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과 위트로 연출한 도가(道家) 정원의 멋이라니…

입력 2026-01-24 06:00

[민간정원 순례] 경남 거창군 이한메미술관정원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산골에 부는 바람이 맵차다. 산등성이를 타고 짓쳐 내려온 겨울의 파죽지세에 산야의 풀과 잎은 진즉 저물어 스산하다. 그러나 소나무, 잣나무 등 겨울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상록수들이 흔전만전해 바람은 앙칼지지만 여전히 상큼한 청풍이다. 오장육부가 씻기는 기분이다. 한낮의 햇볕은 산마을 사람들의 소식이 궁금한가 보다. 그것들은 유난히 인가의 지붕 위에 모여 소곤거린다. 이한메미술관정원은 마을 안통의 길 끝에 있다.

이곳은 원래 자그만 초등학교가 있었던 곳으로, 폐교된 이후 정원으로 변모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왁살스러운 개발 바람에 치여 사라지거나 얄궂은 영업장이 들어서는 대신, 식물들의 낙원으로 변신했으니 참신한 이행이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철부지 시골 아이들의 순진과 나무들의 순수는 서로 닮았다. 교실 창가에 매달려 종달새처럼 조잘거리는 아이들과 바람 또는 햇살의 리듬에 맞춰 종일 잎을 반짝이는 나무들의 몸짓은 무엇이 서로 다르랴. 아이들은 이미 이곳을 떠났지만, 나무들이 혈통을 승계해 때 묻은 세상의 한 모퉁이를 밝힌다. 이색 정원이라고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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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엔 소나무가 많다. 잘 자란 솔들로 숲을 이루다시피 했다. 온통 초록이다. 정원이 통째 생동해 싱그럽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수의 활엽수도 함께 살아가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잎을 모조리 떨군 나머지 은행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수양버들, 배롱나무, 산딸나무, 돌배나무 등 낙엽교목들의 존재감이 하염없이 미미해졌을 뿐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앙상한 줄기만 가지고 쥐 죽은 듯 고요히 서 있는 활엽수들이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들은 겨울나기의 경이로운 드라마를 보여주기 위해 무대에 오른 배우를 연상시킨다. 바윗돌처럼 좌정하고 목하 묵언에 든 선승이 떠오르기도 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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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원의 각별한 개성을 과소평가할 길이 없다. 건조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 다 털어낸 나무들의 내부에 장착된 엔진은 씨억씨억 풀가동 중이다. 톱니바퀴 하나 비틀어진 게 없다. 발가벗은 채 추위와 맞서 생명의 순환과 역동성을 여실하게 보여주면서도 짐짓 시치미 떼고 “난 죽었어!” 하듯 딴청을 부릴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겨울철 민간 정원을 철 지나 텅 빈 해수욕장쯤으로 여긴다. 칼바람 사나운 겨울 정원에서 무슨 볼일이 있겠느냐는 듯,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흔히 발길을 끊는다. 겨울 정원의 클래스가 높지만 이렇게 간과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정원주는 한국화가 이한메다. 3대째 이어지는 화업을 생업으로 삼은 그는 내내 붓을 움켜쥐고 살았다. 취향을 돋우어 일군 정원에도 몰입이 깊었다. 일상의 낙을 겹으로 누리며 살아온 셈이다. 이즈음 무게중심은 그림보다 정원에 쏠려 있다. 그림이야 이미 그릴 만큼 그렸으니 이쯤에서 안분지족하는 게 마땅하다고 보는 한편, 미술을 훌쩍 추월하는 미학과 정신을 자동기술법으로 보여주는 정원, 또는 자연의 다재다능함에 푹 빠져 산다. 순천 사람인 이한메가 거창 출신의 아내를 따라 이곳 남덕유산 자락에 스며든 지 어언 30년. 그는 이주 뒤 폐교에 남은 교사에 작은 미술관을 열었다. 동시에 운동장을 정원 공간으로 조영해나갔다.

이한메는 못 말릴 소나무 마니아다. 그래 소나무 정원을 만들어 유난한 정을 붙이고 산다. 솔밭에 마음과 뜻을 두고 지낸다. 혹한에도 푸른 숨결을 빚어내는 청솔의 기법에서 생명의 정수를 읽는 맛에 그는 기껍다. 퇴계가 말한 ‘날아오르는 용과 같은 기세’와 ‘층층 하늘을 쓸어내는 기백’에 충만한 소나무의 기운생동을 흠모해 즐기는 것이다. 제주에서 유배를 산 추사가 그린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의 기개세를 정원에서 찾아낼 땐 전율을 느낀다. 이런 화가에게 소나무는 밥이다. 사람을 살리고 만들고 밀어주는 에너지원이다.

“제게 소나무는 식량이에요. 정신과 육체를 고양하는 양식입니다. 소나무가 귀띔하는 지혜를 배워 마음과 몸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모름지기 사람들이 소나무를 그저 눈요기만으로 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이한메가 소나무에게 배운 지혜가 한둘이랴. 그는 도류(道流)에 가깝다. 도교의 핵심 가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있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삶의 일체를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되바라진 관념에서 벗어나 자연의 산물이라는 걸 일깨우는 개념이다. 따라서 정원은 이한메를 자연의 근원으로 데려다주는 고속열차다. 자연의 이치를 체득하게 하는 족집게 레슨 선생이기도 하다. 사람의 영육 자체가 하나의 자연임을 망각하지 않게 하는 채찍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원의 소나무가 식량이 되는 셈이다.

이한메의 표정엔 속기(俗氣) 한 점 묻은 게 없다. 고사리만 먹고 담백하게 사는 데 이골이 난 산림거사처럼 맑다. 환하게 깨달은 게 한둘이 아닐 테지만 빙그레 웃는 걸로 할 말을 대신한다. ‘깨달음을 어찌 말로 내놓을 수 있으랴, 이심전심으로 알아나 보소!’ 눈빛으로 그렇게 간명하게 전하고 그만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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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정원을 만들기 전부터 그에겐 계획이 있었다. 마침내 꾸려낸 게 ‘도가(道家) 정원’이다. 인위적 조작을 삼간 자연 정원이다. 식물 경관에 장식용 경물을 섞는 식의 멋 부리기 치레를 엄히 배제했다. 식물의 자연스러운 됨됨이와 그들이 부르는 자연의 노래에 집중하라고. 관목, 초본류, 바위며 대부분 인근 산야에서 이치와 경우에 맞게 솎아 옮겨온 대목도 미덥다. 겹겹의 감흥을 누릴 수 있는 특유의 정원이다.

위트로 직조한 공간도 볼 만하다. 우람한 왕벚나무 아래에 깐 너럭바위는 낙화주를 즐기는 자리다. 연분홍 왕벚꽃이 흐드러질 때면 정든 이들을 불러들여 흥겨이 한잔 나누는 곳이다. 입구 쪽엔 ‘가리개 바위’도 두었다. 정원에서 대충 걸쳐 입고 일할 때 객이 찾아올 경우, 그는 바위 뒤에 살짝 숨어 의관을 정제한 뒤 모습을 쓱 드러내는 것으로 예를 갖춘다. 언뜻 따분한 격식으로 보이지만, 그마저 이한메에겐 놀이이자 익살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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