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가는 사람들] Part 6. 놀면서 배우는 평생교육의 글로벌화, 평생교육원 ‘퀘스트’

기사입력 2016-03-30 10:55 기사수정 2016-03-30 10:55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볼링그린공원과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돌진하는 황소 동상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뉴욕시립대학교. 아침 10시 무렵이 되자 세련된 차림새의 신중년들이 삼삼오오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웅장한 대리석 건물 안으로 느긋하게 들어간다. 주변에 밀집해 있는 글로벌 금융기관의 고위직 인사들처럼 보이지만 평생교육원에 등교하는 학생이자 교수들이다. 배우, 심리학자, 엔지니어, 의사, 교수, 언론인, 관료, 금융전문가, 기업인, 음악가, 미술가 등 전문직업인으로 맹활약을 했던 은퇴자들이다. 틈틈이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유로우면서도 열정적인 은퇴생활을 누리고 있는 신중년들이다.

▲세미나중인 회원.(평생교육원 퀘스트)
▲세미나중인 회원.(평생교육원 퀘스트)

스스로 가르치며 배우는 평생교육원 ‘퀘스트(Quest)’. 학교명처럼 진리 탐구를 갈망하는 신중년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배움터이자 아지트다. 취미활동과 문화 탐방 여행과 친밀한 교우관계가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 커뮤니티 기능을 하고 있다. 안내서에 나열된 올해 봄 강좌가 얼른 봐도 30개를 넘었다. 고대 그리스, 마음과 뇌, 시 낭송, 클래식 록 앨범, 현대 오페라, 위대한 연극, 현대 단편소설 등 웬만한 대학 강좌보다 수준이 높지만 교수가 따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서는 ‘교수’와 ‘학생’의 구분이 없고 모두 ‘회원’으로 통한다. 내로라하는 전문가 출신 회원들이 직접 강의를 하고 관심 있는 회원은 강의를 신청해 수강을 하는 자급자족 방식이다. 현역 때는 배우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부득이 접어야 했던 학업과 취미와 봉사활동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2주에 한 번은 외부 특별 강사를 초빙하여 지적 탐구심을 더 높이곤 한다. 1년 3학기제로 운영되며 가끔 숙제는 있지만 시험이나 출석 점검은 없다. 한 과목만 수강하나 전 과목을 다 수강하나(물리적으로 불가능) 1년 회비는 500달러. 등록금은 물론 없다.

강좌 개설을 포함한 퀘스트 운영의 거의 모든 사항은 협의회와 분과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협의회는 회원들 중에서 선출된 임원 7명과 재정담당관 등 4명의 교직원으로 구성되고 2년 임기의 회원 대표가 회의를 주재한다. 산하 4개 위원회는 회원들로만 구성돼 강좌 개설, 교육자재 관리 및 섭외, 회원 관리, 각종 행사 기획 및 일정 조정 등을 나눠 담당하고 있다. 뉴욕시립대학은 장소와 행정적 도움만 줄 뿐이다.

▲강의하는 회원과 수강중인 회원들. (평생교육원 퀘스트)
▲강의하는 회원과 수강중인 회원들. (평생교육원 퀘스트)

오는 5월이면 개원 21돌을 맞는 퀘스트의 출범 내력을 알고 나면 이런 자율적인 운영 시스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명성 있는 뉴욕의 은퇴자 교육기관이 은퇴자들의 생각과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입학 절차와 학사 관리를 매우 까다롭게 하면서 등록금까지 높이 책정하자 40명이 함께 탈퇴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것이 1995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함께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백방으로 물색하던 차에 뉴욕시립대학과 뜻이 맞아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배터리파크를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맨해튼 최고의 위치에 자리한 퀘스트는 자율적인 평생교육을 갈망했던 40명의 결단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다.

새로운 이념으로 퀘스트의 설립을 기초한 40명 가운데 로버트 하트만 회장을 비롯한 10명은 지금도 퀘스트의 열렬 회원이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창립 회원인 샌디와 앨 고든 부부는 매년 발간하는 종합 문예지 <큐 리뷰(Q Review)> 20주년 기념 특별판 기고문에서 “퀘스트와 함께한 지난 20년은 결코 지루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우리 은퇴자의 꿈은 따뜻한 햇볕을 쬐고 놀이와 내기나 하면서 소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모험적인 사람들과 함께 지식을 넓혀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롤 아브람스, 스텔라 체이스, 베버리 프란쿠스, 에버린과 러셀 굿 부부, 조 나탄 등 다른 창립 회원들도 퀘스트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대단하다.

▲현장 학습.(평생교육원 퀘스트)
▲현장 학습.(평생교육원 퀘스트)

▲즐거운 점심 시간 모습.(평생교육원 퀘스트)
▲즐거운 점심 시간 모습.(평생교육원 퀘스트)

멤버십 위원회의 에바 샤트킨 위원장은 퀘스트를 찾는 방문인을 일일이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맡고 있다. 설립 때의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샤트킨 위원장은 한국인 학생을 수양딸로 맞이해 함께 살며 교육시켰을 정도로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다. 수양딸은 훌륭히 성장해 지금은 뉴욕대학(NYU)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교직생활을 한 국제적인 영어 교육자인 샤트킨 위원장은 구순을 훨씬 넘겼는데도 거의 매일 배우고 봉사하고 있다. 구순을 넘긴 회원은 보통이고 백세를 넘긴 회원도 지하철로 등교하기도 해 배움이 회춘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무급으로 봉사하고 있는 마이클 웰르너 원장은 “퀘스트의 평생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은퇴(예정)자가 인터넷이나 전화로 방문신청을 하면 하루 일정으로 강의도 듣고 회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도 하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웰르너 원장은 자택을 방문한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시설과 운영방식을 친절하고 상세히 안내했다.

▲마이클 웰르너 원장. (남진우 뉴욕 주재기자 namjin@)
▲마이클 웰르너 원장. (남진우 뉴욕 주재기자 namjin@)

회원들이 가장 신나는 시간은 함께 창작활동을 할 때다. 한때 에미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유명배우인 도미니크 치아네스와 로이 클레어리 회원이 지도하는 연극 시간이면 모두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배우로 변신한다. 해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면 온 가족과 친지들이 관객으로 참석하면서 흥겨운 잔치판이 벌어지고 회원은 현실에서도 주인공이 된다. 연극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도나 루벤스 회원이 건강 악화로 정기 공연을 놓쳐 몹시 안타까워하자 집을 방문해 즉석 공연을 했던 일화는 어떤 연극보다 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날씨가 나쁘지 않은 금요일이면 이스트강변 89번가의 콩츠마켓(Conte’s Market)에서 퀘스트 회원들이 연주하는 포크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문예지 발간은 소설가와 시인을 꿈꾸었던 회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퀘스트에서는 수학여행과 현장학습이 수시로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익스플로러클럽 등 주변에 즐비한 미술관과 박물관은 언제 들러도 즐겁고 배울 게 많은 현장학습장이다. 나이아가라폭포, 재즈와 ‘욕망의 이름이란 전차’와 프렌치 쿼터의 도시 뉴올리언스와 미국 전통의 여름철 문화교육타운인 이리호 남단의 쇼토쿼(Chautauqua)는 단골 수학여행지다.

여행전문가인 캐롤린 맥과이어 회원은 5월로 다가온 런던 수학여행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으면서도 8월 수학여행지를 어디로 할지 고심하고 있다. 다채로운 여름축제가 벌어지는 캐나다와 기네스맥주를 즐길 수 있는 아일랜드를 놓고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물론 회원들이 좋다면 두 곳 모두 갈 수도 있다. 여름 내내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회원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학창 시절처럼 수학여행을 고대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수학여행에는 가족도 참가할 수 있어 더 신나고 추억거리도 넘친다.

▲퀘스트가 위치한 뉴욕시립대학 전경.(남진우 뉴욕 주재기자 namjin@)
▲퀘스트가 위치한 뉴욕시립대학 전경.(남진우 뉴욕 주재기자 namjin@)

뉴욕시립대학교와 교육이념에서부터 학사와 재정 관리에 이르기까지 호흡이 척척 맞아 이제는 회원이 230명을 넘어섰다. 평생교육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요즘 퀘스트에는 성공비결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해외 귀빈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평생교육이 국가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면서 묘책과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저 어울려 배우고 교류하는 커뮤니티일 뿐인데 해외에서까지 관심이 쏟아지니 회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신이 난다.

지난해 9월에는 태국 총리 부인인 나라폰 찬오차 교수를 단장으로 한 태국 사절단이 방문했고 은퇴를 앞둔 캐나다의 리차드 솔터 변호사는 4년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평생교육에서도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다.

‘놀면서 배우는 것(Play and Learn)’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만 적용되는 교육이념이 아니다. 배움의 열정은 나이와 무관하고 호기심은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는 진리를 퀘스트에서 깨닫게 된다. “배움이 없는 자유는 언제나 위험하고 자유가 없는 배움은 언제나 헛되다(Liberty without learning is always in peril and learning without liberty is always in vain)”라는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인들에게 남긴 교훈을 퀘스트가 실천에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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