 노인들 중 40% 인구가 치매 위험에 처해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치매 환자 1인당 사회적 비용이 연간 2,341만 원이라고 밝혔다. 위 통계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한해에 서울시가 치매로 인해 소요할 사회적 비용은 2조4천억 원이 넘고 전국적으로 보면 13조7천억 원에 달한다는다는 엄청난 수치가 나온다. 물론 각 개인의 경제적 사정이 다르기에 저만한 사회적 비용이 완전하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이미 치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보기엔 충분할 것이다.
◆치매로 인한 환청에 시달리다 투신자살을 시도한 ‘30대’
지난 해 5월, 부산에서는 디지털 치매를 앓고 있던 30대 여성 A씨가 투신자살을 시도하려다 경찰의 대처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2년 전 남자 친구와의 헤어진 충격으로 디지털치매를 앓게 된 A씨는 집에 자신을 감시하는 CCTV와 도청 장치 등이 설치되어 있다는 환청과 환각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은 다리 위 난간에서 투신자살을 하려던 A씨를 설득한 후 집으로 이동해 수색을 펼쳐 A씨의 환청이 근거가 없음을 입증시켜 안심시킨 후 자살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철수했다.
이 사건은 어느새 성큼 다가온 젊은 세대의 치매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다. 치매가 사회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이제는 치매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물론 여전히 치매가 노년의 문제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크지만 30대, 심지어 20대와 같은 젊은 세대에서의 치매 발병률은 나날이 상승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30대~50대에 속하는 ‘젊은 치매’ 환자는 2006년만 해도 4055명이었지만 2011년에는 776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치매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30대부터는 대뇌 회백질 혈류량이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기에 사실상 치매의 예비적 지점들이 마련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육체적 특징에 더해 우선 한국 직장 특유의 난폭한 술문화, 식습관의 서구화로 인해 고혈압과 당뇨의 발병률이 젊은 세대에게서도 높아진 걸 젊은 치매 증가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사무직 직업군의 증가로 인한 운동부족 인구가 늘어난 것도 젊은 세대에서 치매 원인 요인들이 활성화되는 이유이며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업무와 여가가 급증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리고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진 세대일수록 디지털 매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뇌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여 디지털 치매에 걸리게 만드는 촉매가 된다. 즉 치매는 이제 세대를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는 돌발적인 재해가 되어가고 있다.
식습관으로 인한 돌발적인 치매 발생도 문제지만 젊은 세대에게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바로 디지털 치매 현상이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이 사람들의 삶을 보다 편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엄청난 양의 문서와 기록들을 온라인 메일이나 USB에 넣어 원하는 모든 곳에 보낼 수 있으며 길을 찾으려면 주소를 외우기보다는 내비게이션에 저장된 기록을 다시 꺼내오면 된다. 또한 요즘 세대 중에 친구의 전화번호를 정확하게 외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러나 사람 대신 기억 행위를 수행하는 이러한 디지털 기기의 발달은 건망증의 심화 같은 디지털 치매 현상을 점점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집 주소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제 먹은 음식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디지털 기기 의존성이 극단적으로 발달하면 노년의 중증 치매와 별 다를 바 없는 젊은 치매 현상도 볼 수 있게 된다.
◆젊은 치매가 일으킬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한 대처 필요
젊은 치매의 증가세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는 사회적 파장에 있어서 노년의 치매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에서다. 우선 젊은 치매에 속하는 세대들 대부분이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는 시기다. 역할로 보면 조직의 말단을 책임지는 중추에서부터 중요 관리직까지가 이 세대에 속하며 가정적으로는 이제 막 사회 구성의 첫 단계인 가족을 구성하여 한창 꾸려나가는 중이거나 막 구성할 예정인 시점이다. 즉 한창 활발하게 일하며 사회적 동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세대가 치매라는 걸림돌에 걸려 모든 걸 포기하게 될 수도 있고 이것은 고스란히 사회적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
전문가들은 30대가 실제적으로 치매가 준비되는 시기라는 점과 현재 급증하고 있는 젊은 치매 환자 수를 들어 치매에 대한 예방과 이슈화를 젊은 세대에서부터 일찌감치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방이 최선의 치료책인 치매의 성격상 젊은 나이에서부터 치매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예방 차원의 규칙적 생활과 습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매가 사회 문제로 확연하게 자리잡음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시 차원에서 종합적 대책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미래창조과학부의 뇌연구 촉진 2단계 기본계획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수행하고 있는 이 과제는 5년간 ‘치매예측을 위한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사업’을 진행하여 조기진단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부산시도 치매 조기진단 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늦게라도 치매의 사회적 심각성을 깨달은 행정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오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치매라는 현상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