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간다

기사입력 2017-04-24 10:22 기사수정 2017-04-24 10:22

▲탐스럽게 피어나 눈부신 꽃(이현숙 동년기자)
▲탐스럽게 피어나 눈부신 꽃(이현숙 동년기자)
절정을 막 끝낸 꽃나무 줄기마다 꽃들이 시들해져 있다. 탐스럽게 피어나 눈부시던 때의 환호가 하루하루 멀어져가는 시간이다. 언제부터인가 비바람에 꽃잎을 떨어뜨리고 점차 허전해지는 꽃나무에게로 마음이 간다. 꽉 찬 충만함의 도도함에서 비워내고 덜어낸 모습에서 편안함이 보인다. 조금은 빈틈이 보여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한 구석도 있구나 할 때 어쩐지 더 사람다워 보일 때처럼.

온 누리에 봄볕을 쏴아~ 뿌리며 달큰한 꽃향기와 보드라운 꽃잎을 흩날리더니, 이젠 다 털어버리자 가볍게 훌훌 날려버리자 하며 봄바람에 몸을 맡기며 비워내는 마음, 그게 더 아름답다. 아련히 마음이 간다. 빈틈없이 가득 채운 완성보다 더러더러 비어 있는 자리, 그 빈자리가 더 강한 생명력을 만들어낼 차례다. 곧 신록으로 가득할 것이다. 벌써부터 설렌다. 고개 들어 눈부시게 바라보던 벚꽃보다 발아래 이슬 머금고 수줍게 피어난 자잘한 들꽃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즈음이다.

봄꽃들이 끊임없이 피고 지고 하는 봄날이다.

여전히 예서제서 꽃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멀리 가지 않아도 주변에 봄꽃이 지천이다. 고궁에서도 봄날의 운치는 넘친다. 서울 봉은사에서는 홍매화가 봄소식을 전해왔다. 암벽 아래로 가끔씩 지나가는 기차가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름다웠던 응봉산의 노란 개나리 물결도 빼놓을 수 없다. 윤중로의 벚꽃도 한창이다. 물론 동네 뒷산이나 공원에서도 이 계절을 누려볼 수 있다.

며칠 전 들렀던 현충원에서는 폭포수처럼 늘어진 수양벚꽃이 화려했다. 수양벚꽃은 효종대왕이 북벌정책의 일환으로 활 재료로 심은 나무라고 한다. 나라를 위해 가신 분들의 영령이 모셔져 있는 현충원과 잘 어울리는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물선 그리듯 늘어진 벚꽃과 그 아래 키 작은 풀꽃들이 봄볕을 받고 있었다.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한 현충원을 돌아보며 봄날 하루 힐링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꽃에게로 다가서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한 시인이 이렇게 꽃을 노래했다. 이 봄, 실컷 꽃침을 맞아보고 그 속이야기까지 들어볼 일이다. 또 한 번 우리의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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