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그 순간] 루시타니아 호의 최후

기사입력 2015-05-23 10:06 기사수정 2015-05-23 10:06

▲침몰한 루시타니아 호를 상기시키는 선전물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영화 <타이타닉>을 잘 아실 것이다. 1997년 제작되어 전 세계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다. 한국에서는 다음해에 개봉되었다. 당시 세계 최대의 호화 여객선이 뉴욕으로 향하는 첫 항해 중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한 해양사고이다. 아직도 민간 해상참사로서는 1514명이라는 최대 사망자를 낸 사건이다.

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해상 사고가 있다. 1차 대전 초기인 1915년 5월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된 영국 상선 루시타니아(Lusitania) 호 사건이다.

<타이타닉>은 세계 최대의 호화 여객선, 첫 항해, 빙산과의 충돌이라는 사실(facts)에 사랑 이야기를 곁들인 것이다. 루시타니아 호는 전쟁, 잠수함, 동맹국들 간의 배신이라는 더 큰 틀에 당시 최대의 호화 여객선 피격이라는 사실, 그리고 로맨스가 들어가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역사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다. 전쟁 초기 독일의 공세가 추진력을 잃고 전쟁이 참호전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독일에게는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국들로부터 물자 공급을 저지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영국에 대한 공급이 중단되면 영국은 전쟁능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영국은 독일의 전략을 예견하고 먼저 1914년 11월 독일 잠수함이 대서양으로 나오는 길목인 북해를 ‘전쟁 지대(war zone)’로 선포하여 이를 저지하려 한다. 독일은 다음해 2월 영국의 주변 해역을 전쟁 지대로 선포한다. 일반 상선의 전쟁 지대 항해는 가능하지만 이에 관련된 국제법이 상당히 복잡하다.

요점은 독일에게는 전쟁 물자를 나르는 중립국 상선도 공격 대상이 되며, 영국으로 오는 ‘상선’들을 무차별 공격한다는 것이다. 영국은 선박을 검색하기 위해 잠수함이 해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국제법에 따라 수색을 당하기보다는 덩치가 큰 상선이 잠수함을 들이박아 버리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관련 법규들이 무시되었다는 점이다. (무제한 잠수함전은 1917년 1월 공식 선언된다.)

▲침몰한 루시타니아 호를 상기시키는 선전물

루시타니아 호는 이 전투의 대표적인 희생자이다. 영국 리버풀과 미국 뉴욕을 항해하는 4만 톤급으로 세계 최대이자 최고 속도를 자랑하며 내부 장식이 화려한 이 초호화 여객선은 1915년 5월 7일 아일랜드 앞 바다에서 독일 잠수함으로부터 사전 경고 없이 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금년 5월이 침몰 100주년이 되는 셈이다.

독일은 당시 중립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 신문에 이 여객선을 탑승하지 말라는 광고까지 실었다. 루시타니아 호 앞에는 RMS(Royal Mail Ship)가 붙어 있다. 전통적으로 우편물 수송에 정확한 시간을 지키듯 권위 있는 배라는 말이다. <타이타닉>에도 RMS가 붙어 있었다. 동시에 민간 선박이라는 뜻이다. ‘전투함’ 앞에는 영국은 HMS(His/Her Majesty’s Ship), 미국은 USS(United States Ship)를 붙인다. USS Enterprise란 미 전함(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라는 말이다. 그런데 독일은 이 민간 ‘여객선’이 전쟁 물자를 싣고 있어 독일의 행위는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했으며 종전 후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보다도,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해군은 루시타니아 호의 항해 루트인 영국 주변 해역에서 독일 잠수함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루시타니아 호를 호위하도록 함선을 파견하고 리버풀 항 주변을 순시하기도 했다. 또 독일 잠수함의 잠복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안전한 다른 루트로 유도하지 않았다. 미국의 참전이란 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승객 1265명과 승무원 694명 등 총 1959명 중 사망자 1198명이 대부분 영국과 캐나다 국적이지만 미국인도 128명 포함되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음모론이 대두한다. 이 논쟁의 중심 인물이 당시 영국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다. 그는 루시타니아 호 침몰 1주일 전에 무역부 장관에게 중립국 선박을 영국 해역으로 끌어들여 미국과 독일 간에 분쟁을 야기토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서신을 보낸다. ‘젊은’ 처칠은 루시타니아호 침몰 직전인 1915년 1~4월에 영국 등 연합군이 무리하게 감행한 흑해 다다넬스 해협의 갈리폴리 상륙전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해 궁지에 몰려 있었다. 처칠의 서신은 이 같은 상황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1914년 2월 항구에 정박 되어있는 U-boat들

1, 2차 대전에서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들은 미국을 독일과의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이 승리에 대한 확실한 보장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윌슨이나 루스벨트(FDR) 등 미국 대통령들은 선거에서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탐욕에서 시작된 ‘그들 간의 전쟁’에 미국은 참전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해왔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국가이익이란 관점에서 미국의 참전 필요성이 높아지지만 그 명분이 필요해진다. 처칠이 이를 제공해 주려는 것이었다.

루시타니아 호의 격침은 영국이 방관/방조함으로써 미국의 여론이 참전으로 기울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미국은 1917년 4월 독일에 선전포고하는데, 루시타니아 호 격침이 다른 사건들과 함께 이 결정에 주요한 기여를 한다.

사족으로 덧붙인다면, 일본의 진주만 공격도 처칠은 사전에 알고 있었으나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모른 척했다는 소위 ‘처칠의 음모’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다.

나는 강의 중 루시타니아 호 사건은 영화 <타이타닉>보다 훌륭한 영화 소재가 될 것이라면서 나의 ‘지식재산권’이라 말하곤 했다.



구대열 (具汏列)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대 영문과 졸. 한국일보사 기자. 런던정경대 석·박사(외교사 전공).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통일학연구원장 등 역임.

저서 <삼국통일의 정치학> <한국 국제관계사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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