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의 뇌와 인간의 뇌

기사입력 2018-03-09 09:23 기사수정 2018-03-09 09:23

전에 어떤 여성 개그맨이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었다. 그땐 그저 우스갯소리로 여겨지던 이 말이 요즘 와서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는다. 전혀 흔들리지 않을 듯이 공고하게 자신의 위치를 구축한 것처럼 보이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다. 이윤택, 고은으로 시작한 미투 태풍이 김기덕, 오달수, 조민기, 조재현 등 영화계를 거쳐 어느덧 정치 거물 안희정까지 다다랐다.

지금 알려진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이 받는 충격이 이미 엄청나게 큰 상태지만, 중요한 건 이 바람이 아직 시작인지 끝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미 불길한 예언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 바람에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변명은커녕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분명한 것은 이 바람이 한때 지나가는 계절풍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다.

역사가 전개되는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답보 상태인 듯이 보이는 역사의 흐름이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 변화의 동력을 얻는다. 처음에는 우연인 듯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으로 등장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필연의 태풍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미투 운동도 미국 등지에서 그저 몇몇 바람둥이들의 스캔들로 끝나며 살랑살랑 불던 미풍처럼 잦아들겠지 했었는데 어느새 대한민국에 상륙하면서 태풍이 된 것이다.

이쯤에서 지금 눈앞에 전개되는 일련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문명사적 변화의 힌트는 무엇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이 현상은 과거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동안 낯선 이에게 당한 성폭행을 제외한 가까운 사이에 벌어진 성 관련 범죄는 대부분 쉬쉬하거나, 혹은 불거져 나오더라도 피해자인 여성이 꽃뱀으로 몰리는 등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본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덮이기 일쑤였다.

어떤 이는 이런 변화를 오랜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물로 본다. 하긴 남녀 사이의 위상이 과거보다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젊은이들 간에는 남자와 여자가 거의 동등한 듯 보인다. 또 다른 시각은 한국인의 유별난 기질에서 찾기도 한다. 일본 모 신문의 한국특파원 여기자는 이런 미투 현상이 일본에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며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이 사태의 본질을 유심히 살펴보면 남녀 간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의 문제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벌어진 현상의 공통점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상하관계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미투 현상은 몇몇 용감한 여성들에 의해 공고하던 권력의 허상이 깨져나갔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어떤 학자가 언급했듯이 이른바 ‘포스트 가부장제’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머나먼 과거 파충류의 뇌로부터 시작해 진화해 온 것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그 뇌들이 모두 함께 잔류해 있단다. 다시 말하면 우리 뇌에는 본능을 관장하는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 시대의 뇌, 그리고 유인원의 뇌 위에 현생인류의 특징인 전두엽이 발달한 상태가 모두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포유류나 유인원은 대개 권력을 쟁취한 우두머리가 모든 암컷을 소유한다. 어쩌면 무수한 폭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그마한 권력에 취하여 주변의 여성들을 암컷들로 여겼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들은 현생인류로 진화하지 못한 포유류, 기껏해야 유인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수컷이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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