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세대 갈등이 극심한 시기가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세대 간 혐오 표현이 들어간 갖가지 멸칭이 쏟아져 나올 정도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의 ‘어른’ 요리사들을 향한 젊은 세대의 이례적인 열광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흑백요리사2’, 후덕죽 셰프라는 어른의 발견
“중식 대가이니 최고 지존이다, 사실 전 이런 얘기를 듣고 싶지 않거든요. 그냥 이제 일반 조리사 직원들하고 같이 조리하는 것. 그것이 이제 중요하다고 봅니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2’에 출연한 후덕죽 셰프는 자신이 칠순 넘은 나이(76)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그는 실로 중식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VIP 만찬을 담당했고, 호텔신라에서 조리 총괄이사라는 직책으로 요리업계 최초로 대기업 고위 임원 자리에 올랐다.
그가 현재 총괄셰프로 있는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중식당 ‘호빈’은 2024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1스타를 획득했고, 후덕죽 셰프는 ‘2024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니 ‘중식 대가’니 ‘최고 지존’이라는 말이 허명은 아니다.
그래서 후덕죽 셰프가 ‘흑백요리사2’라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등장했을 때 흑수저 요리사들은 물론이고 백수저 요리사들마저 그가 출연자로 참여한 사실에 놀라워했다. 실력으로나 경력으로나 심사위원을 해도 아무 손색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급장 떼고 젊은 요리사들과 기꺼이 유쾌한 요리 대결을 해보겠다는 그의 도전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과정에 담긴 태도가 ‘어른의 품격’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면면이 두드러진 건 흑백 팀전이었다. 흑수저팀과 백수저팀으로 나뉘어 대결을 벌이는 이 미션에서 백수저팀의 리더는 당연히 후덕죽 셰프가 될 거라 여겼다. 모든 요리사의 ‘사부’로 불리는 대선배가 아닌가. 하지만 그는 리더가 아닌 팀원의 위치를 자처했다. 보통 연장자나 최고 경력자가 리더를 맡는 한국적 위계질서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권위를 내세워 지시하는 대신, 후배 리더의 지휘에 따르며 재료 손질 같은 기초적인 일을 기꺼이 맡았다.
그는 참외 절이는 일을 해주면서도 같은 팀원들이 불안하지 않게 “맛있네”라며 팀이 나아가는 방향에 확신을 줬다. 여기서 특히 시선을 끈 장면은 자신의 중식도를 리더인 임성근 셰프가 마음대로 가져다가 마늘 다지는 데 쓸 때 한 말이다. “아, 잘 쓰는데 뭘…. 자, 소스 해. 이거(마늘) 내가 잘라줄게.” 1999년 방영된 MBC ‘성공시대’에 그가 처음 중식당에서 일을 배울 때 일화가 나온다.
선배 요리사의 칼인 줄 모르고 썼다는 이유로 뺨을 맞았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이야기다. 후덕죽 셰프의 후배를 대하는 태도는 자신이 겪어온 선배들과 너무나 달라 화제가 됐다.

타인을 이기기보다 자신에 대한 도전과 수행
사실 백수저로 불리는 요리사라면 이미 명성과 부를 모두 거머쥔 사람들이다. 후덕죽 셰프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다 가진 이들이 굳이 흑수저 요리사들과 맞붙어 아등바등 이기려 하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다. 물론 일종의 경합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상대방을 대하는 예우지만, 승패에 집착하는 건 지나친 욕심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후덕죽 셰프나 이준 셰프 등이 요리 대결에서 상대로 나온 후배들을 응원하고, 승패가 결정된 후에 후배를 다독이는 모습은 어른의 품격 그 자체였다. 이는 후덕죽 셰프가 애초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를 우승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도전’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는 현역 요리사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도전하고 싶었던 거였다.
실제로 당근으로 끝없이 새로운 요리를 해내야 했던 ‘무한요리지옥’ 미션에서 그의 도전 정신이 빛을 보였다. 오랜 경험과 아이디어를 더해 당근을 면으로 하는 짜장면을 선보였고, 당근으로 밀가루 반죽을 해서 당근 모양을 구현한 딤섬을 만들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대결에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요리를 만들어낸 그는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그 도전 자체가 즐거웠다”는 탈락 소감을 남겼다. “57년 동안 했던 요리 인생이, 요리가 썩지 않았구나. 아직까지 내가 할 수 있구나. 너무 이제 흐뭇하고 마음은 이제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후배가 올라가니까.”

이번 ‘흑백요리사2’에서 가장 이례적인 출연자는 사찰 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이다. 스님 역시 타인과의 대결이나 승패보다 수행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어른의 풍모’를 보여줬다. 사실 경쟁을 통해 생존하는 요리 서바이벌에 스님이 출연한다는 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선재 스님은 “음식은 생명을 살리는 약”이며 “요리는 자신과 타인을 위한 수행의 방식”이라는 철학으로 이 서바이벌에 참여했다. 누구를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상생과 공존을 위한 도구가 요리라는 걸 몸소 보여주겠다는 의지였다. 그래서 선재 스님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99명의 셰프를 쓰러뜨려야 하는 적이 아닌, 저마다 자신과 싸우는 ‘수행자’로 바라봤다.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제로섬 게임’의 논리를 서로의 성장을 돕고 함께 수행하는 동료로 전환한 것. 화려한 기교보다 소박하면서도 재료 자체의 맛과 향을 살리는 스님의 요리는 승패의 논리를 뛰어넘었다.
그래서 ‘무한요리지옥’ 미션에서 탈락하며 남긴 선재 스님의 소감은 우승 소감만큼 큰 울림을 줬다. “당근으로 멋있는 요리를 만들기보단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당근의 맛을 알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단지 이기기 위해 요리의 본질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장인의 고집이자,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수행자의 태도가 담긴 소감이기 때문이다.

어른 실종 시대, 무엇이 어른의 품격을 만드나
‘흑백요리사2’의 후덕죽 셰프나 선재 스님 같은 출연자들이 이른바 ‘어른의 품격’이라는 말로 우승자만큼 주목받는 상황은 이 시대가 얼마나 ‘진정한 어른’에 목말라 있는지 에둘러 말해준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노년층 인구는 급증했지만, 존경과 신뢰의 대상으로서 어른이라 불릴 수 있는 상징적 존재는 오히려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자리를 채운 건 세대 간 혐오와 조롱 섞인 신조어들이다.
“라떼는…”을 연발하며 자신의 경험만 절대시해 타인을 가르치려 드는 ‘꼰대’, 자연스러운 나이 듦을 거부하며 젊은 세대의 문화를 어설프게 모방하려다 조롱의 대상이 된 ‘영포티’, 가부장적 권위주의라는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으로 욕을 먹는 ‘개저씨’ 같은 멸칭이 그것이다.
물론 다수의 어른 세대는 일부 무례한 이들 때문에 세대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는 신조어가 못마땅하고 억울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고도 성장기에 축적된 자산과 사회적 지위를 누렸던 기성세대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추고도 저성장의 늪에서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하는 젊은 세대 간의 구조적 불평등에서 생긴 간극이 숨어 있다. 이러한 심리적 박탈감이 세대를 표수로 나누는 정치와 맞물리는 순간, 세대 혐오의 장이 열린다. 그래서 미디어에 간간이 등장하는 ‘품격 있는 어른들’은 더더욱 젊은 세대의 열광과 환호를 받는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원하는 진짜 어른이 어떤 존재인지 드러낸다.

그렇다면 콘텐츠에 투영된 ‘어른의 품격’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 첫째는 탈권위다. 후덕죽 셰프가 팀전에서 권위를 내려놓고 팀원으로서 보여준 팔로어십이 그걸 말해준다. 지시하기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타인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도전에 충실한 모습. 권위는 스스로 주장할 때가 아니라 타인이 부여할 때 생겨나는 것이라는 걸 진짜 어른들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둘째는 현재의 역할에 관한 자각이다. 자신이 얻은 성취가 자기만의 노력이 아니라 당시 사회가 부여한 기회 때문이라는 걸 인식하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그 기회를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배들을 격려하며 잠재력을 끌어낸 후덕죽 셰프를 후배들이 기꺼이 사부라고 부르는 건 그가 현재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셋째는 욕망을 내려놓는 자세다. 후덕죽 셰프나 선재 스님의 사례처럼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도전 자체를 목표로 삼는 자세는 ‘노욕’에서 벗어나는 바른 길이다.
넷째는 결과에 대한 승복이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그 자체를 수행의 과정으로 여기는 선재 스님의 자세는 나만 옳고 타인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관의 편협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진정성이다.
똑같은 말도 그 사람이 평생 해왔던 일관된 삶의 모습이 얹어질 때 진짜 무게를 갖게 되는 법이다. 그저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말에 맞게 살아온 삶이 얹어져야 진짜 어른의 품격이 생기기 마련이다.
2023년 세상에 공개된 MBC 경남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악취가 진동하지만, 뿌려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돈을 똥과 거름에 비유한 김장하 선생의 이 말은 단지 ‘돈의 쓰임새’에 관한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기성세대가 후대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진짜 어른인지 아닌지 나뉜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른이란 세상의 거름이 되어주어야 하는 존재이고, 그건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저 나이만 먹으면 노욕의 악취가 진동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흑백요리사2’의 후덕죽 셰프나 선재 스님을 ‘어른’이라 부르는 후배들의 목소리는 품격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악취가 아닌 향취를 풍기는 어른들을 향한 갈증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