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행복

기사입력 2018-07-17 17:33 기사수정 2018-07-17 17:33

같이 밥 먹으며 정든다. 맛있는 음식을 서로 나눌 때 기분이 좋아진다. 이때 함께 나누는 대화에는 가시가 돋지 않기 때문이다. 우울하거나 무료할 때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고 요리할 거리를 찾는다. 식재료를 내놓고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칼과 도마를 챙기고 냄비를 꺼내면 요리사처럼 기분이 들뜬다. 그 시간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며 잡념이 사라지는 행복한 시간이다. 음식이 많다 싶으면 주변의 지인들을 불러 모은다. 반찬이 많아도 좋고 좀 적어도 입담을 대신 섞어 맛있게 먹는다.

얼마 전, 식자재마트 세일 행사 전단이 신문에 끼어져 왔다. 사고 싶은 것을 형광펜 그어가며 표시하고 배달을 시켰다. 취나물 한 박스 5000원. 보통 봉지로 사던 나물 값밖에 안 했다. 두부 한 판 6000원. 만두 만들 때 사던 한 판을 두 모 정도의 값으로 팔고 있었다. 곱슬이콩나물 한 박스 3900원. 이 가격은 보통 한 봉지 값이었다. 그리고 과일 서너 가지.

물건이 도착한 후 이웃을 불러 모았다. 오기 전에 봉지에 하나하나 담아 4등분으로 준비해두고 남는 재료들은 데치고 무쳤다. 너무 싱싱해서 다시 밭으로 갈 것 같았다. 이웃 친구들이 도착한 후 내가 요리해놓은 나물들을 시식시켰다. 약간 심심해서 밥 없이도 집어 먹을 수 있었다. 이웃 친구들은 조리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기꺼이 가르쳐줬다. 다 된 음식을 식탁에 차리며 사람들을 기다리는 기쁨이 좋다.

돌아가는 이웃에게 취나물과 콩나물을 넉넉하게 담은 봉투를 안기며 두부도 함께 넣어줬다. 주는 나도 즐겁고 받는 이웃도 행복해했다. 집으로 돌아간 이웃들은 취나물을 어떻게 요리했는지, 가족들 반응이 어땠는지 수다를 떨었다. 카톡방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남편과 아이들 반응이 다르고, 결혼한 자식에게도 싸다 줬다는 이야기까지…. 나물 몇 가지로 행복한 대화를 나눴다. 이런 게 사는 재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지인이 집에서 딴 살구로 엑기스를 만들어왔다. 너무 달아서 그냥 먹기는 힘들어 요리에 넣고 있다. 살구의 상큼한 향을 더하니 나물 맛이 오묘하다. 때로는 풋사과 분말을 넣기도 한다. 이제까지 먹어본 여러 가지 음식의 다양성이 응용력을 발휘하게 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망치기도 한다, 버섯이 한창 날 때 넉넉하게 사왔는데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어 버섯장아찌를 만들었다. 그러곤 레몬차를 만들어 남은 꼬투리를 몇 개 넣어봤다. 상큼한 맛을 기대했는데 웬걸, 맛을 보니 마치 음식이 쉰 것 같은 맛이 났다. 다 버려야 했다.

며칠 전에는 옥수수 한 자루를 사서 들통을 두 개 꺼내 쪘다. 자주색으로 잘 여문 옥수수였다. 찐 옥수수를 카톡방에 올렸다.

“옥수수 원하는 사람, 아파트 9블럭 놀이터 벤치로 밤 9시.”

얼마 전, 난 마늘을 받았다. 어떤 날은 오이지가 맛있게 익었다며, 텃밭의 상추와 오이, 가지를 나눠준 사람도 있다. 어느 날은 부추 한 줌, 묵 한 덩어리, 파전 한쪽. 서로를 기억하고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렇게 힘 솟는 일인 줄 몰랐다. 마음에 걸림 없이 두려움 없이 사는 소박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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