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선비문화탐방길’ 1코스의 연장은 6km. 화림동천을 따라 목재 데크 등으로 개설한 둘레길이 펼쳐진다. 거연정 일대의 풍경이 백미이며, 동호정 일원도 수려하다. 인근 지곡면에 있는 정여창 고택도 연계 답사하면 좋다.
겨울 초입이다. 떠나가는 가을의 꽁무니를 움켜쥔 나무들. 활엽에 바스락거리며 간신히 남은 붉은 빛이 애잔하다. 시들 것들 시들고, 떠날 것들 떠나는 계절이다. 보낼 것들 보내고, 버릴 것들 버리는 생리로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산. 생기를 잃어 꺼벙한 늦가을의 산. 활달한 에너지를 잃었으니 이젠 끔벅이는 눈으로 내면을 말하는가. 나는 지금 늦가을의 핼쑥한 산을 힐끔 쳐다보고 있지만, 산은 쓸쓸해 한결 유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무엇인가 절박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른다. 산이 우물거리는 속말의 뜻을.
내가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내뱉은 속말들 역시 흔히 알아듣는 이 없이 허공으로 흩어졌으리라. 입에 차라리 지퍼를 채우고, 고요한 산방에 은거한 채 부질없는 세상을 흘려보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짬짬이 그런 풍월이나 읊으며.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다. 살면서 흘린 땀방울의 총량이 드럼통에 넘칠지언정 영 미끈할 수 없는 게 인생이지 않던가. 결국 마음은 자연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오늘 하루라도.
옛사람의 작풍인들 달랐으랴. 자연을 애호하고, 물가와 산야를 동경하는 마음엔 고금이 따로 없다. 이곳 함양 서하면 화림동천을 보라. 숲이 있고, 계류가 흐르며, 곳곳에 정자가 있다. 빼어난 풍광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친애할 만한 경승은 옛사람들의 족적이다. 벼슬이면 벼슬, 문자면 문자에 기차게 능란했던 선인들이 이 골짜기에서 달을 희롱하며 노닐었던 게 아닌가. 유락(遊樂)만으로는 허기를 끌 수 없는 게 체통을 중시했던 선비들의 기본 성질. 그들은 계곡을 우레처럼 뒤흔드는 물소리를 경책으로 삼은 공부에도 열을 냈다. 삶의 미스터리를 자연이라는 큰 그릇에 담아 요리조리 요리하고 조리했다. 권세에 누룽지처럼 눌어붙은 허영, 수고로운 처세로 암암리에 누적된 울분까지 물소리 바람소리로 헹궈냈을 테지.
‘좌안동 우함양’이라 한다. 우후죽순처럼 옹골찬 선비들 마구 쏟아졌기로 유명한 게 안동과 이곳 함양 땅이다. 그러하니 화림동에 문사들의 발길이 유난히 잦았을 수밖에. 사림의 거두 정여창은 함양에서 태어났거니와, 화림동에 처가가 있어 이 골짜기를 사랑방처럼 애용했다. 화림동의 이름은 중앙에까지 짜르르하게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한양 사람들이 화림동 계곡에서 탁족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라고들 하더니 과연 화림동이구나!” 연암 박지원이 이곳에 놀러왔다가 터뜨린 감탄사가 그랬더란다. 탁한 시절엔 탁족도 탁주도 하나같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화림동엔 ‘팔정팔담(八亭八潭)’이 있다. 여덟 개의 정자와 여덟 곳의 근사한 못을 가리킨다. 개중에 으뜸은 거연정(居然亭) 일원의 풍광이다. 우리가 일쑤 꿈꾸는 게 ‘자유자재’이지만 먼지를 뒤집어쓴 정신의 굴레로 가당치 않다. 그러나 자연은 고수라서 굴레가 없다. 자유자재로 풍경을 구사하는 자연의 실력. 그게 이곳 거연정 일대의 기암괴석과 계류에서보다 더 교묘하게 발휘된 경우란 실로 드물다.
바람과 물살과 시간에 따귀를 맞아 마모된 바위들의 절묘한 곡면과 허연 살갗, 아슬아슬한 벼랑들. 기암 사이를 구르거나 여울지는 물살. 절정마저 지난 듯 초연히 멈춰 서럽게도 초록을 띤 깊은 못. 이 찬탄할 만한 풍경을 오만하게 타고 앉았으나, 사실은 이미 풍경의 일원으로 겸손하게 동화한 정자가 바로 거연정이다. 소슬한 마음 한 자락 여기에서 내려놓는다.
원래는 억새 따위를 엮어 지은 초정이었다. 신령한 물엔 용이 사는지라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용신제를 올렸다지. 선비들은 제 전유물인 양 다투어 찾아들었고 다투어 시를 지었다. 시로 다 토해버린 마음은 텅 비어 걸림이 없었으리라. 걸림이 없으니 시달릴 것도 없어 풍진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도 유정했으리라. 둘러보면 물과 나무와 숲이라서 애당초 유정한 이방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