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이 필요한 때

기사입력 2018-09-20 11:03 기사수정 2018-09-20 11:03

▲펌프의 물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마중물을 이용해 물을 퍼 올리라고 늘 펌프 곁에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이 있다.(황영태 동년기자 )
▲펌프의 물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마중물을 이용해 물을 퍼 올리라고 늘 펌프 곁에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이 있다.(황영태 동년기자 )
‘윽 그만 그만 너무 차가워’ 땀에 흥건히 젖어 목에 두른 수건을 비틀어 짜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더워도 그래도 금방 펌프로 퍼 올린 물을 한바가지만 등에 부어도 차가움을 넘어 추위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은 물을 붓지 말고 조금씩 부어 달라고 말해야 되지만 너무 차가와 말 못하고 비명만 질렀다. 우리 어렸을 때나 볼 수 있었던 정겨운 모습이지만 지금은 상수도 설비가 잘 되어있어 시골을 가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이렇게 펌프에서 시원한 물이 올라오는데 에는 마중물의 역할이 크다. 물은 공기보다 점도가 800배나 강하다. 펌프질하기 전에 펌프 내부에 물을 부으면 실린더와 피스톤사이 밸브의 틈을 채워 펌프질시 기압차를 유지하여 물이 잘 올라오게 된다. 이것을 마중물이라 한다.

펌프의 물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마중물을 이용해 물을 퍼 올리라고 늘 펌프 곁에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이 있었다. 그리고 사용자는 또 다음사람을 위하여한바가지 정도의 마중물을 펌프 곁에 준비해 둔다. 늘 새로운 물을 기쁘게 마중 나간다는 뜻에서 이름도 마중물인 것 같다.

사람들이 마중물을 펌프에 부었다면 당연히 펌프에서 시원한 물이 올라 올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즉시 펌프질을 하여 물을 퍼 올렸고 물을 사용 후 반드시 잊지 않고 새 마중물 한 바가지를 펌프 옆에 준비해 두었다.

만약 준비한 마중물을 다 사용하여도 펌프 물을 못 퍼 올리면 다른 곳에 가서 마중물을 갖고 와야 한다.

마중물은 펌프를 이용해 퍼 올리는 물의 양에 비하면 그 앙은 매우 적으나 펌프를 이용해 퍼 올린 모든 물은 마중물의 신세를 진 물임에 틀림없다.

피스톤의 심각한 마모나 밸브의 이상이 있으면 아무리 많은 마중물을 펌프에 붓고 물이 올라오기를 기대하며 힘들게 펌프질을 하여도 그 펌프는 수리하기 전에는 물을 퍼 올릴 수 없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마중물 역할을 하는 사람의 희생으로 이 사회가 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심각하게 고장 난 펌프와 같다.

이번에 마중물처럼 소중한 ‘미 투’(me too)에 참여한 분들의 용기가 헛되이 사라진다면 이 사회는 병폐에서 쉽게 탈출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렵게 마음을 결정하고 자신을 위함 보다는 병든 사회를 구하기 위해 헌신한 분에게 감사를 하며 거대한 펌프 속에서 아무런 보람도 없이 사라지는 마중물이 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분들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국민 전체가 나서야 할 때다. 그분들을 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사회 부조리를 그들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우리는 사회 부조리를 능가하는 더 큰 힘으로 그들을 응원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합의에 의해서 한 것 입니다.’ ‘좋은 연극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성범죄를 저질러야만 했습니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한 당사자의 이 말이 책임의 전부가 될 수 있을까?

그 말이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상처를 치유 할 수 있을까? 변명 치고는 너무도 궁색한 말이다.

어쩌면 이 변명이 받아들여 진다면 바른 사회로 만들기 위해 고질적인 문제를 제거하기 보다는 범죄자들에게 도망가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그냥 놔둔다고 치유 되지는 않는다. 마치 깨진 유리는 금이 간곳에서 또 깨짐이 시작 되듯이 또 다른 범죄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법적인 책임은 없고 도의적 책임만 있는 사회의 암이 만연 하게 될것이다.

고장 난 펌프 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미 투’의 참여자 그들만의 힘으로는 아무리 정의를 외쳐도 고장 난 펌프를 고칠 수 없다. 이 사회를 간단히 치유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하다.

커다란 코끼리를 치료할 때 큰 주사기가 필요하듯 ‘미 투’의 마중물이 되는 사람들을 보호 하려면 온 국민이 참여하여 부조리 보다 더 큰 힘을 보태 만들어 밀어주어야 한다. 귀중한 마중물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나도 작은 촛불 하나에 불을 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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