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5

냄새 풍기지 않는 이동식 변기 ‘랩퐁’ 존엄을 말하다

입력 2026-08-15 06:00

[일본 시니어 라이프]

돌봄 현장에서 가장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절실한 문제가 바로 ‘배설’이다.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없게 되면,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방 안의 냄새가 신경 쓰인다. 그 과정에서 고령자는 수치심과 미안함을 느끼고 가족은 신체적·심리적 부담을 함께 짊어진다. 이 같은 고민에서 일본세이프티(日本セイフティー) 주식회사의 ‘랩퐁(ラップポン)’이 탄생했다.


(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랩퐁은 물을 사용하지 않고 배설물을 매회 자동으로 특수 필름에 밀봉해 처리하는 간이 변기다. 냄새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 배설물을 담는 용기를 세척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여,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의 부담을 덜어준다.

랩퐁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편리해서가 아니다. 배설이라는 가장 사적인 일상을 가능한 한 스스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돌봄 과정에서 잃기 쉬운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양동이 변기’가 가족 돌봄에 남기는 것

깨끗하고 간편하며 냄새 걱정까지 줄인 배설 처리 시스템 ‘랩퐁’의 출발점에는 창업자의 가족 돌봄 경험이 있었다. 도야마(外山) 마케팅·프로덕트 매니저는 제품 개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세이프티는 원래 건축자재를 취급하는 회사였고, 건설 현장의 가설 화장실 렌털 사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창업자가 장모님을 가까이에서 돌보게 됐습니다. 재택 돌봄에서 가장 힘든 일이 화장실 문제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랩퐁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재택 돌봄 현장에서는 배설물을 담는 양동이가 들어 있는 이동식 변기를 흔히 사용했다. 침대 옆에 둘 수 있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에게는 편리했지만, 사용 후에는 돌보는 가족이 배설물을 비우고 용기를 세척한 뒤 소독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한밤중에도 여러 차례 일어나야 했고, 방 안에는 냄새가 남기 일쑤였다. 세척할 때마다 배설물을 직접 마주해야 하는 일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배설은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돌봄이 시작되는 순간,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은 자존감을 흔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냄새가 방에 배어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과 수치심도 더해진다.

이 같은 고민 속에서 ‘배설물을 그 자리에서 자동으로 밀봉해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발상이 나왔고, 이를 현실로 구현한 것이 랩퐁이다.


▲1 아웃도어형 모델 ‘SUNNY’. 2 뚜껑을 덮으면 의자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모델. 3 아웃도어형 모델 ‘PF-1’.4 ‘ORB 2’ 침대 옆 설치 사례. (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1 아웃도어형 모델 ‘SUNNY’. 2 뚜껑을 덮으면 의자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모델. 3 아웃도어형 모델 ‘PF-1’.4 ‘ORB 2’ 침대 옆 설치 사례. (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물 대신 그 자리에서 밀봉한다

랩퐁은 2003년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해 2005년 제품으로 완성됐다. 기존 이동식 변기처럼 배설물을 양동이에 모아 처리하거나 물로 흘려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사용할 때마다 특수 필름으로 자동 밀봉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물을 사용하지 않아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특수 방취 필름과 응고제를 적용해 냄새와 위생 문제를 함께 해결했다.

도야마 씨는 랩퐁의 가치가 처음 널리 알려진 계기로 뜻밖에도 재난 현장을 꼽았다.

“랩퐁은 원래 돌봄용으로 개발됐지만, 처음 크게 주목받은 곳은 재난 현장이었습니다. 2007년 노토반도 지진으로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희는 랩퐁을 대피소에 지원했습니다. 사용하신 분들로부터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죠. 대피 생활이 끝난 후에는 다음 재난에 대비해 지자체에 랩퐁을 기증했습니다. 같은 해 발생한 니가타현 주에쓰 앞바다 지진 때도 국가 요청으로 지원했습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불편을 겪는 것은 화장실이다. 위생적인 화장실은 식량·식수와 함께 재난 대응의 필수 요소다. 화장실 환경이 열악하면 사람들은 화장실 이용을 줄이기 위해 물 마시는 것조차 꺼리게 된다. 이는 탈수와 혈전 위험을 높이고, 특히 고령자와 장애인은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화장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인프라다.

하지만 기술의 우수성만으로 현장에 빠르게 자리 잡을 수는 없었다. 랩퐁의 초기 보급 과정은 쉽지 않았다.

“초기 제품은 가격이 높았고, 돌봄 현장에서의 인지도 또한 낮았습니다. 밀봉 성능 역시 계속 개선해야 했죠. 배설물이 새지 않도록 필름을 균일하게 모으고 적절한 온도로 압착하는 기술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했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기술일수록 수많은 시행착오와 세밀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회사는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제품을 꾸준히 개선했다. 2013년 보급형 모델 ‘에브리(Every)’를 출시하면서 돌봄 보험 적용 범위 안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로 낮춘 것이 보급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에도 침대 옆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접이식 팔걸이를 적용하고, 음성 안내 기능과 실내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가구형 디자인을 도입하는 등 돌봄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개선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세이프티 직원이 랩퐁 최신 모델 ‘ORB 2’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일본세이프티 직원이 랩퐁 최신 모델 ‘ORB 2’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돌봄 현장에서 화장실이 중요한 이유

랩퐁은 현재 재택 돌봄이 이뤄지는 개인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 무엇보다 ‘청소가 편하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얼핏 가사 노동이 줄어드는 정도로만 들릴 수 있지만, 돌봄 현장에서 청소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은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돌보는 가족이 배설물을 직접 보거나 만지는 일이 줄어들면 심리적 부담도 덜어진다. 돌봄을 받는 본인 역시 가족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죄책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

재택 돌봄의 공간은 병원도, 요양 시설도 아니다. 오랫동안 살아온 자신의 집이자 가족 모두의 생활공간이다. 그렇기에 방 안에 변기를 둔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에 냄새가 남지 않으면 손님이나 손주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다. 뚜껑을 닫으면 의자처럼 보이는 디자인, 실내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색상, 침대에서 옮겨 앉기 쉬운 구조가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배려는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다. ‘돌봄을 위한 방’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이 이어지는 공간’을 지키기 위한 장치다.

이 같은 고민은 요양 시설에서도 이어진다. 거실형 개인실에 화장실이 설치된 시설이 늘고 있지만, 야간에는 낙상 위험 때문에 기저귀를 사용하는 곳도 적지 않다. 안전관리와 인력 운영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지만, 이용자에게는 큰 상실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배설은 가능한 한 스스로 하고 싶은 행위다. 보행이 불안정하더라도 침대 바로 옆에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동식 변기가 있다면 스스로 앉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야간 이동 거리가 짧아지면 낙상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자립을 유지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배설을 단순한 오물 처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삶을 지키는 돌봄으로 볼 것인가는 돌봄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차이다.

시설 입장에서도 화장실을 어떻게 지원하느냐는 직원의 업무 부담과 감염 관리, 이용자의 존엄성과 직결된다. 기저귀 교체와 이동식 변기 세척, 오물 처리실로의 이동은 매일 반복되는 고된 업무다. 랩퐁처럼 배설물을 밀봉한 상태로 처리할 수 있는 구조는 냄새와 시각적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청소에 들이는 시간을 줄여 돌봄 직원이 이용자와 소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돕는다.


▲랩퐁으로 밀봉 처리된 배설물 봉투. 냄새와 위생 부담을 줄이는 것이 특징이다.(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랩퐁으로 밀봉 처리된 배설물 봉투. 냄새와 위생 부담을 줄이는 것이 특징이다.(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기술은

랩퐁은 돌봄뿐 아니라 재난 현장, 레저, 캠핑카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혀왔다. 회사 측에 따르면 랩퐁 시리즈의 누적 판매량은 약 10만 대에 달하며, 최신 모델인 ‘ORB 2(오브 2)’의 가격은 약 10만 엔, 92만 원 정도다. 국내에서는 랩퐁 ‘SUNNY’와 ‘PF-1’ 등 아웃도어용 모델이 판매되고 있지만, 돌봄용 제품은 아직 수입되지 않았다. 도야마 씨는 돌봄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기제품으로서의 KS 인증, 장기요양보험 같은 공적 지원 제도, 안정적인 판매망 확보가 관건입니다.”

한국 역시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가족 돌봄의 부담과 돌봄 인력 부족, 시설의 위생 관리, 재택 돌봄의 지속 가능성은 이미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화장실 문제는 여전히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다. 돌봄 정책에서는 의료와 주거, 연금, 식사 지원 등이 주로 논의되지만, “한밤중의 화장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기저귀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돌보는 가족의 청소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와 같은 생활 속 질문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고령자를 위한 기술이라고 하면 AI나 로봇, 모니터링 센서 같은 첨단 기술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삶을 지탱하는 기술이 반드시 화려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매일 하는 배설을 조금 더 깨끗하게,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더 존엄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 역시 초고령사회가 갖춰야 할 중요한 기술이다.

랩퐁이 감싸는 것은 단순한 배설물이 아니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수치심,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은 바람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기술은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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