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카네이션보다 화초를 더 좋아해”

기사입력 2020-05-12 08:00 기사수정 2020-05-12 08:00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핫립세이지는 지난 겨울 우리 가족이 되었다(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핫립세이지는 지난 겨울 우리 가족이 되었다(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엄마, 카네이션보다 화초가 좋을 것 같아서."

딸들은 가끔 화초를 사 들고 온다. 화초 기르기에 대해선 거의 똥 손(화초를 잘 키우지 못하는 손)이라 불안한 내 맘은 안중에 없다. 기왕 있는 식물에 공들이는 걸 보고 화초 기르기에 취미가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받을 때마다 기쁘다는 표현을 과하게 했는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어버이날에도 카네이션 대신 화초를 사 온다. 이번에도 영락없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하루 차이를 두고 생소한 화초가 담긴 흰색의 작은 화분을 용돈과 함께 내밀었다.

싱그러운 초록이 담긴 작은 화분을 받는 느낌은 상상보다 더 좋다. 카네이션을 받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얘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한 마음. 그간의 똥손 경험으로 기쁨만큼의 부담이 얹히는 게 사실이다.

화초의 생김이 생소해서 이름을 물으니 하나는 레몬 버베나(Lemon Verbena), 하나는 셀로움(Selloum)이라고 한다. 처음 큰딸이 사 온 레몬 버베나는 키가 크고 작은딸이 나중에 사 온 셀로움은 그보다 키가 작다. 이름도 그렇고 다소 낯선 종이라 특성을 찾아본다.

▲셀로움(왼쪽)과 레몬 버베나(오른쪽)(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셀로움(왼쪽)과 레몬 버베나(오른쪽)(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레몬 버베나의 꽃말은'인내'였다. 잎 모양은 꽃이 지고 난 개나리 잎이 막 나오는 느낌이다. 남미 칠레가 원산지이며 1784년에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에 전파했다고 한다. 낙엽송 관목으로 내한성은 약해도 제주도와 같이 따뜻한 온도에서는 노지재배가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남미에서는 키가 10m까지도 자라지만 일반 실내에서는 키가 약 1m 전후로 자라고 집안에서 키우게 되면 상쾌한 레몬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한다. 향이 좋고 강해서 정원이 있는 개인 주택에서는 현관 근처나 발코니에도 많이 심는다고 한다. 허브차로도 마신다기에 손으로 잎을 쓸어 맡아보니 강한 향이 올라온다. 마음을 안정시킨다고 하니 잘 키워서 나중에 차로 마셔볼까 하는 야무진 생각도 해 본다.

작은딸이 사 온 셀로움은 레몬 버베나 보다 잎 모양이 넓고 두껍다. 약간 우산처럼 펼쳐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큰딸이 사 온 레몬 버베나와 서로 생김이 다른데 잘 어울린다. 셀로움의 꽃말은 ‘나를 사랑해주세요'다. 원산지는 남아메리카로 보통 셀로움 혹은 셀렌이라 부르지만 필로덴드론 셀로움(Philodendron selloum)이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식물은 물을 좋아하고 햇빛이 적은 반음지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레몬 버베나와 다르게 독성이 있어서 차로 마시면 안 된다고 적혀있다. 잎이 옆으로 넓게 퍼지는 셀로움은 공기정화 능력이 뛰어나서 거실에 두면 좋다고 한다. 이미지 검색으로 찾아보니 풍성하게 잘 자란 셀로움은 아주 멋스럽다. 우리 집 거실 한쪽에 1미터쯤 자란 셀로움의 모습을 살짝 상상해 본다.

딸들이 화분을 들이밀 때마다 부랴부랴 키우는 법을 찾아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식물도 정성을 쏟는 만큼 성장한다. 잠시 방심해서 죽이기라도 하면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다. 하물며 딸이 사 온 화초라면 그 마음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화초와 달리 딸들이 선물한 화초는 딸 보듯 하게 되니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미리 특성을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잠시 주저앉아 아이들을 보듯 화초를 본다. 나란히 두고 보니 두 딸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화초를 고르는 안목도 다르다. 작은딸이 사 온 셀로움의 꽃말이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게 불쑥 마음에 걸린다. 이 아이는 꽃말을 알고 골랐을까? 언니와 동생을 비교하며 가운데 낀 샌드위치의 불만을 토로하던 작은딸의 얼굴이 셀로움 위로 겹쳐진다. 풀리지 않는 숙제를 훅 떠안은 것 같다. 모양이 확연히 다른 두 식물을 앞에 두고 ‘더 잘 키워야지’ 불끈 다짐까지 한다.

작은 화초를 앞에 두고 앉으니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확실히 나는 카네이션보다 화초를 받았을 때 기쁘다. 그 기쁨을 더 즐긴다. 다음엔 더 강렬하게 표현해 줘야지.

"맞아, 엄마는 카네이션보다 화초를 더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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