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의미예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배우인 게 정말 좋습니다. 가능만 하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다시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 췌장암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도 연기에 방해가 된다며 진통제도 거부한 채 드라마 촬영을 마친 뒤 숨을 거둔 연기자 김영애의 말이다. 그녀는 KBS2 주말극 50회 촬영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4월 9일 66년간 치열하게 수놓았던 지상의 무대를 떠났다. 동시에 46년간의 연기자 삶도 마감했다. 에 함께 출연했던 차인표가 “김영애 선생님은 촬영을 시작할 때 분장실에서 50회 끝날 때까지 살아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목숨 걸고 연기했습니다. 직업을 떠나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끝까지 다하신 것에 고개가 숙여집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이 자신을 연기자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던 김영애는 스무 살에 연기를 시작해 에서부터 , , , , , , 그리고 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정교한 연기력과 빼어난 캐릭터 창출력으로 시청자와 관객에게 진정성과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012년 사극 에 출연할 당시 췌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수술한 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 , 등에 출연해 김영애의 대체 불가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과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줬다. 김영애는 몸이 아파 소리 지르는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허리에 끈을 조여 매고 촬영에 임했다. 그리고 죽더라도 연기하며 죽을 것이라는 평소의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다. “연기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기는 내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연기하다 죽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다.”
김영애가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또 한 명의 중견 연기자가 폐암의 고통 속에서도 연기 열정을 불사르다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2월 19일 7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김지영이다. 그녀는 1960년 영화 로 데뷔한 뒤 수많은 연극,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며 뛰어난 조연 연기를 펼쳤다. 죽기 직전까지 드라마 , 등에 출연했고 병세가 악화한 상황에서도 차기작을 준비했을 정도로 연기 열정이 남달랐다. 김지영은 57년 동안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그리고 TV 화면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연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비록 식모, 주모, 첩 등 시청자나 관객의 눈길을 끌 만한 멋진 배역은 아니었지만, 김지영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캐릭터로 승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그녀는 시대극, 사극, 현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 ‘조연 연기의 지존’으로 평가받았고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함경도, 강원도 등 지역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해 ‘사투리 대사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김지영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나는 연기가 너무 좋아. 나에게 다가온 고통과 불행도 연기할 때는 다 잊을 수 있어. 김지영 인생에 연기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없지”라고 말했다. “사망하기 두 달 전 병세가 악화해 호스피스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새로운 작품을 해야 한다며 운동을 하는 등 연기 의지를 드러내셨다. 5월에 새로운 작품을 할 예정이었다. 새 작품 준비를 하다 숨을 거두셨다.” 김지영 가족들의 전언이다.
“어머니 여운계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연기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나는 죽을 각오로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죽음이라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배우 여운계를 기억해줘 감사하다. 배우 여운계를 사랑해줘 감사하다.” 2009년 5월 22일 폐암으로 숨을 거둔 연기자 여운계의 딸, 차가현씨가 한 말이다. 암세포가 온몸을 덮는 순간에도 연기에 임한 연기자가 바로 여운계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암도 여운계의 뜨겁고 끝없는 연기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2007년 신장암 판정을 받고 SBS 사극 에 출연한 데 이어 수술 후 곧바로 드라마 에 복귀했고 2008년에는 폐암 진단을 받고도 일일극 에 출연했다. 여운계는 그녀의 삶 69년 중 48년을 연기자로 살아왔다.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다 1962년 KBS 탤런트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여운계는 수많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왔다.
여운계는 출연 당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연기자는 정년이 없어요. 죽는 순간이 정년이지요. 연기자는 연기를 펼치는 마당에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운계는 그녀의 말처럼 연기를 하다 생을 마감한 천생 배우였다. “대장암 다 치료됐어요. 드라마 다시 하니까 살 것 같아요. 드라마를 하면 정말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껴요”라고 밝게 웃으며 말했던 여배우는 김자옥이다. 대장암 수술 후 작품에 출연했던 김자옥은 얼마 안 돼 암이 폐로 전이된 상황을 알게 됐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2014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70년 MBC 탤런트 공채 2기로 연기를 시작해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멜로 연기를 펼쳐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을 받았던 김자옥은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수술 직후 만났던 그녀는 “투병생활 잘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금방 나을 거예요. 드라마 출연하면 좋은 글 많이 써줘요”라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암이 폐로 전이된 이후에도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시청자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출연 당시 쾌유를 비는 말을 하자 김자옥은 “걱정하지 하지 말아요. 빨리 나아 활동 열심히 할 거예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비록 실천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지만, 김자옥은 죽는 순간까지 연기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암의 고통 속에서도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공포에 굴하지 않고 연기자로서 삶을 선택했던 김영애, 김지영, 여운계, 김자옥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연극 연기의 지평은 확장됐고 연기자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했다. 비록 그녀들은 떠났지만, 자신이 남긴 작품들을 통해 연기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우리에게 익숙하던 20세기가 가고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낯선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 깨져나가는 경험을 하며 당혹감을 느낀다. 집값은 늘 올라가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내려가기 시작하고 은행 이자가 애들 껌값으로 전락했다. 콩나물 교실이 당연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아이가 없어 폐교되는 학교가 속출한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변화보다 더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은 믿었던 가치 체계가 무너지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이솝우화를 진리로 믿었다. 개미와 베짱이 중에서 개미가 진리이고 베짱이는 부도덕한 게으름뱅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서 개미들은 삶의 방향을 잃고 말았다. 믿었던 미래가 허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에 베짱이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어떤 인터넷 편지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어느 사이좋은 부부가 정년 은퇴 후의 여유로운 전원생활과 여행을 꿈꾸며 현재 자신들의 삶을 한없이 인색하게 살기로 작정했다. 현재보다 노후 대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한 노후를 맞을 수 없었다. 남편은 정년을 2년 앞두고 폐암으로 죽었고 아내는 그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시집간 딸이 혼자 사는 어머니 집에 들러 청소하던 중 벽장 속에서 종이 상자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두 부부의 전원생활에 대한 계획과 여행안내 책자가 들어 있었다. 딸은 차마 그것들을 치울 수 없었다. 부모님의 이루지 못한 꿈과 노후 계획들이 가득 차 있어서 감히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거웠기 때문이었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신파적 내용으로 여겨지겠지만, 이것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현실이고 맹목이다. 우리 세대는 오로지 미래만을 보고 현실의 고난을 견뎌왔다. 그러나 그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그런 허망한 미래를 위해 희생한 애꿎은 ‘현재’는 어찌할 것인가. 말하자면 지금 우리 세대의 좌절과 분노는 이런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인류 역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성장시대’에 나타난 기이한 신기루일 뿐이다. 영원히 성장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기대에 속아 만들어진 환상이라는 말이다. 사실 인간의 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계획한 대로 진행된 일이 얼마나 되던가. 계획이란 결국 충실한 현재의 누적일 뿐이다.
미래 언저리에 도달한 우리가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남루하다고 또다시 미래를 꿈꾸며 지금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영화 를 보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여자를 놓칠 것만 같은 제시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한다. “저와 함께 비엔나에서 내리지 않을래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이다.
현명할 것을, 포도주는 그만 익혀 따르고.
짧은 인생, 미래에 대한 기대는 줄이게.
지금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우릴 시기하며 흐른다네.
현재를 잡게 Carpe Diem, 내일을 믿지 말고.
- 호라티우스, 카르페 디엠 (기원전 65~8, 로마의 시인)
국립암센터는 우리나라 암 관련 통계를 한데 모은 자료집 국영문판을 발간·배포한다.
2008년 발간을 시작해 올해로 열 번째 발간되는 자료집에는 암 발생, 사망, 생존 관련 여러 기관에서 발표한 각종 통계를 비롯해 국내외 보고서, 논문 등 다수의 최신 암 관련 자료가 영역별로 수록돼 있다.
특히 제3차 국가암관리종합계획의 주요 추진과제에 기반해 암 감시와 예방, 조기검진, 진단치료, 완화의료, 인프라 순으로 작성됐다.
자료를 살펴보면 암발생의 경우 성별에 따라 증가추이가 높은 암종에 차이를 보였다. 최근 과잉진단 논란 있었던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1999년에서 2014년 사이 남성은 전립선암과 대장암이 증가세를 나타냈고, 같은 기간 여성은 유방암 발병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갑상선암은 과잉진단 논란 이후 급격한 감소세를 나타냈다. 조기진단 등의 이유로 암발생에 비해 사망률은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10년간 위암과 폐암, 간암의 사망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강현 국립암센터 원장은 “현재 우리나라 암 현황과 암관리사업의 성과를 알림과 동시에 향후 우리나라 암 관련 정책개발 및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료집은 국가암정보센터(www.cancer.go.kr)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며느리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3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 뭔가 정리가 안 된 듯 미진함이 늘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영정 사진이 필요하니 찾아놓으라는 아들 전화를 받고 사진을 찾다가 아들 방 한쪽에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흰 주머니를 봤다.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살짝 열어보니 새하얀 봉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며느리 장례식 때 조문객들에게 받았던 봉투들이었다.
필자는 그 봉투들을 하나씩 꺼내봤다. 봉투 주인들의 마음이 아주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감사합니다!” 봉투를 하나씩 꺼내어 거기에 쓰인 글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읽으며 저절로 나온 말이었다.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필자의 목소리는 너무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필자가 봉투를 꺼내보고 있는 그 방엔 아무도 없었다. 듣는 이도 대답하는 이도!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한 명 한 명 다 보였고 필자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는 아름다운 모습도 환하게 보였다.
아직 슬픈 마음이었지만 그들의 어려운 발걸음에 필자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후회 없도록 진심을 건네고 싶었다. 차가운 냉방에서 홀로 그런 예식을 치르고 나니 온몸에 냉기가 돌았다. 흰 봉투는 말이 없었지만 이 세상을 함께한 인연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다녀간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내를 잃은 아들을 위해 온 후배와 선배와 친구들 이름이 어느새 마음속에 빼곡했다.
그날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엄청 북적였다. 젊은 나이에 폐암 선고를 받은 며느리는 여섯 살짜리 딸을 두고 절대 가기 싫었을 테지만 가야만 할 이유가 있었나보다! 이런 생각에 미치는 순간 필자는 며느리의 물건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걸 직감했다. 전화번호도 정리해야겠지? 저 많은 책도 버릴 건 버려야지? 사시사철 며느리가 입었던 옷들도 누굴 주든지 아니면 버리든지 해야겠지? 세간들도 꼭 써야 할 것들만 남기고 정리하자….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던 머릿속을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죽음이란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도 안 주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며느리는 죽음이 눈앞에 와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자신의 주변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내맡긴 채 생이 닫혀가고 있는 시간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리고 통탄했을 것이다. 미약한 호흡이 끊어져가던 며느리의 모습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필자의 허탈감이 온몸을 휘감았더랬지.
그래 이 순간부터야. 지체하지 말고 정리하자.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직접 내 손으로 간추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필자는 마치 빛나는 보석을 움켜쥔 듯 봉투가 든 흰 주머니를 들고 아들 방을 나왔다.
지난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많은 것을 바꿨다. 일명 ‘알파고 쇼크’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 세계 미디어들이 2016년 10대 뉴스로 꼽을 만큼 인류에게 충격을 줬다. 의료계에서도 이런 충격적 현상이 진행 중이다. 암 치료를 돕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왓슨’의 국내 병원 도입이 그것이다. 이세돌을 넘은 알파고처럼 왓슨은 과연 名醫를 넘은 神醫가 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과학자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왓슨은 인간을 최초로 꺾은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 ‘딥블루’를 개발한 IBM이 선보인 또 다른 인공지능 프로그램. 이미 2011년 미국 TV 프로그램 제퍼디 퀴즈쇼에 참가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며 우승한 바 있다.
이후 왓슨은 의료용으로 특화돼 학습을 계속해왔는데, 의료용 인공지능을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왓슨은 2012년 처음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MSKCC)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며 암 환자의 진료를 터득했으며 현재도 교육을 받고 있다. 선진 의료기관의 자체 제작 문헌과 2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교과서, 12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전문자료를 학습한 왓슨의 암 진단 정확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져 연말이면 전체 암의 약 85%를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왓슨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각종 암에 대한 왓슨의 진단이 전문의와 90% 이상 일치되는 결과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미국암학회는 왓슨이 평균적인 전문의에 비해 초기 오진 가능성이 적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길병원에서 국내 암 환자 첫 진료
지난해 12월 5일은 국내 의료계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기록된 날이다. 가천대 길병원 진료팀은 대장암 진단을 받은 61세(당시) 남성 조태현씨에게 왓슨을 이용한 진료를 진행했다. 조태현씨는 이날 국내에서 인공지능으로부터 진료받은 첫 번째 한국인이 됐다. 왓슨은 의료진을 통해 입력된 조태현씨에 대한 다양한 사항들을 분석해, 불과 몇 초 만에 치료 방법을 제안했다.
길병원의 왓슨 도입에 대한 사회적 반향은 예상외로 컸다. 길병원에서 왓슨에게 진료받고 싶다는 문의가 기대 이상으로 많았고,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암 환자가 왓슨을 찾아 길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길병원 의료진은 “왓슨의 기대효과 중 하나는 인천 지역의 암 환자가 불필요하게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타 지역 환자까지 불러들이는 일종의 ‘간판’ 역할까지 하고 있다.
왓슨에 대한 의료계와 환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 지역 암센터인 부산대학교병원도 두 번째로 왓슨을 도입했다. 한국IBM은 부산대학교병원이 ‘왓슨 포 온콜로지’와 ‘왓슨 포 지노믹스(Watson for Genomics)’를 도입한다고 1월 25일 밝혔다. 이어 충남 지역 암센터인 충남대학교병원도 왓슨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공지능 의사의 암 치료 방법
그렇다면 왓슨은 암 치료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암 치료는 일반적으로 암인지를 확인하는 진단 과정과 암 확진 후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과정, 그리고 이 계획에 따라 수술과 항암치료 등을 진행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왓슨은 여기서 중간 과정인 치료 계획 수립에만 참여한다. 길병원은 암이라고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왓슨을 활용한 다학제 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길병원에서는 진단을 위해 왓슨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암 환자가 아니면 왓슨을 만날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암 환자의 치료를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암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왓슨의 역할이다. 물론 그에 따른 치료는 의사의 몫이다.
인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도 몰랐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비기를 발휘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전문의들이 모두 알고 있는 범위 내의 치료법에서 최적의 것을 골라낼 뿐이다. 치료 가능한 암종도 대장암, 직장암, 유방암, 폐암, 위암, 자궁경부암으로 아직은 제한적이다. 이후 난소암과 전립선암까지의 확대를 계획 중에 있다.
암 치료 계획을 세우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환자의 신체적 특징이나 암종 등을 고려하면서,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암 치료 가이드와 미국 MSKCC 전문지식 데이터 등 천문학적으로 방대한 문헌들을 참고해 환자의 치료법을 선택한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전문의들은 이미 치료가 많이 진행된 환자보다는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하는, 즉 최근 암 진단을 받은 환자 혹은 암이 재발된 환자에게 왓슨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의료진 능률을 높여주는 구심점 돼
길병원 의료진들은 왓슨 도입 후 2개월간 1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긍정적 효과 중 하나로 효율적인 의료진 간의 협업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방지하는 효과를 꼽는다.
길병원에서는 여러 과의 의사가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 과정에서 왓슨을 활용한다. 왓슨 암센터에는 8개 전문과 30여 명의 전문의가 있는데, 왓슨 치료시간에는 이들 전문의가 한데 모여 환자의 치료 계획에 대한 왓슨의 의견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치료를 진행할지 결정한다.
이런 방식은 타 병원의 치료 과정과 다르다. 일반 병원은 담당의가 환자의 치료 방법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필요할 때 타 분야의 전문의에게 조언을 얻는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를 한다. 다학제 진료 방식을 도입해 시도하는 병원도 있지만, 의사들 사이에서 이견이 발생할 경우 ‘최선’의 치료 방법이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 간 서열이나 이해관계에 의해 치료 방법이 결정될 수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왓슨 치료에 참여하고 있는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영생 교수는 “왓슨은 원활한 다학제 진료를 위한 훌륭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어요. 왓슨이 우선순위에 따라 치료 방법을 제시하면 의료진은 별다른 갈등 없이 그 방법을 검토하면 되죠. 왓슨 진료시간은 환자당 10분 남짓에 불과하지만, 왓슨의 의견에 대응하기 위해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사전 검토를 더 충분히 해야 합니다. 일종의 자극제 역할도 해주는 것이죠”라고 설명한다. 왓슨이 수많은 논문을 바탕으로 부작용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순식간에 계산해 검토하기 때문에 자칫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실수를 막아주는 것도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왓슨 진료비는 아직 ‘무료’
왓슨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면 왓슨이 근무 중인 병원으로 찾아가면 된다. 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도 가능하다. ‘명의’를 만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길병원은 왓슨에게 치료받고 싶은 환자가 늘면 왓슨의 진료시간도 늘릴 계획이다. 왓슨을 통해 치료 계획을 점검하고 원래 치료받던 병원으로 돌아가도 된다. 병원의 수익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중증 환자가 병원을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은 의사들이 권하지 않지만, 환자가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환자들이 궁금해할 왓슨의 진료 비용은 얼마나 될까? 유명 의사들처럼 특진비라도 받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 진료라서 아직 진료비를 청구할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길병원은 기존의 암 치료 비용 외에 왓슨의 특별 진료비를 받고 있지는 않다.
이후 진료비 청구의 근거가 마련되어 비용이 발생해도 왓슨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유효하다. 가장 먼저 왓슨을 도입했던 미국의 경우 그 효과를 ‘의료 민주화’라고 표현한다. 일부 병원에서만 받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고가 의료 서비스를 일반인들도 받게 됐다는 의미다.
길병원 인공지능기반 정밀의료추진단 이언 단장은 “왓슨 암센터를 이용하면 진단을 위한 검사 남용 예방, 진단의 오류 최소화, 최적의 처방, 진료비용 부담 감소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왓슨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암 진료 문턱을 과감히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전망 밝지만 보완도 필요
앞으로 왓슨의 진료가 암 치료의 표준이 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왓슨도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길병원 김영생 교수는 “아직 도입 초기이고 외국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인 만큼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왓슨이 한국인 환자의 특징이나 생활환경, 소득수준, 국내 건강보험제도까지 고려해주진 않으니까요. 고쳐나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개발사인 IBM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고, 병원 내에서도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왓슨 진료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를 역임한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 최윤섭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왓슨이 의료계 전체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으며, 이는 더 증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왓슨의 도입을 통한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이 중에 아직까지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왓슨을 포함한 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 분야로까지 확대 적용된다면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영향을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현재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변화는 불가피해보입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지난해 연말 편집부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열어보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간의 끝이 없는 탐욕의 수렁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승의 혼탁함 속에서도, 평생 맑게 살다 얼마 전 저 세상으로 떠난 대학 과동기인 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친구는 어느 지방대학 교수이면서 북한학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던 국제정치학 교수였는데, 그간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오퍼를 받았지만 끝까지 강단과 연구실을 지켜온 천생 학자였습니다. 친구는 그의 어머니께서 노산으로 낳은 막내아들로 몸이 약했는데 평생 담배를 염소같이 많이 피더니 결국 60대 중반에 폐암을 얻었고, 힘들게 치료를 해 몇 년 지나 완치가 되었나 했더니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서 병원에서 몇 달 있다가 한 열흘 전에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저와 몇 명 안 되는 과동기들은 천안의 공원묘지에 가서 그 친구를 전별했고 공원 입구에서 산 자들은 맛대가리 없는 육개장을 한 그릇씩 훌훌 먹고 그를 남겨둔 채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카톡을 통해 그 친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우들에게
먼저 갑니다.
아직 책을 더 써야 하고 그 밖에도 못다 한 일들이 남은 것 같아 아쉬움도 있지만
게으른 천성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으로 자족해야 하겠습니다.
새는 죽음을 앞두고 우는 소리가 더욱 아름답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함에 그 마음씨가 선해진다고 합니다.
저 또한 보다 조용하고 겸허해지고 싶습니다.
귀거래혜(歸去來兮·도연명)에서 도연명은 국화꽃 피고 술 익는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갔다지요.
저는 아지랑이 피는 봄날,
장다리꽃 위로 노랑나비, 흰나비 날아드는
어릴 때 뛰어놀던 서울 근교의 밭길을 걷습니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숲길도 보입니다.
그 너머로 모든 미련이나 원망, 죄의식도 훌훌 털어버리고
가을처럼 높고 푸른 하늘을 지나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곳으로 표표히 떠납니다.
인생이 한 조각 뜬구름이라 했거니와, 제게는 또한
한 가닥 미풍과 같습니다.
- ○○○ 드림
날짜는 없었습니다. 사후 발송 같습니다. 아마 떠나기 며칠 전 혼수상태 이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썼든지 또는 혼미한 상태에서 구술한 것을 가족이 적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간 후에 발송해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한 것 같습니다.
저는 발송 경위를 알아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 친구가 하늘에서 보낸 것이라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 편지를 보고 울컥 먹먹해지며, 그 친구가 떠나면서 봤을 것 같은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영화 의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우 배역)이 로마의 사악한 왕에게 비겁한 공격을 받고 죽어가면서 그가 보는 장면입니다. 어떤 좁은 문을 지나 고향의 들판과 아름다운 꽃, 그리고 가족들을 파노라마처럼 보는 것이지요. 아마 동양이나 서양이나 하늘로 떠나는 사람은 고향, 특히 어릴 적 놀던 그곳을 찾아가 보는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답장을 했습니다.
자네 말마따나 게으르고 느려터진 친구가 갈 때는 왜 그렇게 성미 급하게 떠났나?
지난 5월 어느 날인가 나도 암수술 후 6개월 정기검진 때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자네가 마침 이런 문자를 보낸 것 기억하나?
“조 사장! 수술 후 회복 잘되고 있으리라 믿소.
나는 지난달에 신우암이 또 생겨 좌측 신장 절제를 했는데
3년 전 수술한 폐암과는 다른 종류인데 모두 담배가 유력한 원인이라네.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면서 한 번쯤 평생 담배 핀 것을 후회해볼까 생각하네.
우리 중고차 잘 유지 보수하며 삽시다.”
이런 내용을 보냈어. 내게 말이야….
그 후 9월까지 몇 번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9월 이후 그렇게 급격히 악화될 줄 몰랐네.
그 성미에 아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만 결국 나는 자네 병문안도 못 가지 않았나? 어차피 우리들도 하나둘 자네 뒤를 따라갈 것이니 자리 잘 잡아놓게.
그때 가서 너무 고참 행세 하지 말고.
그는 천재였습니다. 제가 1969년에 서울대 문리대(지금은 사회대, 인문대, 이과대를 합친 단과대)를 차석으로 입학했는데
이 친구가 하필이면 같은 과에서 전체 단과대 수석 합격을 해서 나는 결국 수석도 못했고 등록금 면제 대상도 안 되게 만든 악연(?)이 있습니다.
그 당시 민주화 세대였던 우리는 극렬한 학생운동 대열에 들어가거나 일찌감치 고시공부를 해서 정부로 들어가는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민간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적었지만 말썽꾸러기 데모꾼 정치학도를 받아줄 회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제3의 길, 즉 드물게 학문을 하는 먼 길이 있었는데 그 천재는 그 먼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운이 없어서 박사학위도 매우 늦었습니다.
그는 그래도 늘 유쾌했고 잡학박사였고 잡담(농아리)의 대가로 이상파와 현실파가 다 좋아하는 뼈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늘 우리의 아지트였지요. 밥도 제일 많이 얻어먹었는데 어머니는 늦둥이 아들 친구라고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주었지요. 많은 추억거리가 있지만 그는 어떤 허세나 재주도 부리지 않고 올곧게 학자로만 일생을 살았고, 도대체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했고 담배만 열심히 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인간입니다.
언젠가 그가 속한 학회의 회장으로서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하는데 한전에서 조금만 협찬을 해달랬는데, 명분이 약하다고 못 해준 것이 지금 저는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비슷하겠지만, 저는 매우 우울합니다. 어차피 티끌 같고 미풍 같은 짧은 인생인데, 왜 그렇게 절제 없는 욕망의 화차를 맹목적으로 몰다 온 나라의 전복을 걱정할 정도로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어야 할 신뢰가 더욱 아쉬운 이때에, 쓸쓸한 만추의 어느 날 오후에, 주변머리 없이 제 가치를 지키다 맑고 아름답게 간
친구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아직도 담배 피시는 분들, 이 글 읽고 한 번쯤 금연 시도해보시지요.
과거 중년들이 생각하는 병원에 대한 개념은 한마디로 ‘어지간해서는 가지 않는, 가면 큰일 나는 곳’이었다. 내 가족을 위해 죽어라 일만 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병원은 적어도 선고 정도는 받아야 가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세대에게 병원은 아파서 가는 곳이 아니라 친구 또는 가족과 이별하는 장소로만 각인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세태가 달라졌다. 더 이상 자녀 손에 이끌려 가는 곳이 병원이 아니다. 미용실이나 목욕탕 가듯 필요하면 언제든 당당하게 병원을 찾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최근 ‘비즈니스 성형’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50대 전후 세대가 사업이나 사회활동에 도움을 받기 위해 진행하는 미용 성형 시술을 뜻한다. 면접 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취업준비생들이 선택하는 ‘취업 성형’과 비슷한 시술이다.
실제로 지난 6월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인 아이디병원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 병원에서 주름제거 시술을 받은 40대 남성 비율은 2012년 3%에서 2013년 10%, 2014년 16%로 증가했다. 50대 이상 남성 역시 같은 기간 1%, 8%, 9%로 증가했다. 자신을 위해 병원을 찾은 중년 남성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병원에서 주름제거 시술을 받은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고경영자, 전문직, 자영업 종사자 등이 42%를 차지했다.
‘동안’에 대한 시니어의 욕구 증가
이런 변화에 대해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성형외과 박은수 과장은 “단지 사업을 위해서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 후 사회활동이 늘면서 다양한 대인관계를 위해 외모의 개선을 선택하는 시니어들도 적지 않습니다. 좋은 인상이, 나의 외모를 돌보는 것이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시니어들도 깨닫게 된 것 같아요”라고 설명한다.
시니어들의 ‘동안’에 대한 욕구 증가는 피부과에서도 실감하고 있다. 보톡스 등을 전문으로 하는 한 피부과 개원의는 “예전에 시니어들이 병원을 방문하면 대부분 결혼이나 취업을 앞둔 자녀를 위한 상담이 대부분이었어요. 본인의 피부관리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자녀와 함께 시술을 받기도 하고, 자신만을 위해 상담하는 시니어들이 크게 늘었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형외과, 피부과 등이 몰려 있는 강남 병원들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이나 외국인들에 밀려 중년들은 ‘찬밥’ 신세였지만, 지금은 모시기 열풍이 불고 있다.
시니어들의 내 신체에 대한 관심은 ‘미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내 건강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지난 10월, 네이버 건강은 처음으로 사용자 대상의 건강 강연회를 개최했다. 헬스조선과 공동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치매를 주제로 진행됐는데, 시니어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네이버 건강 담당자는 “공고가 나간 당일에 400석 신청이 매진될 정도였습니다. 꼼꼼하게 메모하시는 분들이 많아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고, 최신 치료법이나 동향을 반영한 질문들도 많아 의학적 지식의 수준도 엿볼 수 있었죠. 건강은 네이버가 서비스하는 여러 분야 중에 구독 설정 사용자가 가장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고, 50대 이상 사용자 비율이 높은 분야입니다”라고 밝혔다. 시니어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강강연, 건강검진도 몸 돌보기에 필수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건강검진이다. 주요 종합병원들은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시니어 대상, VIP 환자 대상의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구성해 운용하고 있다. 또 휴식과 검진의 개념을 결합시킨 1박 2일 코스의 숙박건강검진 프로그램의 도입도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대병원 헬스케어 강남센터에는 건강검진 결과를 특진 교수가 직접 설명해주는 2박 3일 프로그램도 있다. 검진료는 600만~900만원 수준이다.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는 100명 회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주치의 서비스와 건강검진 프로그램이 결합된 멤버십 서비스를 운용 중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부에선 고가 건강검진 서비스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몇몇 암이나 일부 질환은 고가 진단 방법을 쓰지 않으면 조기 발견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선량 폐 CT가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고가의 검진 프로그램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꼼꼼히 따져가면서 건강상태에 따라 선택 항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라고 조언했다.
현재 시니어들은 국가와 가정을 위해 몸을 혹사하고, 마음 돌볼 시간조차 없이 열심히 살아온 세대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지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식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이번 호에서는 명상의 대가 안동환 코치를 만나봤다. ‘마음공부’를 통해 나를 알고 내 마음을 간수하는 법을 터득하면 좋겠다.
‘몸을 느끼고, 맘을 살피고, 숨을 다스리자’는 몸맘숨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데 최적이라고 한다.
서강대 사학과 76학번이고 올해 61세의 안동환 코치는 나이보다 훨씬 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활동하는 분야를 생각하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그는 대체의학의 심신건강과 코칭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수의 대기업과 정부기관을 비롯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강의와 수련을 지도해왔다. 그의 대표적인 브랜드는 동서양의 심신수련법과 코칭을 접목한 ‘몸맘숨 명상’. SK그룹의 손길승 전 회장, 최종현 전 회장 등 28년 동안 임직원을 대상으로 심기신 수련(몸맘숨 명상)도 지도해왔다.
안동환 코치가 몸맘숨 명상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젊었을 때 편협한 사고 속에서 보내다가 5년 동안 아팠습니다. 간, 눈, 기관지 천식 등 안 아픈 데가 없었어요. 그때가 스물여덟 살 무렵이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때 쓰러졌어요. 전두환 대통령 부류가 보기 싫어 속병이 났었나봐요(웃음).”
안동환 코치는 1956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런 태생이 영향을 미쳤을까. 그는 운동권 활동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기가 막혀서 기가 막힌 병’에 걸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투쟁가의 기질을 가진 인간은 아님을 깨달았다.
“이쪽 진영의 신념으로만 세상을 재단하고 행동으로 옳기려니 힘이 들었어요. 평소 측은지심이 많은데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의로운 성향이어서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사고를 흡수하기엔 벅차고 힘들었나봅니다. 그것이 몸에 영향을 끼쳤고요.”
고통스러웠던 젊은 시절, 몸맘숨 명상을 통해 극복
그가 쓰러진 곳은 도망 다니다가 숨어 들어간 시골 외삼촌댁이었다.
“얼마 동안 기절해 있었는지 몰랐어요. 1분인지 한 시간인지… 일어났는데 기운이 없는 거예요. 걷지도 못하고 눈도 확 나빠지고 변비와 설사 증세가 한꺼번에 나타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쓰러질 만큼 몸이 힘들었죠. 그렇게 무기력증이 심해지고 기가 막힌 병들에 의해 심신이 망가져갔죠.”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마음의 병도 점점 깊어갔다.
“동료들은 잡혀 들어가 있는데 나는 안 잡히고… 죽지 못해 살았지.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허리까지 망가졌어요. 오래 서 있지도 못하고 누워 있어도 아파서 잠도 안 오고. 그런데 양의학 병원에 가니 간수치도 정상이고 소변검사를 해도 문제가 없었어요. 내시경 검사를 해도 원인이 발견 안 되고.”
한의원에 가도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간경화다 뭐다 얘기만 많았고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5년 동안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며 투병을 했다. 그러다가 단전, 기공을 접하게 됐고 그때부터 급속하게 몸이 나아졌다. 기를 터득하면서 안경도 벗게 됐고 허리도 아프지 않게 됐다.
고집 센 마음을 유연한 마음으로 돌리는 게 마음수련
그는 아픈 와중에 역사 교사로 일했다. 한 시간 수업하고 한 시간 양호실에서 보내야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몸맘숨을 접하고 이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후 교사를 그만두고 지도자가 되어 3년간 보급활동을 하면서 SK그룹과 만나게 됐다. 그는 SK그룹의 손길승 전 회장, 최종현 전 회장의 마음훈련 코치를 도맡아 했다.
“나이가 들어 노화로 몸이 망가지기도 하지만, 몸을 다스리는 건 마음입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몸도 잘 다스릴 수 있어요.”
그는 몸과 상관없이 나이가 들면 마음도 늙어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마음이 늙어갈 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귀띔해준다. 첫 번째 부류는 고집이 세지는 사람들이다. 통계로 보면 상당수의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지면서 고정관념이 강해진다. 마음이 점점 굳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부류는 첫 번째 부류와 반대로 유연해지는 사람들이다.
“살다 보니 이쪽 얘기도 맞고 저쪽 얘기도 맞다는 걸 깨닫고 유연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수련은 고집이 세지는 마음을 유연한 마음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존경받으며 잘 늙어갈 수 있어요.”
그러나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런 걸까?
“마음공부 한다고 자격증 주는 거 아니잖아요? ‘마음이 다스려지는 거냐?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하죠. 전부 돈 되는 공부만 하고, 몸 관리만 하고. 마음관리는 신경도 안 쓰죠. 그나마 마음공부 한다는 사람들도 종교단체에나 가서 하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몸과 마음을 형식적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교회에 다니지만 종교로 마음공부를 하라는 말은 못 하겠어요. 종교를 뛰어넘는 마음공부를 해야 해요.”
그는 마음수련에서 호흡을 중시한다.
“호흡하는 것이 곧 마음관리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만들면 그는 숨이 거칠어지겠죠. 그런데 중환자실에 가보면 환자들 숨이 거칩니다. 즉 몸이 나빠도,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숨이 거칠어진다는 거죠. 그러니까 숨을 다스리면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그는 마음이 거칠어진 사람들의 몸을 살펴보면 비틀려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자세만 바르게 해도 신경의 흐름이 달라져 마음이 평정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숨 호흡법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들어보자.
“우선 자세를 바르게 한 다음에 배꼽 밑 아랫배에 의식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풍선처럼 배를 부풀려야 해요. 그다음엔 숨을 내쉬면서 풍선에 바람을 뺍니다. 그러면서 배꼽 밑 아랫배에서 무슨 냄새가 나나, 무슨 소리가 들리나, 어떤 일이 벌어지나 집중하면서 심(깊게), 장(크게), 세(가늘게), 균(균등하게) 하는 거죠. 배꼽에 마음을 놓고 보는 겁니다.”
시니어의 위기, 마음을 다스려야 해결된다
처음부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몸이 아파서 마음만이라도 편안해지려고 마음공부를 시작한다.
“젊을 때는 격렬한 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풀지만 점점 몸이 늙어지면 그렇게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동적인 방법에서 정적인 방법으로 몸과 마음을 관리해줘야 합니다. SK그룹에서 제가 강의를 할 때 마흔 살 이상 임원진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수련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마음수련은 정적이고 재미도 없고 지루해서 모두들 실천하기 어려워하죠. 하지만 이 방법은 사람다워지려고 하는 것이지 무슨 테크닉이 아니에요. 일단 맛을 봐야지요, 첫 숟갈에 배부를 순 없어요. 마음수련은 스스로에게 일종의 자격증을 주는 일과 같습니다.”
퇴직 후 위기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내가 왜 잘렸지?’ 하며 자책하는 마음이 심해지기도 한다. 아내와 딸이 뭐라고 툴툴대기라도 하면 ‘내가 월급 안 갖다 줘서 저러나’ 하는 생각에 화가 나는 날도 있다. 안 코치는 그럴수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종현 전 회장이 폐암으로 세상을 떴는데 몸맘숨 명상은 잘 하셨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계의 수장으로 최 회장님이 겪은 스트레스를 감안했을 때, 심신수련을 하셨기에 그나마 육십에 돌아가시지 않으시고 칠십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삶과 죽음에 결코 연연해하시지 않았고 책을 쓰시다가 죽음을 평화롭게 맞이하셨습니다.”
우리 고장이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는 표현은 이제 구식이 되어 버렸다. 물을 사먹는 것에 이제 겨우 익숙해진 것 같은데, 크게 한 번 숨 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많이도 변했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보니, 좀 더 깨끗한 공기를 찾게 된다. 그 해답이 바로 공기청정기. 그런데 공기만 맑게 해주면 그만일 것 같은 이 기계가 생각보다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올해 들어 미세먼지와 관련한 이슈는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애꿎은 고등어는 정부에 의해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돼 판매가 급감했다. 때문에 최근에는 고등어 판촉행사에 해양수산부 장관까지 나서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은 곧 공기청정기와 같은 관련 제품으로 쏠렸다. 2014년 업계 추산 3000억원 규모였던 공기청정기 시장은 지난해 5000억원대로 훌쩍 성장하더니, 올해는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 규모가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뿐만 아니라 공기청정 기능을 강화한 에어컨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마스크와 같은 위생용품 시장도 함께 성장했다.
미세먼지가 진짜 건강에 해로울까 의심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러나 2014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황사,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연간 700만 명, 즉 8명 중 1명이 대기오염에 의해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으로 인한 병원 입원율은 2.7%, 사망률은 1.1%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폐암 발생률이 9% 증가한다고 밝혀졌다.
미세먼지 등 좋지 않은 공기에 장시간 노출되면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후두염을 유발할 수 있으며 코를 통해 흡입 시 폐포를 통과해 혈액 속으로 침투하여 다른 질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면역체계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는 물론 건강한 성인들도 치명적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메디힐병원 정용수 과장은 “특히 노년층이 미세먼지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미세먼지가 뇌로 들어가 뇌세포를 손상시켜 뇌졸중이나 치매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미세먼지는 어린이 호흡기 질환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 어린 시절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성인이 된 후에도 폐기능이 떨어 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해요. 특히 오염된 공기 속 유해물질이 어린이 폐로 유입될 경우 알레르기 천식이나 비염 같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실제로 공기청정기가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될까 궁금하다. 그의 대답은 예스다.
“공기가 깨끗한 스위스나 캐나다에서도 예상 외로 공기청정기를 많이 사용합니다. 실외 미세먼지도 해롭지만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도 상당히 위해하기 때문에 공기청정기가 건강에 도움이 되죠. 필터로 실내 공기를 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기 중 부유하는 오염물질이 체내에 들어오지 않도록 기본적인 위생 습관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외출 시 마스크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공기청정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시중에는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다. 저가형의 대명사인 중국 제품부터 캐나다, 스웨덴, 독일 등 수입 제품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삼성과 LG, 청호나이스 등 국내 브랜드들의 선전도 돋보인다.
공기청정기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일반적으로 공기를 걸러주는 필터 성능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므로 당연히 고려 대상이지만, 이외에도 따져봐야 할 요소들이 많다.
필터 성능은 일반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먼지 입자의 크기로 나뉜다. 보통 미세먼지는 지름 10㎛(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 이하의 먼지를 말한다. 이 미세먼지를 걸러낼 수 있는 필터 규격을 PM10이라고 부르며, PM2.5(초미세먼지)와 PM1.0(극초미세먼지)까지 걸러낼 수 있는 제품도 출시된 상태다. 즉 PM1.0은 지름 1.0㎛의 먼지까지 걸러낸다.
하지만 잘 거른다고 능사는 아니다. 미세한 먼지까지 걸러내다 보면 그만큼 필터의 수명도 짧아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필터의 교체 주기는 어떤지, 또 필터 교체방식이나 구매 방식, 필터의 가격까지 비교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 성능이 좋다 하더라도 소모품을 구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부담된다면 공기청정기의 성능을 100%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필터의 유지관리 기능이 있는지도 고려 대상이다. 아무래도 공기 중 불순물을 끌어당기는 제품이다 보니 요즘과 같은 여름철에는 필터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고, 그 필터를 통해 배출된 공기는 곰팡이 냄새가 나기 쉽다.
의외로 소음도 중요한 고려 대상 중 하나다. 특히 영유아가 있는 가정은 밤까지 하루 종일 가동시켜야 하는데, 최저소음도 시끄러운 수준이라면 숙면을 방해한다. 20~30dB 정도라면 큰 지장이 없지만 50dB이 넘어가면 신경 쓰일 수준이다.
일부 공기청정기에서 사용한 헤파필터에서 검출된 OIT(옥타이리소씨아콜론) 검출 여부도 체크해야 한다. 최근 한 방송에서 인체에 해로운 OIT가 검출되는 필터가 공기청정기에 사용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로 인해 각 제조사들은 자사 제품에 문제가 없는지 외부 기관 등을 통해 시험 의뢰한 결과를 밝히는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기능의 유무에 따라 제품 가격이 달라진다. 저렴하게는 30만원대부터, 수입품은 6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품 성능만큼이나 잘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예를 들어 생선 구울 때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면 유증기(油蒸氣) 등으로 인해 필터의 수명이 빠르게 줄어들어요. 득보다 실이 많은 셈입니다. 또 정기적으로 센서 부위를 청소하거나, 필터를 제때 교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이렇게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원래의 성능을 어렵지 않게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흔히 환자가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것을 ‘의료쇼핑’이라고 표현한다. 의사를 믿지 않고 쇼핑하듯 병원을 골라 진료를 받는다는 부정적 뉘앙스의 표현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치료를 받아도 낫질 않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야 한다면 환자는 어떤 마음이 들까.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에서 만난 정순숙(丁順淑·69)씨가 그랬다. 무려 9년이나 떠돌아 다녔다. 채동식(蔡東植·41)교수를 만나기 전까지.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정순숙씨는 평범한 우리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는 중년 여성이다. 식품 유통사업을 하던 남편은 6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 딸은 결혼을 했고, 직장인인 아들과 인천 원당동에서 지내고 있다.
정순숙씨가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쯤의 일이다. 서울 녹번동에 살 때였다. 처음엔 그러다 낫겠지 했지만 통증이 영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특별히 거친 운동을 한 기억도 없고, 무릎에 무리를 줄 만한 생활도 아니었다. 특별히 무릎을 다칠 만한 사고도 없었다.
9년 동안 병원 3곳 전전…통증은 여전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 붙여도 허사였다. 그러다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퇴행성관절염이라 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해봤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양의학으론 낫지 않는가 싶어 이번에 찾은 곳은 한의원이었다. 침도 맞고 한의사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그래도 역시 성과는 없었다. 무릎 통증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다리 모양이 O 자형이라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죠. 여기저기 다 다녀봤는데도 낫질 않으니.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용하다는 강남의 정형외과였어요. 유명한 대학병원 교수님이 강남에 병원을 차렸다고 해서 찾아갔죠. 다행히 그곳에선 차도가 있었어요. 고통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생활에 큰 불편이 없을 정도는 됐죠.”
물론 의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랐다. 체중이 관절에 부담을 주지 않게 운동을 하라 해서, 동네 구민회관에서 수중에어로빅과 요가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열심히 8년을 다녔다. 집에서 강남까지는 적잖이 먼 거리였지만 무릎을 낫게 해준다는 믿음이 그녀의 다리를 가볍게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마 작년 봄에 꽃놀이 간다고 무리하게 등산을 한 것 때문에 사달이 난 것 같아요. 그래도 6년간은 꾸준히 복용한 약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는데. 작년 6월쯤부터 다시 무릎이 쑤시고 붓기 시작하더라고요. 절뚝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했어요. 다니던 병원에선 큰 문제 아니라고 하고. 그렇게 괴로워하던 차에 성당 수녀님께서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을 추천해 주셨어요. 호스피스 봉사를 위해 다니시는데 좋은 병원이라고.”
O 자형 다리 관절염 피하기 어려워
채동식 교수는 정순숙씨를 전형적인 ‘의료쇼핑’ 환자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이 병원에 오시기 전까지 많은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거치는 과정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서너 군데 병원에서 진단도 받으시고, 질환을 앓은지도 5년에서 10년 정도 돼서 오시죠. 그런 환자들은 이미 학습이 되어 있어 의학용어도 잘 이해하실 정도예요. 정순숙씨도 그런 전형적인 환자였습니다. 이런 환자일수록 가슴에 쌓인 것이 많아 저도 환자분에게 설명을 상세히 해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당시 정순숙씨는 퇴행성관절염의 마지막 단계, 즉 연골이 다 닳고, 연골판도 없고, 뼈와 뼈가 맞닿아 뼈까지 마모된 상태였다. 골세포가 죽어 그 자리에 구멍이 생겨 뼈가 약해지는 상태가 됐다. 보통 무릎이 아파지면 통증에 익숙해지고, 여기에 진통제 치료 등이 더해지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선택하는 것은 인공관절치환술, 즉 흔히 얘기하는 무릎인공관절수술이다.
퇴행생관절염은 진행 상황에 따라 크게 4단계로 나뉘는데 1, 2단계는 연골이 정상이거나 다소 균열이 생긴 상태, 3단계는 연골이 파괴되어 관절 간격이 좁아진 상태, 4단계는 큰 뼈돌기가 생기면서 뼈가 마모되는 상태를 말한다.
“수술은 좋은 치료법이긴 하지만, 수술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특히 65세 이하의 환자들에겐 문제가 됩니다. 인공관절수술 환자의 20%가 수술한 지 15년 이후 재수술하게 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65세 이전에 수술을 하면 교체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65세 전후로 맞추려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요즘 시니어들은 워낙 활동적이어서 최대한 본인 관절을 사용하는 기간을 연장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순숙씨같이 O 자형 다리로 인한 퇴행성관절염은 근위경골 절골술이란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O 자형 다리를 인위적으로 반듯하게 펴주는 수술이다. 다리가 휘어 무릎의 안쪽 관절에만 부하가 걸리는 것을, 수술을 통해 안쪽과 바깥쪽 관절 모두에 균등하게 부하가 걸리도록 변화를 주는 것이다.
운동량 줄면 관절염 더 악화
일반적으로 퇴행성관절염의 원인으로는 체중이나 운동 등으로 인한 기계적 마모와 노화로 인해 손상된 연골이 재생되지 않아서, 또는 무릎의 염증이 연골 세포를 파괴하는 것 등이 꼽힌다, 특히 노화와 함께 하체의 근력이 떨어지면 무릎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이런 불안정한 운동이 연골 손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채동식 교수는 외상 등으로 인해 무릎에 충격이 가해지면 꼭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특히 시니어일수록 말이다.
“정순숙씨처럼 다리가 O 자형인 분들은 퇴행성관절염을 거의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최근에는 수술(근위경골 절골술)을 통해 교정이 가능해졌지만, 그 전까지는 딱히 방법이 없었어요. 대신 무릎 안정성을 키워주는 운동, 무릎에 부하를 주지 않으면서 근력을 강화하는 비체중부하운동을 통해 인공관절치환술 시기를 늦추는 것뿐이었습니다.”
최근에 퇴행성관절염의 치료방법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한 연골재생술이다. 아직은 치료비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액이고, 치료제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원래의 연골과 똑같은 조직의 초자연골을 재생해냄으로써 환자의 관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기대를 받고 있다.
“퇴행성관절엄은 한 번 발생하면 환자의 활동량을 줄이고, 활동량이 줄면 근육량도 줄어요. 근육량이 줄어들면 대사량이 줄어서 인체 내 면역염증 반응도 약해지죠. 그러면 퇴행성관절염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돼요. 그러다 수술을 미루기까지 하면 시기를 놓쳐 방 밖으로 나오는 것도 힘들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치료를 통해 운동량을 늘리면 면역기능이 강화되어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비체중부하운동을 하며 비타민D 생성을 위해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쬐는 것도 잊지 마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어요.”
수술 후 양반다리도 가능해져
정순숙씨가 채동식 교수를 만나고 수술을 결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병원에 대해 대신 알아봐 준 아들도 병원과 교수님을 마음에 들어 했고, 상담을 통해 신뢰할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5년 10월 26일 오른쪽 무릎은 튼튼한 인공관절로 교체됐다.
“수술을 막 하고 나서는 고통이 엄청났어요. 누워만 있고 싶은데 수술하고 나서 바로 무릎 꺽기 재활을 해야 한다고 해서, 지팡이를 짚고 움직이려 애썼죠. 매일 수술한 무릎이 열나고 붓기를 반복해서 힘들기도 했고, 물리치료를 위해 아픈 무릎을 움직여야 해서 3개월 동안은 정말 괴로웠어요.”
인공관절이 몸에 적응하고, 몸이 인공관절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처음엔 무릎운동을 위해 고안된 기계에 몸을 맡기기도 했고, 동네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집에서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이런저런 운동을 스스로 하고 있다고 했다.
“집에서 가구를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 누워서 다리를 굽혔다, 폈다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그 고생을 하고 나니까 이제는 동네 산책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됐어요. 아파트 단지나 동네 주변을 한두 시간 걷는 것도 이젠 거뜬해요. 신기한 것 중 하나가 수술 전에는 아파서 할 수 없었던 ‘양반다리’가 된다는 것이에요. 보통은 수술하고 나면 안 된다던데. 교수님이 수술을 잘 해주신 덕분인가 봐요.(웃음)”
실제로 서양 환자들에 비해 동양 환자들의 무릎 인공관절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양반다리’다. 인공관절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좌식문화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정씨의 경우 수술도 매우 잘됐고, 재활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양반다리’는 무릎에 좋은 자세는 아니므로 피해야 한다.
건강한 두 다리로 여행 다니고 싶어
이제 간신히 수술한 다리에 대한 적응을 했지만, 정순숙씨는 또 한 번의 수술을 앞두고 있다. 수술하지 않은 왼쪽 무릎이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추석연휴 직후에 수술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 고생을 하고 나서 또 수술이라니 맘이 약해지지 않을까 했더니 각오가 대단하다.
“아이를 셋 낳은 엄마로서 수술보다 출산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아픈 수술이에요 무릎 수술은. 그래도 다시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어요. 그만큼 수술 후 달라진 무릎 상태가 무척 만족스러워요. 두 다리가 이렇게 건강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두 다리가 건강을 되찾으면 무얼 가장 먼저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여행이라고 했다. 아들이 보내줘야 갈 수 있는 여행이라, 어디 한 곳 가고 싶은 여행지를 속 시원히 답하지 못했다. 비행기 멀미가 심한 탓에 외국도 무리다. 그래도 씩씩하게 들과 산을 걸을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지 않을까.
이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정순숙씨의 마음 한구석이 계속 편치 않은 것은 역시 아들 때문이다.
“전부 다 아들 덕분이에요. 수술 전에는 치아가 말썽이어서 임플란트로 아들을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양쪽 무릎까지 수술해야 하니 말이에요. 게다가 집에서도 이제 집안 청소는 아들 몫이 됐어요. 제가 불편한 탓이죠. 수술 후에 침대가 편하다고 아들 덕분에 환갑이 넘어 처음으로 침대생활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붕 뜬 기분이더라고요. 이젠 침대가 아니면 잠이 안 오는 체질로 바뀌었어요.(웃음)”
인터뷰 내내 중간 중간 아들 얘기가 나올 때면 정씨의 눈빛은 달라졌다. 고마움에 그리고 미안함이 그녀의 눈을 촉촉하게 만든 것이리라.
그녀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환자들에게 전할 말을 부탁하자 손사래부터 쳤다. 의사도 아닌데 해줄 말이 무엇이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당부의 말을 했다.
“자기 몸은 자기가 관리해야 해요. 관리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가족의 짐이 되면 안 되니까요. 병을 예방하거나, 가진 병을 빨리 낫기 위해서라도 몸 관리에 신경 써주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