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룩 도전해보세요

기사입력 2017-05-18 14:10 기사수정 2017-05-18 14:10

[패션 스타일] 당신은 나의 거울

어느 날, 배우자가 나의 괴팍한 면까지 닮아버린 걸 보고 심장이 덜컥할 때가 있다. 하물며 옷 입는 스타일까지 비슷해지는 건 부부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여기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 커플들이 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벌의 패션으로 부부애를 과시하는 커플룩의 선구자들.

김민정 프리랜서 패션에디터 사진 instagram.com/bonpon511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중년 부부로 분한 고두심과 장용의 대화가 떠오른다. 사기를 당할 뻔한 이 시대의 대표 중년남 장용이(극에서의 이름도 ‘신중년’이다) 고두심에게 용서를 구하자, 고두심이 눈물을 흘리며 친 대사다. “욕해달라고? 뭐라고 욕해줄까? 부모님은 당신을 낳았지만, 40년 넘게 살아온 건 나야. 내 거울이 당신이야. 당신 거울이 나고. 끼리끼리 산다는 게 맞아. 나 당신한테 돌 못 던져”라며 그를 용서했다. ‘당신은 나의 거울’. 이 말처럼 입맛이 같아지고, 취향이 비슷해지고, 심지어 외모나 패션까지 자연스레 닮아가는 것이 부부의 숙명이다. 애정이 깊은 부부는 자연스레 서로를 공유한다. 20대의 불타오르는 커플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광고하고 증명하기 위해 커플룩을 입는다면, 중년은 다르다.

한창 젊은 시절에는 똑같은 옷을 입는 게 ‘커플룩’의 정석이라 여겼지만, 나이가 지긋해지면 같은 ‘옷’이 아니라 같은 ‘느낌’으로 입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예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60대 일본인 부부다. ‘bonpon511’이라는 아이디로 활동 중인 이 부부는 1980년에 결혼해 올해로 37년째 부부로 살고 있다. 백발의 부부는 작년 12월부터 100여 벌의 커플룩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는데 그 인기가 어마어마하다. 팔로워 수만 이미 43만여 명! 웬만한 연예인도 울고 갈 숫자다. 그들이 업로드한 사진에는 보통 4만 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린다. “저흰 완벽한 커플룩보다는 색상과 무늬, 패턴 면에서 통일성이 있는 패션을 즐겨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부부는 커플룩의 노하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유니클로나 GU 같은 SPA 브랜드에서 주로 쇼핑을 하며 쇼핑 취향이 비슷해 자연스레 커플룩을 입게 되었다는 부부. 부인이 굵은 줄무늬 티셔츠를 입으면, 남편은 그보다 얇은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부인이 빨간 원피스를 입으면 남편은 빨간 니트로 분위기를 맞춰준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컷의 사진으로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패션의 힘 아니겠는가.

▲스트라이프 하나로 커플룩을 완성한 bonpon511.(bonpon511 인스타그램)
▲스트라이프 하나로 커플룩을 완성한 bonpon511.(bonpon511 인스타그램)

커플룩의 또 다른 사례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를 들 수 있다. 앞서 만난 일본인 부부와는 또 다른 리듬감으로 커플룩을 완성한다. 70세를 넘긴 이 노년의 커플은 연출이 1%도 섞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커플룩을 선보인다. 부인의 머리를 남편 백건우가 직접 잘라줄 정도로 애정이 깊은 부부는 공식석상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비슷한 분위기의 옷을 입는다. 한때 화려한 여배우의 길을 걸었던 윤정희는 남편 백건우를 만나 소박하게 변했다. 머리 손질은 남편이 해주고, 어떤 자리에 가든 메이크업 역시 자신이 직접 한다. 미니스커트와 베레모를 즐기던 패셔니스타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백건우, 윤정희 부부로서는 완벽한 패션을 보여준다. 백건우가 하얀 터틀넥에 턱시도를 입고 무대에 서면(이 또한 얼마나 백건우스러운가), 윤정희는 검정색 롱 드레스에 그레이 스카프를 하고 옆을 지킨다. 어깨선을 한참 벗어난 오버사이즈의 코트를 입고 파리 거리를 걷는 부부의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멋지다. 앞에서 고두심이 말한 ‘당신은 나의 거울’이라는 표현이 이 사진의 캡션으로 딱 어울린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 기억하는 커플룩의 또 다른 사례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주인공들. 76년째 함께한 부부는 주로 고운 한복을 같은 컬러로 맞춰 입는다. 꽃분홍에서 쪽빛 한복까지, 그들은 눈부신 컬러들로 부부임을 강조한다. 둘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 몸이 된 부부의 모습이 옷에서도 읽힌다.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보이게 만드는 것, 이게 bonpon511 커플룩의 핵심이다.(bonpon511 인스타그램)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보이게 만드는 것, 이게 bonpon511 커플룩의 핵심이다.(bonpon511 인스타그램)

젊은 커플들에게는 커플룩은 어떻게 연출해야 멋지며, 어떤 아이템이 제일 낫다는 식의 스타일링 팁이 어울릴지 모른다. 하지만 수십 년, 서로를 비춰온 시니어 부부들에게는 그런 팁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커플룩을 만들지 모른다. 이미 많은 것들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는 부부들은 옷장만 열어봐도 알 수 있다. 다만 나의 남편과 함께, 나의 부인과 함께라는 생각을 지우지 않고 옷을 고르는 시간마저 함께한다면 커플룩은 자연스레 완성될 것이다. 이보다 더 크고 매력적인 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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