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만 힘들고 어렵지 않다

기사입력 2017-07-12 10:03 기사수정 2017-07-12 10:03

한때는 취업전선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치고 가족들마저 내 마음을 몰라줄 때 성당의 신부님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신부님은 완전고용으로 취업의 어려움이나 회사에서 짤리는 고통 없이 신도들에게 복음만 전달하면 되는지 알았다. 늘 깨끗한 복장에 신도들로부터 존경받기만 하는 모습이 세파에 시달리는 보통우리의 삶과는 다른 모습이 부러웠다.

하지만 신부님들도 저마다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 지학순 주교께서 교황을 알현하면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부터 준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글 중에는 용돈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그러나 막상 교황을 뵙자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주교라는 높은 신분임에도 부족한 것이 있어서 윗분에게 하소연할 거리가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어느 신도가 자신의 지치고 힘든 사정을 주님께 말씀드리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주님에게 ‘’주님!‘ 하고 부르다가 주님을 바라보니 내 고통은 주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귓전에서 주님이 ‘너도 나처럼 지쳤구나! 너도 나처럼 힘들구나!’ 하시며 위로하시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아들에게 미안한 과거 생각이 난다. 지난날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을 했다. 취업도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는 아들 어깨도 무거웠지만 이를 바라보는 애비의 마음도 찬바람 불고 황량했다. 아들이 이제 졸업하면 백수인데 남들이 ‘당신아들 지금 뭐해?’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에만 골몰하고 막상 백수의 첫발을 내딛는 아들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미운 감정이 앞섰다.   

아들은 어떡하든 졸업하기 전에 취업해 보겠다고 애를 썼다. 학교 근처에 방을 얻고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몇 군데 원서를 넣었는지 묻지도 못했지만 결국 백수로 졸업을 했다. 졸업 후에도 아들은 밤낮으로 도서관에도 다니고 인터넷으로 이곳저곳 조회하여 취직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합격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러다가 내 아들이 영영 백수가 되는 것은 아닌지 속 좁은 애비는 불안하고 겁이 났다.

어느 날 내가 만취하여 나도 모르게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아내에게 토해냈다. ‘이제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아들이 이렇게 취업을 못하니 큰일이다. 남의 자식은 취직도 잘하는데 어떡하면 좋으냐?’ 라는 푸념을 하고 말았다. 아들이 제 방에서 귀동냥으로 애비의 말을 들었다. 

다음날 아들은 내게 편지를 주고 나갔다. 내용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 아버지 실망시켜드려 정말 죄송해요. 지금까지 25년이나 저를 믿고 기다려 주셨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궁하다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곧 좋은 소식 드리려고 저도 노력하고 있어요.” 편지를 읽고 나니 나보다 몇 배나 마음고생이 심할 아들의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고 이런 아들을 보듬어주지 못한 애비의 속 좁음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남들이 ‘당신 아들 아직 취업 못했어?’ 하는 소리를 들을까봐 애비는 조바심했지만 그 시간에 취업 못한 아들의 마음은 애비보다 더 타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몇 달 뒤에 아들은 기다리던 합격 전화를 받고 제일먼저 애비에게 전해왔다. ‘합격’이란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가. 전화기 너머의 아들의 씩씩한 음성도 반가웠지만 나도 내 생에 최고의 순간처럼 기뻤다. 아들의 인생은 아들의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늘 해 왔지만 부자간 이라는 천륜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성인이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수많은 영웅들의 고초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의 삶은 편안하고 너무 행복하다. 세상에 나만 외톨이로 뒤처져 힘들고 지쳐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용기를 내보자.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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