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3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 뭔가 정리가 안 된 듯 미진함이 늘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영정 사진이 필요하니 찾아놓으라는 아들 전화를 받고 사진을 찾다가 아들 방 한쪽에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흰 주머니를 봤다.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살짝 열어보니 새하얀 봉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며느리 장례식 때 조문객들에게 받았던 봉투들이었다.
필자는 그 봉투들을 하나씩 꺼내봤다. 봉투 주인들의 마음이 아주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감사합니다!” 봉투를 하나씩 꺼내어 거기에 쓰인 글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읽으며 저절로 나온 말이었다.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필자의 목소리는 너무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필자가 봉투를 꺼내보고 있는 그 방엔 아무도 없었다. 듣는 이도 대답하는 이도!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한 명 한 명 다 보였고 필자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는 아름다운 모습도 환하게 보였다.
아직 슬픈 마음이었지만 그들의 어려운 발걸음에 필자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후회 없도록 진심을 건네고 싶었다. 차가운 냉방에서 홀로 그런 예식을 치르고 나니 온몸에 냉기가 돌았다. 흰 봉투는 말이 없었지만 이 세상을 함께한 인연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다녀간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내를 잃은 아들을 위해 온 후배와 선배와 친구들 이름이 어느새 마음속에 빼곡했다.
그날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엄청 북적였다. 젊은 나이에 폐암 선고를 받은 며느리는 여섯 살짜리 딸을 두고 절대 가기 싫었을 테지만 가야만 할 이유가 있었나보다! 이런 생각에 미치는 순간 필자는 며느리의 물건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걸 직감했다. 전화번호도 정리해야겠지? 저 많은 책도 버릴 건 버려야지? 사시사철 며느리가 입었던 옷들도 누굴 주든지 아니면 버리든지 해야겠지? 세간들도 꼭 써야 할 것들만 남기고 정리하자….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던 머릿속을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죽음이란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도 안 주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며느리는 죽음이 눈앞에 와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자신의 주변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내맡긴 채 생이 닫혀가고 있는 시간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리고 통탄했을 것이다. 미약한 호흡이 끊어져가던 며느리의 모습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필자의 허탈감이 온몸을 휘감았더랬지.
그래 이 순간부터야. 지체하지 말고 정리하자.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직접 내 손으로 간추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필자는 마치 빛나는 보석을 움켜쥔 듯 봉투가 든 흰 주머니를 들고 아들 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