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삶, 주부라는 직업

기사입력 2016-12-27 14:08 기사수정 2016-12-27 14:08

주부의 가사노동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이혼할 때 받는 위자료에서 종종 가사노동의 가치가 계산되기도 한다. 부를 이룬 유명 배우나 재벌 기업가들이 이혼할 때 이 비용을 포함한 위자료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곤 한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가 이혼할 때도 그랬다. 사람들의 관심은 두 사람의 이혼보다 전처들이 받을 위자료가 얼마나 되는가에 온통 쏠려 있었다. 거부들의 이혼은 그 자체로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이다.

영어는 어떤 직업군이든 직장에 가는 것을 ‘일 간다’로 표현한다. 이 말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몸의 체험으로 느끼도록 한다. 한때 블루칼라의 노동은 필자를 힘들게 했다. 필자를 괴롭히고 주저하게 만든 것은 일 자체의 어려움보다는 블루칼라가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 간다’라는 표현은 그런 필자에게 일침을 가했다.

필자 가게의 단골손님 중에 간호사가 있었다. 로스쿨을 나왔고 변호사 자격증도 있었지만 변호사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간호학을 공부했고 간호사로 일했던 시절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온 학교가 명문 로스쿨이란 걸 나중에 우연히 알고 조금 놀랐다.

아들 집 옆집에는 80대 어머니와 중년의 딸 내외 그리고 고등학생 손녀가 살고 있다 아들이 처음 이사했을 때 그 딸아이는 초등학생이었다. 건강하고 명랑하고 귀여운 소녀였다. 소녀의 엄마는 먼 거리의 사립학교에 다니는 딸을 위해 늘 등하교 때 차로 데려다줬다. 좀 지나서 알게 되었는데 아이에 대한 부모나 다른 가족들의 배려가 좀 별났다. 또 그 사회에서는 드물게 젊은 엄마가 일도 하지 않았다. 필자는 다 큰 아이를 둔 엄마가 일하지 않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을 이웃으로 지낸 뒤에 할머니로부터 손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손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백혈병을 앓았고 현재 완쾌 상태이지만 특별 배려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변호사 자격증과 간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40대 후반의 그녀는 바로 소녀의 엄마다. 변호사가 행복하지 않아 간호사가 된 그녀는 갓 태어난 딸아이가 건강하지 않다는 걸 의사보다 알았단다. 이후 특별 검진을 통해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할 수 있는 모든 의술을 동원했다. 어린 딸은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딸아이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앰뷸런스 호출과 병원 응급실 출입은 일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5년간 그렇게 긴장하고 고생한 덕에 병은 완쾌되었다. 그러나 아이가 처음부터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 일반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늘 무공해 음식을 집에서 먹이고 학교도 특수 사립학교에 보냈다. 그녀가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딸아이 때문이었다.

간호사와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면 직장 잡기가 어렵지는 않다. 지금은 아이도 건강하고 틴의 나이로 성장했다. 얼마든지 다시 직장을 가져도 됐을 텐데 대단한 용기다. 그 가정의 경제 형편이 남달리 부유한 것도 아니다. 초라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만약 필자의 아이가 큰 병에 걸려 있다면 건강한 아이를 다시 가져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자기 앞에 있는 아이의 건강과 행복에만 초점을 맞춰 자신의 삶까지 바꾸었다. 건강하고 스마트하고 튀는 아이를 자녀로 두고 싶은 욕심이 전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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