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가 만난 사람] 발레부부가 사는 법

기사입력 2015-11-30 13:50 기사수정 2015-11-30 13:50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金仁姬·52) 단장·제임스 전(56) 예술 감독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부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깊다. <편집자주>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과 제임스 전 상임안무가 부부. (왼쪽부터)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과 제임스 전 상임안무가 부부. (왼쪽부터)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죽기 전에 ‘베토벤의 심포니9’, ‘햄릿’과 ‘맥베스’, ‘라이더 스핀’ 등을 발레로 창작하고 싶어요.”

한 남자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자, 아내의 목소리가 커진다.

“곧 은퇴하신다더니 또 만들어요? 은퇴 못하겠네. 하여튼 이게 문제야. 공연 하나 끝나면 그 다음 작품 이야기가 나온다니까. (웃음)”

못 말리는 부부다.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작품에 대한 욕심을 이야기하는 남편과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이해해 주는 아내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칠 때면 핑크빛 긴장감이 감돌다가도, 작품 이야기가 나오면 그 양상은 180도로 변하기도 한다.

묘한 케미스트리다. 집에서는 서로 안 볼 듯이 싸우다가도 일터로 돌아가면 서로 웃으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민간 직업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과 제임스 전 예술 감독 부부다.

1980년대 후반 김 단장은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활동했고, 제임스 전은 그곳의 객원 무용수로 활약했다. 동남아 투어는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계기가 됐다. 같은 호텔과 연습실에서 생활하며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왕래가 많아지면서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은 1989년. 무용수로서 각자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던 그들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한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 이상의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들은 우직하게 그것을 지켜냈다. 발레와 사랑이라는 두 개의 고리가 그들을 단단하게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 서울발레시어터를 낳은 지 20년

“아마 저희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지금의 서울발레시어터는 없었겠죠. 아이를 낳게 되면 여기에 쏟을 수 있는 열정을 분산해야 할 테니까요. 우리가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이들 부부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새로운 민간 발레단체를 만들 것인가’하는 고민에 빠져있었던 것. 다른 부부들이었다면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하게 절충하며 인생을 꾸려나가면 될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의 열정은 발레단과 아이에게 모두 양립할 수는 없었다. 한 곳에 집중을 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곳에 소홀해지기 마련인데, 이 부부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 이 부분에서는 둘의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발레라는 공통분모는 이들의 선택을 더욱 과감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낳는 것 대신 발레시어터를 만들어 키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자식처럼 삼아 살기로 결정했다. 이름은 서울발레시어터. 1995년생으로 올해 20세 성인이 됐다. 20년 동안 단장인 김인희는 발레시어터의 살림을, 상임안무가인 제임스 전은 예술적 책임을 도맡았다. 작은 민간 예술단체이다 보니 재정적으로 적잖게 어려움도 많았다.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럼에도 20년 동안 굳건하게 서울발레시어터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술가·예술단체로서의 책임감과 직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예술을 통해서 사회가 건강해지도록 하는 것이 예술단체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직원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20년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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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니버설 발레단 시절 <심청>을 공연하는 김인희 단장.  2. <테이블 밑 혼례>를 공연하고 있는 제임스 전 예술감독. 3. 부부발레 공연 사진.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사진=서울발레시어터)
▲ 1. 유니버설 발레단 시절 <심청>을 공연하는 김인희 단장. 2. <테이블 밑 혼례>를 공연하고 있는 제임스 전 예술감독. 3. 부부발레 공연 사진.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사진=서울발레시어터)

◇ 홈리스(Homeless)발레와 부부발레

“서울발레시어터를 만들 때 목표가 발레 대중화와 창작 발레 역수출이었어요. 그중에 전자는 발레 시장을 키우자는 뜻이 담겨있었죠. 그렇게 되려면 발레를 직접 체험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했어요. 몸으로 그 희열을 느낀 사람이 우리의 미래 관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다. 이들이 생각하는 발레는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 그 자체였다. 서울발레시어터라는 테두리 안에서 ‘귀족의 예술’이라는 편견을 깨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2011년 빅이슈 잡지 판매원(홈리스가 판매하는 잡지)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발레라는 예술은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일환이었다.

제임스가 이들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뉴욕에서 살 때 홈리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사람을 상대하면서 느끼는 환멸이나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제임스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Soloist’와 ‘꼬뮤니케’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 작품들을 홈리스 발레 프로젝트의 공연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은 홈리스들에게 자립심과 새로운 용기를 불어 넣어주기도 했지만, 제임스와 김 단장에게 더 큰 떨림과 영감으로 돌아왔다. 발레 대중화를 위해 무엇인가 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홈리스 발레에서 자신감을 얻어 장애우 발레단, 과천 시민 발레단을 거쳐 부부 발레단까지 결성했습니다. 특히 3년 전부터 시작한 부부 발레단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어요.”

홈리스 발레에서 이어진 부부 발레 클래스는 제임스와 김씨 부부에게 새로운 보람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특히 클래스를 수강하는 부부들이 변화하는 모습은 보람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발레로 인해 8년 만에 처음으로 대화를 했다는 부부, 발레를 시작한 후 아내가 예뻐 보인다는 남편, 아들과 며느리의 공연을 보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시어머니까지. 부부 발레는 분명 발레 대중화 그 이상의 뜨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변화가 기가 막혔죠. 무뚝뚝했던 부부의 표정이 4~5주가 지나자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발레를 하며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이죠. 주말에 2시간인 이 수업으로 많은 가정이 변화를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지금 2기를 지나 3기를 뽑고 있는데 이전 부부들은 자체적으로 홍보대사가 됐어요.”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과 제임스 전 상임안무가 부부. (왼쪽부터)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과 제임스 전 상임안무가 부부. (왼쪽부터)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 발레를 창작한다는 것

10월에 열린 스위스 바젤발레단과의 합동공연은 서울발레시어터에게 큰 의미를 안겨줬다. 제임스 전이 만든 ‘보이스 인 더 윈드(Voice In The Wind)’와 ‘달빛 속에 나(Under The Moonlight)’가 끝나자 수많은 외국인 관객들에게서 박수갈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기본 고전 발레의 틀을 넘지 않으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공연에 외국인 관객들은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안무를 창작한다는 것은 그만한 고통이 수반됐기에 공연 후 제임스가 느끼는 자부심은 더욱 컸다.

“창작은 힘들지만 결과물이 나오면 성취감을 말로 표현할 수 없죠. 때문에 바젤발레단과의 공연이 끝났을 때는 힘들었던 것도 잊고 행복하더라고요.”

은퇴를 선언해 놓고도 작품 창작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박수갈채와 희열. 그것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아서 힘든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20년간 만든 크고 작은 작품이 104개나 된다. 1년에 5개의 작품을 만든 셈이다. 제임스 전이 이렇게 쉼 없이 창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작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새로운 만남과 소통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죠. 저도 작품의 영감을 거기에서 받아요. 세상의 모든 것이 제 영감의 소재입니다.”

이렇게 뛰어난 작품을 선보이는데도 이 부부의 한숨은 멈추질 않는다. 발레라는 예술 문화를 향유하려는 이들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레의 대중화에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가로서 서울발레시어터를 일정 부분까지 끌어올렸지만, 후배들이 가야 할 예술계의 현실과 미래가 어두운 탓이다.

“제가 봐도 예술계의 앞날이 캄캄한데 자식 같은 후배들은 오죽하겠어요. 지금 시장도 좁고, 은퇴하는 사람들은 설 자리도 없는데 후배들에게는 그것을 물려주지 말아야죠. 발레 대중화가 돼야 후배들이 마음 놓고 공연하겠지요.”

김인희 단장과 제임스 전이 이끌어 온 20세의 서울발레시어터는 그야말로 헝그리 정신의 산물 이었다. 이제 그들의 열정은 후배들을 향해 있다. 40년 안무 인생의 종지부를 찍은 김 단장과 은퇴를 앞둔 제임스 전은 이제 무대가 아닌 곳에서 서울발레시어터의 살림을 책임 질 계획이다. 이들의 식지 않는 열정으로 서울발레시어터의 미래는 더욱 풍요롭다.

>>>김인희 단장…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유학, 유니버설발레단 단원 및 지도 위원을 거쳐 국립 발레단 수석무용수를 지냈다. 현재는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STP발레협동조합 초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발레협회 올해의 발레리나상(1983),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 문화예술공로상(2010), 한국발레협회 발레CEO상(2012)을 수상했다.

>>>제임스 전 예술 감독…

줄리어드 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모리스베자르 발레단 및 플로리다 발레단 무용수로 활동했다. 이어 유니버설발레단 및 국립발레단 무용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및 예술감독, 한국체육대학교 생활무용학과 교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는 무용월간지 「몸」지 주관, 무용예술상 올해의 안무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4년에도 같은 곳에서 <백설공주>로 무용예술상 작품상을 받았다. 이듬해 <봄, 시냇물>도 서울무용제에서 안무상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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