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맥주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좀 싱거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군요. 술꾼치고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나 싶어서죠. 애주가 중에서도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주나 와인 등 다른 술은 좋아하면서 딱히 맥주는 즐기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술의 청탁을 그리 가리지 않는 저도 한때 맥주를 멀리했는데 해외에서는 와인에 빠져 있을 때 그랬고 국내에서는 맥주가 맛이 없을 때 그랬었죠.
조직문화의 일환으로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밤 칵테일, 코리안 칵테일)나 소맥(소주 칵테일, 심플, 오로라, 레인보, 선라이즈 등등)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맥주가 좋아서 마시는 것과는 다른 거죠. 맛나게 잘 만든 칵테일이라면 몰라도 소주 칵테일은 되도록 멀리합니다.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올리는 장점은 있지만 술맛으로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기 때문이죠.
무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철이나 운동 또는 일로 땀을 많이 흘린 후, 마실거리로 맥주만큼 당기는 술은 없을 거예요. 전통주인 막걸리도 좋지만 아무 때고 막걸리를 마시자고 할 수는 없죠. 빈대떡 등 부침류나, 도토리묵 같은 무침류, 그도 아니면 김치 몇 조각이라도 앞에 놓여 있어야 막걸리를 마실 기분이 납니다. 매콤하거나 걸쭉한 전통 먹거리와 어울리는 게 시큼털털한 막걸리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외래주인 맥주가 걸쭉한 안주나 한식차림에 맞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안주에 어떤 술이 ‘맞다’, ‘안 맞다’를 잘라서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선택할 안주가 많다면 술 먼저 정하고 안주를 고르는 것이 애주가들에게는 더 익숙하겠지요.
음식과의 어울림을 따지는 데는 와인이 맥주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하겠습니다. 술과 음식의 조화(매칭, matching)를 진지하게 따지는 프랑스인들이 그런 매칭(Vins et Mets)의 전통을 만들어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맥주 종류도 많고 브랜드도 많아 어떤 맥주에 어떤 안주가 어울린다는 설명이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미식가나 애주가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만 고객의 눈을 끌기 위한 판매 전략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건 제가 아직 진정한 맥주 마니아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술과 안주의 매칭은 많이 마셔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 아닐까요(술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리오!).
지금, 맥주전쟁이 한창입니다. 대형마트에 가보면 새로운 우리 맥주 브랜드에 온갖 수입 맥주들이 가세해 진열대가 현란할 정도입니다. 눈이 즐거울 소비자들에게 맥주의 매력을 한껏 높이는 동시에 맥주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볼 수 있게도 해줍니다. 근래 ‘테라(Terra)’라는 국산 브랜드가 나와 엄청난 속도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데 7월 기준으로 출시 3개월 만에 1억 병이 나갔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클라우드(Kloud)가 나와 한동안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지요. 이런 판에 수입 맥주들이 자유롭게 들어오고 있으니 가히 ‘맥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 하겠습니다.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맥주전쟁도 이따금 정치·외교의 바람을 타게 돼 있죠. 전장(戰場)을 들여다보면, 현해탄의 파고가 이처럼 높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금의 맥주시장이 일깨워주고 있는 셈이지요. 수입 맥주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일본 맥주가 전달에 비해 45%나 떨어진 것입니다. 그새 맥주 강국 벨기에가 1위를 차지하고 미국 맥주가 2위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맥주 애호가들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갔다지만 열혈팬들은 여전히 27%의 점유율을 지켜주고 있다네요. 현해탄의 파고가 다시 낮아지면 옛 팬들이 되돌아올지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상황이죠. 맥주 브랜드의 다양한 입맛에 길들여지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군요.
벨기에 맥주가 1위를 차지한 것은 라거(lager)와는 다른 에일(ale) 맥주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맥주 기호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거죠. 에일을 주로 하는 수제맥주(craft beer)에 대한 기호도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데 점유율은 아직 전체 5조 원 시장의 1.3%에 불과하다지요. 연평균 40%의 그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오래전 영국에 체류할 때 펍(pub)에 가서 맥주 달라고 하면 그냥 에일을 가져왔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캠퍼스에도 맥주 카운터 같은 게 있는데 머그나 파인트에 받아와 잔디에 비스듬히 누워서 즐겨 마시던 불그스름한 에일의 추억이 생생하네요. 그래서 지금도 에일 맥주를 더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수제맥주는 브루어리(brewery), 즉 양조장과 판매장이 한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형 양조장이 거느리는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도 늘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웬만한 큰 도시에는 길에 수제맥주 간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까요. 길에 나가서 수제맥주집이 안 보이면 큰 식당이나 골프클럽 같은 데로 들어가 신선한 생맥주(draft beer)를 시켜 마실 수도 있지요. 생맥주는 병이나 캔이 아닌 캐스크(cask)에서 직접 받아내므로 양조 과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사치(?)가 있지요. 게다가 “맥주는 글라스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Bier muss im Glas wachsen)”는 말도 있으니 기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맥주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세계 맥주시장이 워낙 커서 우리나라 맥주의 점유율을 따져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빠르게 질이 향상되고 있다지만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던 우리 맥주를 생각하면 수출이 되기나 할까 싶군요.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랍니다. 우리나라 맥주 수출은 2010년부터 소주를 제치고 주류 수출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20만 톤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판매액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는데 해외에서 우리나라 맥주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주로 향수에 젖은 동포들과 케이 컬처를 업고 늘어나는 한식당들이 아닐까 싶네요. 맥아(麥芽)나 홉(hop) 등 맥주 원재료에서 취약하긴 해도 머지않아 우리의 제조기술이 올라 훨씬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해야겠죠.
맥주는 거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기원전 2500여 년쯤 이집트 피라미드 공사 인부들이 맥주를 마시던 당시의 유적이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렇다고 이집트가 맥주 제조의 시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곡물이 비에 젖어 자연발효가 이루어지는 순간 맥주가 탄생했다고 본다면 농경시대에 들어 세계 곳곳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물 대신 에일 맥주를 늘 비치해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일은 발효 온도가 높은 효모를 사용함으로써 윗부분[上面]에서 발효가 되도록 한 것이고 라거는 발효 온도가 낮은 효모를 사용해 아랫부분[下面]에서 발효가 되도록 한 차이가 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에일과 라거는 향미나 목넘김이 상당히 다르다 하겠습니다.
1561년에 독일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는 ‘맥주순수령(German Beer Purity Law, 麥酒純粹令)’을 공포했는데 맥주는 물, 홉, 보리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다른 원료가 들어간 맥주에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바람에 밀맥주 제조는 면세 지역인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지요. 빌헬름 4세를 취향 면에서 맥주 정통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법령으로 인해 독일이 유럽 내 맥주 제조의 주도권을 쥐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지금도 어떤 독일 맥주 브랜드는 이 영(令)에 따라 주조했음을 밝히고 있죠).
독일과 경쟁이 될 만한 체코의 맥주가 뜨기 시작한 것은, 1842년 플젠(Plzen)에서 제조된 황금색의 필스너 라거가 나오면서입니다. 당시 새로이 등장한 투명 유리잔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시장을 휩쓸다가 독일로 역수출된 것이 필스너인데 대표 브랜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은 원조 필스너란 뜻으로 체코의 자존심을 지키는 한 축이죠. 맥주의 본방을 독일로 치더라도 맥주 강국이 의외로 체코라는 사실이 흥미롭군요. 체코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43ℓ로 24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하네요. 체코 다음은 오스트리아(106ℓ), 독일(104.2ℓ), 미국(74.8ℓ)의 순이고요.
스텔라 아르투아, 벨기에産
맥주에 대한 취향은 계속 변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기본적인 취향이 있다고 해도 여러 가지 브랜드를 접하다 보면 기왕의 취향과 다른 맥주들을 찾게 되지요. 언젠가 브뤼셀에 들렀을 때 미술관 옆 큰 광장에서 친구와 함께 마시던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생맥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 양조장이 1366년에 세워졌다 하니 연도만으로도 애호가들의 갈망을 채워주기에 족하다고 하겠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스텔라 아르투아를 멀리할 수 없답니다. 10여 년 전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Positano)에서 옥빛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마시던 페로니(Peroni)의 완벽한 블론드 빛깔과 가뿐한 그 맛에 매혹되어 요즘도 이태원의 유명 피자집에 가면 찾아서 마신답니다. 마드리드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어느 광장에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맥줏집(Cervezaria)이 있는데 굳이 그 집을 찾아 헤밍웨이가 와서 앉곤 했다는, 창가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에스트레야(Estrella) 생맥주를 주문해 마셔보기도 했죠.
에스트레야, 스페인 바르셀로나産
지금까지 유럽 맥주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유럽 밖의 맥주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수입량 2위를 자랑하는 미국산 맥주 브랜드도 다양합니다. 버드와이저를 비롯해 밀러, 쿠어스 등. 미국 하면 무엇보다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떠오르죠. 오래전 뉴욕의 시(Shea) 스타디움에서 메츠와 양키스 게임을 보러 갔을 때 남들 하는 대로 종이컵에 든 버드와이저 생맥주를 사 마셨는데 솔직히 맛있다는 인상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후 미국 맥주 하면 도매금으로 ‘별로’라는 판정을 내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는 광고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미켈롭(Michelob)이란 브랜드를 즐겨 마신 적도 있습니다. 100만 달러짜리 목소리를 타고 멋진 블론드의 여인이 춤추듯 걸어가는 장면이라 아마도 거기에 정신을 빼앗겼던 것 같기도 합니다.
라거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보리와 홉의 사용량을 줄이고 옥수수나 쌀 등을 섞어 단가를 낮추면서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 것도 미국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죠. 저는 맥주의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지만 위스키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보리가 아닌 다른 재료들을 써서 버본이나 테네시 위스키 등으로 변화를 이뤄낸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국 중의 대국인 중국의 칭따오(Tsingtao, 청도) 맥주를 잠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불공정한 일이겠죠. 사실 중국 식당에서는 칭따오 외에 다른 맥주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칭따오가 언제부터 유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요릿집에서 드러나게 눈에 띄는 맥주가 칭따오 아니겠습니까. 칭따오 맥주는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중화요리에 얹혀서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칭따오 맥주는 19세기 말 삼국간섭(三國干涉)으로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 산둥반도에서 독일 기술자들이 맥주공장을 지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높은 기술 전승 혜택으로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누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맥주 원료는 물, 맥아, 홉 그리고 효모인데 무엇보다 우선 물이 좋아야 좋은 맥주가 나오겠지요. 아무리 물이 좋아도 좋은 맥아가 없고 좋은 홉이 나지 않는다면 훌륭한 맥주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홉은 덩굴식물의 꽃인데 종류에 따라 레몬이나 포도, 솔잎, 재스민 같은 다양한 아로마를 가미해주죠. 말하자면 맥주의 향신료라고 할 수 있는데 홉이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물은 정제해서 만들 수도 있다지만 좋은 맥아나 홉은 수입해 와야 합니다. 그러니 제조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데 원가절감을 하다 보면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할 만하죠. 아무튼 우리 스스로 근사한 맥주를 만들 때까지 다양한 수입 맥주가 들어와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채워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관 대사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 대사를 지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저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다. 현재 제주도 국제교류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라산 자락의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는 등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
은퇴 후 가장 먼저 생각해보는 직업 중 공인중개사를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재테크의 대명사인 부동산에 관한 관심은 시니어의 일상 속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정부 규제의 변수로 예측도 전망도 어려워져 믿을 만한 부동산 정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맨손으로 시작해 부동산 업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전문가이자 여러 부동산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직접 출연까지 하며 부동산 업계 트렌드를 꿰뚫고 있는 장용석 ㈜장대장 부동산그룹 대표. 그를 만나 현시점 우리나라의 진짜 부동산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용석 ㈜장대장 부동산그룹 대표는 부동산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빈손으로 출발해 10여 년 만에 이름만 대면 아는 부동산 전문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다기보다는 부동산 시장에 큰돈이 흐른다기에 혹시나 하고 시작했어요. 2004년 무렵이었어요. 저희 집 형편이 안 좋은 상황이어서 고시원에서 지내던 시절이었죠. 부동산 일을 한번 제대로 해보자 하고 뛰어들었어요.”
2007년, 장 대표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국내 경제도 좋았고, 지방에서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 등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부동산 시장에도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현지 부동산에 가서 제가 관리하는 고객이 꽤 있는 척했죠.(웃음) 한 지역을 가면 매물을 구하기 위해 열 군데 이상의 부동산을 돌았어요. 그렇게 10여 군데 돌아야 겨우 하나 얻을까 말까 했어요.”
땅은 책으로 경험하는 게 아니다
부동산은 발로 뛰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장 대표 또한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더러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부동산그룹의 대표가 된 데에는 확실한 성공 사례들이 있었다.
“평택 부동산 가격이 엄청 뛰었잖아요. 평당 20만 원, 30만 원 하던 시절에 많이 소개했어요. 지금은 200만 원, 300만 원 하죠. 세종시는 제가 그렇게 투자를 권했는데도 사람들이 안 하더라고요. 평당 몇십만 원 하던 땅값이 지금은 몇백만 원가량 합니다. 부동산 투자자들 중에 싼 매물만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평당 몇십만 원도 부담스러웠겠죠.”
발로 뛰는 타입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았다. 부동산과 얽힌 사람들의 천태만상은 그를 씁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번은 새만금을 끼고 있는 부안 땅을 산 장모와 사위가 왔어요. 돈은 장모가 내기로 했고요. 예를 들어 그 땅이 901평이라고 가정하면 장모가 451평, 사위가 450평 반반씩 나누기로 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장모가 더 갖게 된 한 평을 가지고 식사를 하다가 싸움이 난 거예요. 장모가 땅을 사주는데 사위가 한 평 더 가져가려고 어떻게 저러나 싶었죠.”
가짜 정보와 분양가 상한제의 속내
장용석 대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SBSCNBC ‘시선집중 부동산 길라잡이’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며 화제에 올랐다. 더불어 TV조선 ‘부동산 로드 이사야사’에서도 최고 전문가로서의 진면목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부동산 삼국지’에 복귀해 가수 방미와 함께 부동산 강의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줬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부동산 강사로 명성이 높다. 부동산 전문 방송에서 패널로 참여하고 싶어 직접 찾아가 면접을 보고 방송을 한 게 방송인 경력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동산 관련 유튜브 채널이 늘어나면서 온갖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방송 전문 패널로서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방송에서는 강한 얘기를 못해요. 그런데 유튜브에서는 가능하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얘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조회 수와 구독자 수가 많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지 유튜브에 나오는 정보들이 진짜라는 걸 의미하진 않아요.”
최근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분양가 상한제다. 장 대표는 현재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막겠다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는 재건축을 앞둔 강남권의 오래된 아파트가 투자 대상 1등이었죠. 1등이 어느 정도 오르고 나면 그다음은 5년에서 10년 이내에 지어진 신규 아파트로 투자자들이 몰렸고요. 그리고 이들 매물이 좀 올랐다 싶으면 강남 외 지역 재건축 아파트 구매로 이어졌죠. 정부에서는 관련된 규제를 계속 해왔는데 정책 효과가 없자 이제 분양가 상한제까지 적용하게 된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부적으로는 이견이 있는 듯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예를 들어 관리 처분을 신청했던 단지들이 분양에 들어가야 하는데 분양가 상한제 기준을 입주자 모집 공고 전까지로 하면 다 해당되거든요. 그러자 조합은 헌법소원까지 가겠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어요. 규제가 많아지고 적용기간이 길어지면 또다시 부동산 시장은 왜곡될 겁니다.”
부동산 부자들이 요즘 움직이는 곳
장 대표는 “부동산은 심리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최근 언론에서, 서울의 경우 양질의 주거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기사를 싣자 가격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판매자들은 안 팔려고 하고, 구매자들은 급매물을 노리고 있다는 게 요즘 분위기란다. 그래서 당분간은 보합세에서 약간 올라가는 추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강남 부자들이 요즘 부동산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일까? 최근 SNS를 타고 떠도는 소문에 대해 물어봤다.
“사람마다 달라요. 작은 규모로 여러 채 가진 분들이 있는데, 작은 건 강남 지역 외에 있는 거죠. 그런 곳은 사실상 입주 단계에서 값이 많이 내려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파는 분들이 많아졌지요. 강남권에서도 일부 비슷한 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해요. 우리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판매로 돌아섰다면 강남 매물이 많아야 하잖아요? 말만 무성할 뿐이지 실물 거래는 없다는 얘깁니다.”
장대장 대표는 유튜브 채널 ‘장대장TV’ 등 다양한 SNS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2019년 개정 부동산 세법, 부동산 통계 해석, 조정대상지역 내 각종 규제 적용 시기 등 업로드되는 부동산 관련 최신 정보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
전국에 있는 개업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부동산 프랜차이즈 전국 지점도 모집 중이다. ㈜장대장 부동산그룹은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컨설팅에 그치지 않고 선진국형 프랜차이즈 지점을 통해 전국의 알짜배기 분양 매물을 고객들에게 투명하게 소개하고 그로 인한 수익은 본사와 지점이 모두 상생하는 방향으로 공유할 계획이다.
그래서 최근 경기 침체, 가짜 부동산 정보, 비관론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자신이 이끄는 장대장 부동산그룹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지점 확대를 통한 본격적인 종합 부동산그룹으로의 확장이다. 부동산 회사의 기본은 좋은 매물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그가 지점을 늘리려는 이유도 지점이 많아지면 안 팔리는 매물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소비 심리가 죽으면 안 팔리겠지요. 그럴 바에는 싸게 파는 게 낫잖아요. 예를 들어 5억 원짜리를 4억5000만 원에 팔아주고, 대신 2주 안에 해결해주겠다고 하면 건설 사업자도 돈을 벌고 부동산 업체도 이익을 나눌 수 있고, 고객도 좋은 거죠. 사장될지도 모르는 매물을 가져다 모두가 윈윈하게 만드는 게 제 계획이에요.”
새로워져야 할 부동산 투자전략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좀 더 투명하게 만들자, 이를 기반으로 부동산 산업을 다양하게 확장하자’는 게 그의 사업 목적이다.
또한 현장과 본사와의 소통을 통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저희는 유료로 상담을 하는데 무료로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해가 안 가는 게, 변호사 상담은 당연히 돈을 내는 걸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부동산 상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부동산 중개소에서 해주는 공짜 상담을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정보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서 살아왔기에 계속 실수하고 실패했던 게 아닐까?
“미국은 변호사 위에 부동산 전문가가 있어요. 수수료도 굉장히 비싸서 3%나 돼요. 그걸 양쪽에서 받으니 6%죠. 우리나라는 최고가 0.9%예요. 그것도 비싸다고 내리자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사기를 당하죠. 적게 받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으려면 그만한 비용을 치러야 하고 그럴 때 신뢰도 생긴다고 말한다. 또 부동산 업계에서 사고를 친 사람은 다시는 업계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모종의 인증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에게도, 믿었던 사람에게 속아 무려 1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날려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부동산 시장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싶은 그의 사업 목표와 이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동산 시장 투명하게 만들고파
스포츠를 전공한 그답게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일하는 일면도 볼 수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 장 대표는 사업을 안 하고 ‘선수’로만 뛰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고백했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맞지 않다기보다는, 그의 삶의 궤적이 보여주는 바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는 부동산 업계의 부조리함을 개선하고 싶었고, 하던 일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노력해서 어쩌다 보니’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머리 아픈 일을 너무 겪어서… 이제 좀 편하게 살고도 싶기도 하고,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그렇지만 부동산 연구소를 만들어 최고의 평가도 받고 싶어요. 아무래도 그게 지금 하는 사업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시장 분석과 통찰력으로 사업을 하면 할수록 고객 사례를 바탕으로 공정하고 적확한 빅데이터가 구축되고 그걸 제 연구에 활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과 함께 일하는 업계 베테랑들이 한 말을 들려줬다.
“부동산 사업이 경기를 가장 많이 타요. 함께 일하는 이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너무 욕심 부리지 마라, 욕심 부리지 않고 오래 일해야 무슨 일이 벌어져도 대응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말은 음험한 기운이 만연하고 욕심에만 급급한 부동산 분야에 마땅히 필요한 금언 아닐까. 그가 만들 새로운 한국 부동산 비즈니스 모델의 비전이 궁금해졌다.
36년 전통 ‘영동식당’
서대전네거리역 인근, ‘맛동네길’이라 불리는 계백로와 계룡로 사이 전문음식특화거리에는 오랜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닭볶음탕을 비롯한 염소전골, 토끼탕 등 몸보신 메뉴로 사랑받는 ‘영동식당’은 대전광역시 인증 ‘모범음식점’, ‘3대·30년 전통업소’ 등의 타이틀로 믿음을 더하는 곳이다. 맛집들이 늘어선 큰길가가 아닌 좁은 골목길 안쪽에 자리 잡은 가게에는 뜨내기손님보다는 오랜 단골이 주를 이룬다. 정겹고 한적해 보이지만 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이들로 종종 줄을 서기도 한단다. 어머니 정원자(77) 여사에 이어 영동식당의 맛을 책임지고 있는 김대흠(56) 씨는 오래 기다리는 손님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때문에 맛집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와도 고사하곤 한다는 그다.
“방송을 타고 나면 갑자기 사람들이 확 몰려와 단골손님들이 불편해지는 상황이 벌어져요. 닭볶음탕 국물 반주 삼아 드시는 분이 많은데, 그분들도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고, 밖에 있는 손님들도 오래 기다려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애써 방송으로 사람을 끌어모으기보다는, 맛있게 드신 분들이 입소문 내주시면 그게 가장 고맙고 기분 좋은 것 같아요.”
단골 중에는 매번 다른 사람을 데려와 닭볶음탕을 맛보이는 이도 있단다. 누군가에게 식당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는 건 늘 그 맛과 서비스가 실망스럽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주인장 역시 변함없는 맛과 친절한 응대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것이 가게의 장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프랜차이즈의 경우엔 어디든 일정한 맛과 서비스를 기대하고 가는데, 대개 그런 기본을 지키지 않는 곳들은 금방 문을 닫게 돼 있죠. 우리처럼 작은 가게라고 다르지 않아요. 옛 맛을 잘 지켜내고, 언제나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오래되고 유명한 가게라도 자칫 기본을 잊고 방심하면 안 돼요. 손님 마음이 돌아서는 건 한순간이니까요.”
영동식당의 닭볶음탕은 푸짐한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인데, 제철 나물이나 김치 등 다양한 반찬도 인심 좋게 내놓는다. 몇 해 전 닭볶음탕의 주재료인 감자 값이 폭등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격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땐 정말 빚 안 진 것만도 다행이지, 거의 남는 게 없이 장사했어요. 그런데 재룟값이 싸졌다고 가격을 내리지는 않잖아요. 그럼 비쌀 때도 가격을 올리지 말아야죠. 어떤 집은 대신 양을 줄이거나 재료를 덜 넣어주는데, 그러면 맛이 변하니 절대 안 되고요.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해도 지금껏 버텨온 뚝심으로 변함없는 맛을 지킬 겁니다.”
대전1호선 서대전네거리역 4번 출구 도보 4분
주소 대전시 중구 계룡로874번길 27-9
영업시간 11:00~22:00
대표메뉴 닭볶음탕, 염소전골, 토끼탕
※본 기획 취재는 (사)한국잡지협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뜨거웠던 여름 마음은 가슴 트이는 바다로, 시원한 계곡으로 향하고는 있지만 더위 탓에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여름 휴가를 가지 않았던 분들에게 치일 필요 없이 우아하게 가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마음에 쏙 들 핫한 셀럽 명소를 소개한다.
하와이 오아후섬 - 미국 -
호놀룰루 국제공항이 있는 오아후 섬은 필수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일정을 잡을 때 4박을 기준으로 그 이하일 경우 오아후 섬만 충분히 관광하는 것이 좋다. 하루를 더 보낼 수 있으면 한 곳 정도 다른 섬 투어를 가는 것도 괜찮다. 렌터카 여행이 활성화되어 있어 공항뿐만 아니라 도시 어디서든 렌터카 업체 이용이 가능하다. 숙소도 다양해 9만 원대부터 원하는 가격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오아후 섬은 하와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섬으로 쇼핑, 관광, 휴양 등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호눌룰루 시내에는 하와이를 상징하는 건물인 주정부 청사와 주지사 관저, 하와이 왕조의 칼라카우아 왕이 1882년에 건설한 이올라니 궁전 등이 있다.
하와이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아히 포케 아히는 하와이어로 참치, 포케는 무침이라는 뜻으로 한국식 회무침을 생각하면 된다. 참치회를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하와이산 해조류와 소금간, 참기름, 레몬즙으로 간한다.
마카다미아 너트 땅콩과 아몬드보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견과류. 전 세계 마카다미아의 90%가 하와이에서 생산된다.
아사이볼 황산화 기능과 함께 콜레스테롤 조절에 도움이 되는 아사이베리. 아사이볼은 아사이베리 스무디 위에 그레놀라와 갖가지 과일을 올리고 꿀을 곁들여 먹는 것. 식사 대용이 가능하다.
바나나브레드 바나나가 주재료. 파운드케이크 모양으로 한 입 베어 먹으면 바나나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상품명 ‘하와이풀팩’ 부모님과 함께 가는 효도여행 4박 6일
항공 대한항공 가격 200만 원대부터
문의 여행박사 홈페이지(drtour.com)
3대가도 - 독일 -
서유럽을 대표하는 국가 독일은 찬란한 문화유산과 다양한 자연 풍경을 품고 있어 관광객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롯데관광에서 추천하는 독일 여행지는 3대 가도다. 원래는 독일관광청이 ‘7대 가도’라는 이름으로 관광길을 만들어 권장하고 있는 일종의 드라이브 여행 코스다. 그중 ‘고성가도’와 ‘로만티크가도’, ‘알펜가도’를 따로 선택해 함께할 수 있는 여행지로 묶었다. ‘고성가도’는 하이델베르크, 로텐부르크,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등의 도시를 지난다. 중세 기사와 귀족이 살던 고성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이를 개조한 호텔도 다양하다. ‘로만티크가도’는 가장 인기 있는 가도다. 과거에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이르는 통상로였다. 작은 규모의 도시에서 중세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알펜가도’에서는 독일의 알프스 가르미슈 파르텐 키르헨에서 하이킹과 등산 등을 즐길 수 있다.
독일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예거슈니첼 송아지 고기 안심 부위 등을 얇게 저며 빵가루 옷을 입혀서 튀기고 버섯을 넣은 크림소스를 얹어 내는 독일 동부 음식.
글뤼바인 독일인들이 감기 예방을 위해 자주 마신다. 와인과 과일을 듬뿍 넣고 푹 끓인 과일와인으로 우리나라 쌍화차와 비슷한 효능이 있다. 향과 풍미가 좋고 비타민이 풍부하다.
상품명 ‘독일 완전일주’ 9일
항공 대한항공 가격 200만 원대부터
문의 롯데관광 홈페이지(lottetour.com)
다낭- 베트남 -
2018년 하나투어 통계 기준에 따르면, 시니어에게 가장 높은 사랑을 받았던 나라는 바로 베트남.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고단한 장거리 여행보다는 짧은 비행시간으로 현지에서의 여유로운 관광 일정,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어 선호 여행지로 많은 선택을 받았다. 다낭이 있는 베트남 중부지방의 경우 강수량이 적고 습도가 낮아 연중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커피 프랜차이즈인 ‘콩 카페’는 최근 한국인 관광객이 필수 코스로 여기는 곳이다. 코코넛 커피, 요거트 커피 등이 대표메뉴다. ‘다낭 대성당’은1923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유일하게 지어진 성당이다. 외부는 자유롭게 볼 수 있지만 내부는 미사시간에만 방문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아름다운 해변 베스트10으로 꼽히는 미케비치는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때묻지 않은 자연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파도가 높은 10월과 12월에는 요트, 서핑, 윈드서핑 등의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베트남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퍼보 베트남 대표 음식으로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소고기 쌀국수. 지역에 따라 북부는 담백하고 남부는 달고 자극적인 것이 특징이다.
분짜 숯불에 구분 돼지고기 완자를 하얀 쌀면과 함께 먹는 음식, 채소와 함께 피시소스를 찍어 먹는다.
껌땀 숯불에 바짝 구운 돼지고기를 밥에 얹은 음식. 볶은 채소와 계란프라이, 베트남 액젓 늑맘에 설탕과 레몬 등을 넣은 소스와 함께 먹는다.
상품명 ‘우리끼리 단독여행’ 다낭·호이안 5일
항공 대한항공 가격 80만 원대부터
문의 하나투어 홈페이지(hanatour.com)
공기를 통해 코로 전달되는 숱한 냄새는 우리 일상에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영향을 미친다. 보고, 듣고, 맛보는 것처럼 직접적인 확인이 어렵지만 감정의 변화는 물론 어떤 대상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 등의 인식을 심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무형의 존재인 향기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고급스러움과 품격을 높여주는 소재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생활과 점점 더 밀접해지고 있는 향기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도움말 최아름 ㈜아이센트 대표
언제부턴가 자주 가는 백화점 혹은 극장 등에 들어서면 익숙해진 향기에 이끌린다. 세련된 장식이 된 호텔, 전시관, 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 시설은 마치 ‘패션의 완성은 향기’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고유의 향을 간직하고 있다. 향기로 누군가를 기억하듯 공간 또한 인식하게 되는 것. 이를 일컬어 ‘향기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서비스 공간이나 상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향기를 발산해 이용자가 향기와 함께 훗날에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다.
향기 마케팅이 각광받는 이유
1990년대를 전후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향기와 구매 욕구의 상관관계를 입증해왔다. 향기 마케팅 회사 ‘에어아로마(air-aroma.com)’ 웹사이트에는 향기가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쉽게 설명해놓았다. 향기는 소비자의 지출을 늘리고 장기적인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보다 깊은 감성 교류로 인해 이용 만족도 또한 높다고 한다. 미국의 후각연구소(Sense of Smell Institute)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의 오감 중 후각이 가장 민감하며 하루 중 감정의 75%가 후각의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대략 1만 개 정도의 냄새를 인식하며,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냄새는 1년이 지난 후에도 65%는 정확하게 기억해낸다. 반면, 시각적 이미지는 50% 정도만 되살아나고 기억의 한계는 3개월 정도라 한다. 후각으로 기억되는 잔상이 길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해 산업적 접근을 시도한 분야가 향기 마케팅이라는 설명이다.
‘빵 굽는 냄새’가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향기를 이용한 마케팅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오래된 자료를 찾아봤더니 1997년 4월 ‘베이커리’라는 매거진에서 소개한 ‘빵 굽는 냄새를 향기로 구현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업체가 국내 최초의 향기 관리 업체인 (주)에코미스트코리아(현 (주)바이오미스트테크놀로지)에 ‘빵 굽는 냄새’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던 것. 빵 굽는 냄새가 고객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데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빵을 구울 수는 없기에 빵을 굽지 않는 시간에도 ‘빵 굽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풍길 수 있도록 향기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자료를 보니 (주)에코미스트코리아는 마늘빵 향을 개발했고, 소량으로도 25평 규모의 매장에서 하루 종일 고소한 빵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며 기사가 마무리됐다. 실제 빵집에 마늘빵 향을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에코미스트코리아 최영신 대표는 미니 인터뷰를 통해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되살리는 데 더 큰 효과가 있다”며 “이는 특정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연상 작용으로 이어져 구매 충동을 일으킨다”고 향기 마케팅에 관련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공간 센팅 (ambient scenting)
매일매일 변화를 맞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사회 속에서 향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글로벌 향기 마케팅 회사 (주)아이센트의 최아름 대표는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보이지만 이면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연결되고 감정적인 자극을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특히 요즘은 쇼핑이나 영화 관람을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다 보니 소비자의 방문이 필수인 서비스 공간을 훨씬 더 기억에 남게 하려고 감정적 연결고리를 향기에서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러한 마케팅을, 공간에 향기를 머무르게 하는 ‘공간 센팅 (ambient scenting)’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대상에 몰입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물론 향기 마케팅은 소비자가 해당 공간에 머물면서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다른 마케팅보다 따뜻한 감정과 신뢰를 주는 것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
환경 향수로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향기 마케팅이 꼭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가 만든 ‘빌&멜린다 게이츠재단’은 세계 최대 향료 회사 중 하나인 피르메니히에 의뢰해 화장실 악취를 꽃향기로 바꿔주는 ‘화장실 향수’를 개발해 개발도상국 화장실 개선 사업에 힘쓴 바 있다. 또 화장실이 부족해 이로 인한 질병에 노출된 아이와 노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도 이 향수를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향기 마케팅 회사 아이센트 또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체취, 화장실 냄새 등과 같은 악취를 효과적으로 중화해주는 환경 향수를 개발했다. 이 향수는 특허받은 성분으로 만들어 상쾌하고 기분 좋은 환경으로 바꿔준다. 시니어가 많이 드나드는 공동 시설의 환경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최 대표는 언급했다. “시니어가 활동할 때 좋은 향기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오렌지 향 같은 시트러스 노트 계열의 향은 우울증 감소에 도움이 되며 초콜릿, 바닐라처럼 달콤한 향은 식욕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한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지난해 말 개봉돼 흥행가도를 달렸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증권회사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분)은 직감한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한 가지. 느닷없이 회사를 떠나는 윤정학을 바라보던 나머지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평범했던 그 금융권 회사원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물론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의와는 달리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와야 했다. 제주에서 만난, 현재 제주햇살담음에서 행정 및 연구실장으로 지내는 최종보(崔鍾甫·61) 씨도 그랬다.
“아내가 그 영화를 보고 그러더군요. 고구마를 스무 박스 먹은 기분이라고요. 저 역시 먹먹했습니다.”
IMF는 국내 금융시장에 거대한 생채기를 남겼다. ‘5대 은행’으로 손꼽히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중 원래의 사명(社名)을 유지한 곳은 SC제일은행이 유일할 정도다. 대부분 둘이 하나가 되거나 소멸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외에 많은 은행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소용돌이 속에 최 씨도 있었다.
“저 역시 당시 번듯한 은행에 다니고 있었죠. 1983년에 입사해 지점에서 8년 현장 경력을 쌓은 후 본사 인사부에서 일했어요. 당시 제 관심사는 해외 점포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것이었어요. 주재원 자격도 얻어 관례상 발령이 눈앞에 있었고, 이를 위해 입사 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죠. 저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미국 점포 근무를 꿈꾸면서요. 하지만 34개나 되던 해외 점포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더군요. 회사의 존립마저도 걱정해야 하는 위기가 불어 닥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둘 중 한 명 나가라 강요하던 ‘지옥’
이후 회사에서 벌어진 장면들은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1만 명 가까이 되던 직원 중 절반은 명예퇴직 대상이 됐다. 인사부 담당자 5명이 5000명에게 대상자임을 전화로 알렸다. 저승사자 역할을 한 사람 중에는 최 씨도 있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눈물 젖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선배이자 동기이자 후배였다. 형편없는 음질의 구식 전화였지만 감정은 여과 없이 전달됐다.
“못할 짓이었죠. 딱 5일째 되던 날 저도 사표를 썼어요. 통보를 받은 어느 누구도 저에게 심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제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더라고요. 직전까지 실적이 좋았던 우수사원들도 거래처가 줄도산한 탓에 저평가자가 되면서 가차 없이 잘려나갔어요. 해외 점포들도 모두 폐쇄되면서 제 꿈도 함께 날아갔죠.”
불과 며칠 전까지 9시 뉴스는 우리 경제의 건실함을 알렸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외환위기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최 씨는 “삶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증언한다.
“번듯한 명함을 들고 참석하던 동창회 참석 인원은 10분의 1로 줄었죠. 친구 부인들은 마트 계산원 같은,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자리를 찾아 나섰어요.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어 망한 친구도 많았고요. 은행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하던 청원 경찰은 300만 원 가까이 되던 월급이 3분의 1로 줄었고, 신분도 계약직으로 전환됐죠.”
퇴사 이후의 삶은 ‘실패 사례집’
당시 41세였던 최 씨. 이후 이 가장의 인생 여정은 ‘외환위기의 세대’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실패 사례를 보여주는 듯했다. 은행에서 나와 입사한 외국계 보험회사에선 입사 초반 억대 연봉의 ‘꽃길’을 걷는 듯했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결국 회사를 나와야 했다. 해외 발령을 위해 준비했던 영어 실력으로 차린 입시학원도 초창기엔 잘됐지만 건물주와의 분쟁으로 보증금을 손해보고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새집증후군 제거 회사를 차렸지만, 후발 업체의 덤핑 경쟁으로 쓴맛을 봤고, 청소 프랜차이즈에 가입했다 본사의 부도로 가맹비만 날렸다.
비슷한 과정을 겪은 많은 가장처럼 그 역시 많은 것을 잃었다. 우울증을 겪었고, 술에 의존하는 시간도 늘었다. 대출을 주선했던 은행 선배를 다시 볼 면목도 없어졌고, 피해의식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정말 나락으로 떨어졌을 땐 친구가 며칠에 한 번 보내주는 막걸리 값에 의존해 살았을 정도였어요. 아내가 융통한 생활비로 겨우 살아갔죠. 집과 차는 이미 제 것이 아니었고요. 나에 대한 원망이 계속됐죠. 그래도 그 과정에서 날 버티게 해준 것은 공부였어요. 책과 강연을 읽고 들으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어요. 결국 외환위기가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고 자책을 멈췄어요.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았죠.”
새로운 직장에서의 성공적 출발
그리고 2015년, 그는 제주행을 선택한다. 서울에서 갑들에게 매몰되는 직장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 들면 서울을 벗어나 살고 싶은 소망도 있었고, 당시 제주엔 중년도 할 만한 일거리가 있을 거라는 추천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59년간의 서울생활을 정리했다.
“안 해본 것이 없어요. 렌터카 회사와 주유소에서도 일했고, 호텔에선 프런트부터 시설관리, 청소까지 했어요. 하지만 한 번도 나를 낮게 보거나 일을 얕잡아본 적은 없습니다. 세간이 주는 가치관에 연연하지 않고,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죠. ‘러브 유어셀프’를 들으며 방탄소년단의 팬이 된 것도 이 즈음이죠.(웃음)”
그러다 우연히 제주도청에서 노사발전재단의 지원 책자를 본 것이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됐다. 제주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소개로 2018년 4월 19일, 그의 전공과 다양한 사회 경험을 인정받아 화장품 회사인 제주햇살담음의 행정 및 연구실장으로 입사한다. 실로 오랜만에, 사무실 책상 앞자리로 복귀한 것이다.
제주햇살담음은 제주에서 자란 건강한 재료를 바탕으로 유기농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다. 온라인 쇼핑몰과 소셜커머스를 통해 전국에 제품을 판매 중인데 입소문을 타고 늘어난 충성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보다 두 배 늘어난 매출 달성도 눈앞에 두고 있다.
“직원 7명이 일하는 작은 회사이다 보니 연구개발에서 제품 영문번역, 세무·회계 관련 업무까지 맡고 있어요. 회사에서 번번이 실패했던 각종 지원제도에 도전해 중장년·청년 지원제도 등의 지원금도 확보했죠. 회사 자금이나 매출에 기여할 수 있어서 보람이 커요.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젊은 직원을 선호하는데 마케팅이나 경영, 금융,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자들은 중장년임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그는 비슷한 아픔을 겪어온 또래의 동료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내려놓는 것이 필요해요. 눈높이를 조금 낮추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일자리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일자리에 대한 기준이 낮아져도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나 자신감은 잃지 말기를 당부드려요.”
“국내 중장년 취업에 대한 지침의 상당수는 가짜 뉴스 수준입니다.” 2005년부터 한국과 미국계 전직지원(轉職支援) 회사를 통해 중장년 재취업과 인생 2막 설계 컨설팅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온 돈·일·꿈 연구소 간호재(簡鎬宰·49) 소장의 일갈이다. 현재 인력수급기업 ㈜에이치알맨파워그룹에서 4050 재취업컨설팅 사업부에 소속돼 활동 중인 그는 40~50대의 재취업을 위한 제도가 빈약하고, 지나치게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중장년들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서 ‘4050 재취업 성공의 비밀’을 통해 중장년 재취업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제시한 그를 만나 40~50대가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5가지 원칙에 대해 들어봤다.
소극적인 태도를 바꿔라
간 소장은 우선 퇴직 후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랜 직장생활로 굳어진 몸과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조직생활은 사람을 경직시키고 수동적으로 만들어요. 특히 공기업, 대기업 출신이 더 심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직장을 원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또 원하는 직장과 새로 진출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스스로 알아보고 기본 조사활동 등을 해야 하는데 수동적인 태도가 발을 떼기 어렵게 만듭니다. 퇴직자들이 일자리 관련 기관에서 무턱대고 좋은 직장을 소개해 달라고 하거나, 프랜차이즈 사업에 현혹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는 현장에서 구직자들을 만나보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을 뿐, 대다수가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간 소장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거나 관심 분야에 대한 시장조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받게 돼요. 그동안 쌓아온 인맥도 도움이 되고요. 하지만 방 안에서 인터넷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 정보는 한계가 있다
간 소장은 “갈 곳이 없다며 푸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구직자들을 만나 구직활동에 하루 몇 시간 투자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2시간도 채 안 돼요. 중장년 구직자, 특히 공기업·대기업 출신자들은 그렇게 해선 원하는 직장을 찾기 어려워요. 그 나이의 재취업은 부장급 이상을 바랄 텐데, 중견기업도 그 정도 직급은 채용공고를 통해 선발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요.”
그가 권하는 방식은 “나를 마케팅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일을 잘할 수 있을 만한 기업을 골라 해당 기업의 임원이나 대표에게 직접 접근해보라는 얘기다.
“수십 년간 직장생활을 해왔으니, 자신이 조직에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는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그 점을 기업이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부장급 이상 직원 채용에 관여할 만한 임원이나 회사 대표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회사에 어떤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제안서’를 보내보라는 겁니다. 물론 정성을 들여 작성해야겠지요. 특히 우편을 통해 전달된 서류는 의사결정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결원이 생겼을 때 자연스레 후보 대상이 될 수 있지요.”
임원 채용 시에도 자소서를 본다
그는 재취업 과정에서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 전 입사해 지금까지 일만 해온 분들이라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또 성장 과정 등을 작성할 때 빈칸 채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임원 채용을 할 때 자소서를 봅니다.”
간 소장은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할 때 중요한 원칙이 있다고 했다. 바로 회사 입장을 생각하면서 쓰라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데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작성하고 마는 것이죠. 하지만 서류에 들어갈 내용은 회사가 듣기 원하는 것들이어야 해요. 자신이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한 태도와 가치관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줘야 해요. 그러려면 성장 과정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기업에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눈높이 낮출 필요 없다
중장년 취업과 관련된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구직자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부족한 일자리에 경쟁도 심하니 설령 낙오되더라도 좌절감에 빠지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 일자리 확보부터 하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간 소장은 반기를 든다. “그동안 전문성을 갖고 기업이나 기관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왔던 40~50대라면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눈높이를 낮춘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최저임금 정도로 급여 수준이 낮다면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까요? 또 연봉을 낮춘다고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연봉을 얼마나 낮출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재취업할 기업을 위해 어떻게 이바지할까를 고민하는 게 훨씬 합리적입니다.”
그는 만약 연봉을 낮춰야 한다면 그 마지노선을 전 직장의 70%로 잡으라고 조언하면서 100일 안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계획을 잡고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발적인 준비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할 경우 취업 요령이 생겨 원하는 시점에 회사를 옮길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의 기틀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간 소장은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할 때 “돈부터 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돈부터 쓸 생각 버려라
“창업 업계에서 공무원, 군인, 교사 등의 퇴직자는 주요 고객입니다. 금전적 여유도 있고 돈으로 투자하는 결정을 쉽게 내리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지요. 퇴직 후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6개월 정도는 무작정 쉬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여행도 하고 취미활동을 하며 시간을 잘 보내다가 어느 날부터 주변 눈치를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무턱대고 자격증부터 따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겪게 되는 초조함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체면을 세우기 위해, 창업이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돈부터 쓸 생각을 해선 안 됩니다. 잘못된 결정으로 회복할 수 없는 경제적 타격을 입으면 남은 삶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창업을 하고 싶다면 자산 규모에 맞춰 실패를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고려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그가 기술·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소자본 창업을 추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40~50대가 여생을 설계할 때는 일보다 삶을 우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지금의 중장년들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요. 조직에서 오래 생활했던 사람은 의존적인 태도를 버리고 온전한 독립을 이뤄내야 하고,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책임이 끝날 때는 완전한 해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 이 시점에 이루고 싶었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도 고려 사항이 되는 것이죠. 일이 인생을 결정했던 평생직장 시대와 달리 지금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고 나서 그에 맞춰 직업을 고민해야 합니다. 충분한 사유를 통해 인생 2막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부러운 것이 있었다. 아기자기한 골목마다 빼곡하게 늘어선 작은 점방들이다. 탁자가 몇 개 없는 식당인데도 조상들이 몇 대째 써온 낡은 노트를 자랑한다. 매일의 실패를 기록하며 나름의 노하우를 이어온 점방들이다.
작은 우동 가게라도 최고의 맛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가업을 이어가는 일본인들은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도 가업으로 해오던 작은 가게를 운영할 사람이 없으면 부모 밑으로 들어가 일을 배운다. 몇백 년째 운영하는 카스텔라 집이 그랬고 아이스크림 집이 그랬고 과자를 굽는 집이 그랬다. 그래서 그들의 낡은 점방들은 매력과 개성이 넘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거리를 걷다 보면 분점이다, 프랜차이즈다 해서 획일화된 음식점이 즐비하다. 똑같은 브랜드의 간판이 온통 거리를 채우고 있다. 주인이 있지만 주인이 없기도 한 점포들이다. 이런 점포들에서는 개성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특별한 메뉴를 맛볼 수도 없고 주인의 취향을 드러낸 인테리어도 없다. 대부분 프랜차이즈 회장님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점점 대형화하는 규모도 못마땅하다. 특히 요즘 인사동 거리는 옛날 모습이 아니다. 지나는 곳마다 저렴하고 저급한 물건들로 가득 쌓여 있다. 시대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던 점포들은 다 밀려나고 인사동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전통의 자취들도 사라지고 없다. 이제 각국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은 어디서든 살 수 있는 물건들 앞에 서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으로 전통 문화들이 말살되어버렸다. 해방이 된 뒤에도 6·25전쟁이 일어나 전 국토가 파괴됐고 그나마 남아 있던 문화재들도 소실됐다. 이후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편리함을 추구하며 사는 동안 전통 문화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갔다.
우리나라처럼 아파트가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기능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춘, 성냥갑으로 표현되는 괴상한 주거 문화다. 우리나라도 이제 먹고살 만큼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제라도 전통 문화를 이어가는 작은 가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청년 창업이 늘고 있다. 그들의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한다.
작은 가게가 있는 골목, 개성 넘치는 점포가 몇백 년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거리가 그립다. 그 옛날의 점방들이 다시 활기를 찾는 날을 고대해본다.
시니어에게도 아직 ‘시니어 인턴십’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잘 알고 활용한다면 기업에도, 재취업을 원하는 구직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시니어 인턴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의 사례를 알아봤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인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학생 인턴의 이야기가 아닌 70세 시니어가 은퇴 후 인턴으로 재취업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70세가 재취업이라니,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시니어에게 다양한 직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활동 기회를 주기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한 신규 사업 ‘시니어 인턴십’을 운영 중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대기업도 나섰다. 사회공헌활동 일환으로 시니어를 인턴으로 채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니어 인턴십’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GS리테일’과 ‘본아이에프’가 있다.
시니어 인턴 채용 5년 차, GS리테일
GS리테일은 2014년부터 보건복지부,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손잡고 시니어 인턴 제도를 시행해 2018년까지 총 86명의 시니어를 인턴으로 채용했다. 시니어 인턴은 GS25 직영점에서 포스(계산기)를 비롯한 점포 진열 및 정비, 재고관리, 판매 등의 교육을 받은 후 실제 근무를 시작하게 되며 다른 스토어매니저(근무직원)와 동일한 매장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주로 현역에서 은퇴하신 분이 많은데, 평균 연령 만 60세의 어르신들에게 인생 2막을 열어드린다는 점에서 담당자로서 보람을 느낀다”며 시니어 인턴 제도의 장점을 꼽았다. 반면 제도를 처음 도입하는 과정에선 우려되는 부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업무 숙련도가 떨어지진 않을까, 젊은이가 많은 조직에서 잘 적응하실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컸습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20~30대 못지않은 열정으로 교육에 열심히 참여해주시고 친근하게 고객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시니어의 열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GS25 역삼쌍마점은 약 1년 6개월 동안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던 김재수 씨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다. 2014년부터 시니어 인턴 제도를 운영해온 GS25에서 정직원 채용 사례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 GS리테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 은퇴한 시니어에게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GS25 경영주와 근무자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2019년 시니어 인턴 채용 계획에 대해선 “현재 모집 중”이라고 답했다.
“시니어 인턴 제도가 정부 사업이다 보니 책정된 예산이 조기에 소진되고 나면 지원이 종료되어 채용률이 낮아지는 해도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 예산이 보다 많이 편성되고 사회적 관심도도 높아져 더 많은 시니어 인턴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본아이에프, 올해부터 시니어 인턴십 진행
본죽, 본죽&비빔밥 카페, 본도시락 등의 외식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기업 본아이에프도 2018년 5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시니어 인턴 채용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본아이에프 김명환 대표는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노인 일자리 부족 등 고령 인구 증가와 관련한 다양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면서 “이에 본아이에프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양질의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해나가는 등 국내 실버 복지 향상에 힘써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본아이에프는 협약을 통해 대구, 경상북도, 충청도의 가맹점을 중심으로 한식 조리, 매장 관리, 고객서비스 등의 시니어 적합 직종에 만 60세 이상의 시니어 인턴을 채용하기로 협의했다. 이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시니어 인턴을 채용하는 가맹점에 한 명당 최대 300만 원의 인건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니어 인턴 제도가 기업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이 시니어 인턴을 채용할 경우 짧으면 한 달, 길면 6개월간 정부로부터 임금을 지원받는다. 뿐만 아니라 시니어가 인턴 기간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채용될 경우에도 일정 기간 지원을 받는다. 이로써 기업은 임금에 대한 부담을 덜고 시니어 인턴을 채용할 수 있다. 본아이에프 관계자는 “3개월간의 인턴 업무가 끝난 뒤에도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원을 원하기 때문에 끈기 있는 시니어 구직자를 선호한다”며 “주방 업무가 주를 이루다 보니 체력을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100세 시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제 50대는 청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은 그 이름대로 서울 시민 50세부터 64세까지인 50플러스 세대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 재취업, 일자리, 교육, 정책 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50플러스재단은 지난해 10월 김영대 전 국회의원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향후 3년 동안의 사업 전개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최대 화두가 된 시대, 김영대 대표이사를 만나 50플러스 세대의 일과 삶에 대한 대안을 들어봤다.
새해 이슈는 일자리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조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등 단순 서비스직 업계에서는 사람을 쓰지 않는 대신 자동화 설비, 로봇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니어가 은퇴 후 직업으로 많이 선택하는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카풀 논란 또한 자율주행차가 도입될 미래의 택시 산업과 연결되는 사전적 갈등이다. 이처럼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일자리가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50플러스 세대는 노인 세대도 청년 세대도 아니어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50플러스 세대가 생산적이고 준비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각 방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실 생계형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곳은 이미 많습니다.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죠. 그래서 재단은 인생 후반 새로운 일의 유형으로 ‘사회공헌일자리’를 발굴하고 확산하고자 합니다. 보통 ‘앙코르커리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개인적 보람, 사회적 가치 모두를 만족하는 활동, 일거리, 일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50플러스 세대를 위한 일자리 해법
시니어에게 일자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수명이 늘어나고 부양 의무가 계속되면서 현역으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정무적 책임을 갖고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도 50플러스재단을 발족해 시대적 화두에 동참했고, 최근 김영대 대표이사가 임명되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으로 시민사회단체, 국회의원, 중소기업 CEO 등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남북경제협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임명에서부터 50플러스재단의 방향성에 대한 큰 그림이 느껴졌다.
“재취업, 일자리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십니다. 이제는 많은 분이 칠십까지 노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되는데, 그중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부분에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저소득, 취약 계층의 50플러스 세대를 케어하는 노력을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50플러스재단이 시니어 취약 계층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빈곤율은 OECD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에 달한다. 고령화 속도도 가장 빨라서, 높은 노인 빈곤율과 고령화의 쌍끌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시니어의 일자리 확보가 본인 스스로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로운 틈새시장 공략해나갈 것
일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장년 일자리와 시니어를 매치시키는 것도 만만찮다. 현장에 가면 정책과 현장의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50대 이후의 직업 훈련, 생계를 위한 일자리 알선 등은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노동의 가치를 살려 저소득 취약 소외 계층, 그리고 일하고 싶은 분들을 잘 안내해야겠죠. 또한 서비스직, 문화관광, 기타 영업 마케팅 쪽으로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도록, 구력과 경험 많은 분을 매칭하고 관련 프로그램과 직업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김 대표는 최근의 일자리 대책이 세대 융합 일자리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모범적인 사례를 찾아내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만큼 그런 사례를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창업과 관련해서는 당사자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창업하는 분들 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순식간에 돈을 까먹습니다. 조사해보니 창업자 10명 중 6~7명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창업을 철저히 준비하게 해야 하고, 창업자 수도 줄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진입장벽을 높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전에 꼼꼼히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실행 전에 미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재단에서 올해 개발해볼 생각이에요.”
시니어가 대거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엄청난 손실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잃어서 순식간에 나이 들어버린다는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려온다. 청년 때는 아래로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지만 나이 들면 어렵다. 따라서 선경험을 해보고 안 맞으면 빨리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 설명을 들으며 김 대표가 말하는 “조사, 증명과 함께 새로운 길을 제안하는 방향”이라는 게 어떤 모양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 수를 보면 일본의 성장세를 우리나라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건 관광 서비스하고도 맞물려 있어요. 관광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 중에 50플러스 세대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관광 가이드, 문화관광 해설사, 외국인들을 안내할 수 있는 문화재 해설사 역할 등이 있겠죠.”
은퇴자를 위한 귀촌 일자리 창출
김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 중에는 귀농·귀촌도 있다. 귀농·귀촌이라고 하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농촌에 가서 생활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걸로 하고 귀촌을 하면 생기는 일자리가 있다. 수확기에는 일당 받는 일자리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통, 택배를 도와주는 일도 있다. 그리고 지방에 가면 축제가 많은데 축제에 활용될 인력으로 50플러스 세대가 가장 적합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려고 하면 힘들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농한다고 부부가 함께 갔다가 몇 달 후 아내 혼자만 올라오는 일도 있고요. 차라리 가벼운 마음으로 일정 시간 귀촌해서 살아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일주일 중 월화수목은 도시에, 금토일은 귀촌을 하는 거죠. 경험을 쌓고 그 속에서 익숙해지면 정착하는 걸로 계획을 세우게 해 너무 부담을 갖고 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모아 집단으로 공유주택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귀농·귀촌과 일자리 문제 해결이 함께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북경제협력, 돌파구 될 수 있어
김 대표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이 남북경제협력 부분이다. 현재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분야가 경제협력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제협력 전문가인 김 대표가 50플러스재단 대표로 임명된 것은 남북 간의 경제, 일자리 문제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은 아닐까.
“사실 정년에 걸려 배출되는 50플러스 세대가 많잖아요. 서울만 해도 교통공단, 시설관리공단, 교사, 금융인 등등 꽤 많은데 이분들이 제2인생을 설계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50플러스 세대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습니다.”
김 대표는 남북 간 교류가 진행되면 당장 철도에 대한 시설관리 점검에 들어가야 하는데 개선, 보수 부분에서 나름대로 시장이 꽤 크게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50플러스 세대의 인력들은 기능직이 많다. 북측의 도로 보수, 여러 가지 인프라 조성 등의 기간산업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는 50플러스 세대 기능직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50플러스재단이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강하다면 계속 일할 것
“저 역시 50플러스 세대로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50플러스 세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은 실제 경험해본 사람이 시민들의 피부에 느껴지도록 설계해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0플러스재단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획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50플러스보람일자리’다. 은퇴한 50플러스 세대가 학교, 마을, 복지시설 등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인생 2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2015년 6개 사업 총 442명의 규모로 시작해 지난해는 총 31개 사업에 2236명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상상우리가 재단과 함께 풀어가는 사업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5060세대 1000명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한 후 사회적기업 취업률 50%를 목표로 하는 장기 계획이다.
“저도 칠십 세까지는 일할 계획이 있고 그 이후에는 건강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건강할 때까지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쉬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엄청난 여유가 있어서 여행만 다니며 살 조건도 못 돼요. 그래서 칠십까지는 일하고 이후에는 사회봉사형 일자리, 공헌형 일자리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담백한 목소리로 불필요한 부분 없이 실제를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읽고, 통찰력과 정책으로 다듬어진 김 대표 자신이 무엇보다도 50플러스 세대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