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군가 “중년은 인생의 전성기”라고 말한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시대의 중년 이미지는 상당히 서글프다. 피부는 탄력을 잃었고 여러 면에서 무기력해지는 존재로 여겨진다.
사회 곳곳에서 능력있는 후배에게 밀려난다. 일부는 권력과 돈을 앞세워 일탈을일삼지만 역시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이전만 하더라도 중년에 대한 대접이 이렇지는 않았다. 185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삽화를 살펴보면 50대를 인생의 정점으로 그렸다.
중세 이전에는 말로 지식을 전했기 때문에 연장자는 특권을 가진 선망의 대상이었다. 더군다나 평균 수명이 짧은 시대라 나이 많은 이들의 수는 무척 적었다. 젊은이들은 이들로부터 신뢰와 권위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동양에서도 40세를 ‘불혹’(不惑·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음), 50세를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명을 깨달음)이라 부르며 존중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왜 중년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일까.
패트리샤 코헨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는 신간 ‘나이를 속이는 나이’(원제: In Our Prime)에서 시카고대 인류학자인 리처드 A. 슈웨더의 말을 빌려 “중년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서로 다르게 형성된 문화적 허구”라고 잘라 말한다.
역사적·사회적 잣대로 살펴보면 중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척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은 중년을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애매하게 설명한다.
서양의 뉴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도 중년을 ‘청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기간이며일반적으로 40세에서 60세에 이른다’고 말하는 등 사회적 환경에 따라 정의가 다르다.
저자에 따르면 중년이라는 인생 단계는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는어린이, 성인, 노인으로 구분하거나 나이대로 나눴다.
저자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젊음이 본격적으로 찬양받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노동에서 효율성이 중시되자 사회는 젊은 노동자를 선호했고, 사람들은 직장을 얻으려고 실제 나이를 감췄다는 것.
와중에 산업계의 음모가 개입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중년을 무기력과 쇠퇴의 시기로 못박아놓아야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산업이 번성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중년산업복합체’라고 불리는 이 산업은 중년을 상대로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조성해 규모를 키워갔다. 산업체는 영화, TV, 의약품 회사, 건강보조식품 업체로 구성됐다.
이들은 젊음을 찬양하며 “청춘이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라는 이데올로기를 쉴 새없이 전파한다. 이에 중년은 패배감에서 벗어나려고 지갑을 연다.
중년을 앞두거나 중년기를 지나고 있다는 이유로 우울함에 빠져 있다면 이 책을읽으면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권혁 옮김. 돋을새김. 384쪽. 1만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