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된 영화 중 한국 전쟁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일라’라는 작품이 있다. 터키 병사와 전쟁고아와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다. 전쟁고아였던 김은자는 달을 닮은 얼굴 덕에 터키어로 ‘아일라(Ayla)’ 즉, ‘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달덩이 같은 얼굴을 더 달스럽게(?) 보이게 한 데에는 머리 모양이 한몫했다. 바로 상고머리였다. ‘상고머리’가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앞머리는 눈썹 위로 가지런히 자르고 옆머리와 뒷머리는 귀밑까지 치올려 깎은 모양이다.
1960년대 대부분 여자아이들 머리 모양이 그러했다. 요즘 남자들은 미용실을 많이 이용하지만 여성은 이발소 이용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는 여자 어린이들의 경우 이발소를 많이 이용했다. 내가 오랫동안 단골로 다녔던 이발소는 남산 밑이었다. 자주 이용한 이유는 값도 쌌지만 만화책이 있어서였다. 오래 기다릴수록 만화책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머리를 자르려는 이유보다 만화를 보기 위해 갔다. 손님이 많으면 들어가고 없으면 이발소 앞을 그냥 지나치고 한참 후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아저씨 상고머리요.”
찰칵 찰칵 몇 번의 가위소리가 지나고 넓은 가죽 허리띠 같은 곳에서 면도의 아린 통증을 예고하듯 ‘척 척 척’ 면도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밑을 ‘삭, 삭’하는 소리와 함께 면도칼이 지나면 작은 신문지 조각에 머리카락 섞인 비누거품이 쌓였다. 한참 얼굴을 찡그리고 나면 김서린 거울 속엔 단정한 내 얼굴이 있었다. 이발이 끝나면 돈을 지불하고 다 못 본 만화책을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이발소 문을 나서기도 했다. 가끔 옆 자리에 여자 아이 손님이 앉아 머리를 다듬기도 했다. 그때 여자 아이들은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제 동생도 상고머리로 깎아주세요.”
아일라 같은 예쁜 얼굴(?)을 많이 만들어 내던 추억 속 이발소 풍경. 문득 영화 ‘아일라’
를 보다가 기억에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