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유일한 박물관 ‘한국등잔박물관’

기사입력 2018-04-12 18:22 기사수정 2018-04-12 18:22

전기 보급과 함께 빠르게 사라져버린 것이 있다. 등잔이다.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막대 사이에 흙으로 빚은 잔을 끼워놓은 것. 잔 안에 심지를 넣고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면 어두웠던 세상이 밝아졌다. 과거 인간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지금은 없다. 신문물의 등장으로 기억에서 빠르게 잊혔지만 등잔은 우리 삶에 있어 고마운 물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마구 버려졌던 가치를 마음에 새기고 100년 넘게 모아놓은 등잔을 마주하러 한국등잔박물관에 찾아갔다.

▲등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형구 관장.(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등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형구 관장.(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金家三代, 등잔의 소중함을 알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사람 길보다 바람 길이 더 많이 나 있는 인적 드문 곳에 한국등잔박물관(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 문화재단)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세월만도 21년째. 한국등잔박물관의 전신인 고등기(古燈器)전시관(1969년 수원에서 개관)부터 따진다면 49년 전통에 특색까지 갖춘 독보적인 박물관이다. 한국등잔박물관은 미래를 볼 줄 아는 한 가족의 뜻과 의지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대에 걸쳐 관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형구 관장은 선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성이 깃든 한국등잔박물관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옛날부터 그림이나 골동품 등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사서 모았습니다. 은행이 없을 때는 더 했었죠. 물론 저희 집안에서도 고가의 예술품을 모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희 삼대가 열심히 모았던 것이 바로 등잔입니다.”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등잔은 모아봤자 돈 되는 물품이 아니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쓸모없어져버리고 가치가 떨어져 애물단지가 됐다. 그러게 왜 돈 안 되는 등잔인가?

“우리 인간의 삶에 해가 지고 나서 전기가 없을 때 등잔이 없으면 밤에 생활이 안 되잖아요. 인생의 반이 밤이잖아요. 밤을 밝혀준 중요한 물건을 아무도 모으지 않는 거야. 수집하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집안에서 하게 된 겁니다. 나, 아버지, 할아버지가 100년 넘게 모은 등잔이 박물관 곳곳에 다 있습니다.”

▲등잔대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등잔대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가문의 재산이 모두의 자산이 되다

한국등잔박물관은 1대 관장이자 설립자인 김동휘(1918~2011) 관장이 운영하던 산부인과 2층에서 고등기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김동휘 관장은 경기도 일대에서 유명하던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예술에 조예가 깊어 경기 지역 문화 사업에 기여를 많이 해온 인물이었다. 은퇴 뒤 모아둔 유물의 관리, 보관 활용에 대한 고민이 박물관 개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등잔박물관은 현재 재단법인에서 운영하고 있다. 1999년 유물과 건물, 대지까지 150억 원 가까이 되는 재산을 재단법인 설립과 함께 사회에 환원했다. 대한민국이 있는 한 한국등잔박물관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등잔박물관은 왜 한국에만 있을까?

▲시대에 따라 고사리, 염주, 죽절 모양이 등잔대에 사용됐다.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시대에 따라 고사리, 염주, 죽절 모양이 등잔대에 사용됐다.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김형구 관장은 등잔이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라고 주장한다. 장례 문화였던 고인돌이 온돌 생활로 이어져 생겨난 민족의 슬기라고 강조했다.

“우선 온돌 문화는 고인돌에 쓰이는 돌을 깨는 기술에서 왔습니다. 온돌 바닥에 사용하는 구들장 깨는 기술로 전이된 것이죠.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데 등을 땅바닥에 그대로 놓아두면 빛의 효율이 떨어지잖아요. 앉아 있는 상태의 눈높이로 불을 끌어올려 허공에 띄워놓은 것이 등잔입니다. 전국이 온돌문화권이었으니 등잔을 사용한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세계 유일의 박물관일 수밖에요.”

▲등잔의 용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1층 박물관.(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등잔의 용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1층 박물관.(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한국등잔박물관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다양한 등기구가 전시돼 있다. 불교국가로서 문화의 꽃을 피우던 고려시대 등잔대에서는 주로 염주와 연꽃 모양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의리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의 죽절 무늬가 눈에 많이 띈다. 등잔을 재떨이로도 사용했고 새색시 혼수품으로 가져가기도 했다고. 박물관 1층에는 등잔을 사용하던 때 남자와 여자의 방, 부엌이 꾸며져 있어 당시 모습과 함께 등잔의 이용을 엿 볼 수 있다. 2층은 시대별로 등잔을 분류해놓았다. 실제 쓰던 대청마루를 원형 그대로 옮겨와 한국등잔박물관과 등잔 관련 기록들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관람안내

관람시간 (10월~3월) 오전 10:00 ~ 오후 5:00 / (4월~9월) 오전 10:00 ~ 오후 5:30

휴관일 월·화요일

입장료 (개인) 성인 4000원 / 중·고·대학생·노인·어린이 2500원

(단체) 성인 3000 / 중·고·대학생·노인·어린이 2,000 원

*부모동반시 미취학어린이 무료입장.

* 단체관람은 사전에 ☎ (031) 334-0797로 문의 예약.

▲수원 화성 공심돈에서 착안해 설계된 한국등잔박물관의 전경.(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수원 화성 공심돈에서 착안해 설계된 한국등잔박물관의 전경.(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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