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들의 수준 높은 겨울 춤을 보라

입력 2026-02-15 07:00

[민간정원 순례] 전북 익산시 아가페정원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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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려나. 정원의 허공에 가득한 먹구름, 얼음처럼 찬 공기, ‘우우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몰아치는 북풍, 매서운 날씨다. 나는 새도, 걸어 다니는 사람도 어쩌다 가끔 눈에 띌 뿐이다. 그러나 아가페정원은 아랑곳없이 푸르러 청신하다. 상록수들이 흔전만전 성황을 이루어 초록을 뿜는 게 아닌가. 겨울 정원의 주도권을 틀어쥔 강자들의 위엄이라니. 저마다 말짱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소나무·잣나무·향나무·꽝꽝나무 등속의 상록수들로 엄동의 한낮이 은근히 생동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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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서막은 향나무 군락과 함께 열린다. 하나같이 싱싱한 나무들이다. 겨울철 살림 형편에 하등 이상이 없는 걸 알 만하다. 향나무는 소나무 못지않게 우리 민족에게 친숙한 나무다. 예부터 미묘한 향으로 각광받았다. 향나무가 거목으로 자라면 심재(心材, 나무줄기의 중심부)에 향이 물씬하게 고인다. 선인들은 이 향긋한 속살을 말려 제례에 썼다. 조각조각 깎아 불태울 때 나오는 향으로 망자의 고독한 넋을 어루만져 위로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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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움켜쥔 사자의 영혼은 우주의 푸른 낙토에 도착했으리라. 향나무 향은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사다리다. 향나무의 신성(神聖)에 필적할 나무가 없다. 신목(神木)으로 치부됐다. 서양에서도 거룩한 나무로 대접했다. 이집트 신화에 나온다. 불멸의 새 ‘피닉스’에겐 수백 년에 한 번씩 향나무에 불을 지르는 버릇이 있고, 뒤에 남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말이다.

아가페정원의 향나무도 고귀한 용도로 쓰였다. 죽은 자를 위로하는 것보다 더 값진 일에 활용했다. 산목숨을 사는 것처럼 살게 하는 사업에 사용했다. 이 정원은 고(故) 서정수 신부가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50여 년 전에 설립한 무료 양로원 아가페정양원에 딸린 공간이다. 그는 양로원 곁에 나무들의 촌락을 꾸려 노인들의 산책 활동을 유도하는 한편, 대대적으로 심어 가꾼 향나무·소나무·단풍나무 등을 팔아 빠듯한 양로원 운영비용을 보충했다. 정원을 조성한 의도가 애초 그 두 가지 목적에 있었다. 이타(利他)의 본이다. 물신에 빙의되기 쉬워 위험한 세상을 한 줄기 빛으로 살았던 선각의 행장에 뭉클해진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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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널따랗고 구성은 다채롭다. 온갖 꽃들이 봇물 터지듯 만개하는 봄부터 단풍빛 고운 가을까지 성수기엔 얼마나 아름다울지 환히 연상된다. 그에 비하면 겨울날의 정원은 스산하다. 상록수들의 도도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잠잠하게 가라앉아 고즈넉하다. 초본식물들이 지하로 철수하고, 활엽수들은 나목 신세로 추락했으니 별수 있으랴.

겨울 정원의 고요한 정조 또는 소침한 기색은 낯설지 않다. 그것은 도회의 거리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오가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에 내린 우수와 고독의 기미를 보라. 겨울 정원의 안색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헐벗은 마음인 채 뒤로 물러난 사람의 쓸쓸한 분위기와 닮았다. 그러나 나무들은 혹한의 횡포에 무너지는 법이 없다. 고역스러운 삶의 겨울나기에 나가떨어지기는커녕 기어이 다시 일어서는 사람처럼 강인하다. 이렇게 보면 나무와 사람은 동류다. 아무리 미욱한 인생이라도 그 내부에 나무처럼 야무지고 건전한 깡이 없을 리 없다. 다만 욕망의 농간에 휘둘린 헛고생을 하기에 바빠 그걸 미처 끌어올리지 못할 뿐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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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나무들은 사람의 우행을 흔들어 일깨운다. “날 좀 봐!” 묵언으로 외치듯 발가벗은 몸으로 춤을 춘다. 온몸으로 삶을 건너는 비결을 귀띔한다. 삭풍에 떠는 잔가지들의 율동을 나목의 수준 높은 춤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생명을 가진 것의 굳세 의지와 열정과 환희를 느낄 수 있다면, 그는 혜안을 얻은 것과 다름없으리라. 정원에 왔다가 기껏 앙상한 가지만 들여다보고 쩝쩝 입맛 다시며 돌아가는 일만큼 터무니없는 건 없다. 그것은 나무의 낮지만 뜨거운 음성을, 정원에 서린 광폭의 진실을 외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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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무들은 무슨 재주로 한겨울을 무사히 통과하는 걸까. 가진 건 알몸뿐이지만 맹추위에 얼어 죽지 않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전략이 다 있다. 겨울이 오기 전, 나무들은 서서히 체온을 낮추며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드디어 추위가 고조되면 비상경계령이 내려진다. 유전자들이 발 벗고 나서 단백질 성분의 화학물질을 조제해 비축한다. 이 물질은 일종의 ‘부동액’인데, 내부에 침투한 냉기로 얼 지경이 된 부위가 발견되면 즉각 공급한다. 119 긴급 구조단이 삐뽀삐뽀 사이렌을 울리며 득달같이 달려가 응급환자를 구조하듯이. 이렇게 나무 유전자들의 기민한 활약으로 혹한을 극복한다. 나무의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완벽하다. 그들의 생태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다. 섭리를, 신의 눈길을 느끼게 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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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서쪽 외곽엔 거목들이 즐비하다. 아가페정원의 시그니처 식물인 메타세쿼이아들이다. 꺽다리의 끝판왕인 이 나무를 올려다보면 묘하고 아득해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나무는 누구와 무슨 약속이 있기에 이토록 몸을 불렸나. 땅과 맺은 묵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나무야, 잘 자라라!” 땅의 명령에 나무는 복종했으리라. “염려 마세요, 어머니!” 그러니까 메타세쿼이아와 땅은 혈육지간인 셈이다. 아무렴, 그렇지. 나무는 ‘어머니 대지’의 은혜를 입고 그 슬하에 산다. 땅의 무한한 관용과 사랑이 있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새가 날아와 노래한다.

땅의 모성에 젖줄을 댄 행운 덕분에 존재가 가능해진 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대지에 별 관심 없다. 날마다 땅을 딛고 살지만 그것의 존귀함을 잊고 있다. 사냥할 만한 부동산에 눈독 들이는 사람만이 땅을 면밀히 살펴본다. 메타세쿼이아를 바라보고 탄복하지만, 그 나무가 나온 땅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사람의 삶에 난관이 닥치는 건, 인류를 덮치는 재앙이 잦은 건 어쩌면 땅을 이처럼 생판 상관없는 타자처럼 홀대하는 무심과 무감동 때문일지도 모른다.

폭설의 조짐일까. 세찬 눈발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치지 않고 내린다면 정원에 곧 하얀 융단이 펼쳐질 테다. 눈과 정원은 ‘케미’가 좋다. 반짝이는 은빛으로, 순결한 초록빛으로 세상의 탁류를 헹궈주는 ‘마법’을 공유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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