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3

[윤나래의 세대 읽기] 요즘 세대가 관계보다 거리를 선택하는 이유

입력 2026-03-23 06:00

혼자가 ‘안전’하다는 감각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과거 ‘혼행’은 ‘혼인할 때 신랑이 신붓집으로 가거나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는 일’을 뜻했다. 결혼이라는 사건 속에서 새롭게 맺은 가족의 집으로 이동하는 의례였다. 최근 사전에 ‘혼자서 여행을 함. 또는 그렇게 하는 여행’이라는 풀이가 추가됐다.

단어 하나에 담긴 의미 변화는 세대의 감각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결혼을 통해 가족 관계를 확장해 가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면, 젊은 세대에게는 혼자 있는 상태 자체가 하나의 생활 방식이 됐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의외로 단순하다. 혼자가 더 편하고, 때로는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아로미 에세이집 '혼자서도 잘 사는 걸 어떡합니까'의 큰글자책 표지.
▲신아로미 에세이집 '혼자서도 잘 사는 걸 어떡합니까'의 큰글자책 표지.

혼자 여행이 낯설지 않은 세대

이런 감각은 여행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발표된 ‘2025년 Z세대가 주목하는 여행 트렌드’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혼자 여행’을 선호하는 비율이다. Z세대의 46.5%가 혼자 떠나는 여행을 선호한다고 응답해 다른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반면 X세대는 가족 2~3명과 함께 여행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46.3%로 가장 높았다. 여행 방식에서도 세대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셈이다.

이런 변화에는 온라인 콘텐츠 환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 혼자 떠난 여행을 기록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가 넘쳐난다. 호텔이나 관광지 위주의 여행 뿐 아니라 혼자 캠핑을 떠나거나, 차에서 숙박하는 ‘차박’ 콘텐츠도 많아졌다. 중년 여성 차박 캠퍼 ‘러블리쏭’, ‘오느레’, ‘삐삐의작은공간’ 등의 유튜브도 꾸준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

미혼을 선언해 화제를 모은 여행 유튜버 ‘신아로미’의 에세이 ‘혼자서도 잘 사는 걸 어떡합니까’는 영어권 뿐 아니라 태국과 스페인 등 세계 각국에 판권이 판매되기도 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어디든 성별이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혼자 여행할 수 있다”에서 나아가,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다. 스트레스가 되는 인간관계보다 인생의 주체인 나에게 집중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관계 거부가 아니라 ‘안전거리 확보’

우리나라에서 ‘혼자’는 더 이상 특별한 상태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이미 전체 가구의 약 35%를 차지한다.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혼자 사는 시대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 같은 단어들도 이제 일상어가 됐다.

젊은 세대가 혼자를 선택하는 이유는 개인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이 배경에는 변화한 사회 환경도 한몫한다. 과거에는 대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꾸려왔다면, 요즘 젊은 세대에게 혼자는 ‘기본 상태’에 가깝다. 외동으로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친구와 만나지 않아도 SNS와 메신저로 연결될 수 있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어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지는 않는다.

또 이들은 과거보다 취업, 주거,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관계는 때때로 부담이다. 누군가와 삶을 묶는 일은 책임과 위험을 동시에 동반하기 때문이다. 또 혼자 있으면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피할 수 있고 타인의 평가에서 상처받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래서 요즘 세대에게 혼자는 외로운 상태라기보다 ‘예측과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

하지만 혼자를 선호한다고 해서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로테이션 소개팅’이라는 새로운 만남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짧은 시간 동안 번갈아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연인을 찾더라도 부모나 지인을 통해 소개받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만나보고 부담 없이 헤어질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한다. 그래서 요즘 세대를 단순히 개인주의 세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밀도를 스스로 조절한다. 혼자 있는 시간과 관계 맺는 시간을 구분하고, 자신에게 맞는 거리를 찾는다.


(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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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거라 섣부른 단정보다 이해를

이 변화는 시니어 세대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이루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그래서 ‘혼자’라는 사실을 외로움이나 결핍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왜 혼자 여행 가?”, “결혼은 안 해?”,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니?”라는 질문은 “네 삶과 선택이 옳지 않다”고 평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사람은 결혼해야 해”, “그래도 가족이 있어야지”라는 식의 일방적인 조언보다 “우리 때는 여행이 쉽지 않았지”, “나는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데 한번 해보고 싶네”와 같은 말로 경험과 공감을 나누는 것을 추천한다.

회사에서도 혼자를 안전하다고 느끼는 감각은 이어진다. 많은 신입사원이 업무보다 관계에서 더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만큼은 평가보다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을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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