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논어’를 읽고, 공자의 어머니를 되새기다

기사입력 2018-08-28 09:34 기사수정 2018-08-28 09:34

얼마 전 딸네 집에 들렀다가 초등학교 2학년 외손녀 책장에서 공자의 ‘논어’와 노자의 ‘도덕경’을 발견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수준이 너무 높을 것 같아 호기심에 ‘논어’를 펼쳐보았다. 아이들 수준에 맞추었다곤 하지만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논어’를 가끔 읽어 ‘공자 왈, 맹자 왈’ 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충 공자의 이야기는 귀에 익은 편이었다. 그러나 정작 공자의 출생에 대해선 문외한이었고 관심을 가져 본 바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본 어린이용 ‘논어’에는 공자의 출생 내력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공자는 석가, 소크라테스, 예수 등과 함께 4대 성인으로 불린다. 이 중에 소크라테스 대신 무함마드(마호메트)를 넣느냐 마느냐 논란이 있지만 여기선 논외로 한다.

옛 성인들의 탄생 설화는 대체로 신비롭다. 석가모니는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고, 예수는 성령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공자는 일설에 의하면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탄생설이 뒤숭숭하다.

공자 세 살 때 부친이 돌아가셔서 그는 당연히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공자의 어머니는 이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한다. 공자의 아버지는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성은 공(公)이고 이름은 흘(紇)이며 자(子)가 숙량(叔梁)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공자는 스스로 젊어선 비천한 일을 많이 했다고 밝힌 바 있듯 숱한 고생을 했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의 키는 비공식적으로 10척이라는 설이 있지만, 공자의 키는 정확히 9척 6촌이라고 전해지는데 이는 지금의 키로 환산하면 190cm에 달하는 거구이다. 하급 무사였지만 거구였던 아버지를 닮아 공자 역시 기골이 장대했다 한다. 공자의 별명이 ‘키 큰 사람’이었다 하니 키가 크긴 컸나 보다.

남편도 없이 몸짓만 큰 아들을 홀로 키운 공자 어머니의 노고는 역사에 한 줄의 기술도 없다. 공자 왈, 맹자 왈 할 때, 맹자 어머니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고사로 역사에 남아 있기라도 하다.

맹자의 어머니도 맹자 때문에 맘고생을 퍽 하신 분이다. ‘맹모삼천지교’ 후 맹자가 10대 후반,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 “이제 공부가 재미가 없어 때려치우겠다"고 하자, 한참 잘 짜던 비단을 다 잘라내며 “이렇게 다 돼가던 비단도 잘라버리면 소용없다”고 충격요법을 행한 “맹모단기(孟母斷機)”라는 고사도 있으니 말이다.

간단히 공자와 맹자의 어머니만 비교해 보더라도, 공자의 어머니는 너무 폄하돼 있지 않나 싶다. 공자의 생애도 파란만장했지만, 그 어머니의 생애는 더 파란만장했던 것 같다.

공자 아버지의 조강지처는 딸만 9명을 내리 낳는 바람에 둘째 부인을 들여 겨우 아들을 낳았지만, 맹피(孟皮)라는 이름의 그 아들마저 시원치가 않아 다시 66세의 나이에 열여섯 살짜리 무녀(巫女)인 안징재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이해 공자를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안징재는 나중에도 공자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 주지 않고 2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후한의 학자들은 안징재가 숙량흘과 관계를 맺었던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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