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독일에서 피부과학 전문의 과정을 밟을 무렵인 1960년대, 이른바 노년학(老年學, Gerontology)이 새로운 학문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독일 피부과학계의 거목인 쉬른 교수(Prof. C. G. Schirren, 1922~1968)의 부름을 받아 문하생이 되기로 확정했던 때입니다.
당시 새롭게 대두한 노년학에 대한 학문적 토양을 더 일찍, 더 깊이 알았더라면 저는 아마 노년학을 전공한 의료인이 됐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말은 지금도 노년학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시니어 그룹에 속하다 보니, 노년학의 사회적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또한 주변 사람 대부분이 시니어이니, 만나서 나누는 대화 중에 당사자 또는 가족의 건강 문제 관련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가곤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몇 달 동안 두 친구가 대형 병원을 갈 때 동행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몇 가지 보게 됐습니다.
당시 재직하던 대학병원 외래에 간다기에, ‘도움을 많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큰 부담 없이 보호자 겸 안내인을 자청하며 병원 방문길에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필자의 역할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병원 외래 공간인 OO진료과까지는 쉽게 안내할 수 있었는데, 그다음 과정부터는 필자에게도 낯선 영역이었습니다. 먼저 진료과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키오스크(Kiosk)에 등록해야 했습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처럼 말입니다. 그다음 부근에 설치된 혈압측정기에서 환자가 직접 혈압을 측정한 후 그 혈압 수치가 적힌 쪽지를 지참하고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면 담당 교수의 진료실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진료하는 과정에서 주치의가 이런저런 검사를 처방합니다. 그러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검사실을 찾아가야 합니다. 검사에 따라 공복 상태가 아니어서 다음 날 다시 와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병원 구조 및 병원 생리에 비교적 익숙했음에도 순간 어리둥절했습니다.
대형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했던 필자도 이런 상황이니, 대형 병원을 찾는 시니어 환자는 얼마나 당혹스러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시니어 환자’가 홀로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는 것이 녹록지 않은 일임을 실감하면서, 많은 시니어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내하기 힘들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니어가 대학병원급 큰 병원을 동반자 없이 홀로 찾아간다면, 방향감각을 잃는 문제부터 봉착하겠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국내 대학병원의 환자 동향에 관한 통계자료(2025)에 의하면, 70세 이상 시니어 환자 점유율이 입원환자 19.5%, 외래환자 19.8%에 달합니다. 이렇듯 국내 대형 병원을 찾는 환자의 약 20%가 시니어 환자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1970~2000년대 필자가 진료할 때 환자에게 입원해 집중 치료받을 것을 권하면, 자주 듣던 말이 “집에 어린아이를 보살펴줄 다른 가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핵가족화 현상’으로 말입니다. 그 점을 몹시 안타까워했는데, 근래에는 “집에 시니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큰 사회적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병원을 찾는 시니어는 외래환자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각종 검사를 받게 마련입니다. 이런 경우 시니어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병원 규모가 크고 개원 햇수가 길수록 병원에 근무했던 ‘옛 병원 종사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는 집에서 쉬고 있는 전직 간호사도 있고, 병원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일반 사무직 퇴직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 귀한 인력을 ‘시니어 케어’에 값진 조력자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봅니다.
‘시니어 케어’가 필요한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선약한 ‘도우미’가 병원 입구에 대기했다가 앞에서 언급한 외래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절차에 동행하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때에 따라 휠체어도 활용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도움에 따른 일정 액수를 지급해야겠지요. 이런 아이디어에 관해 주변 시니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대부분 그런 ‘유료 서비스’가 필요하고 절실하다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전직 병원 종사자도 뜻있는 ‘소일거리’라며 긍정적으로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병원 당국은 이미 문제점과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병원이 비윤리적으로 장사’한다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까 봐 큰 부담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형 병원은 무척 방어적이며 수동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일면을 봅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병원 이용자 중 고연령층인 시니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현실에서 앞서 언급한 ‘시니어 케어’에 크게 공감하지만, 일반 시민 특히 각종 시민단체의 생각은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얘기입니다. 결국 병원이 ‘시니어 케어’를 알아서 해결해주길 바라면서도 저소득층에게 위화감을 초래하는 것은 부정적이라는 것이죠. 답답한 심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시니어 케어’,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