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탕과 친정아버지

기사입력 2016-10-06 09:48 기사수정 2016-10-06 10:20

▲토란탕과 친정아버지(박혜경 동년기자)
▲토란탕과 친정아버지(박혜경 동년기자)
토란을 먹을 수 있는 계절이 왔다. 추석 무렵 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토란이지만 사계절 늘 맛볼 수는 없는 귀한 맛의 전령사다. 올 추석 명절에도 어김없이 토란국을 끓였다. 미끈거리고 감촉이 좋지 않아 먹기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매끈하고 부드러운 맛에 토란을 매우 좋아한다.

친정아버지의 고향은 충청도 대전이다. 충청도 사람이라 토란을 더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울 토박이인 엄마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우리 가족은 토란국을 즐겨 먹었다. 좋아한다고 매일 먹은 건 아니고 추석 즈음 많이 먹었다. 감자나 고구마는 저장이 잘 되어 일 년 내내 맛볼 수 있지만 토란은 저장이 안 되는 것 같아 무척 아쉽다.

남편은 이북이 고향이다. 시댁에서는 추석 차례 상에 토란국을 끓이지 않고 양지머리 고기를 푹 삶아낸 국물로 맑은 무국을 끓였다. 남편은 처가에서 토란 탕을 처음 맛보았다고 했다. 처음 먹을 때는 좀 이상했는데 자꾸 먹다 보니 정말 맛있다며 좋아하게 되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맏며느리인 내가 제사를 물려받았다. 이후 추석 차례 상에는 토란국을 올렸다. 차례 지내러 온 시동생과 친척들은 토란국을 처음 먹어본다며 호기심을 보였고 매년 추석 때면 “형수님 토란국 먹으러 갈게요.” 할 정도로 맛을 들였다.

토란은 흙 속의 알이라는 뜻이다. 추석 전후에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가장 영양이 많고 맛이 좋다. “알토란같다.”는 말은 부실한 데가 없이 옹골차고 단단하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데 토란의 효능이 알차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 아닐까 한다.

토란의 주성분은 녹말이지만 다른 감자류에 비해 특히 칼륨의 햠량이 많다고 한다. 토란의 칼륨은 일단 혈액으로 흡수된 나트륨이 신장에서 흡수되는 걸 막고 소변으로 배출하게 해서 혈압을 낮추는 작용도 하고 토란에 함유된 ‘가라쿠탄’이라는 성분은 면역력을 높여주기도 한단다. 수분이 많아서 다른 감자류에 비해 에너지가 낮고 칼로리도 낮으니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을 것이다.

필자는 토란국에 정성을 들이는 편이다. 장에 가면 껍질을 벗긴 토란과 흙토란을 함께 파는데 반드시 흙토란을 사와 껍질을 벗겨 쓴다. 예전에 친정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나가 토란을 사왔던 기억이 난다. 엄마대신 토란국을 끓여보겠다며 멋모르고 맨손으로 껍질을 벗겼는데 손끝이 아려왔다. 아버지는 “괜히 너를 고생시키는구나.” 하시며 안타까운 눈길로 약을 발라주셨다. 가끔 그날이 떠오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오늘도 토란 껍질을 벗겨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내어 양지머리 쇠고기 국물로 국을 끓였다. 토란국을 끓이니 토란국을 맛있게 드시며 웃으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토란은 맨손으로 다루면 독성 때문에 가렵거나 알레르기가 생기기도 하니 반드시 장갑을 끼고 껍질을 벗겨야 한다. 이것도 친정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다. 요즘이 싱싱한 토란을 맛볼 수 있는 철이니 열심히 만들어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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