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치매판정을 받고 일 년이 넘었다. 그 전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시간단위가 점점 빨라지는 낌새가 있긴 했다. 그래도 ‘우리엄마가 설마’했다. 주변 지인들 부모나 어르신의 치매로 안타까워하는 당사자들의 마음이 그대로 나의 현실이 되었다. 직접 치매환자를 돌보며 경험 했던 같은 교회의 자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자매의 어머니는 ‘어르신놀이방(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있다.
“처음엔 가족들이 엄청 당황스럽죠. 근데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에요. 백세인생이라는데 백세근처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겠어요. 우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락해서 장기요양등급 신청하고 등급을 받으세요. 등급이 나오면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때 85%를 지원받을 수 있어요.”
두 달여의 기간을 두고 나는 엄마를 설득했다. 공단에서 사람이 방문한다는 걸 알렸다. 엄마가 혹시 '어르신놀이방'에 가게 되면 등급이 필요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알겠어. 니가 무슨 말 하는 줄 내가 안다고. 내가 그렇게 정신없는 늙은인 줄 아니? 나 아직 정신 멀쩡해!"
엄마는 공단 얘기만 나오면 왠지 예민했다. '내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라든지, '아직은 멀쩡하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당신도 치매가 어떤 건지 어렴풋 알고 있지만, 지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저항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를 닦아보라구요? 어머, 이런 걸 못하겠어요? 자 이렇게 하면 되죠?"
공단에서 나온 사람이 '어르신~. 침대에서 일어나보실래요?’, ‘이번엔 세수 한번 해 보세요'라고 요구했다. 엄마는 너무나 일상적인 걸 해보라는 공단직원이 하는 말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건 날마다 거르지 않는 생활이기에 엄마의 몸이 먼저 인지하고 있었던 걸까. 그러나 다음 질문에서는 달랐다.
"어르신,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글쎄요. 나 팔십 넘었나?"
"어르신, 이름이 뭐에요?"
"이름요? 음... 이름이 지금 왜 필요해요?"
엄마는 당신의 나이를 우물대며 애매하게 웃었다. 이름을 말해보라고 할 때는 짜증 섞인 말투로 따지듯 말했다. 이름을 모른다고 말하면 스스로 치매를 인정하는 것 같아 버럭 화를 낸 건 아닐지. 직원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질문하면서 엄마의 상태를 체크했다. 치매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시간은 십 여분 정도가 걸렸다. 결과는 한 달 안에 우편으로 배달된단다. 치매 약을 복용 중이고, 병원 의사의 소견을 제출했지만 엄마는 결국 등급을 받지 못했다. 5등급 정도를 기대했던 나는 공단 담당자에게 물었다. 인지가 조금 떨어졌지만 신체적 활동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등급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등급을 받기위해서 치매어르신이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하는 건지 판정기준이 불만스러웠다. 담당자는 두어 달 후, 기간차이를 두고 다시 재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마가 언니네 집에 가있는 동안 그 지역(충남 서산)의 공단에 다시 신청 했다.
올해 여름이 오기 전, 엄마는 5등급을 받았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기로 했다. 가끔씩 딸네 집에 바람 쐰다고 오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아흔 살 엄마와의 동거, 어린아이 같은 엄마에게 어른이 필요하다. 난 ‘너그러운’어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