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세상 뜨자 다시 읽은 ‘인연’
나이 들면서 눈도 침침해지고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몇 년 전 어느 날 작가 최인호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도 가슴 아프다며 그의 소설 몇 권을 사오라고 했다. 전에 읽은 적이 있으나 새로 사 온 ‘인연’을 다시 읽으니 무언가 잔잔하고 그리운 감정이 피어올라 목이 메었다.
“생에 크고 작은 인연이란 따로 없으며 우리가 얼마나 크고 작게 느끼는가에 모든 인연은 변한다. 운명이 그러하듯 인연의 크고 작음 또한 우리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닐까”라는 구절에서 인연이란 정말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 방황 속에 등불 같은 존재
그러고 보면 필자도 어떤 작은 인연은 있었다.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도 안 하고 결혼도 못 한 채 빈둥빈둥 놀고 있을 때였다. 당시 최인호는 재기 넘치는 필치로 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놓고 있었다. 그중 ‘별들의 고향’이 영화화된다고 했다.
엄마의 육촌 동생으로 전채린(충북대 불문학과 교수) 아주머니가 있다. 남편은 하길종 감독이다. 어느 날 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주머니 집에 ‘별들의 고향’ 영화 제작 논의 차 영화감독 이장호와 최인호가 모인다는데 여주인공을 누구로 할지를 의논한다고 했다. 이들은 주인공 오경아 역으로 안인숙(나중에 안인숙이 캐스팅)과 김창숙을 고민 중이지만 신인을 써보자는 의견도 있으니 필자를 한 번 보내보라는 전화였다. 필자는 영화배우가 될 꿈은 전혀 꾸지 않았으나 좋아하는 작가 최인호가 온다니 신나서 방문해 그를 만난 기억이 있다. 그 정도로 최인호는 필자의 우상이었다.
그의 작품 ‘인연’을 읽으며 필자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필자는 젊었을 때 성당에서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았다. 한동안 잘 다녔는데 살면서 여러 가지 희로애락을 겪으며 어느 날부터 성당에 나가지 않아 냉담자(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에 나가지 않는 사람) 가 되었다.
최인호는 가톨릭 신자였다. 열심히 성당에 나갔던 부모가 매주 가져오는 주보에 최인호의 글이 실린 것도 보았고 그의 투병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연’을 읽었다. 필자의 가슴 속엔 항상 어떤 죄책감이나 무거운 기운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성당에 나갈 결심을 했다.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입니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릅니다.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 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삼라만상에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신의 섭리, 인간이 어쩌지 못 한 일에 닥쳤을 때 인간은 결국 신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 같다. 최인호의 말대로 필자도 수많은 필자와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