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과 노인 사이에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중장년층을 국가의 독자적인 정책 대상으로 규정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일자리와 재취업에 치우쳤던 기존 중장년 정책을 건강, 가족돌봄, 사회적 고립, 디지털 역량 등 생애 전반으로 확대하고, 국무총리가 범정부 정책을 총괄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21일 40세 이상 65세 미만을 ‘중장년’으로 규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책무와 정책 추진체계를 담은 ‘중장년기본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법안은 중장년을 경제적 주체이자 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규정하고, 경험과 역량을 존중받으며 경제적 안정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40세 이상 65세 미만 인구는 2010만9567명으로 전체 인구 5108만8284명의 39.4%를 차지한다. 인구 10명 가운데 약 4명이 해당하는 셈이다. 그러나 청년과 노인을 각각 대상으로 하는 기본법과 달리 지금까지 중장년층 전체를 독립적인 정책 대상으로 규정해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법률은 없었다.
중장년층은 고용 불안과 조기 퇴직, 노후 준비뿐 아니라 부모 부양과 자녀 지원까지 겹치는 생애 전환기에 놓여 있다. 보도자료에 인용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49.3세다. 주된 직장에서 물러난 뒤 연금 수급 연령까지 상당 기간 소득과 일자리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법안 발의 배경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무총리는 5년마다 중장년정책 기본계획을 세워야 한다. 관계 부처와 시·도는 이를 토대로 매년 시행계획을 만들고 추진 실적을 국무총리에게 제출한다. 각 부처에 흩어진 중장년 정책을 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장년정책조정위원회’도 설치한다. 위원회에는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 부처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중장년 정책을 위한 별도의 국가 실태조사도 도입한다. 정부가 3년마다 고용과 주거, 건강, 금융 상태, 디지털 역량뿐 아니라 사회참여, 고립 정도, 돌봄 부담, 삶의 만족도까지 조사해 공개하도록 했다. 기존 중장년 정책이 취업이나 재취업 지원에 집중돼 있었다면 앞으로는 중장년의 생활 전반을 정책 대상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특히 법안에는 퇴직 이후가 아닌 ‘퇴직 이전’부터 생애 전환을 준비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직 중인 중장년이 퇴직 전에 경력 전환과 향후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상담과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생애전환설계와 관련한 지원 정보를 미리 안내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이 정의한 생애전환설계에는 직업과 경력뿐 아니라 학습, 건강, 사회적 관계, 돌봄, 사회참여 등이 포함된다.
지원 범위도 넓어진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중장년의 고용 안정과 일자리 발굴, 창업·전직 지원뿐 아니라 유연근무와 직무 재설계 등 중장년 친화적 근무환경 조성, 인공지능 활용을 포함한 디지털 교육, 건강증진과 심리 지원, 가족돌봄 부담 경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원봉사와 멘토링, 지역 돌봄 등 중장년의 사회공헌 활동과 세대 간 교류를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책 실행을 담당할 전담기관으로는 법인 형태의 ‘한국중장년미래설계원’을 설립한다. 설계원은 중장년 실태조사와 정책 연구, 적합 직종 발굴, 창업·일자리 지원, 전직 서비스 개발, 교육·훈련 프로그램 개발 등을 맡는다. 시·도지사는 별도의 ‘중장년지원센터’를 설치해 생애전환 상담과 취업·창업, 교육, 건강·심리 상담, 디지털 교육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설계원이 전국 지원센터 운영을 총괄 지원하는 구조다.
부처별로 흩어진 지원 정보를 연결하기 위한 ‘중장년정책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근거도 마련했다. 기존 ‘노후준비 지원법’에 따른 노후준비 종합정보시스템과 중앙·광역·지역 노후준비지원센터 등 기존 체계와 연계해 중복 사업을 줄이고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도록 했다.
박 의원은 “아래로는 양육, 위로는 부양의 부담을 동시에 지면서도 정작 정책에서는 소외돼 왔던 중장년에게 빚을 갚을 차례”라며 “청년기본법을 제정해 청년 정책의 기틀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 중장년의 이름을 새긴 정책을 법과 제도로 담아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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