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을 맞으며] 6월은 ‘희망의 달’이다

기사입력 2016-05-10 09:30 기사수정 2016-06-22 12:58

한해를 반으로 접는 유월을 ‘희망’의 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과연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유월은 신록이 절정을 향해가는 시기다. 신록은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준다. 무엇보다도 신록은 희망을 준다.

한해를 시작한 1월은 시무식을 비롯한 이런저런 행사로 쏜살같이 지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2월이 지나면 3월은 입학식으로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달이다. 목련꽃이며 진달래꽃이 벚꽃의 화사함과 함께 추운 계절을 지낸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위로한다. 푸른 하늘 속에서 노란 물을 들이는 것 같은 산수유가 활짝 핀 오솔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추억 속의 시절로 돌아가고 만다. 이렇게 노란 꽃물이 가슴에 들어 서서히 깊어지면 가을에는 빨간 사랑이 솟아나는 것인가.

5월에는 어린이, 어버이 챙기느라 이런저런 행사며 식사자리가 넘쳐 난다. 이렇게 바쁜 상반기를 보내고 숨을 좀 돌리며 호흡을 가다듬을 때 푸른 신록이 몰고 온 6월이 마음에 위로를 전한다.

6월은 장미의 계절이기도 하다. 담장을 타고 오르며 경쟁하듯 빨간 얼굴을 뽐내는 장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욕이 솟구친다. 수줍은 듯 하얀 감꽃이 피고 청초하게 하얀 미소를 띤 개망초가 들녘을 순결하게 수놓는 유월에는 희망도 녹음처럼 우거지는 것 같다.

올해 6월 5일은 24절기에서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망종(芒種)이다. 이때가 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다. 보리를 추수하기 전까지 식량이 떨어져 어려웠던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한다. 유월이 되면 식량문제에서도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이런 6월이 우리 민족에는 역설적으로 가장 아픈 상처를 겪은 달이다. ‘6·25동란’이 일어났고 ‘6·10민주항쟁’도 있었던 달이다. 희망으로 가득해야 할 푸른 유월에 우리 민족에겐 뼈아픈 시련이 닥쳤던 것이다.

우리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여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유월 초 농촌 들녘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고 산등성이에서는 뻐꾸기 소리가 종일 심사를 흔들어 놓았다. 바쁜 시기였던 만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집안 일손을 도와야 했다.

학교에서 ‘반공 웅변대회’, ‘호국·보훈 글짓기’가 연례행사로 열렸던 것도 6월이다. 머리띠를 두르고 두 손을 치켜들어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을 토하던 그때 연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현충일이면 집집이 대문 앞에 태극기를 달았다. 성물처럼 고이 간직한 국기함을 열 때면 어떤 경건함을 느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때는 그랬다.

세계는 이념의 대결과 냉전의 시대를 뒤로하고 지구촌 시대의 물결 속에 꿈의 사회(Dream Society)를 열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6월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

초고령사회를 향해 가는 대한민국은 노령인구와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을 찾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자)가 700만 명 정도이고 ‘5575세대’(55세~75세)가 1천만 명에 이른다.

‘은퇴가 없는 나라’의 저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김태유 교수는 “고령화는 고령화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시니어들은 복지의 수혜대상자를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다.

시니어는 이 시대를 만들어낸 우리의 토대고 비빌 언덕이다. 시니어는 새로운 경제의 잠재력이고 보물이다. 시니어를 무기력하고 힘없는 노인들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시니어는 지혜의 샘이고 발전의 원천이다.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유연한 무릎의 문제가 아니라 샘솟는 상상력과 넘치는 감수성과 의지력이다.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공급되는 신선함이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다. 늙음은 거꾸로 가는 신비한 새로움이다. 제대로 된 늙음에는 더욱더 원숙한 삶과 깊은 깨우침이 펼쳐진다. 늙음에는 심오한 맑음이 있다. 연륜에서 샘솟는 품격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늙음과 낡음을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삶의 질을 갈라놓는다. 원숙한 인격에서 풍기는 그윽한 삶의 향기는 늙음의 고상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정한 멋과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바로 거꾸로 나이 드는 신비로 빚어내는 진정한 청춘이다.

농촌에서는 보리 베기와 모내기가 겹치는 이 무렵이 가장 바쁘다.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라는 의미다. 본분에 충실한 생명체들의 활력이 우리의 마음에도 짙푸른 희망을 가득하게 한다.

인생에서의 유월은 인생 이모작 모내기를 하는 시기다. 시니어여! 이 유월, 우리야말로 인생의 유월을 맞이한 사람들임을 기억하자.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 있었기에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던가.

역사학자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는 “모든 역사는 현재 역사다”라고 했다. 지금에서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5575세대’는 지금 이제까지 지내온 것보다 더 깊고 넓은 이모작 파종의 시점에 서 있다. 이런 이유로 유월을 ‘희망의 달’이라고 부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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