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9

버튜버는 젊은이 전유물? 일본선 88세도 ‘가상 아이돌’

입력 2026-08-19 07:00

84세에 데뷔한 ‘메타 할머니’ 88세 맞아… 유튜브 구독자 7만 이상 ‘인기’

▲후기고령자 버튜버 ‘메타 할머니’ 히로코의 가상 캐릭터. 히로코는 2022년 84세에 버튜버로 데뷔했으며, 올해 88세를 맞았다.(오타그룹 제공)
▲후기고령자 버튜버 ‘메타 할머니’ 히로코의 가상 캐릭터. 히로코는 2022년 84세에 버튜버로 데뷔했으며, 올해 88세를 맞았다.(오타그룹 제공)

분홍색 머리를 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화면에 등장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10대나 20대가 아니다. 올해 88세가 된 일본인 여성 히로코다. 젊은 세대의 문화로 여겨지던 ‘버튜버(VTuber)’의 세계에 75세가 넘은 후기고령자가 뛰어들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오타그룹(OTAGROUP)은 18일 자사가 운영하는 고령자 버튜버 프로젝트 ‘메타 할머니(メタばあちゃん·MetaGrandma)’의 멤버 히로코가 88세를 맞았다고 밝혔다.

버튜버는 ‘버추얼 유튜버(Virtual YouTuber)’의 줄임말이다. 실제 사람이 카메라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2차원 또는 3차원 가상 캐릭터를 자신의 분신처럼 활용해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 방송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표정에 실제 진행자의 목소리와 행동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일본에서는 이제 고령자까지 이 새로운 표현 방식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히로코는 히로시마현 미하라 출신으로 2022년 12월, 당시 84세에 ‘메타 할머니’ 프로젝트의 첫 멤버인 ‘0기생’으로 데뷔했다. 데뷔 10일 만에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3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 구독자는 7만5000명이다. X(옛 트위터)에 공개한 자기소개 영상은 300만 회 재생되기도 했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서는 히로코를 포함해 모두 8명의 고령자가 활동하고 있다.

‘메타 할머니’는 활력이 넘치고 개성 있는 할머니들을 가상세계에서 인기 아이돌로 키운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고령자의 모습을 젊게 꾸미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고령자가 자신의 목소리와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새로운 캐릭터와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프로젝트가 내세운 메시지도 “도전은 몇 살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88세를 맞은 히로코는 가족들과 고기를 구워 먹으며 장수를 축하했다. 오타그룹은 생일을 정확하게 공개할 경우 고령자를 겨냥한 전화금융사기 등에 악용될 가능성을 고려해 실제 생일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88세를 ‘베이주(米寿)’라고 부르며 특별한 장수의 시기로 기념한다. 한자 ‘米’를 풀어 쓰면 ‘八十八(88)’의 형태가 된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히로코가 전통적인 장수의 상징인 88세를 맞으면서도 활동 무대는 유튜브와 가상세계라는 점에서 일본 고령문화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버튜버의 핵심은 현실의 외모나 나이를 화면에 그대로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와 생각, 경험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이 게임이나 음악, 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온 가상 캐릭터가 고령자에게는 나이와 외모의 제약을 넘어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다른 세대와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히로코의 활동은 고령자의 디지털 참여가 단순히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 사용법을 익히는 수준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만들고, 누군가가 보고 싶어 하는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타그룹은 버튜버 온라인 행사 등을 제작해 온 일본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회사 측은 ‘메타 할머니’ 프로젝트를 통해 고령자들이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버튜버가 어린 세대만의 문화라는 통념을 넘어, 80대의 삶과 경험까지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무대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84세에 가상세계에 데뷔해 88세까지 활동을 이어가는 히로코의 사례는 초고령사회에서 ‘디지털 세대’의 경계가 나이가 아니라 참여 여부에 따라 다시 그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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