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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갈등 풀어야” 초고령사회 주목받는 공동체 주택
-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주거 대안으로 ‘공동체 주택’이 떠오르고 있다. 공동체 주택이란 독립된 공동체 공간(커뮤니티 공간)을 설치한 주거 공간으로, 공동체 규약을 마련해 입주자 간 소통‧교류를 하며 생활 문제를 해결하거나 공동체 활동을 함께하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을 말한다. 그간은 청년을 중심으로 공동체 주택이 증가·보급되어 왔는데, 초고령사회를 앞둔 현재는 고령자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정말 고령자 공동체 주택은 필요할까, 그리고 장단점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고자 서울시 내에 있는 어르신 공동체 주택 ‘해심당’을 직접 찾아가 봤다. ‘따로 또 같이’ 공동체 주택 서울시 도봉구 소재의 어르신 맞춤형 공동체 주택인 ‘해심당’(海心堂)은 바다와 같은 마음과 따뜻한 햇살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어르신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도봉구청, 사회단체가 협업해 만들었다. 기존 노후 주택을 신축해 재탄생된 곳으로 2021년 문을 열었다. 총 21세대가 살 수 있으며, 1층에는 장애인, 2·3층은 1인 가구, 4층은 부부 세대가 거주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배리어프리(무장애) 디자인이 도입됐다. 거주 공간뿐만 아니라 복도 등 공용 공간에도 손잡이를 설치했고, 단차를 최소화했다. LH 최초로 소규모주택 배리어프리(BF·무장애)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해심당의 입주 조건은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50% 이하’로 정해져 있다. 임대료 시세는 주변 시세의 45% 수준으로 보증금은 월 800만 원, 임대료는 월 40만 원 정도이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저렴하다고 느껴지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앞서 말했듯이 4층을 제외하고는 해심당의 거주 공간은 1인 가구를 위해 설계됐다. 입주를 원해 방을 둘러 본 이들은 ‘집이 임대료 대비 좁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터줏대감인 이현민 자치회 총무 역시 “공간 자체가 작긴 하다. 입주 당시 물건을 많이 정리했고, 늘 정리해야만 한다. 반대로 장점도 되는 것 같다. 공간을 깔끔하게 유지하게 되고, 또 생활하기 편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심당의 매력은 ‘공동체 주택’이라는 데 있다. 이에 따라 1층에는 카페 ‘향’이 있고, 2층부터 4층까지 각 층에는 입주민들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안마 의자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옥상의 ‘키친 가든’이다. 키친 가든은 해심당 설계에 참여한 이연숙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특히 신경 쓴 공간이다. 정원과 텃밭이 합쳐진 복합 공간으로 도시 농업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으로 설계했다. 꽃, 식물뿐 아니라 채소, 허브 등을 심고, 입주민들은 직접 기른 작물을 수확해 먹는다. 특히 키친 가든 관리를 맡은 이현민 총무는 이곳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매일 정원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무엇이 심어져 있고, 열매는 언제 맺는지 다 알고 있다. 이현민 총무는 “교수님이 친환경을 목표로 만든 곳이라서 사용하는 비료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주민들이 화학 비료를 막 뿌려서 나는 반대했다. 그래서 우리가 주민인데 왜 교수님 편을 드냐고 갈등을 빚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공용으로 만드는 공간이다 보니 갈등도 종종 일어났다. 입주민들은 얘기를 나누며 의견을 조율했고, 본래의 목적대로 친환경 도시 정원 형성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기른 작물을 나눠 먹으면서 이웃 간의 정도 더욱 끈끈해졌다. 올여름에는 샐러드 파티도 열렸다. 이현민 총무는 “최근에도 호박이 나서 모두에게 나눠줬다. 그런데 요리를 못 하시는 분들은 안 가져가려고 해서 내가 감자를 사서 호박과 같이 전을 부쳤다. 그래서 모두에게 호박이 돌아갔다”라고 덧붙였다. 가족 아닌 가족, 노인 갈등 해결해야 해심당은 노인들이 이곳에서 공동체로 외롭지 않게 살며, 자립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설계된 곳이다. 초반에는 일자리 제공도 했다. 실제로 이현민 총무는 입주와 동시에 일자리가 생겼다. 1층 카페 ‘향’에서 실버 바리스타로 일한다. 이 총무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는 열정을 발휘했다고. “특별한 직업이 없었는데 해심당 입주 후 2년째 일하고 있다. 집에서 내려오면 바로 일할 수 있고, 주민들과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취미, 운동 등을 함께 하는 커뮤니티 활동은 예상과 달리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LH의 공동체 활동 지원이 끊긴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해심당의 임대 관리를 맡은 김익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본부장은 “다른 서울시의 공동체 주택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끼리 공통점이 있고, 유대관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만 65세 이상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면서 “작년에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총 16강짜리의 심리 치료 및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했다.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의 체력적 조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김익 본부장은 짚었다. 그는 “사실 건강한 분들이 계셔야 커뮤니티 활동도 가능하다고 본다. 해심당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은 상황이다. 그래서 다 같이 모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벌써 두 분이 돌아가셨고, 곧 요양원에 가신다는 분도 계신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공동체 활동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어르신들이 크고 작은 다툼을 벌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현민 총무는 “정말 많이 싸웠고, 지금도 맞춰가는 과정인 것 같다. 우리는 가족 아닌 가족 사이기 때문에 싫어도 매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익 본부장은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진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르신들이 사소한 것으로 많이 다투신다. 그런데 금방 화해하시기도 한다”면서 “싸우는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김익 본부장은 이현민 총무가 공동체 운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칭찬했다. 이현민 총무는 “참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다. 남편이 부도를 두 번씩이나 맞아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고, 저는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제가 어디를 가나 몇 명만 모이면 리더가 되는데, 그래서 여기서도 총무가 됐다. 총무라고 어떤 보수가 있는 것도 없는데, 정의감에 불타는 성격이라 불이익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꼭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현민 총무는 공동체 주택에 장점이 더 많다고 느낀다. 그는 “다 같이 모여 사니까 외롭지 않은 게 제일 크다”라면서 “저도 누군가 도와줄 수 있고, 제가 어려움에 처하면 저를 도와주는 분들도 많다. 그럴 때 의지가 되고 보람도 많이 느낀다. 가족처럼 외식하러 나가서 맛있는 것 먹는 것도 좋고”라고 설명했다. 김익 본부장은 “우리 회사에서는 나중에 실버타운을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는데, 이곳을 관리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고독사 예방 등, 노인에게 공동체 주거 공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간 운영 기관에 전적으로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심당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이현민 총무도 앞으로 노인 공동체 주택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 2023-10-0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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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몸 이끌고 준비 없이 귀농, 구명줄 되어준 구절초
- ‘이게 뭔가? 세상에 뭐 이런 병이 다 있나?’ 몸 안에 심각한 병이 들이닥쳐 횡포를 부리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정규원(54, 백민구절초연구소 대표)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갖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별 이상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조만간 죽음이 방문할 듯 몸의 통증이 자심했는데도 말이다.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고민과 궁리를 한 끝에 그는 마침내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골이라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기로 한 거다. 시골의 자연환경이 괴로운 육체는 물론 덩달아 저하된 정신까지 끌어올려 줄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그의 귀농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규원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귀농한 건 2010년, 41세의 한창 나이 때였다. 인생의 전성기라 할 시즌이었으니 정리가 쉬웠으랴. 만족스럽던 직업(의류 관련 액세서리 사업)을 일거에 접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게다가 그의 곁엔 살뜰한 아내와 토끼 같은 어린 자식 둘이 있어 발목 잡히기 십상이었다. 과연 아내가 귀농에 동의할지, 무엇보다 가족을 동반하고 귀농할 경우라도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래저래 고심이 많았다. 그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선은 혼자 외진 산속에 들어가 쑥이나 고사리처럼 조용히 사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TV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며 병부터 다스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아내가 동행을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만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아내는 남편이 귀농을 선창할 경우 일단 반기를 든다. 매우 영민한 종족인 아내들은 날이면 날마다 풀을 뽑다가 뱀을 만나 까무러칠 가능성이 농후한 귀농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직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규원의 아내는 시골행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마도 아내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민만큼이나 어려운 역경과 맞닥뜨릴 수 있는 게 귀농이다. 하물며 남편만의 단독 귀농이라면? 이는 가정의 불안정을 촉진하는 지름길이다. 최악의 경우 가정의 해체까지 불러들일 수 있다. 정규원의 아내는 이와 같은 리스크를 고려해 전향적인 판단을 했을 테다. 아내의 대범한 태도에 힘을 얻은 정규원은 마침내 귀농 거사를 착수하게 됐다. 서울에 있던 집을 처분하고 사업을 정리한 뒤 가족 모두를 대동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가 귀농한 곳은 할아버지의 고향인 충북 청주시 문의면이다. 이왕이면 아주 낯선 객지보다 연고가 좀 있는 곳이 정착에 유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점찍은 곳이다. 거처는 농촌 마을이 아닌 면 소재지에 마련했다. 초등생 아이들의 등하교 편의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귀농 초기엔 건강 회복에 중점을 두었다. 텃밭 농사를 통해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음식을 주로 먹었고, 부지런히 뒷산을 오르내렸다. 명상센터에 나가 수련을 하며 마음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농사에 대한 구상도 많이 했다. 논을 사 벼농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쌀만큼은 직접 농사지어 먹자는 아내의 의견에 공감해서였다.” 귀농 전에 미리 받아둔 귀농교육이나 농사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나? “서울에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주관한 귀농교육에 관심이 있어 아내와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다. 경기도 의왕에 텃밭을 마련해 작은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소소한 경험치에 불과했다. 사실 계획 없이 막연한 귀농을 한 셈이었다. 건강 문제가 화급해 사전 준비를 할 겨를이 없기도 했다.” 농업만큼 만만치 않은 직업이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섣불리 농사에 뛰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농사로 가족을 건사하느라 고생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농업에 매력을 느껴보진 못했다. 하지만 한줄기 동경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알겠더라. 농부로서 긍정적인 풍모를 지녔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귀농교육은 귀농 이후 적극적으로 받았다. 이를테면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간 교육을 받았다. 친환경 농업을 기본 방향으로 정한 바 있어 관련 공부를 해 유기농업기능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전자상거래 등 다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필요를 느껴 E-비즈니스 교육도 받아두었다.” 일련의 농업교육을 이수한 뒤 비로소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나? 아니면 몸 치유에 치중한 시간이 더 많았나? “치유와 농사를 병행했다. 그게 바람직한 길이기도 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건강도 서서히 좋아졌고, 좋아지는 건강 상태에 따라 농사에 대한 의욕도 상승했으니까. 2013년엔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는 귀농인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생의 토대를 마련했다.” 멧돼지들이 농장을 초토화하기도 정규원이 선택한 주 작목은 구절초다. 구절초를 재배,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그는 산속에 있는 4000평 규모의 구절초 농장을 운영한다. 바야흐로 유능한 구절초 농부로 부상하고 있다. 출발은 미미하고 미묘했다. 할머니 묘소에 벌초를 하러 갔다가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구절초 꽃을 본 기억을 잊을 수 없어 200평 남짓한 작은 땅에 구절초를 심은 게 구절초와 인연을 맺은 계기라는 게 아닌가. 일종의 감성적 충동으로 시험 재배 삼아 구절초를 심어봤을 뿐인데 이게 향후의 길을 환하게 열어줬다. “남에게 빌린 200평짜리 작은 밭에서 거둔 구절초로 조청을 만들어봤는데 50인분 밥솥 하나 분량의 조청이 나왔다. 판매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조청 품질이 좋다며 구입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홍보도 해주었고.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판매 효과까지 거둔 뒤엔 서서히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자연스럽게 구절초 농사에 본격 입문한 셈이다.” 조청만 생산하는 건 아니겠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구절초꽃차, 모종, 체험 상품인 에코화분, 그리고 구절초블랙이라 이름 붙인 농축액 등을 생산한다. 주력 상품은 구절초블랙이다. 이건 유기농 구절초 함량 97%에 달하는 제품으로 나름 야심을 가지고 개발했다. 현재 상표출원 절차를 밟고 있다. 소비자의 80% 이상은 구절초 제품을 약용 목적으로 구입한다. 구절초블랙은 이와 같은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개발됐다.” 구절초 농사 전체 과정 가운데 어려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 “모든 농사가 그렇듯 구절초 역시 제초 작업부터 뭐 하나 손쉬운 게 없다. 재배 기술 습득은 비교적 용이하다. 문제는 날씨 변동이다. 예상하지 못한 폭우와 긴 장마엔 구절초가 맥을 못 춘다. 과도한 습기에 약한 작물이니까. 배수시설을 완비하고 밭에 경사도를 만들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병충해 예방을 위한 선제적 대응 능력도 필요하다.” 흔히 병충해 방제는 농약에 의존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유기농업은 농약 없는 농사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생태환경 유지에 공을 들인다. 난 구절초 농장 복판에 억새섬이라 부르는 작은 숲을 조성해 자연생태와 평형을 이루도록 했다. 이 작은 숲은 병충해의 기습을 완충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마귀 알집도 활용한다. 미리 채집한 사마귀 알집을 봄철에 방사하는 것인데, 부화된 사마귀들이 해충들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사마귀들이 농장을 지켜준다. 그런데 난해한 복병이 하나 있다. 바로 멧돼지다.” 멧돼지 피해가 심각했다는 얘기겠지? 그런데 멧돼지가 구절초도 먹나? “구절초를 먹는 건 아니고 땅속에 있는 굼벵이를 꺼내 먹기 위해 밭을 아예 농부처럼 갈아엎는다. 한번은 멧돼지 군단이 몰려와 농장을 투철하게 초토화했다. 징을 쳐대고, 포수를 불렀지만 아무 소용없더라. 포수들이 야간 매복을 했으나 잡을 수 없었다. 녀석들의 공격은 한 달간 이어졌다.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울고 싶은 심정이다.(웃음)” 구절초 향수를 개발하고 싶어 농사로 긍정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안락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오죽하면 귀농을 고행에 견주랴. 정규원은 비지땀 이상의 피땀을 쏟았다. 덕분에 순항을 거듭했다. 매우 어려운 사안으로 알려진 판로 문제도 길을 잘 찾아 해결했다.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과 관계를 맺어 상품을 납품, 꾸준히 안정적인 경영을 해왔다. 세상에서 익힌 처신과 경험을 슬기롭게 제련해 귀농 생활의 재료로 활용하는 능력도 뛰어나 안정적인 행보의 거름이 됐다. 그의 언사는 나직하고 다소 어눌하다. 반면 내부엔 뭔가 강철 같은 게 들어 있다는 느낌을 풍긴다. 이기심은 줄이고 이타적 선의를 키워 나아가는 게 삶의 정수를 맛보는 길이라는 신념을 육화한 인간 유형이랄까. 그는 사실상 신념을 밀어붙이며 당찬 귀농 생활을 해왔다. 2013년에 결성한 문화적 농업 공동체인 유기농협동조합에 이어, 2017년엔 경제 공동체인 마을기업 ‘백민구절초연구소’를 만들어 리드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 문제는? 여전히 아픈 몸을 고독하게 끌어안고 농장에서 뛰나? “실로 고통스러웠다. 오죽하면 몸 하나 살려보자고 귀농을 했겠는가? 몸이 추락하자 온갖 회의가 몰려들기도 했다. 이 지경으로 몸을 망쳐놓다니, 난 패배자야! 그런 넋두리가 잦았다. 그런데 기대보다 빠르게 건강이 회복됐다. 2017년에 이르러선 병의 늪에서 거의 완전히 해방된 걸 알았다. 따라서 마을기업 결성에 나설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덧 대학생으로 자랐다지? 뒷바라지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가계 형편은 어떤가? “서울에 있던 집을 판 자금의 절반쯤은 귀농 초기에 다 까먹었다.(웃음) 농업으로 소득을 거둔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젠 꾸준히 소득이 늘고 있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부인은 당신의 농사에 어떤 식으로 조력하나? “아내는 아내대로 일이 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한다.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에 우리 부부는 만족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내이고.” 만약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귀농을 하게 된다면 지금과 어떤 점이 달라질 거라고 보나? “(잠깐 생각하다가) 일을 좀 줄여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귀농 방식을 모색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내겐 아직 꿈이 많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는 과욕과 과속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농장을 키워왔다. 하지만 확장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구절초 가공 제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싶고, 구절초의 아찔한 향을 재료로 한 향수 개발에도 뜻을 두고 있다. 그 매너리즘 없는 정신이 그의 돛을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정규원이 주는 귀농 Tip •집과 농지를 서둘러 구입할 것 없다. 평생의 삶터로 삼을 경우엔 더 신중해야 한다. 처음엔 남의 농지를 빌려 활용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처음부터 농사 규모를 크게 설정하는 건 금물이다. 내 농사는 작게, 그리고 남의 일도 도와주면서 농사 물정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 •농업 교육기관에서 만난 귀농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자. 모임을 만들어도 좋다. 결국은 귀농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농사만으로 자립하기 쉽지 않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을 살린 일거리를 만들어 수입을 보완하자. •구절초 농사에 뜻이 있을 경우 5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시작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판로 문제에 대한 사전 연구도 필수다.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활로를 모색하자.
- 2023-09-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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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 약속한 바람둥이 유부남과 부적절한 관계에 가슴앓이
-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작고 허술한 나뭇잎 배가 시냇물의 작은 소용돌이에서 맴돌듯이 그와 나의 관계도 좀체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 위태롭고 답답했다. 나뭇잎 배처럼 가볍고 부서지기 쉬운 관계였던가, 우리 사이가. 나는 사별, 그는 이혼(을 전제로 한 별거 상태), 서로의 공감대가 달라서일까. 아니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조건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더구나 우리는 고교 시절을 오롯이 함께 지냈던 사이인데… 그렇게 조마조마 위태롭던 나뭇잎 배가 내 바람과 달리 순풍을 타기는 고사하고 기어이 뒤집어지고 말았으니…. 동창 장례식에서 재회한 그와 나 지방 소도시의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그와 내가 다시 만난 것은 공교롭게도 1년 전 동창의 장례식장이었다. 세상을 떠난 친구가 남자 동창이었으니 나보다는 그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동창들은 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다. 게다가 고작 3개 반이었으니 학년이 바뀌고 반이 달라져도 서로 낯선 얼굴은 없었다. 교통사고라고 했다. 서울에 거주하던 그는 추석을 맞아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오던 중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한 것 같다고. 동창은 즉사했고 옆자리 아내는 중상을 입고 입원 중이라 썰렁한 빈소는 바로 밑의 동생이 지키고 있었다. 충격을 받으실까 노모한테는 알리지 않았다고. 어차피 90세 넘은 고령에다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니 굳이 사실대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장남이 죽은 것도 모르고 목 빼고 기다리는 노모에게는 내려오기로 한 아들이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오게 되었다고 적당히 얼버무렸다고 들었다. 급하게 사람이 간 데다 사고가 난 지점이 고향 가까운 곳이라 구태여 거주지 서울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지만, 되도록이면 노모 곁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하고 싶었던 형제자매, 고향 친척들의 마음도 작용했다. 아무리 다 큰 자식이라 해도 집에 다 와서, 엄마 곁에서 죽고 싶었던 것 같다는 말을 보태며. 나는 마침 추석을 쇠러 3일 전부터 고향에 머물고 있었다. 내게도 고령의 어머니가 계시니. 남편이 7년 전 떠난 후부터는 명절에 고향 친정을 찾는다. 시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당연히 시댁에서 지냈지만 남편에 이어 시부모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아가신 후에는 친정엄마와 오롯하게 보내고 있다. 비보는 작은 마을에 삽시간에 퍼졌다. 나뿐 아니라 명절 맞아 고향을 찾은 동창생들이 더러 있었기에 뜻하지 않게 모두 장례식장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식당이나 슈퍼마켓 등 자영업을 하면서 고향을 지켜온 동창들을 제외하고 타지에 나가 사는 동창 중에 몇 년에 한 번이나마 얼굴 보는 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얼굴도 있었다. 그는 후자에 속했다. 그가 고향을 찾은 것은 20년 만이라고 했다. 결혼 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가 가족은 그대로 있고 본인만 사업 관계로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게 3년 전이라고. 재정착하느라고 나름 바빠서 고향을 찾은 것은 그해가 처음이라고 했다.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20년 만에 발걸음을 한 것 같다며 농담을 진담처럼 해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나는 사별녀, 그는 엄연한 유부남 그와 나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우리는 30분 거리를 걸어 통학했는데 집 방향이 거의 같아서 함께 등하교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둘만의 내밀한 추억이나 은밀한 기억이 있지는 않다. 나는 선머슴 같은 기질이라 사춘기 이성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기엔 뭘 한참 몰랐고, 그는 그대로 그 나이의 보통 남학생이었을 뿐 여학생의 마음을 섬세히 읽을 줄 안다거나 감수성이 예민한 편은 아니었다. 그랬다 하더라도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때 좀 특별한 관계였더라면 하는 것은 지금의 내 마음이 빚어낸 환상이자 뒤늦은 달뜸 탓이 아닌가. 그때 그랬기에 그와 내가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중년 아줌마의 소녀적 감성이 빚어낸 통속적 로맨스라도. 그럼에도 나는 그가 반가웠고 그도 나를 반겼다. 특별한 관계는 이제부터면 되지 않나.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20년이나 지난 후에야 비로소. “동창 녀석의 죽음이 우리를 연결해줬다고 하면 이기적이고 잔인한 말 같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우리가 좀 더 일찍, 아니 아주 많이 일찍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을 때 사귀기 시작하고 그 인연을 따라 맺어졌다면 너도 나도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의 말에 내 가슴은 또 콩닥이며 설레었다. 죽은 남편만 불쌍하지. 단언컨대 내 결혼 생활은 불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남편은 나를 많이 아껴주던 사람이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며 큰돈을 벌어오진 못했지만 성실하게 가족을 챙겼다. 그러고 보니 남편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운전을 하다 보니 사고 위험에 늘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어느 날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하여 의식을 잃고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금슬이 좋았기에 혼자 살아온 지난 세월이 더 외로웠고, 누군가를 만나 빈자리를 메우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하던 때에 그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엄연히 아내가 있고 대학생 두 자녀가 있다. 유부남인 그와 나는 처지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귐은 깊어지고 있었다. 차 한잔이 밥이 되고, 밥자리가 밤자리, 잠자리로 이어졌다. 한번 열린 마음과 몸은 거침이 없었다. 7년간 굳게 닫혀 있었으니 더. 뻔한 레퍼토리라 해도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는 아내와 곧 이혼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사업을 핑계 삼아 한국과 캐나다에서 별거 중이라고 했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존재라지 않나.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삼각관계 질투의 덫에 걸린 나 그러나 정작 일은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세상 떠난 동창의 아내와 그가 자주 만난다는 게 아닌가. 내가 그와 사귀는 줄 알 리 없는 내 친구가 가십 삼아 한 말이 나한테까지 들려온 것이다. “장례 마치고 그 아내의 문병을 갔던 모양이야. 좀 어색한 그림이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남편을 창졸간에 잃은 데다 아내도 많이 다쳤으니 위로차 문병할 수도 있겠지. 근데 병원 출입이 너무 잦은 게 수상한 거지. 서울 사는 가족들이 간호하기 힘들다며 서울 병원으로 옮기자고 하는데도 본인이 마다했다잖아. 남편 고향이지 본인은 아무 연고도 없으면서 말이야. 아마도 두 사람이 자유롭게 만나려고 그런 것 같아.” 명치쯤이 타는 듯 아리면서 가슴에 쿵 소리가 났다. 머릿속에서는 ‘웅~’ 하고 사이렌이 울렸다.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그렇다면 나와 만나면서 동시에 그 여자도 만났다는 건가. 캐나다에 있는 그의 아내가 아닌 연적(戀敵)이 따로 있었다니! 이 무슨 전혀 예상치 않은 삼각관계인가! “죽은 동창의 아내를 돌보는 야릇한 상황이라니, 소설 쓰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 사람 캐나다에 가족이 있다지? 근데 그 여자한테는 돌싱이라고 속였다나 봐. 그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사람이 있어. 그 말을 하는데 그 여자 얼굴이 한껏 달떠 보이더래. 남편 죽은 여자 낯빛이 아니더라나. 사랑에 빠진 얼굴이 그런 얼굴이라지 아마?” 이어지는 친구의 말이 귓전에서 웅웅대며 가슴에서 홧홧한 질투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가 정말로 그 여자와 만나는 사이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어차피 싱글도 아닌 놈이니 한바탕 잘 놀았다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 굶주려 있던 차에 그렇다고 아무 놈하고나 할 수는 없고 그래도 좋아하는 놈하고 한 게 어디야? 좋아. 까짓 거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거야. 그 여자의 존재에 대해선 아는 척할 것도, 거론할 것도 없이 조용히 물러나주는 거야. 그게 그나마 구겨진 자존심을 챙기는 길이고. 어차피 유부남이잖아. 여기서 끝내는 게 뒤탈이 없을 거야. 오히려 잘됐어.’ 진심도 아니고 위로도 되지 않는 말을 마음속으로 지껄이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결국 양다리 걸친 놈한테 속았다는 생각이 차오를 무렵, 그러고도 한참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그러나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노모를 뵈러 고향에 내려가 있다는 게 아닌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자주 가네.” “연로하시니까. 언제 또 캐나다로 불쑥 가게 될지도 모르고. 있을 때라도 자주 뵈러 와야지.” “근데 지금 자기 혼자 있어?” “혼자 있지 그럼 누구랑 있어? 아, 우리 어머니? 잠깐 텃밭에 나가셨어. 왜 인사드리고 싶어서? 장래 새 며느리 될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서? 하하.” 전화기 너머로 부스럭 소리가 난 것도 같다. 그 여자를 향해 “쉬” 하며 입술에 손가락 대는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아, 나는 꼼짝없는 덫에 걸린 것이다. 바야흐로 질투에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삼류 영화의 여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다.
- 2023-09-2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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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암과 폐섬유증 수술 후, 귀촌 통해 찾은 건강한 ‘새 인생’
-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
- 2023-08-1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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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돌봄 여름 나기… 진천군 ‘생거진천 치유의 숲’
- 햇살이 마냥 싱그럽다. 어찌나 밝고 환한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날들이다. 서늘한 숲과 푸름이 제맛인 곳에서 초록의 신선함에 한껏 파묻혀보고 싶은 날들이다. 짙어져가는 녹음 속을 호젓하게 걸으며 치유의 숲을 누릴 수 있는 적기다. ‘생거진천 치유의 숲’은 충북 진천군에서 조성한 산림욕장이다. 자연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여 건강한 삶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휴양 활동을 제공하는 곳이다. 바쁜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다고 생각될 때 숲을 떠올려보자. 숲속에서 풍성한 피톤치드와 숲 사이의 햇빛과 바람을 즐기는 힐링 여행은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살아서는 진천이 좋다는 뜻의 생거진천(生居鎭川)은 산과 물, 그리고 풍수적으로도 빠질 것 없는 여행지다. 더구나 조금 덜 알려진 편이고 인적도 드물어 유유자적한 힐링의 시간이 된다. 진천둘레길 힐링 숲으로 떠오른 무제산 무제봉 아래 치유의 숲은 사색하며 걷기 좋은 숲이다. 치유의 숲에는 입구의 전통 한옥 힐링비채와 마주 보는 산에 위치한 숯채화효소원 두 동의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4경로의 치유숲길은 물소리맑음숲길 700m(청각), 마음치유숲길 1.2km(촉각), 숲내음숲길 1.5km(후각), 하늘맑음숲길 2.8km(시각)로 이어졌다. 단아한 한옥 힐링비채는 건강치유센터다. 숯채화효소원은 숯온열치유실은 물론이고 세미나실을 이용해 자연과 함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두 군데 모두 다양한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구나 신청만 하면 참여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산림 치유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숲은 대체로 완만해서 아이뿐 아니라 몸이 불편해서 천천히 걷는 이도 큰 무리가 없는 산길이다. 신록으로 물든 숲에 들면 신선한 숲 내음에 자신도 모르게 기분 좋은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입구에서 몇 걸음 이동하면 곧바로 계곡이다. 물소리맑음숲길과 마음치유숲길 이정표를 따라서 가기만 하면 어려울 게 없다. 걷다 보면 산길 옆으로 쉼터가 보이는데, 그리 힘들지 않아도 잠시 앉아 숲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몇 걸음마다 네트벤치나 명상욕장이 나타나 편하게 누워서 숲 사이로 하늘을 보며 쉬는 시간은 세상 더없는 힐링 타임이다. 탁 트인 기분으로 ‘오늘 이 숲은 내 거다’ 해볼 만하다. 네트망에 한참 누워 있다 보면 청량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복잡한 생각도 사라지며 한없이 평온해진다. 그러다가 깜빡 잠들기도 하는 달콤한 시간이다. 걸을 때마다 푸름으로 꽉 찬 숲이 운치 있다. 깊은 숲으로 오를수록 빼곡한 나무 덕분에 피부로 느껴지는 서늘함이 기분 좋다. 건강한 숲길과 싱그러운 풍경에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묵은 체증도 사라진다. 산길 어디에나 피어난 야생화가 눈에 들어오고, 작은 옹달샘에서는 유영하는 물고기도 보인다. 운동 삼아 장시간 걷는 것이 습관인 사람들에게는 짧은 느낌일 수도 있으나 숲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치유의 숲 포인트다. 흙길과 데크가 반복되는 오감테마 치유 숲길을 거치고 나면 온몸이 기분 좋게 반응한다. 생거진천 치유의 숲에는 자연휴양림도 있어서 하루쯤 숲속에 파묻혀 지낼 수도 있다. 진천자연휴양림과 산림문화휴양관이 연결되어 있고, 무제산 무제봉 등산 코스가 이어진다. 무장애나눔길과 데크로드, 놀이 공간과 습체원의 운치 있는 자작나무까지 멋지게 조성된 치유의 숲이다. 숲의 다양한 환경 요소를 통해 인체의 면역과 이완을 얻는다.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정신적 건강의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는 시간,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떠나 숲을 다녀오면 비로소 부드럽고 투명해지는 일상이 이어진다. 더 나아가 삶의 활기와 자신감이 채워진다. 여름은 역시 숲이다. 아름다운 농업, 똑똑한 농장 ‘뤁스퀘어’ ‘농업 기술과 문화가 연결되는 미래 농촌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뤁스퀘어’(Root Square)가 충북 진천의 이월면에 자리 잡았다. 산과 들판, 골짜기와 하천, 논과 밭으로 펼쳐진 풍경이 떠오르는 농촌, 뤁스퀘어는 뉴노멀 시대의 농촌을 보여준다. 농업을 주 테마로 하여 미래 농업 복합문화공간 스마트팜 재배 시설이 생겨났고, 카페나 식당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미래 농촌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요즘 도심 근교나 시골에 카페나 책방을 차려놓고 핫플레이스로 등극하는 걸 종종 본다. 뤁스퀘어 또한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충북 진천군 시골 외곽에 자리한 그저 멋진 카페인 줄 알았다면 시종일관 놀랄 일을 마주하게 된다. 약 6000평 규모의 공간에 온실, 재배 공간, 책방, 음식점, 카페, 주거 공간이 각각 색다르게 마련되어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다. 뤁스퀘어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작고 귀여운 식물을 키우는 공간을 만난다. 뤁스퀘어는 스마트팜 농업회사 ‘만나 CEA’의 스마트팜 기술로 재배하는 작물들이 꽃보다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바질이나 유럽 상추 등인데, 이것을 구해 직접 집에서 키워보며 수확의 기쁨도 느껴볼 수 있다. 스마트팜 바로 옆 라운지엔 기프트 숍과 일식 레스토랑이 연결된다. 농사에 필요한 갖가지 농기구와 장바구니가 얼른 집어 들고 싶게 예쁘다. 텃밭을 가꾸고 가족이 먹을 식재료를 담을 도구들을 보며 작게나마 농사를 짓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식물이 자라는 것이 인테리어가 되고, 창밖 수(水) 공간을 내다보며 식사할 수 있는 소바공방의 냄새도 잘 어우러진다. 공방 창 너머로는 물을 가득 채워 하늘이 담기고 초록의 나무가 담긴 풍경이 눈앞에 있다. 은은하게 물속에 담긴 자연이 또 다른 힐링을 불러온다. 수(水) 공간 밑에 위치한 스템가든이야말로 이게 뭘까 하며 살피게 되는 놀라운 공간이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확 풍겨오는 냄새는 흙냄새와 이끼 냄새인가 싶기도 하다. 식물이 가득 차 있으니 당연히 풀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나무 향까지. 그야말로 자연의 냄새만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높은 천장고와 넓은 공간 안에 이끼 낀 바위와 식물들, 사방으로 낸 큰 창 밖으로는 주변의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펼쳐진다. 정원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진천을 둘러싼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실내로 들어온다. 논 한가운데서 백로가 먹이를 쪼아 먹는 풍경도 뤁스퀘어만의 전망이다. 평화로운 정경에 절로 눈이 시원해진다. 스템가든은 자연을 내부로 들였다. 물이 흐르고 물이 떨어지고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난다. 식물들 사이로 데크가 가로지르고, 꽃이 피어 있는 작은 언덕 옆 무대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 한 공간 안에 다양한 콘셉트의 공간이 자리하고, 이동하는 동선 또한 매력적이다. 이곳에서 자란 예쁘고 깨끗한 채소와 식재료가 브런치 메뉴와 디저트가 되고, 근사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문밖으로 나오면 잔디가 깔린 너른 광장이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잔디밭을 거닐거나 나무 그늘에 앉아 망중한을 보내는 이들이야말로 평화로운 전원의 그림 한 점이다. 잔디밭 저편으로 야외에 설치된 뤁스퀘어의 새로운 공간 LG스마트코티지를 관람하면 때때로 로망이던 현실이 여기 있음을 알 것이다. 작은 집 오두막이란 뜻의 코티지(Cottage)는 목가적인 시골 생활에 어울리는 건축이다. 이 모든 것이 마음 돌봄을 위한 공간이다.
- 2023-07-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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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졸업’ 할 수 있는 재가노인복지센터 ‘리하원’
- 인천 청라에 있는 ‘리하원’은 ‘자립지원형’ 데이케어 센터를 운영하면서, 방문 요양 서비스도 제공하는 재가노인복지센터다. 리하원의 가장 큰 특징은 이용자의 ‘자립’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기존 요양산업이 환자를 맡기거나 수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리하원은 어르신들이 잔존기능으로도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잔존기능은 자신의 의지로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지적, 신체적 능력 수준을 말한다. ‘목표’로 생활에 활기를 주다 리하원은 이용자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목표의식’을 준다.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는 요양 시설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서 작용하고 활기를 가지도록 하는 것. 주변 슈퍼마켓에 직접 다녀오거나, 옥상에 있는 텃밭에서 쌈 채소를 키워 직접 먹을 수 있는 활동 등을 펼친다. 일상생활에 동기를 유발하는 ‘리하뱅크’ 프로그램은 리하원 만의 고유 프로그램이다. 자립과 역할 지원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시설 내에서 재미를 느끼며 생활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해주고, 원하는 일을 선택하도록 한다. 그렇게 목표를 달성하면 소정의 코인을 주고, 어르신들은 리하원 내에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리하뱅크’ 프로그램을 2020년 장기요양 급여제공 우수 사례로 꼽고 장려상을 수여했다. 리하원에서 하는 목욕 서비스도 같은 맥락이다. 보통 주간 보호센터는 목욕 서비스를 잘 하지 않는데, 리하원은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더라도 스스로 목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개별관리카드도 직접 작성한다. 자기 선택과 자기 관리를 목표로 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이 카드를 자리에 두고 생활하는데, 카드에 적힌 데이터들은 이후 리하원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데 활용된다. 어르신들은 리하원에서 하루에 6~7시간을 보낸다. 리하원은 어르신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담아 공식 유튜브에 브이로그처럼 올린다. 요양 시설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없애고, 보호자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활동이다. 영상 촬영과 편집은 임기웅 대표가 직접 하고 있다. 개인별 데이터 기반,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 스스로 자립하면서 목표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리하원은 ‘개인별 맞춤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오전에는 단체로 체조하고 오후에는 인지, 신체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마치 대학 강의를 수강하듯이 어르신들은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 임기웅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코리아 대표는 “다른 시설들은 대부분 정해진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리하원은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코리아는 리하원 본사로, 모회사는 일본의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다. 어르신들 각자의 상황에 맞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모회사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의 시스템을 가져온 것이다. 일본의 요양 산업은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리나라 요양 산업은 주로 요양원과 같은 공급자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반면, 일본은 요양이 필요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이용자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보험자 주권’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혀있기 때문. 따라서 일본의 요양 관련 기업들은 대체로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선보이는데,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는 그 안에서도 ‘개인 맞춤형 자립 재활’을 추구한다. 요양 시설을 찾는 이용자는 저마다 살아온 삶의 방식, 처한 상황 등이 다르다. 잔존 기능도 제각각이다. 어르신들이 프로그램을 고를 때는 개인의 잔존기능과 선호도를 파악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그저 관람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프로그램들로, 일명 ‘커스텀메이드서비스’라고 불린다. 이용자 개개인에 따라 목적과 방향을 설계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요양 시설에서 정해진 강의에 많은 인원을 참여시키는 것과 달리, 스스로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소규모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자율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리하원의 또 다른 특징은 중증 어르신이 많다는 점이다. 임기웅 대표는 중증 환자를 받아주는 시설이 많아져야 한다고 봤다. “보통 데이케어센터에서는 중증 어르신을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도움이 많이 필요하시거든요. 결국 이분들은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중증 환자이더라도 요양원이 아니라 집에서 생활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의료 인력도 함께 상주하면서 경증, 중증 어르신 모두가 오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경증, 중증 어르신을 나누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리하원의 특징 중 하나다. 프로그램은 시설에 상주하는 전문 인력이 진행한다. 경증 어르신들은 예방 프로그램에, 중증 어르신들은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특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신체 활동에 관련된 것이라고. 시설을 ‘졸업’합니다 일본의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에서는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조기 발견→예방→졸업’의 개념으로 시스템을 운영한다. 시설을 졸업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한 개념이다. 임기웅 대표는 “노쇠라고 하면 보통 기능이 떨어지는 것만 생각하지만, 노쇠의 초기 진입 단계가 있다. 이때 노쇠의 시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면 장기요양등급을 받거나 장기요양 대상자가 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있다. 조기 발견으로 노쇠를 예방하는 것이다. 병원에 가면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듯이, 시설에서 이용자가 노쇠를 예방하고 학교 졸업하듯 시설을 졸업해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요양 시장 자체가 다르게 형성되어 있어서, 조기 발견에서 졸업까지의 시스템을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리하원은 ‘개선’에 초점을 맞춰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서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는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한다. 자립 지원, 데이터 기반 케어, 다직종 연계 케어다. 자립 지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자립지원형’이라는 리하원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두 번째로 데이터에 기반해 케어한다. 석 달마다 계획, 점검, 목표 달성, 확인, 노쇠도 측정을 반복한다. PDCA(Plan Do Check Action) 과정을 통해 개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시설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목표가 “가족들과 국내 여행을 가고 싶다”라면, 먼저 그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확인(잔존기능 확인)한다. 이후 목표에 맞춰 석 달 동안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들을 기록해두고, 3개월 후 목표 달성까지 어떤 부분을 더 해야 하는지 확인한 뒤 노쇠도를 측정한다. 만약 해당 기간에 목표치가 달성되었다면 다음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달성되지 않았다면 다시 3개월의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는 실제 이용자의 데이터를 반영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이 시설에 상주해 이용자를 분석하는 다직종 연계 케어를 실시한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케어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임기웅 대표는 요양 산업이 소비자에게 좋은 쪽으로 발전하려면 “보호자가 서비스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공급자 위주로 발전한 요양 시장은 케어가 힘든 중증 환자를 받지 않는다거나 하는, 공급자가 수요자를 역선택하는 상황을 만든다”면서 “시설이 얼마나 좋은지보다 이용자에게 얼마나 좋은 서비스가 있느냐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증 환자들도 올 수 있는 재가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돌봄뿐 아니라 의료서비스가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리하원에 의료 전문인력이 상주하는 이유다. 물론 데이케어센터에 의료인력이 상주하려면 운영비가 많이 들기도 하지만, 그보다 전문 인력의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임 대표는 “간호사나 물리치료사가 꼭 병원에서만 일한다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데이케어센터에서도 의료 인력들이 필요하고, 일할 수 있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는 의료 인력들이 일하는 곳이 병원뿐 아니라 더 다양한 곳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 많은 어르신이 요양원에 가지 않고도 자립하여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날이 오기까지, 리하원은 어르신들의 ‘자립’을 계속해서 지원할 예정이다.
- 2023-06-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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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 위협 지방 경제를 살리는 기적, 고향사랑기부금
- “지방에 집 한 채 지어 텃밭 가꾸며 맑은 공기 마시는 삶 좋지. 문화생활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그런데 이제 100살까지 산다는데 지역에서는 어떻게 먹고사나?” 지방 소멸이 코앞인 시대,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지역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방은 가난하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3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가난하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0% 내외다. 100% 자력으로 살기 힘들다는 의미다. ‘빚도 능력’이라는 우스갯소리는 통하지 않는 오래된 비참한 현실이다. 국비와 지방비가 8:2로 굴러가는 지방 재정 수입 구조 속에서 가난을 타개하려면 국비 사업에 목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정부 국비 사업은 엄청 많다. 하지만 국비 사업만 따라다니다 보면 지방의 자치나 자율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릴 수 있다. 국비 사업이 나올 때마다 지방비 매칭이 필요한가 여부를 따지게 된다는 지방공무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돈 들어가는 사업이냐, 남의 돈으로 하는 사업이냐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사업에 접근하면 좋은 사업 결과가 나올까 싶다. 결국 악순환의 개미지옥에 빠질 게 분명하다. 아직은 가능성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타개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방이 자력으로 노력해서 돈을 확보하면 된다. 지방세를 높인다든지 지방 출신으로 수도권에 가서 크게 성공한 출향민으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 어떤 지방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자. 기부금을 1년에 500만 원까지 보낼 수 있다. 여러 곳에 나눠 내도 무방한데 세액공제가 100% 되는 것은 10만 원이 최대 금액이다. 때문에 여력이 된다면 10만 원씩 50곳에 기부하면 기부자는 완전히 세액공제를 받아서 좋고 돈 받은 지자체는 기부받아서 좋다.(10만 원 초과 금액은 16.5%를 세액공제) 게다가 기부금의 30%는 고맙다며 답례품도 받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1타 3피의 만만세 대작전이다. 바로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금’이 그것이다. 이 작은 희망이 거센 기부금 열기로 이어져, 국비에 목맬 필요 없이 완전히 자립하여 자기 지역만의 자금으로 자체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게 되었다는 사례도 있다. 일본이 2008년부터 시행한(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금의 원형인) 고향납세 이야기다. 2021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고향납세 기부 건수와 금액은 4447만 건, 8302억 엔에 달한다. 일본 기부자들은 돈이 많고 지역을 너무도 사랑해서 이렇게 많은 기부가 이루어진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남의 지갑을 열기 힘들 듯이 돈이 오가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누가, 왜 내는가의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기부율은 119개국에서 88위 수준이다.1) 정치인에게든 시민단체에게든 북극곰을 살리기 위해서든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그 지방이 내 고향이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먹고살기도 바쁘다. 답례품으로 기부자를 현혹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일본의 많은 고향납세 기부 플랫폼에서는 상위에 랭크되는 답례품 목록이 나온다. 멜론, 성게알, 털게 등이 늘 상위에 오른다. 지방 특산품을 싸게 구입하면서 좋은 일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색 답례품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지역에서는 ‘무료 보육을 실시하고 싶어요. 도서관에 가면 책도 보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도서관에 온 할머니들과 편하게 전통놀이도 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지역 전체에 무료 전기 셔틀버스도 운영하고 싶어요’라며 지역의 노력을 알리는 것이다. 그런 소식을 본 사람이 만약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일단 재미있고 좋은 일이니 기부를 해봐야겠다. 내 기부금이 잘 쓰이는지도 궁금하고, 혹시 내 아이를 키울 만한 곳인지도 모르니 가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보니 놀랍게도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돈이 잘 쓰이고 있고, 얼른 나도 이주해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지방에서 재미있고 신나게 살고 싶다. 바로 물품 답례가 아닌 정책 답례로 성공한 일본 가미시호로 지역의 이야기다.2) 이처럼 꼭 물품 답례가 아니더라도 정책 답례라는 방식이 가능하다. 정책 답례가 이루어지려면 지방도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정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좋게 평가할 수 있는 지방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리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방도 성장하고 튼튼해질 수 있다. 바로 이게 기부의 선순환 효과다. 그러나 아직은 꾸준한 기부를 통해 지방이 발전할 수 있다는 그 좋은 의미가 현실로 나타나기 어렵다. 고향사랑e음 플랫폼이나 농협에서만 기부가 가능하지만, 민간 기부 플랫폼이 열리거나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든다면 기부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이제 4개월이 지났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요즘 세대는 자기 고향이라는 개념보다는 할아버지 고향 정도의 개념만 있다고 한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내 고향이라는 사람도 있다. 고향이 뭔지도 모르는데 고향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반드시 사랑하지 않아도, 반드시 화려한 답례품을 받지 않아도, 참신하게 노력하는 지방을 찾아서 기부한다면, 그런 곳으로 내가 이주해 행복을 공유하는 기적 같은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 1. 영국자선지원재단(CAF)의 2022년 세계기부지수 기준 2. 윤정구·조희정 역. 2021.‘시골의 진화: 고향납세의 기적, 가미시호로 이야기’, 서울: 더가능연구소.(黑井克行. 2019.‘ふるさと創生: 北海道 上士幌町の キセキ’. 木樂舍.)
- 2023-05-3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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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이 곧 지옥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지만”
- 김제천(69, 영동자연호두농원)이 아내와 함께 영동군 산골로 귀농해 호두나무 농원을 경영한 지 올해로 15년째. 농사 기술도, 안목도 푹 익었을 연륜이다. 성취한 것의 수효가 드물지 않을 경력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소득은 여전히 신통치 않다. 하품 한 번 늘어지게 해볼 겨를 없이 부지런히 뛰었지만 손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다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구겨진 기색이 없다. 웃음이 흔하게 터져 나온다. 난처한 현실을, 남모를 애환을 얼버무리는 웃음이라기보다, 불운과 부진을 통째 이의 없이 받아들여 차라리 긍정하는 심리의 소산일 테다. ‘뭔가 미묘한 간계가 침투해 나를 고생길로 데려간 건 아니지 않은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김제천은 귀농으로 치르는 홍역의 책임이 일면 섣불리 일을 저지른 자신에게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김제천의 농원은 완전히 외진 산중에 있다. 마을은 저 너머 멀리에 있어 고독을 벗 삼기에 적격인 곳이다. 숲속의 공인된 가수들인 산새들만 이따금 지지재재 노래할 뿐 별반 들려오는 게 없다. 산세가 기차게 수려한 것도 아니라 경관에 넋 놓고 종일 해찰하는 폐단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 즉 잡념 없이 일에 홀린 듯, 종일 농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기에 딱 좋은 입지다. 게다가 김제천은 ‘뭐든 자청해 덤벼든 일에는 갈 데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의 소유자다. ‘멍 때리기’나 게으름 피우기는 당최 적성에 맞지 않다. 해서 늘 일에 묻혀 살아왔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몸을 쓰겠다는 투로 부단히, 부지런히, 농사 하나에 전념하며 15년 세월을 살았다. 그는 대전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귀농했다. KT에 근무하다 뜻한 바 있어 명퇴를 하고 이 후미진 산골짝에 들어왔다. 애초 농사에 입문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물 좋고 산 좋은 시골에서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며 한가하게 살고 싶었던 거다. 유유히 노닐기를 생활의 중심에 두고서 인생의 가을을 참신하게 누리고자 했다. “귀농보다 귀촌하는 기분으로 이곳에 자리 잡았다.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내려온 게 아니었다. 부부 둘이 먹고살기에 지장 없을 정도의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농업 소득을 바랄 이유가 없었다.” 터는 어떻게 마련했나? “귀농 전에 3만 평 규모의 임야를 사들였다. 마음을 내려놓고 한적하게 살기에 좋은 곳이라서. 그저 소소하게 텃밭 일구고, 가족이 따먹을 수 있을 정도의 몇몇 과일나무를 기르며 살기에 적당한 땅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땅을 살 때엔 신중하게 고민부터 하라는 충고는 고대 로마의 ‘농업론’에도 나오더라. 당신의 얘기는 널따란 임야의 활용 방안을 구상하지 않은 채 덜커덕 사들였다는 걸로 들린다. “별 생각 없이 매입했다. 면적이 넓은 데다 가격도 싼 편이라 일단 사들였으니까. 그렇게 시골 생활을 시작하고서 감나무, 포도나무, 다래 등을 몇 그루씩 심었다. 도시에 사는 손자들을 가끔 불러들여 자연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별 할 일 없이 지낸다는 게 예상보다 따분했다. 성격상 마냥 놀면서 지내지 못하겠더라고. 도시에서와 달리 일에서 해방돼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 있었지만, 딱히 몰두할 일이 사라지자 갑갑증이 몰려들었다. 그래 시작한 게 호두 농사다.” 호두를 작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작목 선정을 위해 임업진흥청 같은 곳에서 농업교육을 받았는데 호두 농사를 권했다. 임야를 이용한 과수 농사 가운데 호두가 유망하다는 얘기였다. 여느 과수와 달라 나무를 소독해주지 않아도 되는 등 관리와 수확에 용이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한결 쉽고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작목이라는 거였다. 이러한 홍보에 이끌려 호두 농사를 시작한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어떻게 다르던가? “재배부터 생산까지 일반 과수 농사에 필요한 공정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퇴치가 어려운 외래 해충의 발생에 따른 피해와 어려움이 컸다. 호두나무가 1000그루로 늘어나면서는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힘겨웠다. 다른 과수들은 관련 기관에서 생산물을 수매해주지만, 호두 유통엔 그런 시스템조차 없다는 것도 뒤늦게 안 약점이다. 이래저래 작목 선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착오가 있었던 셈이다.” 귀농 교육장 강사들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충고가 흔하던데. “강사들은 교과서적인 이론에는 밝다. 그러나 실제 상황엔 둔감하다. 농업의 현장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다는 거. 나는 이러한 정황을 미처 몰랐다.” 김제천은 귀농의 목적을 또렷하게 정하지 않은 채로 호두 농사에 뛰어들었다. 물샐 틈 없는 사전 준비와 구상을 하고도 일이 이상하게 풀려나갈 수 있는 게 귀농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그는 예상하지 못한 곤란을 수시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성실한 근로와 기민한 머리로 상황을 돌파하길 거듭했지만, 어쩌면 그의 내부에 풍성하게 서려 있을 강인하고 낙천적인 기질에 힘입어 주저앉는 시늉조차 해본 적이 없지만, 15년간 흘린 비지땀과 남모를 고뇌의 총량은 아마도 드럼통에 담고도 넘칠 정도일지도. 귀농 자체를 만류하고 싶다 고달픈 노역은 임야의 토질을 보강하는 데에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땅 거죽 하부엔 온통 돌투성이더란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이었던 것. 해서 그는 땅을 파 돌들을 끄집어냈다. 큰 돌은 정으로 깨부숴 파냈다. 그러곤 퇴비를 듬뿍 묻어주는 작업까지 손수 다 했다. 지하에 일일이 배관을 하는 관수 시설도 필수였다. 허리 휘어질 고생이 자심했을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야생 짐승들의 훼방도 그를 괴롭혔다지. “멧돼지들이 수시로 들이닥쳐 열매를 먹기 위해 호두나무 줄기를 마구 찢어놓더라. 청설모, 삵, 담비, 때까치 등도 방어하기 어려운 애들이다. 특히 무리 지어 날아와 호두 열매를 노련하게 파먹는 때까치의 실력엔 당할 재간이 없다.” 감전 효과를 발휘하는 전선을 설치하고, 심지어 대포 쏘는 소리를 내는 장비까지 동원해 방어하는 농가를 보자면 농사라는 게 실로 만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 옛날 전통사회의 농부들은 짐승들과 사이좋게 반반씩 나눠 먹는 걸 관습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게 차라리 현명한 걸까? “딱히 방비책이 없다. 그런데 짐승들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야야! 애들아! 적당히 먹고 가라. 너희들이 먹고 남은 걸 우리가 거두면 된다!’ 이렇게 체념하고 그냥 놔두는 거다. 그게 상책이라 생각해서다. 고만한 일로 속 끓일 게 뭐 있겠나?(웃음)” 호두 농사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은 어떤 것일까? “호두가 훼손되지 않게 열매를 따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이건 기계 작업이 불가능하다. 대나무 장대로 조심스럽게 털어야만 한다. 호두의 딱딱한 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일일이 끄집어내는 작업도 쉽지 않다. 펜치를 들고 하나하나 껍질을 까 형태가 손상되지 않도록 분리한다. 세심한 손놀림이 필요하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겨울철엔 주로 아내와 함께 이 작업을 한다. 농한기가 없는 게 호두 농사다." 연간 순수익을 말해줄 수 있나? “800만 원쯤 된다.” 저런! 너무 적다. “호두 농사의 수익성이 이렇게 열악하다. 그러니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나?(웃음) 잘나가는 포도 농가나 복숭아 농가의 수익에 비하면 10%도 안 되는 수준이니까 말이다. 다행히 연금이 있어 의식주 생활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귀농하려는 이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농사로 돈 벌기 어렵다는 거! 연금이라거나 믿을 만한 게 없다면 아예 시골에 오지 말라는 거!” 원점으로 돌아가 귀농을 다시 한다면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싶지? “복숭아 농사 정도가 좋겠지. 복숭아가 이 지역 특산물이기 때문이다. 귀농하려거든 부디 지역 특산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다. 생산 여건과 유통 구조가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농 자체를 만류하고 싶다. 형편이 된다면 귀농보다 귀촌을 해 농사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게 현명하다.” 성장하는 나무들의 신비로움 시골에서 느긋하게 살기. 족쇄 없는 영일(寧日)을 보내기. 그는 그런 걸 원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원했던 삶과 현재의 삶이 상당히 불일치한다. 그렇다고 낙심으로 찡그리고 살면 우습다. 별처럼 마냥 빛나는 삶이 어디에 있겠나. 그는 15년간 정당하게 일하고 호두나무들을 공정하게 대했다. 따라서 여전히 당당하다. 내가 기죽을 일 있나 봐라, 하듯 부진한 행진을 해온 호두 농사에 새삼 발동을 건다. 으슬으슬 진저리칠 만한 현실이지만 이왕 내친걸음 끝까지 가보겠다 한다. 농사 기술이야 이미 일취월장했다. 크고 알맹이가 꽉 찬 고품질 호두를 생산한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덕분에 배우고 깨달은 게 많다. 궁리 끝에 늘 도달하는 건 반성이더라. 삶도 농사도 반성으로 돌아보면 얻을 게 많다.” 산중에서 반성을 일삼아 뭔가 환해지는 게 있다면 그게 도인(道人)인데?(웃음) “어! 내가 도통하려나? 하하하. 여하튼 시골의 삶을 로망으로 삼은 이들이 많지만 돈 욕심을 다 내려놓지 않고선 어렵다. 귀농이 곧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의식주 걱정 없고, 몸 안 아프고, 게다가 괜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입에 매달고 산다면 그보다 나은 게 있을까. “내가 감성적인 인간은 아닌데 산골에 살다 보니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 자식처럼 아끼며 기르는 호두나무들이 우렁차게 성장하는 걸 바라보면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이건 깊은 감동을 준다. 이러한 재미에 내가 농사를 짓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호두 농사에 헌납한 15년 세월. 말 못 할 고통이 왜 없었으랴.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고통스러워야 살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통도 지옥도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김제천이 주는 귀농 Tip •시골 생활에 낭만적인 로망을 품은 이들이 많지만, 현실의 시골은 낭만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를 하자. •무턱대고 집이나 땅부터 사는 건 위험하다. 사전에 1, 2년 정도 농촌 빈집을 빌려 살아본 뒤 적응 가능성부터 판단하라. •부부가 뜻이 맞지 않은 채 귀농하거나 단신 귀농은 금물이다. 정착에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임야에 농사를 지으려 할 경우엔 인허가 사항부터 꼼꼼히 점검하고 진행하라. 지자체의 농촌활력센터를 찾아 문의하면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농산물 유통을 위한 공부와 고민을 많이 하라. 좋은 농산품을 생산해도 유통의 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숱하다.
- 2023-04-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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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을 풍요롭게 만드는 새로운 힌트 ‘관계인구’
- “지방에 집 한 채 지어 텃밭 가꾸며 맑은 공기 마시는 삶 좋지. 문화생활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그런데 이제 100살까지 산다는데 지역에서는 어떻게 먹고사나?” 지방 소멸이 코앞인 시대,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지역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관계인구’라는 말이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자원봉사가 끝난 후에도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계인구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2018년에 이 단어를 공식 채택했다. 지역 주민이나 뜨내기 관광객이 아니라, 관심 갖고 지역 상품을 계속 구매하고, 자주 방문하며, 기꺼이 자원봉사를 하거나, 아예 지역과 도시에 하나씩 두 개의 거점을 두고 생활하는(일본에서는 더블 로컬이라고 부른다) 등 지역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관계’하는 사람들이 관계인구다. 관계인구사업을 전개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전체 지자체의 65%가 관계인구 늘리기 사업을 시행하여 전국의 관계인구는 총 1800만 명에 이른다. 지역 정부는 지역 생활과 사람들을 소개하며 지역의 매력을 끌어내어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오래 그 안에서 삶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일종의 ‘지역 매력 표출 대작전’을 전개한다. 일상을 보여주고 ‘여기에 오면 당신도 할 일이 있고 꽤 살 만하다’고 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1월 1일부터 정부가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법으로 제시했다. 각종 혜택도 쏟아진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렇게까지 준다고?’ 할 만큼 지원사업을 꽤 많이 찾을 수 있다. 조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정 기간 집도 주고 체류비도 준다. 위기를 관계로 극복하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역이 ‘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적당히 많은 사람, 인프라, 밥벌이 그리고 괜찮은 문화가 있다면 굳이 위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25년 전 IMF 위기, 15년 전 글로벌 경제위기로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3년간의 팬데믹 위기가 빙하기처럼 사회를 얼어붙게 했다. 그 안에서 갑질, 번아웃, 공황장애를 외치는 피곤하고 절망적인 목소리가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막대한 지원금을 뿌린들 그 돈은 흉물스러운 거대한 건축물로 바뀐다. 석양이 물드는 지평선을 여유 있게 감상하며 오늘의 수확을 감사하고, 제철 음식으로 따뜻하게 차린 식탁에서 다정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모두 바쁘고 모두 피곤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역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는 대형버스를 타고 지역의 핫플을 방문하고, 소셜미디어에 올릴 사진을 적당히 찍고, 유명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오는 관광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한달살기처럼 오래 머물기도 하고, 워케이션처럼 일하면서 쉬기도 하고, 창업도 한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도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을 오가며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지역이 무조건 끌렸어요”, “여기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관계인구가 많이 만들어질 것만 같은 희망적인 의견들이다. 얼마나 지역을 좋아하면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까지 나왔겠는가. 사회적 거리가 관계로 변하려면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여전히 지역과의 끈끈한 관계보다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원한다. 전국을 철도 중심으로 연결하다 보니 대부분 지역은 긴 시간 동안 자차 운전으로 가야 한다. 병원 없는 곳이 많아서 ‘이 지역에서 아프면 그냥 죽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있다. 쇼핑몰, 갤러리를 가려면 차 타고 인근 도시로 가야만 한다. ‘문 닫는다’는 말이 상가뿐 아니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들린다. 한달살기 하려고 호기롭게 시골에 왔는데 벌레 보고 기겁해서 ‘나는 간다’는 말을 톡으로만 툭 던지고 야반도주하듯 하루 만에 사라져 주최 측이 황당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여유 있는 전원생활이 그리워 전원주택을 지어도 지역 주민이 ‘어서 옵쇼’ 하고 환대하는 것은 아니므로 ‘시골 사람들은 배타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각종 기회비용과 심리적 부담 때문에 관계 맺기 힘들다는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도 있다. 현실과 관계 형성 사이에는 큰 장애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재빠르게 더 나은 인생을 설계하며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전한다. 삶의 여유와 질을 가늠해보고 그 기회가 지역에 있다고 ‘착안’한다. 도시에서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하고 재미있는 사람도 많이 만난다며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지역도 더 좋은 환경을 함께 만들자며 외지인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고, 때로는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지역의 좋은 공기를 사라”며 호기롭게 외치기도 한다. 언제나 변화 가능성은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이다. 그 선택을 좀 더 확실하게 성공시키려면 기본적인 인프라와 교통 문제를 정부가 빨리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 2023-04-1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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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봄나들이 함께하기 좋은 도서
- 스마트 마케팅 이의훈·창명 카이스트대 교수가 펴낸 책으로 엔지니어들이 꼭 필요로 하는 마케팅을 정리했다. 저자는 엔지니어들에게 마케터와의 협력이 중요하며, 마케팅 작동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 몸과 마음을 살리는 녹색의 힘 식물 치유 박신애·인사이드북스 박신애 교수는 원예 활동이 우리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이유를 과학적 근거와 구체적 실험 사례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당장 집 안에 화분을 들이고 텃밭 가꾸기를 권유한다. 에이징 솔로 김희경·동아시아 1인 가구 시대, 비혼 중년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자신처럼 혼자 사는 40·50대 비혼 여성 19명을 만나 외로움 대처 방법, 노후 준비 여정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마이클 이그나티에프·까치 각기 다른 시대와 배경의 인물들이 주인공이다.그들이 절망의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디서 위안을 얻었는지 다뤘다. 그들의 이야기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위로를 전해준다.
- 2023-04-07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