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 달에 한 번 친한 친구와 셋이서 영화를 보고 있다. 가능한 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개봉작을 선택해서 보고 있으며 아직 못 봤어도 시작한 지 오래된 영화는 그냥 넘긴다. 영화 값도 비싸져서 조조를 보려고 아침 9시에 약속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저런 할인카드를 동원하면 영화표를 거의 반값에 살 수 있어 굳이 조조를 보지 않아도 된다.
필자가 활동 중인 블로거 협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회의도 할 겸 문화의 날로 잡아 명보극장을 통째로 빌려 모임을 하고 있다. 명보극장은 필자가 젊었을 때 개봉영화를 보러 자주 갔던 곳으로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씨가 주인이었는데 지금은 신영균씨가 서울시에 시니어를 위한 공간으로 써달라고 기부했다고 한다. 시니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추억의 명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반갑고 감사하다.
이번에는 오전 10시, 이전의 명동 코스모스빌딩 영화관 앞에서 만났다. 신용카드를 활용해서 세 명이 1만2000원에 티켓을 샀다고 우리는 희희낙락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사람당 8000원씩 들었고 주말에는 9000원도 내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항상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데 올해부터는 우리도 질세라 젊은 아이들처럼 제휴카드, 할인카드를 활용해 반값에 영화를 보면서 아주 뿌듯해한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다. 그런데 요즘 극장은 모두 멀티 관이 되어 한 극장에서 여러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상영관 화면도 작아졌다. 큰 화면과 넓은 객석이 있어야 극장이라는 느낌이 있는데 처음 멀티 관에서 영화를 봤을 때는 무척 생소했다. 화면도 좁고 객석도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적응이 되어 그러려니 한다. 다만 우리가 젊었을 때처럼 와이드스크린을 가진 대형 영화관이 그립다.
예전에는 충무로의 대한극장이 가장 큰 화면을 가진 제일 좋은 극장이었다. 여고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학교 전교생이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갔다. 대한극장의 큰 화면과 넓은 객석에서 빼곡히 앉아 보았던 <벤허>나 <사운드 오브 뮤직>, <로미오와 줄리엣> 등 수많은 대작 명화를 감상하면서 멋지고 안타까운 내용에 가슴도 많이 졸였다. 또 중후하고 멋진 찰톤 헤스톤이나 잘생긴 로미오 ‘레오나르도 화이트’와 줄리엣 역의 ‘올리비아 핫세’를 동경하기도 했다.
개봉관으로 을지로의 스카라와 명보극장도 많이 찾은 영화관이다. 근처의 국도극장은 한국영화만 상영하는 국산영화 전용 개봉관이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영화가 개봉됐을 때 그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로 가득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광화문에 있었던 비슷한 이름의 국제극장은 외국 영화만 상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명동성당 근처의 중앙극장도 추억이 많은 곳인데 지금은 문을 닫아 안타깝다. 종로의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도 필자가 좋아했던 극장이다. 영화 표를 사고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던 피카디리극장 앞 ‘사루비아 다방’에 대한 전설도 남아 있다. 한국 영화를 찍은 감독들이 영화 개봉 날 자신들의 영화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지 이 ‘사루비아 다방’ 2층 유리창 가에 앉아 마음 졸이며 내다보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일류 개봉관도 있었지만 이류, 삼류 영화관도 많았다. 영화 보는 걸 좋아했던 필자는 여중․여고 시절부터 학생 관람불가 영화를 삼류극장에서 보곤 했다. 선도부 선생님께 걸릴까봐 조마조마하면서도 무척이나 많이 보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일류극장보다는 삼류극장들이 학생인 줄 알면서도 통과시켜주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생각나는 곳은 대한극장 건너편 골목에 있던 아테네극장이다. 이곳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클리프 리처드의 영화를 본 건 정말 신나고 즐거운 추억이다. <썸머 홀리데이>라는 영화의 감미로운 주제곡이 흐르고 기타와 함께 여행하는 내용의 영화를 보며 열광했던 그 시간들이 생각난다. 요즘은 복합 멀티 관의 작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지만, 와이드스크린의 시원한 화면으로 명작을 관람하던 그 시절이 무척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