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가온길’에 가면

기사입력 2016-08-25 17:06 기사수정 2016-08-29 09:02

▲한글 가온길 답사를 마치면서 해설을 맡은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님을 한 컷. (김영선 동년기자)
▲한글 가온길 답사를 마치면서 해설을 맡은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님을 한 컷. (김영선 동년기자)

'가온'은 '가운데'를 뜻하는 우리말인데, 새문안로 3길이 한글 이야기의 중심거리이기 때문에, 이 길을 ‘한글 가온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글 가온 길에 가면, 한글학회와 주시경선생의 집터, 그리고 주시경선생과 헐버트선생의 부조가 새겨진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또, 이야기꾼 전기수 할아버지와 각종 한글 조형물,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있다. 그리고, 이런 한글 가온길을 해설하는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가 있다.

◇ 한글학회

한글학회는 주시경선생이 운영하던 국어강습소의 졸업생과 동지들하고 뜻을 같이하여,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대중에게 한글이 바르게 보급되는 것을 목적으로, 1908년에 ‘국문연구회’를 설립한 것인데 그 후, 1911년에는 ‘조선 언문회’로, 1921년에는 ‘조선어 연구회’로, 1931년에는 ‘조선어학회’로 그 이름이 바뀌어 오다가 1949년에 오늘날의 ‘한글학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글학회가 지금의 새문안로 3길에 자리 잡기까지에는 사연이 있다. 1908년, 창립한 한글학회는 여기저기로 10여 차례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많은 자료와 서적 등을 가지고 이사를 다니느라 고생 하는 것을 보다 못한, 초대 법무장관이었던 이인선생이 평생에 걸쳐 마련한 돈과 집을 기증하였고, 이를 계기로 모금운동을 벌여 1977년에야 비로소 지금의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3길에 한글회관을 마련하여, 한글학회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 주시경선생과 그의 집터

한글 가온길에는 주시경선생의 집터가 있는데, 선생의 살림살이가 항상 궁핍해서, 조그만 집은 5남매와 책들로 비좁아, 발 들여 놓을 공간도 없을 정도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독지가가 집을 마련해 주었고, 이후 주시경선생의 집은 ‘한글발전연구소’ 역할을 하게 되었다. 평생, 한글 연구에 몸 바쳐 오던 선생은 1914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이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곳은 지금은 '용비어천가'란 이름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도렴2동 녹지공원 ‘주시경 마당’에는 한글 발전에 초석이 된 주시경선생과 헐버트선생의 동상, 그리고 부조가 조형물로 설치되어있다.

◇ 헐버트선생

헐버트선생은 2013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도 선정된 미국인으로, 한글이 가장 과학적이고 훌륭한 글자라고 주장하며 세계에 한글을 알리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선생은 우리나라 한글로 된 <사민필지>라는 책을 만들었다. '조선 글자가 중국 글자에 비해 크게 요긴하건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오.' 하면서 한국인보다 더 한글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양화진 절두산에 있는 그의 묘지 비석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턴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하노라.’

◇ 김슬옹 박사

한글 가온길과 떼어서 생각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다.

그는 젊은 시절에 철도공무원의 꿈을 안고 철도 대학교에 다니던 사람이다.

어느 날, 외솔 최현배선생의 영향을 받아 그분의 뜻을 이어 받고자 철도공무원의 꿈을 접고. 최현배선생이 강의를 맡고 있던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 하였다.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한글 사랑과 바른 한글사용의 보급에 힘쓰고 있으며, 현재 ‘한글학회 연구위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그가 대학시절, 당시에 널리 사용하던 ‘서클’이란 모임이름을 ‘동아리’라는 이름으로 바꾸는 일과,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메뉴판’이라는 이름도 ‘차림표’라는 이름으로 바꾸는데 앞장서서, 지금은 그런 한글이 널리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슬옹’이란 그의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 그는 ‘슬’기롭고 ‘옹’골찬 마음으로 한글을 사랑하는 옹달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김슬옹’으로 개명하였다.

김슬옹박사의 한글사랑이 온 국민에게 널리 퍼져서, 국민 모두가 한글을 사랑하는 ‘김슬옹박사’와 같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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