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음식 솜씨.

기사입력 2016-08-08 16:23 기사수정 2016-08-29 09:12

▲필자가 정성껏 만든 샌드위치. (박혜경 동년기자)
▲필자가 정성껏 만든 샌드위치. (박혜경 동년기자)
필자는 음식 솜씨가 없는 편이다. 솜씨를 부려 봐도 어쩐지 그 맛이 아닌 듯 내 맘에 안 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다고 요리를 아주 못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살아온 연륜이 있으니 음식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어서 어디서 먹어보았거나 본 음식은 어느 정도 흉내 내어 비슷하게 만들어 내며 맛있게 잘 만들었다는 칭찬도 들어보았다.

그러나 어떨 땐 너무 간이 세서 짜고, 설탕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달아서 낭패를 보곤 한다.

그래도 필자나 남편, 그리고 아들 내외는 불평 없이 먹는다. 그 중 유일하게 아들이 “좀 짠데요?”라며 건강에 좋지 않으니 싱겁게 요리하시라고 눈치를 준다.

얼굴 예쁜 마누라는 예쁠 때뿐이지만 음식 솜씨 좋은 마누라는 평생 사랑받는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데 좀 걱정되는 부분이다.

우리 엄마와 둘째 동생은 음식 맛에 대해서는 무척 예민하고 까다롭다.

필자와 필자의 친한 친구들은 음식점에 갔을 때 웬만하면 다 맛있다고 즐겁게 식사를 한다.

그러나 우리 엄마와 둘째 동생은 어느 음식점에 가도 불평을 한다. 먹기는 다 먹으면서 그러니 우습다.

엄마가 맛있다고 말씀하시는 음식은 오직 냉면이다. 필동에 있는 평양냉면을 즐겨서 외식이라면 좀 지겹도록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되었다.

그곳에서도 어느 날은 국물이 너무 맹맹한 걸 보니 육수에 물을 많이 탔나 보다 라든가 오늘은 정말 진국 육수로 아주 맛있었다고 평하신다.

 

요즘에야 엄마가 직접 요리하는 시간이 별로 없지만, 예전에 우리 엄마가 음식 만들 때는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우리 딸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엄마는 정확한 계량을 한다며 계량컵이나 계량스푼을 사용하셨고 재료도 필요한 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준비해야만 했다. 어찌나 세심하게 계량을 하고 신경을 쓰는지 요리하나 만들고 나면 녹초가 되어서 차라리 엄마가 음식을 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다.

필자는 음식을 대충하는 편이다. 간을 맞출 때도 눈대중으로 간장이나 소금을 넣는다. 그래서 짜면 물을 더 붓고 싱거우면 간을 좀 더했다. 재료도 파가 없으면 양파로 대체하였고 있는 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걸 보신 엄마는 음식을 무식하게 만든다면서 야단도 많이 치셨다.

문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만든 엄마의 요리나 필자가 툭툭 아무렇게나 쉽게 만든 음식 맛이 별 차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음식 한 번 하고 나서 힘들어 죽겠다며 눕는 엄마를 보면 속으로 웃음이 났다.

 

지금은 엄마가 음식 만들기를 잘 하지 않지만, 입맛만은 여전히 까다로워서 필자를 긴장시키고 있다.

엄마가 옆 동으로 이사 오신 후 필자는 별다른 건 아니라도 소소한 반찬이나 부침개라도 만들면 엄마에게 한 접시 갖다 드리고 있다.

부추전이나 채소전은 간장을 찍어 먹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솜씨를 부려 만든 음식은 매번 불평을 들어야만 했다.

“아이구! 짜다.”거나 “ 너 이렇게 먹다간 병 걸린다.” 그래도 엄마 생각하고 가져갔는데 이렇게 안 좋은 소리만 들으니 입술이 튀어나온다.

담부턴 가져오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만들면 한 접시 덜어놓게 된다.

어제도 냉장고에 부추가 남아서 좀 더 두면 물러버릴 것 같아 당면을 삶아 뚝딱 부추잡채를 만들었다. 필자 성격대로 쉽게 쉽게 만들었지만, 맛을 보니 필자 입맛에 딱 이다.

자신 있게 엄마에게 한 접시 들고 갔더니 마침 점심 전이라며 반기셨다.

다 드시고 나더니 짜다며 어떻게 이렇게 짜게 했느냐고 불평을 하셨다.

이크-항상 싫은 소리를 들었으면서 입맛 하나 제대로 못 맞춘 게 속상하기도 해서 괜히 들고 왔다는 후회가 살짝 들었고 다시는 어떤 음식을 해도 안 가져오리라 삐쳤다.

 

그런데도 오늘은 삶은 감자가 있어 으깨서는 양배추 채 치고 오이를 썰어 소금에 절여 물기를 꼭 짜고 양파와 당근, 삶은 달걀을 썰어 넣고 마요네즈에 버무려 내가 가장 잘 만드는 샐러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에 넣고 삼각형으로 썰었더니 제법 근사한 모양의 샌드위치가 되었다.

나는 또 엄마에게 두 쪽 접시에 담아 가져가고 있다.

가면서 생각하니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언제쯤이면 엄마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좀 고민스럽지만 엄마의 솜씨를 물려받아 그런걸 뭐,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싫은 소리 한마디 들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발걸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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