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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부터 지원 대상 확대, 호스피스 병원이 하는 일은?
- 호스피스는 임종이 가까워진 환자가 육체적 고통을 덜 느끼고 심리적·사회적·종교적 도움을 받아 ‘존엄한 죽음(well-dying)’에 이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료 서비스다. 하지만 아직 의료기관 중에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이와 관련,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이 8월부터 시행된다.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되던 호스피스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비암성 말기 환자(만성폐쇄성폐질환, 간경변, 후천성면역결핍증)에게도 서비스가 확대되는 것. 이로 인해 관련 질환 환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시범사업을 위한 의료기관도 지정했다. 일산서구 탄현동 소재 연세메디람내과에서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고 있는 황의동 원장을 만나 호스피스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호스피스 지원 대상이 확대된다던데 어떤 서비스인가요? 말기 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돼 담당 의사로부터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진단받은 환자를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암 관리법에 따라 말기암 환자만 호스피스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8월부터는 만성간경화·후천성면역결핍증(AIDS)·만성폐쇄성폐질환 말기 환자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왜 이런 법률이 시행됐나요? 대형 병원은 대기 환자가 넘쳐나고 다른 환자에 비해 호스피스 대상 환자의 수가도 떨어져 병원 입장에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말기 환자가 많이 찾는 대형 병원들의 상황이 이처럼 엉망이니 보건당국이 나서서 호스피스 대상도 확대하고 시범으로 운영할 병원도 지정한 거죠. 5월 말 기준으로 전국 상급종합병원 43곳 중에서 16곳만이 호스피스 병동과 병상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보건당국이 8월 4일부터 호스피스 서비스 시범사업을 의료기관 45곳에서 시행합니다. 호스피스 병원을 설립한 이유는 뭔가요? 대형 병원은 치료 중심의 병원이다 보니 아무래도 호스피스나 완화의료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족한 부분을 완화의료기관에서 보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했고 의사로서 사회적인 책임도 느꼈어요. 이제 설립 4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도심에 호스피스 병원이 부족해서인지 100일 넘게 집에 못 들어 갈 정도로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가 많습니다. 일반 병동과 호스피스 병동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일반 병원은 환자-질병-치료-퇴원의 흐름을 생각하는 게 대부분인데, 호스피스 병원은 환자 및 가족-증상조절-육체적·심리적·영적 안정을 목표로 하는 게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하는 환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퇴원보다는 병원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을 준비’를 하는 환자의 심리는 어떤 상태인가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임종의 심리단계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이 다섯 단계가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공통된 심리상태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입니다. 그래서 저희 병원에서는 임종을 앞둔 환자의 가족을 위한 상담이나 환자가 임종한 후 유가족들이 직면할 수 있는 개별적인 법률, 보험 등의 문제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일대일 케어 서비스가 특별해 보이는데 간병인과 다른 점이 있나요? 저희 병원은 환자와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병원을 목표로 설립되어 모든 병실을 개인 병실로 구성했습니다. 또 간병은 가족 간병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족 간병이 안 되는 예외적인 환자의 경우 간호사와 직원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줍니다. 저희 병원은 환자 수 보다 직원 수가 더 많고 앞으로도 인력 충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관리 프로그램을 알고 싶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은 환자의 ‘통증 완화’가 가장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그다음이 종교적 접근입니다. 전담 목사가 환자 예배와 종교 상담을 하고 있고 천주교, 불교 등에서도 내원합니다. 미술 치료, 아로마 치료, 원예 치료, 음악 치료, 마사지 치료 등도 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목욕·미용·말벗·성가봉사·연주회 등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말기암 환자에게는 심리 치료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통증이 우선 해결되고 호흡곤란 등이 해결되어야 심리적인 접근을 할 수 있습니다. 의학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심리적인 접근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숨이 차고 아픈데 환자에게 무슨 소리를 해준들 들리지 않겠지요. 따라서 심리적 접근은 의학적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서 의료진, 사회복지사, 가족이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 위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잘 죽는다’는 의미를 남다르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글쎄요. ‘잘 죽는다’는 의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잘산다’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삶의 마지막까지 육체적으로 편안해야 하고 또한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유지되어야겠지요. 호스피스 병원의 간호사들은 특별 교육을 받나요? 저희 병원의 모든 간호사는 채용 전 반드시 60시간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과정을 수료해야 하고, 입사 후에는 보수교육 이수가 의무사항입니다. 또한 병원 프로그램을 통한 반복적 교육으로 환자에 대한 서비스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요? 병원에 입원했던 모든 환자들이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첫 환자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나이가 저보다 어렸던 30대 여자 환자였는데 마음을 열 때까지 가족들과 직원들을 많이 힘들게 했어요. 하지만 가족과 의료진이 함께 기도할 때 임종 순간을 편안히 맞이했습니다.
- 2017-08-0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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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AVO’ 정신으로 BRAVO를 외치다
- 30년 이상 정든 직장을 퇴직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순간 1억원의 연봉을 받던 필자는 연봉 0원을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퇴직 후의 삶에 대해 나름 준비는 했지만 그동안 화려했던 현실은 사막과 동토의 땅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단절되어 방향 감각도 점점 둔해져갔다. 그런데 마침 이때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종로 3가에 있는 도심권50플러스센터 및 KDB 시니어브리지센터와 같은 교육 과정(인생설계 아카데미)이 있어 참여했다. 인생 2모작 준비를 위한, 액티브 시니어의 길로 가는 첫 발걸음이었다. 인생 2막의 나침반, 액티브 시니어연구원 필자는 위 센터의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 함께 수업을 들은 교육생들과 의기투합했다. 우리나라의 시니어들이 퇴직 후 방황하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나갈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대기업, 금융기관, 교육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참여해 만든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연구원. 본 연구원은 참여자들이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사장시키지 않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사례 중심으로 강의할 수 있는 전문 강사로서의 길을 찾아주면서 한편으로는 퇴직 전후의 시니어들이 강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연구원의 첫 사업은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액티브 시니어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었다. 연 2회 과정으로 고려대 측과 무사히 협의를 마친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강사진의 자질 향상을 위한 강의안 작성 및 시연 일정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교육 과정에 필요한 재능기부 명강사 확보에도 주력했다. 마침 베이비부머들이 퇴직 후 쏟아져 나오는 시기이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시니어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신문 매체 홍보와 학교 측의 협조가 순조롭게 이뤄져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정원 40명이 금세 채워졌다. 연구원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강사로서의 자질을 발휘해 재능기부 강사로 참여했고 본 과정은 2014년 3월 6일 출범식을 가졌다. 액티브 시니어의 정신 : PRAVO 본 연구원 이사회는 교육 방침이자 모토로 ‘PRAVO’를 제정했다. 1. Pride : 자존감 중시 2. Relation : 소통, 관계 중시 3. Active : 적극적인 활동 4. Valuable : 가치 있는 삶 지향 5. Occupied : 평생 현역 이제 시니어들은 정년퇴직 이후 과거처럼 ‘뒷방 노인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함께 사회 및 경제 발전에 참여하고 상호 윈윈하는 상생의 파트너십을 발휘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교육 과정은 은퇴 설계 4분야, 즉 건강, 재무, 관계, 시간 관리에 대한 사례 중심 발표로 이뤄졌는데 현실감 있는 생생한 강의로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이 과정은 수강생들이 재능기부와 봉사를 하는 등 다른 유사 강좌와 차이점을 보였다. 자문 및 진행 교수가 멘토로 참석해 교육이 끝날 때까지 함께한 것도 차별화된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는 교육 과정을 진행하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한 주축을 담당했던 시니어들이 비록 은퇴는 했지만 여전히 대단한 능력과 건강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이들이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제2의 도약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대했던 대로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해온 본 과정은 이번 3월이면 어느새 제7기생 교육 과정에 들어간다. 현재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 및 고려대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출신들은 사회 곳곳에 진출해 ‘PRAVO’ 정신을 구현해나가고 있다. 강의 수요 창출하고 콘텐츠 보급한다 고려대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출신들은 현재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제1기 한정수씨는 70세의 나이에 스타 강사가 됐고 김미정씨는 전업주부에서 감성하모니 코치로, 변용도씨는 인생 2막을 용도변경하는 전문 스타강사로서 열정 넘치는 인생 2막의 삶을 보내고 있다. 제2기 김점옥씨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랑의 노래를 하며 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1기부터 6기까지 14인의 활동 상황은 롤모델화해 올해 상반기 라는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더평생진로정보연구소’,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한국생활건강연구원’, ‘앙코르브라보노’, ‘희망도레미’ 등에서 활동하는 본 연구원 출신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의 꿈 본 연구원은 비영리 사단법인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계획이다. 우선 전 지역에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과 같은 지사를 설립해 서울 지역 활동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국의 도·시·읍·면에 지부를 두고 고려대 평생교육원의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을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니어 전문 강사만 최소 500명 이상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시니어 평생 현역의 꿈을 실천하는 전당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지금도 시연 활동을 매월 지속하고 있으며 특별강사를 초빙해 강의도 들으면서 연구 회원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많은 회원들이 자원봉사활동은 물론 공무원 연금공단 강사, 시니어 명강사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중 한 가지 사례를 대표적으로 소개하면 한국 시니어 블로거 협회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의 김봉중 회원은 한국 시니어 블로거 협회 회장이 되어 활발한 PRAVO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동작50플러스센터 인큐베이팅룸(이솔터룸)에 입주해 있다.
- 2017-02-0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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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호스피스 담당 이인순 수녀
- 올해에도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됐던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에서 “죽음은 삶의 대극(大極)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일상과 무관하고, 삶과 거리가 있게 느껴지지만 사실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대단히 죽음에 인색하다. 입에 올리는 것마저 거북해한다. 매일 죽음을 접하는 사람은 다르게 느낄까?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마리아 병동(호스피스 병동)의 이인순(李仁順) 수녀를 만났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저는 죽음이 삶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니까요. 하루하루 죽어가는 존재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모든 여정에는 그 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가 던진 우문(愚問)에 이인순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소인의 입장에선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매일 죽음을 맞닥뜨리는 일이라니. 일이 어렵거나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이인순 수녀는 되레 의아해한다. 소임받은 일에 의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인순 수녀가 이 호스피스 병동에 부임한 것은 국제성모병원이 개원한 2년 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서 근무하다 수녀회로부터 소임 이동 명을 받고 이곳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한데, 이 수녀는 간호사이면서도,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에겐 이곳 일이 쉽지만은 않아요. 다들 젊은 나이이기도 하고요.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은 환자와 가족들과의 만남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병동에서 함께 산다고 볼 수도 있죠. 돌보던 환자가 돌아가시면 습(襲)까지는 아니지만 시신을 정성껏 닦고 새 옷을 입혀드립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으로 보내드리는 일까지 모두 직접 해요. 스트레스도 적지 않아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소진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가족이 치료 대상이 되는 이유 이렇게 어려운 일인 호스피스는 무엇일까?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 그대로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보다는 통증 경감과 기타 신체적 증상 조절, 심리·사회·영적 돌봄을 통해 ‘남은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죽음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의 마감과 가족과의 이별을 돕는 것이 목적이다. 정부에선 지난해 7월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는 말기 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앞으로 그 대상이 다른 질환의 환자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현재 이인순 수녀가 있는 마리아 병동에는 33개 병실이 있다. 환자가 머무는 시간은 평균 한 달 정도. 물론 길면 두 달, 짧으면 일주일 이내에서 몇 시간까지 차이가 있다. 호스피스 병동이 일반 병동과 다른 것 중 하나는 바로 ‘가족’에 대한 관점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선 가족도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본다고 이 수녀는 말한다. “‘사별 상실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어요. 말 그대로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죠. 보통은 13개월에서 3년 정도면 사별 상실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고들 해요. 하지만 그 이상 길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 정도 되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죠. 여전히 배우자와의 사별이 가장 큰 충격, 즉 삶의 스트레스 1위이지만 최근에는 형제·자매와의 사별도 그 충격이 매우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요.” 이러한 사별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다른 사람들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사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별 상실 스트레스를 겪는 분들이 말합니다. 자녀나 가족들로부터 ‘이제 그 얘기 좀 그만해. 잊을 때도 됐잖아’라는 말을 듣는다고요. 죽음을 터부시하고 외면하고 싶은 심리가 있으니까, 고인에 대한 이야기도 못 꺼내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태도는 사별 가족 모두에게 좋지 않아요. 심한 경우 50년이 지나서 사별 상실의 슬픔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사별을 겪었던 당시에 상실의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거나 극복하지 못한 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결국은 표출되고 마는 것이지요. 이러한 슬픔은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나’와 ‘슬퍼하고 있는 그 당시의 나’를 대면하고 인정하면서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병명 알고 죽음 맞는 환자 적어 현재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입원하면 모든 환자가 암 환자다. 그러나 실제로 병명과 상태를 정확히 알고 오는 환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이 수녀의 설명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가족에게 권하는 것이 ‘진실 통고’ 혹은 ‘나쁜 소식 전하기’예요. 환자의 알 권리를 존중하자는 것이지요. 환자에게 병명이나 의료적 상태를 정확히 알리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보호자, 즉 자녀분들이 당사자들에게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환자에게 가벼운 병명으로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미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걸까? “‘진실 통고’를 권하면 보호자들 반응이 대부분 비슷해요. ‘아마도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얼마 안 남으셨는데 꼭 그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요, 삶의 끈을 놓으실 것 같습니다’ 등등 이유가 많습니다. 하지만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 환자 본인이잖아요. 자신의 남은 삶을 삶의 주인이 갈무리해야 하는데, 그것을 자녀들이 막는 셈이죠. 환자의 권리를 앗아가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본인들에게 진단명이라는 이름으로 말기 암을 알리고 현재의 의료적 상태를 알렸을 때 심리적으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만약 환자에게 진실 통고를 할 때 심적 부담이 된다면, 보호자가 그 짐을 떠안을 필요는 없어요. 원래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의료진의 몫이니까요. 가족 중에 말기 암 환자가 있다면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환자 상태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주들, 즉 어린아이까지요.” 어린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이 수녀는 말한다. 어린아이들이 놀란다는 이유로 혹은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 사별 현장 또는 조부모 사별 현장에서 배제된다. 결국 남는 것은 기억뿐인데, 부모와의 마지막 추억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수녀의 이야기다. 병명을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고 숨기더라도, 환자는 병 진행에 따른 본인의 몸 상태의 변화나 병동의 환자들, 주변 분위기를 보고 눈치를 채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환자는 자신이 어떤 상태라는 걸 안다는 사실을, 또 가족은 환자가 눈치 챘다는 것을 알아도 입을 닫는다. 서로가 서로를 안타까워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숨기는 것이다. 슬프게도. 시한부 환자가 겪는 5단계 그렇게 알게 된 말기 암에 대한, 본인의 몸 상태에 대한 환자의 심리적 반응은 어떨까. “호스피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5단계로 설명했어요. 맨 처음엔 부정하죠. 결과를 믿지 않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요. 그러나 같은 결과를 듣게 되지요. 그럼 ‘하필 내가 왜?’라며 자신이나 가족 또는 병원 직원, 더 나아가 신에게까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환자가 존경과 이해와 지속적인 관심을 받으면 격한 분노가 한결 누그러집니다. 진실과 인내가 필요하죠. 그러면서 사실을, 죽음을 인지하지요. 하지만 타협하는 과정을 거쳐요. 종국에는 신과의 타협입니다. 그것이 끝나면 우울해지고 수용하는 과정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반드시 이 순서대로 감정 상태를 보이지는 않아요. 감정의 기복이 큽니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요.” 그렇게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을 거친 후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어떤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은 죽음일까. 또다시 튀어나온 모호한 질문에 이 수녀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분명하게 해줬다. “그 전에 바르게 사셔야 해요. 잘살아야 잘 죽을 수 있는 것이지요. 흥청망청 살다가 인생 말년에 웰다잉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가족과의 불협화음이 있는 경우의 환자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아요. 마지막까지 외롭고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고요. 환자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해서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경제적인 문제는 남은 가족한테 떠넘기지 말고 본인이 해결하셨으면 좋겠어요. 사별의 아픔을 겪는 가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남기는 셈이니까요.”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죽음 역시 인생의 방점이고 현실이니까. 로맨틱할 이유도, 동정만 할 일도 아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자택 임종’ 하고 싶어도 못해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의학적으로 임종 시기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단다. 때문에 그 시기가 가까워지면 환자를 임종실로 모시고 차분히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족들과 이별할 시간도 마련한다. “임종실을 해밀방이라고 불러요. 해밀은 비온 뒤 맑은 하늘을 뜻하는 우리말이에요. 해밀방으로 옮겨지면 환자와 가족들이 그간 하지 못했던 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라고 권해요. 서로가 청할 것이 있으면 청해서 용서받고, 화해하라고요. 이런 과정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돼요. 한번은 의식이 없는 아버지(환자)와 가족 모두가 마지막 인사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환자의 의식이 살짝 돌아와, 네가 했던 말 다 들었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표현하신 거예요. 환자의 큰아드님이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가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환자는 의식이 없어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귀는 열려서 듣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환자가 임종하면 이 수녀와 담당 간호사는 고인의 몸을 닦고 준비해뒀던 옷, 생전에 좋아했던 옷으로 갈아입힌다. 이 수녀는 이 과정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보람 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피를 토하는 환자가 있어요. 그러면 고인의 얼굴을 잘 닦아드리고 정돈된 모습으로 가족과 마지막으로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드려요. 그러면 가족들이 기억하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은 피 토한 흔적 없는 깨끗하고 편안한 모습이에요. 그 모습에 가족은 위로를 받아요. 편한 얼굴을 보고 편하게 돌아가셨다고 믿고 싶은 거죠.” 환자들은 생의 마지막 장소로 병원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많은 환자들이 임종 장소로 집을 원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병원이 선택되는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다. “집에서 환자를 24시간 간호한다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요. 환자를 돌보는 문제도 있지만,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난 뒤에도 문제가 있어요. 사망 확인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가 꽤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호자들이 겁을 먹는 경우가 많아요. 죽음의 현장이 자연사임에도 불구하고 죽음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이니까요.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의 영향이 지배적인 거죠. 현재는 꼭 가정에서의 임종이 아니어도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를 통해 호스피스 서비스를 가정에서 받으실 수 있어요. 올 3월부터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데, 병원에서와 같은 돌봄을 가정에서 받을 수 있고 돌봄 제공자들이 연계되어 가정으로 방문합니다. 환자들이나 가족들의 반응도 좋아요.” 죽음 앞에서 가족들의 모습은 어떨까. 이 수녀는 예외 없이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수고했다. 고통 없는 좋은 데로 가라”고. “다들 그러세요. 고생 많았다. 수고했다. 고통 없는 데로 먼저 가라고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있어요. 다시 만나자고. 아마 우리네 민간신앙이 바탕에 깔렸겠지만, 죽음 너머에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가 있다고 믿는 것이죠. 그래서 이야기해요. 좋은 곳에 먼저 가 있으라고. 다시 만나자고.” 이 수녀는 마지막으로 잘 죽는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송나라의 주신중(朱新中)이 훌륭한 죽음에 대해 5멸(五滅)의 실천을 이야기했어요. 멸재(滅財), 재산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 멸원(滅怨), 원한을 남기지 말 것. 멸채(滅債), 남에게 빚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 멸정(滅情), 정분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 마지막으로 멸망(滅亡),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을 것이라고요. 인생 여정의 붙잡고 있기와 놓아주기를 균형 있게 한다면 하루하루 잘 죽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2016-11-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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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감] 동년기자단이 함께한 연극 <첫사랑이 돌아온다> 관객과의 대화
- 77세 현역 극작가 윤대성의 신작 (이윤택 연출·연희단거리패)가 부산 초연에 이어 서울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다. 이 연극은 치매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치매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로,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연극이다. 이에 독자들을 대신해 동년기자단 11명이 서울 공연 첫날이던 지난달 7일 공연장을 찾았다. 연극 관람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치매 환자, 가족, 현실과 연극에서 느꼈던 치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녹취정리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동년기자단 김종억, 김진옥, 박혜경, 백외섭, 성경애, 양복희, 육미승, 이인숙, 장영희, 장원일, 조왕래 -연출가 이윤택이 말하는 연극 는 100% 하고 싶었던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이 극을 쓰신 윤대성 선생님은 지금 요양원에 계십니다. 공연 팸플릿에 쓴 ‘작가의 글’을 보면 ‘내가 지금 요양원에 있고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이든 노부부가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쓰신 글입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치매로 돌아가신 연극계 여성의 구술 증언과 윤대성 선생님이 보내주신 ‘제3병동’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입니다. -고령화 사회, 시니어 세대에 접어들었지만 치매 소재 연극은 처음 저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지만 부끄러운 게 이 소재를 가지고 공연해본 적이 없습니다. 막상 해보니까 이게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정말 심각한 비극이 될 것 같더라고요. 사실적으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든 분들의 진실과 관련된 문제인데 또 가볍게 갈 수도 없었습니다. 굉장히 힘든 작품이었죠. 조심스럽게 사례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본 검증을 치매관련 기관에서 받았습니다. “치매에 대한 예방책이 있을 거 아닙니까?”라고 했을 때 원래 대사는 “없다, 끝이다”였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 예방책을 얘기하지만 인간의 의지로서는 이겨낼 수 없는 것이 치매입니다.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은 투쟁이다. 투쟁!”으로 바꿨습니다. “없다”는 말을 “투쟁”으로요. 연극을 만드는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치매에 걸린 당사자들이 이 작품을 봤을 때 불쾌하거나 나쁜 기억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것도 연극인데 너무 한 쪽만을 보여서 연극을 재미없게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현실과 연극, 양쪽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게 힘든 작업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을 공연하자마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한 백화점에서는 작품도 보지 않고 전국 순회공연을 제안했습니다. 내용이 고령화 사회이고, 백화점에 오시는 분들이 연세가 있는 분들이 많고 또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죠. 많은 지원은 하지 못하겠지만 전국 순회공연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동년기자단도 오늘 단체 관람을 오셨지만 시니어들의 단체 관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 이런 연극을 해야겠구나. 정말 시니어를 위한 연극이 없었구나! 문화가 없었구나! 시니어들에게 어떤 공연 문화가 필요할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해피앤딩 대신 따뜻한 이별 이 공연을 하면서 극단과 저의 전략은 ‘없는 희망을 가질 수는 없다. 해피앤드로 끝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극 중에서 어르신이 치매로 죽습니다. 죽더라도 아름답게 죽자.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할 말 없지요? 그냥 가세요.”라고 말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삶의 의욕에 ‘사랑’이라고 하는 묘약을 던져서 기분 좋게 돌아가시도록 하는 정도가 목적이었습니다. 공연을 하면서 제일 두려웠던 것이 실제 시니어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극은 나이 드신 분이 보아야 할 게 아니라 치매 노인을 모시는 며느리나 아들, 손자가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연극은 창작극입니다. 그것도 77세 현역 극작가가 진짜 자신의 기억을 갉아 먹어가면서 쓰신 작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막을 올려야 했습니다. 좀 거칠지만 우리 창작극의 역사가 100년밖에 안 되지만 창작극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동기, 실제로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 창작극의 매력이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작품을 올렸습니다. 오늘 저는 보통 서성거리지 않는데 자신이 없어서 문 뒤에 서서 연극을 본 게 아니고 관객을 봤습니다. 관객을 봤는데 모르겠어요. 고등학생에서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하게 오셨는데 어떻게 재미있게 볼 만 했습니까? 김진옥 치매라는 주제를 가지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뤄주신 것 같아서 아주 좋았습니다. 이윤택 그렇게 보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장영희 이라는 단편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가 최고상을 받았다고 해서 본 적이 있는데 이 작품과 비슷하게 사랑이 찾아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연극이 전달하는 의미가 훨씬 가슴이 와 닿았고요, 굉장히 좋았습니다.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것은 극중 여주인공이 전혀 기억이 전혀 안 나다가 기억이 돌아온 것인가요? 이윤택 마지막에 긴 독백을 하지 않습니까? 그건 본인의 기억이에요. 그런데 그게 여주인공의 기억이기는 하지만 재창조한 거죠.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사실 이 작품이 쉬운 작품이 아닙니다. 구조적으로요. 이게 의식과 무의식을 왔다 갔다 하죠.특히 이 할머니 역할이 굉장히 어려운 역할입니다. 쓰러졌다 울다, 웃다를 반복하죠.할머니의 고향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기본이 되고 그 기억을 밑천으로 남자 주인공이 원하는 기억 속으로 재창조해서 들어간 것입니다. 상상력, 그러니까 창조죠. 그 장면이 이 연극의 압권입니다. 양복희 스토리가 사실은 아니잖아요. 치매 환자는 과거의 기억들을 영롱하게 기억할 수 없잖아요. 이윤택 보통 치매 환자들은 확인해 본 결과 현재 기억이나 현실적인 기억은 잊어버리는 대 신 기억 하는 패턴은 있어요. 그런데 너무나 명확하게 기억한다는 것이죠. 치매라는 것이 제 일 안타까운 것은 치매 환자들의 정신이 이중적으로 갈린다고 해요.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을 자신이 안답니다. 기억이 안 나는구나 하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힘들어서 연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고 하죠. 이성이 살아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르는 거죠. 이 이중적 거리 때문에 힘들다더라고요. 육미승 그 흥미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기억을 되살린 것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치매 환자가 잠깐 알아볼 수는 있지만 그렇게 길게 알아보지는 못한다고 들었는데 극적인 흥미를 위해서 그렇게 표현하신 건가요? 이윤택 아까 잠깐 잠깐이라고 하셨는데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지금 치매입니다. 어머님이 이 연극을 보셨어요. 쉽게 말해서 어머님이 이 연극을 이해를 못하세요. 그런데 또 어떤 부분은 이해하세요. 인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연극이 아닙니다. 있어야 하는 현실, 우리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모델을 만든 것이 연극입니다. 대부분의 치매 환자들이 기억을 망각하고 뭘 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이런 꿈이 있다, 상상할 수 있고 창조할 수 있다는 가설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극이라는 거죠. 장영희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를 다룬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평균 21일 안에 사람이 죽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이 살아서 나왔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초반에 나오다 왜 그 사람 이야기를 후반에 쓰지 않았냐고 영화감독에게 물었더니 “쓸데없는 희망을 갖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분을 배제했다”고 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치매 환자를 몇 번씩 살리고 기억도 살리셨잖아요? 이윤택 두 가지 개입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는 것도 하나의 판단 선택일 수 있죠. 우리 연극에서 기적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우리는 기 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술의 기능이라는 게 어느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말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아주 현실적인 사고겠죠? 나는 그래도 기적을 만들어내겠다는 상당히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고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정원일 질문 하나하고 소감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까 뒤에서 보셨다고 했잖아요. 관객들의 반응에서 일치된 면과 가장 안 맞아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윤택 안 맞아 떨어진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관객들에게 원했던 것은 딴 것은 없고 집중력이었습니다. 관객들이 하품하거나 졸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중이란 면에서 확실했습니다. 그리고 더 알맞았던 점은 조금 웃어줘야 할 때 다 웃어주셨고 조 금 긴장해야할 때 다 긴장했고요. 저는 오늘 관객에 대해서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원일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남녀 주인공이 대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갈 때 가장 재밌었습니다. 다른 배우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장치를 안 해 놓으셔도 두 분이 치고받는 대사들이 집중력 있고 재밌었다. 조왕래 치매관련 연극이라기에 전철로 2시간 거리인 파주 월롱에서 왔습니다. 치매 전문 봉사자 활동을 5년째 하고 있는데 수많은 치매 환자들을 만나고 있어요. 주로 치매 환 자들 중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연극을 통해 일반인들이 치매라는 병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늘어나게 되면 치 매 환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텐데 건강한 노인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 어(老老Care)가 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합니다. 다음에 그런 내용을 연극에 넣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윤택 치매의 원인은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가족에서 온다는 게 있습니다. 연극에서 가족 이 재구성되잖아요. “이 사람이 네 아버지다”라고 하는데 실제 아버지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가족보다도 진짜 진실이 통할 수 있는 가족인 것이죠. ‘외로움이 치매의 원인이다, 치매를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가 애초의 주제였습니다. 성경애 많이 울었어요. 엄마가 생각나서요.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셨거든요. 너무 생각이 많이 나고 웃다가 울다가 배우 여러분 너무 감사하고요. 오늘 여기 오기를 너무 잘한 거 같아요. 그냥 저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거든요. 너무 애쓰셨습니다. 다 하 나하나 소중하게 다 잘해주셨습니다.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이윤택 오늘 주연 배우 두 명이 다 울었어요. 아까 김철영씨도 울었고 김미숙씨도 통곡을 하는데 연습할 때 평소 보지 못했는데 막 울더라고요. 오히려 울어야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진옥 그런데 실제 치매 환자는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이중인격처럼 극과 극을 치달아요.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도 치매가 되면 폭발을 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 이 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정말 인품 좋던 분이 정말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뀌는 것도 봤습니다. 너무 잔잔한 것 같은 느낌? 이윤택 그 부분에 대해서 예술적인 동기를 말씀드리면 치매에 대해 불편하게 갈 것인가 하 는 개념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개념에서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의 결핍에 대한 결핍을 채우는 쪽으로 갈 것이냐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오스트리아)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프로이트적인 것은 ‘치매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 파헤쳐서 환자가 그 원인을 알아야 낫는다’는 게 프로이트적인 심리치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원래 넌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알아버리면 안 된다는 거죠. 오히려 프로이트적인 심리치료가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 났어요. 롤랑 바르트의 방법은 환자들에게 아름다운 것, 환자들에게 결핍된 부분을 계속 이야기하는 거죠.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점, 추악한 점은 모르게 해라, 계속 좋은 것만 이야기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결핍되고 나쁜 것들이 순화된다고 하는 게 롤랑 바르트의 이론이에요. 많은 분들이 치매 환자가 연극에서처럼 곱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정말 리얼하게 보여준다면 치매 환자들은 더 나빠진다는 것이죠. 저 희가 치매병원에 가서 이 공연을 해야 하는데 가서 우리가 이런 공연을 할 때 치매 환자들이 실제로는 막 이러는 사람들도 본인들도 얌전하게 볼 겁니다. 아까 말한 대 로 연극은 현실 그대로가 아닙니다. 연극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은 연극 만드는 사람들의 장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저나 우리극단이의 입장은 너무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약간 조금은 버전 업 시키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박혜경 저는요 사실 크게 잘 모르고 왔어요. 굉장히 무거우면서도 슬프면서도 자신을 성찰 하는 시간이었어요. 저도 시니어 초년생인데 앞길에 대한 생각 자식 생각도 했어요. 어린아이들이 와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도 느꼈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치매에 걸린 건가요? 이윤택 치매 사례 중에 ’오동추 목사’라는 것을 봤습니다. 의사가 치매 많이 걸립니다. 의사 가 치매 환자라는 설정, 정신과 의사들이 많이 정신병에 걸립니다. 현실을 정신병자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아버님부터 치매로 죽었고, 실제로 ’오 주여’하다가 오동추가 튀어나고는 것이고. 실제 사례였습니다. 결국 치매는 하나님도 도울 수 없는 문 제라는 뜻이었습니다. 극 중에서 의사는 치매요양병원을 자가 운영하던 사람이고 60 대였고 또 딸은 50대였잖아요. 유전이 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관 객 마지막 장면에 의사나 딸 또한 치매에 걸리면서 끝나는데 젊은 사람들도 안전할 수 없다, 남의 일이 아니란 뜻을 보여준 건가요? 이윤택 작가 선생님이 마지막 장면을 중요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치매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하더군요. 서로를 이해하는 세대 간 소통 연극이 돼야 하지 않나. 고령화 사회와 아들 세대, 손자 세대 3세대가 봐야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치매협회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고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과 불쾌감 혐오를 가지시는 분들에게 이 연극을 통해서 ‘너무 그러지 마라. 불쾌하게 꺼리지 마라. 인간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죠. 장영희 저는 웰 다잉 차원에서 아름다운 마무리, 마침표에 접근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에 “아 무 걱정 말고 가세요”하는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좋은 말로 보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윤택 이왕 죽는 데 “편하게 갑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외 동년 기단 의견 김종억 동년기자 대개의 사람들은 치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다. 연극 는 무거운 주제를 약간은 극적으로 구성해 무겁지 않게 했다. 실상 치매 환자가 극처럼 전개되지는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가 없다. 실생활에서 한두 번쯤은 치매환자를 겪어보았거나, 현재진행형일 수 있기에 더욱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출자의 말대로 너무 무겁게 전개한다면, 현실적일 수 있으나 보는 이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보다는 너무 가혹한 현실을 인지시키는 일’ 일 수 있다. 는 조금은 밝게 터치해 나가면서 잔잔한 마음의 울림을 가져오기에 괜찮았다. 치매와 관련된 당사자나 가족들이 드러내 놓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기에 그 상황을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안으로 삭이면서 자신의 현상을 괴로워하고 속상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누구든지 나이가 들면, 올 수 있는 현상으로 자각하고 사회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예방하고 관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백외섭 동년기자 좋은 주제로 열정적인 연기를 한 출연진과 공연준비를 한 제작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남달리 관심이 많은 것은 치매 10년차 노모가 노인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한 달에 2번 이상 문안드리면서 어머님을 비롯한 다른 환자의 발병 원인과 병증세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발병 원인은 연극에서처럼 유전도 있지만, 사고가 의외로 많다. 필자의 모친께서는 낙상에 따른 고관절 수술 후 치매가 천천히 진행되었다. 고령자는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조그만 사고가 치매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위에서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고령이나 유전으로 치부하고 있다. 다양한 발병 원인을 연극에 가미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증상도 기억력 상실만이 아니다. 이상발작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때는 정상인보다 더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치매를 불치병으로 여기는 현재의 의료 환경에 가슴이 미어진다. 시니어는 부지불식간에 닥치는 낙상이나 상처를 특히 조심하는 등 치매예방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 2016-07-2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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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대 이야기] 1942년生, 아 옛날이여!
- 어느 날, 남대문 시장 노점에서 메뚜기 설 볶아놓은 것을 한 대접 사왔다. 위생처리 겸 프라이팬에 다시 한 번 더 볶은 후 맛있게 집어먹고 있을 때, 퇴근하여 거실로 들어서던 며느리가 흠칫 놀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머니… 어떻게 그것을, 잡수세요?” “먹어봐라, 고소하다! 아, 이제야 메뚜기 솟증[素症]을 풀었다!” 노릿노릿 잘 볶아진 메뚜기 두세 마리를 집어건네자 며느리는 뒷걸음질을 치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웃었다. 물방개와 잠자리 여치를 잡아 구워먹은 옛이야기를 하면 꾸며낸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무논과 수초 많은 개울이나 못[池] 가장자리에서 우렁이와 개구리를 잡아먹었다면 그런 곳(무논 등)이 어디 있느냐며 과장하여 표현하는 줄 안다. 산속 계곡 물속에서 다슬기와 가재를 잡아먹었다면 그 정도는 믿어준다. 산행하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란다. 특히 참새 개구리 잠자리 물방개를 잡아 구워먹고 구운 물방개의 살찐 뱃대지가 입안에서 툭 터질 때의 쾌감이 좋았다고 하면 “아, 어머니 몬도가네!”라고 한다. 그렇다. 며느리는 나를 몬도가네 버금가는 못말리는 여사로 알고 있다. 김장배추도 푸른 잎이 많이 달린 뻣뻣하고 못생긴 야생 배추를 쭉쭉 찢어먹기 좋아하고, 썰어서 버리는 배추김치 대가리조차 와삭와삭 씹어먹는 나에게 더러는 연민의 눈초리도 보낸다. 뿐인가, 보리쌀을 두 번 삶은 순 꽁보리밥과 누런 다시멸치 몇 마리 넣은 멀건 된장국 만으로 식사하길 좋아하고, 찬밥 물에 말아 새우젓 한 가지로 혹은 된장에 박은 고추장아찌 두세 개로 한끼를 때우곤 “아 잘먹었다!” 만족한 낯빛의 나를 더러는 멸시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한다. 가마솥 가득한 보리밥을 보며 가난에 절어서 먹을 음식 같지 않은 조야한 것들로 목숨을 연명해온 당신의 성장과정이, 또한 그때로부터 수십년을 더 살고도 그것을 잊지 못해 즐기는 당신의 지금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하여 눈물을 머금기도 한다. 그럴 것이다. 수십년을 지나고도 상기도 그때의 입맛이 뇌리와 심층 켜켜에 박혀, 그렇게 양육된 살과 뼈와 피가 영혼까지 흡수하여 향수(鄕愁)라는 미명으로 그립고 그리워 찾게 되는, 그 즈음의 먹거리며 하늘이며 바람이며 공기며 사람냄새 풍기던 촌스럽고 순박하던 인심이며, 그것은 진득한 사랑이며 아픔이었다. 1950~60년대는 모두가 가난할 때였지만 농촌은 더욱 가난했었다.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한 삶 속에서도 여자들은 더욱 바닥 대접을 받았다. 우리 집만 해도 그랬다. 대가족으로 가마솥 가득 보리밥을 지으면 가운데 한움큼 얹은 쌀은 보리쌀과 섞어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 할머니 순서로 밥을 담고, 나머지는 전부 보리밥으로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 차지였다. 보리밥뿐만 아니라 나물밥 무밥 고구마밥 등으로 곡식을 아끼기도 했지만, 그나마 여자들에게는 별미이기도 했다. 당시의 김장밭 배추는 비료나 속성 영양분을 주지 않아 푸르고 질기고 가운데만 노란 속잎 이 조금 차 있었는데(지금은 푸른 잎이 거의 없지만) 노란 부위는 어른들 상에 썰어놓고 푸르고 억센 겉잎과 대가리는 여자들 차지였다. 갈치나 고등어를 굽거나 졸이면 살은 전부 어른 상이고 여자들은 대가리와 꼬리부분, 닭 백숙을 하면 껍질과 국물 정도 맛보는 형편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막내라 어른 상이 물려지면 남은 반찬을 제일 먼저 차지하는 특혜를 누렸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섭취했던 음식은 그야말로 현대에 와선 웰빙식이나 다름없다. 비료나 속성 영양제를 주어 성숙시킨 인공식품이 아니라 천연의 햇살과 바람과 흙이 키워낸 ‘자연식’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인성도 우직스러웠지만 대체적으로 순수하고 소박했으며 교활하거나 사기치는 사람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서 젊은이들은 다이어트 식품 섭취와 자기관리에 혈안이 되어 영양실조로 비틀거리는 웃지못할 현상이 일어나고, 오히려 못살 때 먹던 ‘자연식’을 찾는다. 자연식을 찾아 귀촌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상인가. 금쪽이야 보물이야 품던 ‘아들’들이 TV에서 걸핏하면 고만한 여성에게서 뺨을 맞고, 하이힐에 무릎이 차이는 수난과, 설거지며 아기 키우기에 비지땀을 닦고 있음을 본다. 장모 눈치 아내 눈치 살피기로 눈동자는 연일 충혈되어 있고, 사나이다운 기개는 어디에도 없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과연 저 남자들이 이 나라를 지켜줄 수 있을까 심히 불안해진다. 남녀 성의 특징은 유전자부터 너무나 다르다. 특성이 그 성의 적성이라면 각각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거늘, 여자 남자 특성이 뒤죽박죽 혼성되어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다. 당시, 딸들이라고 남자들에게 당하고 살지만은 않았다. 열 두세 살부터 열 대여섯 살까지 동네 여식들은 밤마다 수틀을 들고 어른 출타중인 동무집으로 몰려들었다. 시집갈 준비로 신부의 필수 혼수인 베갯잇을 수놓아 만들고 횃대보와 상(床)보도 십자수를 놓고, 버선을 수십짝 만드는 등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았다. 재잘재잘 수다도 떨었다. 그러면서 사흘이 멀다하고 공동야식도 했다. 모두가 각자 집에서 쌀 두세홉, 배추김치 한 쪽씩을 훔쳐와 모두어 밥을 지었다.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노란 속 김치를 쭉쭉 찢어 걸쳐서 한입 가득 우겨넣고 씹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만 먹는 흰 쌀밥과 노란 속 배추김치를 그릇 수북히 담아 원을 풀었다.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햐얀 쌀밥은 입안에서 제대로 씹히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부드럽고 노란 배추속잎은 시퍼렇고 질긴 배추잎에 길든 이빨을 간지럽혔다. 어떤 동무는 자기 집 닭서리를 유도하여 닭백숙을 만들어 영양 결핍의 여식들 몸뚱이에 기름을 넣기도 했고, 더러는 집에서 담근 밀주를 퍼내와 마른 명태를 찢어 음주도 즐겼었다. 황혼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감히 집 곡식을 훔쳐와 이렇듯 야식을 즐길 수 있는 여자들은 그나마 딸자식들이었다. 며느리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행위들이었다. 딸자식은 부모에게 들켜도 나무람을 듣는 정도로 끝났지만 며느리들은 심하면 쫓겨나거나 좀 더 엄한 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졌다. 숙녀가 신사의 빰을치는 것이 예사로운 세상이 된 것 이상으로 늙은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공경심 따위는 진작에 없어져 기대도 않는다지만, 일 나가는 며느리가 살림 사는 시부모 부려대는 모습에는 한숨이 절로 터진다. 세상이 미친년 널뛰듯 뒤집어져 버린 것을 어찌하느냐고 많은 어른들이 포기하는 척 이해하는 척 말들도 하지만, 삿대질에 거친 말 거침없이 내뱉는 젊은이의 눈앞 폭력이 두렵다 해도, 또한 그 며느리에 의지하여 밥을 먹는 상황이라 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저버린 당신의 모습은 처량하다. 스스로 만들어낸 푸대접이며 상황설정이라는 생각이다. 황혼녘의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는 가장 소중한 재산은 오로지 ‘시간’뿐임을 누구나 다 알면서 그 시간을 온통 빼앗기고 사는,빼앗기는 줄도 모르고 착취 희생을 즐기며 자위하는 어른들도 많다니, 각각의 마음을 누가 어쩌겠는가. 누구나 인생은 한 번뿐이며,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유일한 내 재산인 ‘시간’은 천금 만금보다 더 윗자리의 소중한 것이거늘, 진정 나를 위해 그 시간을 보듬고 살고 있는지 열 번 스무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최근 ‘존엄한 죽음’을 위한 법이 통과되었다. 회복되지 못할 말기암 환자나 다른 위중한 병으로 회생불능의 상태임을 의사가 진단하면,더 이상 숨이 붙어 있게 연명치료를 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전 법은 회생불능의 환자라 해도 온갖 생명 연장 장치를 환자에게 설치하여 숨이 끊어지는 시간을 늦추거나 기적처럼 회복도 시키는 의료법을 의사들이 강행했지만(그러지 않았을 경우 의사는 살인죄로 제소될 수도 있으므로),이제는 환자가 입원 당시에 승낙을 하지 않아도 가족들로 인해 생명 연장 장치를 거두어 버리거나 아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이다. 물론 옛날에도, 현재도 우리 풍습에 ‘객사시키지 않는다’며 가망이 없다는 환자를 가족들이 퇴원시켜 집으로 옮겨가는 경우는 있었다.그리고 실제 종합병원 등에서는 법이 통과되기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행하여지고 있었다.대개 가족들이 금전적인 이유로 혹은 환자의 원함으로 이루어지고는 있었지만, 이제 그것이 정식으로 합법화된 것이다. 살아나지 못할 환자인데 온몸에 주저리 주저리 생명줄을(인공호흡기등) 시설하여 고통을 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인 듯싶지만(그러한 부분도 없지 않다),여기에는 의도적인 많은 위험한 요소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세상에 죽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죽을 시간의 장단(길고 짧음)이 있을 뿐 모두 죽지만, 상호간(가족관계등)의 이해관계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내 자산’은 ‘내 시간’ 이다 몸이 건강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방 죽을 병이면 생명 연장 시설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병원에 입원케 되면 백명의 환자 모두가 ”어떤 방법으로든 살려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린다고 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고 현실이라는 것이다. 본인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둠이 어른들이 갖춰야 할 순서이다. 본인의 의사가 없으면 가족들이 각각의 의견을 내놓는 살벌한 분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연명’ 시설을 말자 하고 둘째아들은 ‘시설을 하자’는 상반된 의견으로 내 목숨이 자식 손에 달려 있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그들에게 상처를 안겨주게도 된다. 정부도 그렇다. 이런 엄숙하고 중대한 법을 합법화시키려면 따뜻한 대접을 받으며 인생을 정리하면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호스피스 병동시설이 우선 만들어져 병행되어야 하고, 문제화될 수 있는 부분을 의혹이 없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되겠지만,어쨌거나 가장 먼저 법시행을 맞이하는 당사자는 바로 우리 어르신(노안)들이다. 오로지 유일하게 내 재산인 앞으로의 내 ‘시간’을,즐길 일이고 아낄 일이다.당당하게 변한 세상과 맞서면서 소리도 질러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하고 싶은 일을 세상 눈치 볼 것 없이 즐길 일이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내 떠난 후의 남은 사람 걱정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다. 이제는 오로지 나만 위해 살아야, 후회없이 쉽게 미소 머금으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지 않겠는가.
- 2016-03-08 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