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된단 말이야. 데구루루… 너무 아팠어요.” “어디 보자. 우리 채소들이 얼마나 잘 자랐나. 허허, 녀석들 예쁘구나!”
목을 쭉 빼고, 깍지 낀 손가락 위에 턱을 괴고, 고개를 갸우뚱. 점점 빠져든다. 입가에 웃음이 배는 건 어쩔 수 없다. 입담에 알록달록 교구와 손 유희가 어우러지니 잠시 잊고 있었던 동심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세대와 세대를 잇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그램. 지금은 시니어의 자부심뿐만 아니라 어린이 교육에 한 걸음 다가가는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 무릎에 앉아 동화를 들어요
5년째 이어오고 있는 구로구 평생학습관 프로그램 ‘어르신 동화구연 교실’은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관내는 물론 다른 지역 시니어의 문의가 쇄도해 까다롭지 않다지만 작은 오디션(?) 과정을 거치는 일도 있다. 올 초 모집 당시 예상 수강 인원을 훨씬 웃도는 인원이 원서접수를 했다고 구로구청 교육지원과 평생학습팀 김은아 주무관은 말했다.
“지난해보다 10명을 늘렸는데도 모든 지원자를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지원자 목록을 만들어서 취소자가 나오면 신규 신청을 받았어요. 이때 전화상담이 중요해요. 동화구연을 해보셨는지, 자원봉사에 열의가 있으신지, 동화구연활동을 할 시간은 있는지 물어봅니다. 오셔서 신청하시는 분들은 책도 읽어보게 하고요.”
구로구 어르신 동화구연이 인기 있는 이유는 체계적으로 안정됐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현장에 나가기 때문이다.
“현재 35명의 시니어가 동화구연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데 2인 1조로 17개 기관에 가서 활동하고 있어요. 이야기는 각자가 각색해서 구연하십니다.”
한 달 격주로 평생학습관에 와서 동화구연 학습을 받은 후, 격주로 구로구의 도서관과 복지관, 어린이집 등에 방문해서 어린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올해는 동화구연을 배우는 시니어의 요구에 따라 교육과 활동시간을 늘렸다.
“상·하반기 각각 6번씩 12번 강좌를 했습니다. 매번 강좌가 끝날 때마다 간담회를 했는데 좀 더 시간을 늘렸으면 하셔서 2회 늘렸습니다. 다들 너무 잘하시고 열성도 대단하십니다.”
동화구연, 세대 간 소통의 고리가 되다
동화구연은 알다시피 동화를 사람들 앞에서 재미있게 읽어주는 행위다. 이때 그냥 읽어주면 재미없다. 동화 내용에 어울리는 다양한 손가락 인형에 부직포 등을 이용한 교구 등을 사용한다. 그거만 있으면 다 된 걸까? 아니다. 목소리 연기 또한 필요하다. 일인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화구연을 하기 위해서는 갖출 것이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교구를 제작하고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실력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동화구연 관련 자격증이 많이 생겨나고 시니어 대상 동화구연대회도 종종 열리는 것은 동화구연이 은퇴 후 시니어 세대의 재능기부 활동으로 관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작됐습니다. 시니어가 구민으로서 동화구연을 통해 자기계발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면 적지만 활동비도 드립니다. 일자리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어린이 입장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화구연활동은 시니어의 사회 참여뿐만 아니라 세대 간 소통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5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화구연 전문가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손에서 나온 교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교구 창작과 함께 동화 창작도 한다. 취재를 갔던 날은 하반기 수업 첫날. 손수 만든 전문가급 교재를 들고 나와 이야기하는 시니어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시니어 대부분이 동화구연 자격증은 기본이고 대회에 나가 많은 상을 탔다.
“무엇이든지 사업 초기에는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걱정이 되잖아요. 해를 거듭할수록 이 사업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걸 점점 더 깨닫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구에도 어르신 동화구연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하는 것이죠. 구내 프로그램이다 보니 구민먼저 경력자 우선이거든요.”
김 주무관은 앞으로 워크숍과 동화구연 기초반 신설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관심에 보답하고 더 많은 곳에 찾아가 자신의 장기를 펼치며 소통하는 시니어가 구연동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합니다.”
mini interview
동화구연 선생님입니다
5년 전 이 강좌가 개설됐을 때 바로 시작했어요. 느티나무 은빛극단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데 단원들과 함께 와서 동화구연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고요. 이곳에 와서 교구 제작이랑 동화구연 방법 등을 배워서 구로구 내 복지관이나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있어요. 동화구연 자격증도 두 개 땄고요. 나이 먹고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주들한테 하는 거처럼 하니까 아이들도 많이 따릅니다. 동화구연이 끝나면 “가지 마세요” 하고 매달리기도 해요. “언제 또 오냐”며 묻고 또 물어요. 교구 제작하고 연습하고 그러면 가끔 내 나이를 잊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냥 할머니라고 못 부르게 합니다. 동화구연 선생님으로 저를 소개합니다.
손주들 교육에도 제가 한몫합니다
저도 동화구연한 지 5년 됐습니다. 딸아이 가족과 함께 사는데 손주가 열 살, 아홉 살, 다섯 살 셋입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줬는데 마침 동화구연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저도 들어왔습니다. 아이들과 교감하는 거도 좋고 삶의 활력소도 됩니다. 오늘처럼 교육이 있는 날 집에 돌아가면 손자들이 소파에 쫙 앉습니다. 책 읽어 달라는 거죠. 우리 큰손자가 성격이 조금 소극적이에요. 그런데 작년 학예발표회 때 자기가 손을 들고 구연동화를 한다고 했대요. 올해는 학교에서 인형극을 하는데 읽기 오디션을 봤답니다. 당당히 5명에 뽑혔대요. 요즘도 아침에 30분에서 40분씩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그 효과가 있었던 거겠죠? 책은 아이들 수준보다 좀 높여서 선택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아이들이 그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제가 손주한데 얻은 별명이 ‘이야기 박사’입니다. 동화구연이 저에게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굉장히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