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배움이 곧 기회가 되는 시대, 시니어 세대에서도 새로운 직업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일도 있었어?” 싶을 만큼 신선하고,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일들이다.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그 성장이 다시 일로 이어지는 인생 2막의 문을 열어보자.
AI와 초고령사회라는 두 흐름은 시니어 일자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기술이 일상을 빠르게 바꾸는 시대, 인생 후반부에도 배움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흔히 들어본 직업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뜻밖의 직업이 시니어 세대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디지털 사무원’과 ‘시니어 탐정’이다. 디지털 사무원은 AI 기반 사무 전문가, 시니어 탐정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경험 기반 지식 직업이다.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두 직업 모두 ‘배우면 다시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디지털 사무원

인공지능(AI) 시대, 시니어에게도 디지털 역량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직업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사무원(Digital Office Assistant)’이다. 기존에 시니어에게 추천하던 ‘데이터 라벨러’에서 한 단계 진화한 일자리로, 관련 교육 또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사무원은 문서 정리나 데이터 입력을 넘어 AI와 클라우드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효율적인 사무 환경을 설계·운영하는 전문 인력이다.
데이터 라벨러와 뭐가 다를까?
디지털 사무원은 자료 분류, 이미지·텍스트 가공, 문서 편집, 데이터 입력 등 실질적인 행정 업무를 맡으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으로 결과물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즉 사무실에 고정 출근하지 않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한 근무 형태가 가능해, 시니어에게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과거에는 ‘데이터 라벨러’가 시니어에게 추천하는 대표적인 디지털 일자리였다. 데이터 라벨러는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정리·분류하는 직업으로,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데이터 라벨러가 하나의 세부 작업에 집중하는 직업이라면, 디지털 사무원은 라벨링을 포함해 AI·데이터 기반 사무 전반을 다루는 포괄적인 역할을 맡는다.
서울 서초구는 일찌감치 스마트도시를 지향하며 IT 교육에 앞장서 왔다. 서초50플러스센터에서는 기존의 데이터 라벨러 교육과정을 발전시켜 11월부터 ‘디지털 사무원 양성 과정’을 새롭게 개설한다. 이 과정에는 데이터 라벨링 실습이 포함돼 있으며, AI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실무형 교육으로 구성했다.
허정훈 서초50플러스센터 팀장은 “디지털 사무원 과정에서 데이터 라벨링 교육을 병행하는 이유는 AI 산업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가공 능력을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라벨링 경험을 통해 데이터의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면 이후 더 복잡하고 고도화된 디지털 사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라고 설명했다.
서초50플러스센터 2025년 하반기 디지털 사무원 양성 프로그램과정① 블로그 업무 과정 : 11월 3일 ~ 12월 8일 (6회기, 18시간, 13명)
과정② 영상편집 업무 과정 : 11월 5일 ~ 12월 10일 (6회기, 18시간, 13명)
모집 : 10월 20일부터 접수 시작, 선착순
연계 기관 : (주)이지태스크
시니어의 꼼꼼함 필요
디지털 사무원은 어떤 사람이 하면 좋을까. 첫 번째 기본 조건은 AI를 몰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호기심을 갖는 자세다. 두 번째, 고도의 기술보다 꼼꼼함·집중력·꾸준함이 더 중요하다. 허정훈 팀장은 “시니어는 반복된 업무에 숙련도가 높고, 지금까지 쌓아온 직장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며 적합성을 강조했다.
AI 산업의 확산과 함께 디지털 사무원과 데이터 라벨러의 수요는 앞으로 5~10년간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AI 기술이 제조·금융·복지·교육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되면서 고품질 데이터 관리 인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는 서초스마트시니어교육센터를 중심으로 중장년층이 디지털 기술을 배우고 현장에서 가르칠 수 있는 ‘시니어 IT 강사 양성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육 참여를 넘어, 배운 기술을 다시 지역사회에 전파하는 ‘배움의 선순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허 팀장은 “AI 시대에는 빠르게 변하는 기술 환경에 열린 태도와 학습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작은 경험부터 쌓아가며 적응하면 누구나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기술을 어려운 것이 아닌 일상에서 쉽게 다룰 수 있는 도구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새로운 문명 속에서 시니어의 도전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움말 허정훈 서초50플러스센터 팀장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 등에서 노인복지 업무를 담당하며 7년간 현장 경험을 쌓았다. 2020년 11월부터 서초50플러스센터에서 근무 중이며, 현재 중장년·시니어 세대를 위한 디지털 역량 강화 및 일자리 연계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시니어 탐정

셜록 홈스, 명탐정 코난 등 탐정은 흔히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나 존재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관찰력과 경험을 무기로 한 ‘시니어 탐정’이 새로운 유망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 세상을 향한 호기심, 지적 감수성만 있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시니어 탐정이 하나의 전문 직업으로 자리 잡았고, 이제 한국에서도 그 문이 열리고 있다.
경험이 무기가 된다
탐정은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사건·사고·정보 등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분석해 결과를 제공하는 민간 조사원을 말한다. 시니어 탐정은 그중에서도 인생 경험과 전문 지식을 무기로 사회적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문직이다. 은퇴 후에도 ‘경험 기반의 지적 노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많은 이가 ‘탐정이라면 경찰 출신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법률·의료·보험·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경력과 전문성이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시니어 탐정은 그 경륜을 바탕으로 민간조사, 분쟁조정, 실종자 탐색, 범죄 예방 컨설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한다.
시니어 탐정의 수익은 투입 시간보다 전문성과 경험에 비례한다. 파트타임으로 활동하면 월 250만~400만 원, 전업으로는 500만~800만 원 수준이며, 디지털 포렌식이나 금융 조사 등 특화 분야에서는 월 1000만 원 이상 벌기도 한다.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과 네트워크 구축이 수익 향상의 핵심이다.
더불어 공익신고 포상금 제도를 통해 사회정의 실현과 경제적 보상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 제도는 부패 행위나 공익 침해 행위 신고에 대해 최대 40억 원의 보상금과 5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실제 선거 공익탐정 사례에서는 수억 원대 포상금이 지급된 바 있다. 다만 포상금보다 공익 실현이 우선이라는 직업적 품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니어 탐정의 주요 활동 영역보험·금융 범죄 조사 : 보험 사기, 허위 청구, 대출 사기 등에서 시니어의 경험과 직관이 빛난다.
기업 내부 감사 및 윤리 모니터링 : 횡령, 배임, 정보 유출 등 기업 내부 문제를 조사하는 분야로, 관리직 경험자에게 적합하다.
디지털 범죄 예방 :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 사이버범죄로부터 고령층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 교육과 피해 조사.
사회적 약자 보호 조사 : 요양시설 학대, 장애인 권익 침해 등 공공성 높은 영역에서 시니어의 공감 능력이 강점이 된다.
가족·상속 분쟁 조사 : 재산분할, 유언장 검증, 실종자 탐색 등 인생 경험이 직접적인 문제해결력으로 이어진다.

내가 바로 명탐정!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교수는 시니어 탐정에게 필요한 역량을 ‘3C+2E’로 정리한다.
Curiosity(호기심),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 Communication(소통 능력), Ethics(윤리성), Experience(경험)이다. 최 교수는 “특히 시니어에게는 윤리적 판단력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젊은 탐정보다 더 큰 사회적 신뢰를 받기 때문에,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 또한 지속적인 학습 의지도 필수다. 디지털 기술, 법제 변화, 새로운 범죄 유형에 대한 끊임없는 학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탐정 관련 법안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정부와 국회는 2026년 상반기 법 제정을 목표로 논의 중이다. 8월 5일 국회 학술발표회에서 관련 주제 발표를 맡은 최 교수는 “법 제정 이후에는 탐정학사 학위 이상 또는 10년 이상 경력자는 시험 면제 혜택이 검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각종 탐정 협회에서 발급하는 ‘민간조사전문가’ 자격증이 대표적이다.
탐정이 되고자 한다면, 공식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동국대학교, 수원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등에서 대학원 과정에 탐정 전공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4년제 탐정학사 학위과정을 운영하는 곳은 서울디지털대학교다. 이 대학에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며, 평균 연령은 약 45세다. 특히 최근 5년간 50세 이상 입학생 비율이 35%에서 52%로 크게 늘었다.
서울디지털대 탐정학과는 ‘이론–실습–융합–창조’의 4단계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다. 1·2학년은 탐정학개론, 법학개론, 심리학, 수사학, 증거법 등 기초 과목을 배우고, 3·4학년은 보험범죄, 기업 보안, 사이버범죄 대응, 실종자 수사 등 실무 중심 교육을 진행한다.
시니어 학습자를 위한 공익탐정 특강, 멘토-멘티 제도, 온·오프라인 병행 수업도 마련돼 있다. 이는 기존 경력을 살리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설계된 성인 맞춤형 학습 시스템이다. 최 교수는 “시니어 맞춤형 교육과정이 확대되어야 한다”며 “기존 경력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 온·오프라인 혼합 학습, 현장 기반 실습 등 유연한 교육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시니어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시니어 탐정을 꿈꾸는 분들께 ‘경험은 자산이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탐정업은 경험과 지혜가 핵심 경쟁력인 직업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경험(성공, 실패, 기쁨, 아픔)이 탐정으로서의 자산이 됩니다. 시니어 탐정은 단순한 재취업이 아니라 사회적 소명입니다. 스스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보람을 느끼실 것입니다.”
도움말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교수(학과장)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경찰청·충북경찰청 등에서 생활안전· 정보보안·수사 분야를 두루 거쳤다. 대통령실 행정관(국가위기관리실 정보분석비서관실)을 역임했고, 경찰청 총경으로 퇴임했다. 퇴직 후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해 탐정학 제도의 학문화와 실무형 교육과정 설계에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