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4

“올 때 파 한 단만…” 제도 밖 ‘숨은 돌봄’ 줄이는 일본

입력 2026-09-14 07:00

약 수령 등 공식 업무 밖 생활지원 별도 서비스로… 비용·사각지대 해소는 과제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고령자의 약을 대신 받아오거나 병원에 동행하고, 장보기 같은 작은 심부름까지 처리하는 일은 돌봄 전문인력의 업무일까?

일본에서 돌봄지원전문가가 공식 업무 범위를 넘어 무상으로 수행해온 이른바 ‘섀도워크(Shadow Work)’를 별도의 생활지원 서비스로 분리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현장에서 종사자가 사실상 떠맡고 있는 ‘숨은 돌봄’이다.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연결하는 통합돌봄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서비스와 서비스 사이의 빈틈을 누가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본의 돌봄서비스 기업 츠쿠이는 나가사키현 돌봄지원전문가협회, 모나카야와 함께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생활지원 서비스를 활용한 ‘나가사키 모델’을 올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나가사키 모델이 해결하려는 것이 바로 ‘숨은 돌봄’. 공식 장기요양보험 서비스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고령자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돌봄지원전문가가 사실상 맡아온 업무를 별도 서비스로 분리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병원 진료 동행이나 약국에서의 약 수령이다. 혼자 사는 고령자가 늘면서 과거에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처리했던 작은 생활지원까지 돌봄 종사자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 사업 추진 배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상당 부분 공식적인 돌봄 관리 업무 밖에 있어 종사자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져왔다.

나가사키 모델은 이런 생활지원 업무를 돌봄지원전문가가 직접 맡는 대신 별도의 유료 서비스로 연결한다. 나가사키현 돌봄지원전문가협회가 이용자의 자립생활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고, 민간기업이 이에 따라 장기요양보험 밖 생활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특정 민간사업자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 문제도 고려했다. 직능단체가 중립적인 위치에서 기준을 만들고, 기준을 충족한 사업자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역할을 나눴다.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등에서 실시한 실증사업에서는 약국에서 약을 대신 받아오거나 병원 이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민간사업자에게 맡겼다. 츠쿠이에 따르면 이를 통해 돌봄지원전문가가 부담하던 준비와 동행 등에 필요한 시간이 한 건당 최대 120분 줄었다.

핵심은 지금까지 종사자의 선의나 이용자와의 관계에 기대온 도움을 하나의 서비스로 명확히 구분했다는 점이다. 돌봄지원전문가는 이용자의 상태 파악과 서비스 조정 등 본래의 전문업무에 집중하고, 일상생활 지원은 이를 담당하는 별도 서비스가 맡도록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는 이미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생활지원사는 “대상자를 방문하면 파 한 단이나 콩나물 한 봉지처럼 소액 물품을 대신 사다 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장기간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상태에서는 작은 부탁이라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심부름을 해준 뒤 물건값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이용자도 있어 곤란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부탁은 사소해 보여도 반복되면 공식 업무와 개인적인 호의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장보기와 물건 전달, 약 수령, 각종 예약이나 생활지원처럼 여러 사회서비스의 경계에 놓인 일은 담당 주체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이용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종사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통합돌봄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해질 수 있다. 의료와 요양, 돌봄, 주거 등 여러 서비스를 한 사람을 중심으로 연결하는 것이 통합돌봄의 핵심이지만, 서비스가 연결된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필요가 기존 제도의 지원 범위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여 기관과 서비스가 다양해질수록 ‘어느 기관의 업무에도 정확히 포함되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빈틈을 생활지원사나 사회복지사, 돌봄 종사자가 개인적인 판단과 이용자와의 관계에 따라 메우게 되면 일본에서 문제가 된 ‘숨은 돌봄’이 한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숨은 돌봄’을 별도 사회서비스로 전환한다고 해도 비용 문제는 피하기 어렵다. 현재 시행 중인 일상돌봄서비스만 보더라도 기본서비스 가격은 이용시간에 따라 월 약 44만 원에서 136만 원, 특화서비스는 종류에 따라 월 12만~27만 원 수준이다. 실제 본인부담은 소득 수준과 지원 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공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이용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돌봄 종사자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서비스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사례는 한국의 통합돌봄 과정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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