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늘 궁금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왜 단단한 부럼을 먹는 것일까? 동지에는 왜 팥죽을 먹을까? “메밀묵 사려~ 찹쌀떡!”은 왜 겨울에만 들리고 여름에는 안 들리는 걸까?
겨울은 만물이 얼어붙는 시기다. 식물의 지상부는 시들고, 곰은 동면에 들어간다. 한의학에서는 겨울 3개월을 폐장(閉藏)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피부를 닫고[閉], 속으로는 열과 에너지를 저장[藏]하는 시기라는 의미다. 사람 역시 웅크리고, 살찌며, 피부는 두터워지고, 따뜻한 집 안으로 숨는다. 겉으로는 찬 공기와 많이 접하기 때문에 수족 냉증이 잘 생기고, 찬 바람에 감기, 폐렴, 중이염, 비염이 많이 생기며 피부가 많이 건조해진다. 속으로는 열이 몰리면서 중풍, 심장마비, 심근경색, 협심증 등 심혈관계 질환이 많이 발생한다.
겨울철에 적합한 음식은 찰진 음식, 따뜻한 음식, 견과류
첫째로 추운 북쪽에서 자라는 곡식(찹쌀, 찰기장, 밀, 메밀 등)은 찰기가 있다. 이런 찰기를 이용해서 면, 빵, 묵, 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러한 찰기는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면, 빵, 묵, 떡을 먹고 속이 뭉쳐 체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피부를 뭉치고 두텁게 해서 추위에 대비하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메밀묵 사려~ 찹쌀떡!”이라는 외침은 겨울철에만 들리는 것이다. 동지 팥죽에 새알이 들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메밀의 원산지는 바이칼 호, 히말라야, 동북아 등 아주 추운 지역이다. 메밀을 원료로 해서 만드는 메밀국수(소바), 냉면, 막국수는 원래 추운 지역의 겨울 음식이다. 이 음식들이 피부를 틀어막아 추위를 견디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면도 함흥냉면, 평양냉면 등 북쪽 겨울 음식이 유명하다. 일본의 소바도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나가노 현의 추운 고산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겨울철에 피부가 두꺼워진 상태에서 옷을 두껍게 입고 뜨거운 음식만 계속 먹다 보면, 내부에 열이 몰려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하기 쉽다. 겨울철에 중풍이 가장 많이 발병하는 이유다. 메밀은 성질이 차가워서 겨울철에 뜨거워진 속의 열을 식혀준다. 겨울철에 가끔 메밀국수와 냉면, 막국수를 먹어주면, 밖으로는 피부를 틀어막아 추위를 이기게 해주면서, 속으로는 열을 식혀주고 기름진 음식으로 탁해진 피를 맑게 해준다. 메밀이야말로 겨울철에 꼭 필요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설날에 떡국을 먹듯 일본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에 소바를 먹는 풍습이 있는데, 떡국처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계절과 관련된 식문화가 비슷한 데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뭉친 음식을 먹으면 잘 체한다. 체할 때는 떡 한 조각, 빵 한 조각에도 체한다. 이런 음식을 먹을 때 체하는 것을 막으려면 팥이나 매운 식재료(생마늘, 생파, 생무, 고추, 차조기 등)를 같이 먹는 것이 좋다. 붕어빵, 동지팥죽, 찐빵, 타이야끼에 모두 팥이 들어가는 것도 밀가루의 독이 뭉쳐 체하게 하는 것을 풀기 위해서다. 팥은 강한 신맛이 있어 뭉친 것을 잘 풀어주고 녹인다. 팥의 붉은 색이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전염병을 예방해준다는 속설이 있어 동짓날 팥죽을 먹기도 한다.
둘째로 체온 보존을 위해 염소고기, 양고기, 보신탕 등 따뜻한 음식들을 많이 먹는다. 중국 북부와 몽골 사람들은 추위에 버티기 위해 양고기를 많이 먹는다. 부추도 속을 따뜻하게 해서 추위를 이기게 해주므로 자주 먹는 것이 좋다. 그래서 겨울에 많이 먹는 만두에는 항상 부추가 들어간다. 부추만두는 콘셉트가 참 좋다. 만두피로 피부를 두텁게 해서 추위를 막아주고, 부추로 속을 데워 추위를 이기게 하는 음식이다.
으슬으슬 추울 때는 생강차나 고추, 마늘 등 매운 음식이 도움이 되지만, 장복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에는 겨울에 생강, 마늘, 파를 많이 먹으면 봄에 간과 눈이 나빠지고 흰머리가 나며 수명이 짧아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면해야 할 겨울에 매운 음식을 많이 먹어서 땀구멍을 열게 하고 정액, 피를 땀으로 내보내면 봄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보약 먹을 때 파, 마늘, 무를 먹지 말라는 말은 같은 의미다.
셋째로 견과류의 딱딱한 껍질은 내부의 엑기스는 꽁꽁 응집시켜놓고 외부의 세균, 바이러스 등 이물질은 완전히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정월 대보름에 견과류를 먹는 것은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다. ① 딱딱한 견과류는 정액, 진액을 갈무리하고 기침을 멎게 한다. ② 피를 맑게 해 겨울철에 자주 발병하는 중풍, 심장마비, 심근경색, 협심증 등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한다. 피가 맑아지면 부스럼 등 피부 질환도 예방할 수 있다. ③ 이빨은 뼈의 일종인데, 뼈 중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뼈에 자극을 주면 뼈가 더 단단해지고, 뼈가 단단해지면 기력과 면역력이 높아지고 장수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기공법에서는 이빨을 서로 부딪치게 하는 고치법(叩齒法)을 자주 실천한다. 딱딱한 부럼을 직접 이빨로 깨서 먹는 것은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따라서 겨울에는 연자육, 밤, 호두, 은행, 잣, 아몬드, 피스타치오를 먹어주면 좋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내열이 생길 수 있으므로 적당히 먹어야 한다. 하루에 한 주먹 정도의 분량이면 적당하다.
겨울철은 꽁꽁 얼어붙는 계절이므로, 갈무리를 잘해야 한다. 땀을 많이 흘리는 것도 좋지 않으며, 멀리 나다니는 것도 좋지 않다. 태양의 운행에 맞춰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좋다. 새벽에 찬 공기를 맞으며 운동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외면하고 늦게 자고 무리하게 일하곤 한다. 이렇게 겨울을 보내면 봄에 춘곤증이 심해진다. 겨울에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봄에 ‘spring’처럼 튀어 오르지 못한다.
겨울에 너무 따뜻하게만 지내는 것도 여름철 냉방병만큼 좋지 않다. 몸이 추웠다 더웠다 하면서 면역력, 적응력이 높아지는 것인데, 겨울에 춥다고 더운 방에서만 생활하면 면역력, 적응력이 떨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밖에 나가 찬 바람을 맞으면 금방 감기에 걸린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필자는 음식 솜씨가 없는 편이다. 솜씨를 부려 봐도 어쩐지 그 맛이 아닌 듯 내 맘에 안 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다고 요리를 아주 못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살아온 연륜이 있으니 음식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어서 어디서 먹어보았거나 본 음식은 어느 정도 흉내 내어 비슷하게 만들어 내며 맛있게 잘 만들었다는 칭찬도 들어보았다.
그러나 어떨 땐 너무 간이 세서 짜고, 설탕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달아서 낭패를 보곤 한다.
그래도 필자나 남편, 그리고 아들 내외는 불평 없이 먹는다. 그 중 유일하게 아들이 “좀 짠데요?”라며 건강에 좋지 않으니 싱겁게 요리하시라고 눈치를 준다.
얼굴 예쁜 마누라는 예쁠 때뿐이지만 음식 솜씨 좋은 마누라는 평생 사랑받는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데 좀 걱정되는 부분이다.
우리 엄마와 둘째 동생은 음식 맛에 대해서는 무척 예민하고 까다롭다.
필자와 필자의 친한 친구들은 음식점에 갔을 때 웬만하면 다 맛있다고 즐겁게 식사를 한다.
그러나 우리 엄마와 둘째 동생은 어느 음식점에 가도 불평을 한다. 먹기는 다 먹으면서 그러니 우습다.
엄마가 맛있다고 말씀하시는 음식은 오직 냉면이다. 필동에 있는 평양냉면을 즐겨서 외식이라면 좀 지겹도록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되었다.
그곳에서도 어느 날은 국물이 너무 맹맹한 걸 보니 육수에 물을 많이 탔나 보다 라든가 오늘은 정말 진국 육수로 아주 맛있었다고 평하신다.
요즘에야 엄마가 직접 요리하는 시간이 별로 없지만, 예전에 우리 엄마가 음식 만들 때는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우리 딸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엄마는 정확한 계량을 한다며 계량컵이나 계량스푼을 사용하셨고 재료도 필요한 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준비해야만 했다. 어찌나 세심하게 계량을 하고 신경을 쓰는지 요리하나 만들고 나면 녹초가 되어서 차라리 엄마가 음식을 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다.
필자는 음식을 대충하는 편이다. 간을 맞출 때도 눈대중으로 간장이나 소금을 넣는다. 그래서 짜면 물을 더 붓고 싱거우면 간을 좀 더했다. 재료도 파가 없으면 양파로 대체하였고 있는 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걸 보신 엄마는 음식을 무식하게 만든다면서 야단도 많이 치셨다.
문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만든 엄마의 요리나 필자가 툭툭 아무렇게나 쉽게 만든 음식 맛이 별 차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음식 한 번 하고 나서 힘들어 죽겠다며 눕는 엄마를 보면 속으로 웃음이 났다.
지금은 엄마가 음식 만들기를 잘 하지 않지만, 입맛만은 여전히 까다로워서 필자를 긴장시키고 있다.
엄마가 옆 동으로 이사 오신 후 필자는 별다른 건 아니라도 소소한 반찬이나 부침개라도 만들면 엄마에게 한 접시 갖다 드리고 있다.
부추전이나 채소전은 간장을 찍어 먹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솜씨를 부려 만든 음식은 매번 불평을 들어야만 했다.
“아이구! 짜다.”거나 “ 너 이렇게 먹다간 병 걸린다.” 그래도 엄마 생각하고 가져갔는데 이렇게 안 좋은 소리만 들으니 입술이 튀어나온다.
담부턴 가져오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만들면 한 접시 덜어놓게 된다.
어제도 냉장고에 부추가 남아서 좀 더 두면 물러버릴 것 같아 당면을 삶아 뚝딱 부추잡채를 만들었다. 필자 성격대로 쉽게 쉽게 만들었지만, 맛을 보니 필자 입맛에 딱 이다.
자신 있게 엄마에게 한 접시 들고 갔더니 마침 점심 전이라며 반기셨다.
다 드시고 나더니 짜다며 어떻게 이렇게 짜게 했느냐고 불평을 하셨다.
이크-항상 싫은 소리를 들었으면서 입맛 하나 제대로 못 맞춘 게 속상하기도 해서 괜히 들고 왔다는 후회가 살짝 들었고 다시는 어떤 음식을 해도 안 가져오리라 삐쳤다.
그런데도 오늘은 삶은 감자가 있어 으깨서는 양배추 채 치고 오이를 썰어 소금에 절여 물기를 꼭 짜고 양파와 당근, 삶은 달걀을 썰어 넣고 마요네즈에 버무려 내가 가장 잘 만드는 샐러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에 넣고 삼각형으로 썰었더니 제법 근사한 모양의 샌드위치가 되었다.
나는 또 엄마에게 두 쪽 접시에 담아 가져가고 있다.
가면서 생각하니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언제쯤이면 엄마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좀 고민스럽지만 엄마의 솜씨를 물려받아 그런걸 뭐,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싫은 소리 한마디 들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발걸음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