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씻어주는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기사입력 2018-12-28 08:45 기사수정 2018-12-28 08:45

(김종억 동년기자 제공)
(김종억 동년기자 제공)

2018년도 서서히 저물어가는 12월의 끝자락에서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이라는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브라보마이라이프’가 동년기자들을 위해 주선해준 연극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허둥지둥 보내온 한 해를 뒤돌아보고 잠시 쉬어갈 좋은 기회에 한 해 동안 함께 활동했던 동년기자님들과 함께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저녁 8시 공연시작 시각에 맞추어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음악인들이 거리공연(Busking)을 펼치고 있었다.

(김종억 동년기자 제공)
(김종억 동년기자 제공)

어디서 그 많은 옷을 소품으로 준비했는지 무대 위에는 진짜 세탁소보다 더 많은 옷들이 즐비하게 걸려있었다. 물론 대형세탁기도 그 옆에 놓여 있었다. 각양각색 걸린 무대 위 옷들은 마치 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담겨있는 듯 보였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30년째 오아시스세탁소를 운영하는 강태국은 아버지와 가장의 무거운 짐을 양쪽 어깨에 메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주인공 강태국의 아내 민숙은 작은 골목 세탁소를 청산하고 강남의 한복판에 버젓한 세탁소 간판을 내걸고 싶어 한다. 지긋지긋한 삶의 변화를 주고 싶지만 꿈적도 하지 않는 강태국. 그는 “우리가 진짜 세탁해야 하는 것은 말이야 옷이 아니야, 바로 이 옷들의 주인 마음이야”라며 혼자 독백한다. 40년 전 어머니가 맡겼던 세탁물을 찾아 희망을 품게 되는 불효자, 그럴듯한 의상을 빌리고 싶은 가난한 배우 지망생,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떼쓰는 아들의 철없는 모습 등 웃음과 애환이 교차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오아시스세탁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소탈하고 진솔한 삶을 사는 강태국에게도 시련은 찾아온다. 세탁비도 없이 맡겨놓은 옷을 찾으러 온 아이에게 세탁비를 받기는커녕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돈까지 쥐여준 인정 많은 강태국에게 성희롱으로 몰아가며 윽박지르는 아이의 어미는 이 시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궁지에 몰린 강태국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꺼내들고 한장 한장 넘기면서 “이런 때는 어떻게 하라고 왜 안 가르쳐 주셨냐” 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연극은 풍을 맞은 할머니의 똥 묻은 옷을 가져오는 옥화와 그 뒤를 따라온 할머니의 아들, 딸들이 세탁소를 습격하며 절정을 맞이한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특히 마무리 장면이 인상적이다. 세탁기 안에서 세탁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고 세탁이 끝난 후에 흰 옷으로 세탁이 된 사람들이 빨랫줄에 걸리는 해맑은 모습도 그랬다. 이 연극은 물질적인 욕망만을 추구한 채,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잊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울림을 주는 교훈을 남겼다.

(김종억 동년기자 제공)
(김종억 동년기자 제공)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은 따스한 삶과 깊이 있는 감동을 원고지에 옮겨온 중견 극작가 김정숙의 희곡을 뮤지컬 작곡과 연출을 병행해오던 권호성 연출가의 끼 있는 연출로 무대 위에 옮긴 연극이다. 2018년도는 사회 전체가 안정화되지 못하고 뒤숭숭하기만 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을 견디어내고 남북 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 했지만 남남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서민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서민들의 마음속엔 찬바람만 불어와 유난히 힘겹고 길게만 느껴졌을 삭막했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은 한바탕 유쾌하면서도 감동을 선사해준 연극이었다.

(김종억 동년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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