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씨앗 하나를 심다

기사입력 2018-12-28 08:49 기사수정 2018-12-28 08:49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무척이나 복잡한 것이 사람의 일생인 것 같지만, 때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나 행동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일이다. 당시엔 TV도 없었고, 좀 산다는 집이라야 고작 라디오 한 대가 있는 정도였다. 요즘처럼 책도 흔한 시절도 아니었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시골은 문화적으로 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골 동네에 방학이 되면, 서울에 산다는 아이가 이웃집에 놀러 오곤 했다. 얼굴이 뽀얀 그 아이는 햇빛에 타 거무죽죽한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또래여서 잘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는 어디서 배웠는지 그림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특히 장군의 모습을 잘 그렸는데 그 장군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봐도 엄청난 위엄이 있어 보였다. 끝이 뾰족한 삼지창 투구를 쓰고, 눈은 부라리며 뚫어지라 적을 응시하고 있었다. 콧수염은 양쪽으로 갈라져 날듯하고, 길게 뻗은 턱수염 사이로 고함치듯 포효하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필자는 그 그림에 매료되어 수없이 그 그림을 따라 그리곤 했다. 그러는 필자의 모습을 겨우 너덧 살 동생이 보고 있었다.

그 후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때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우리 형제들은 성장하여 각자 직장생활 하며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되어 동생은 직장을 사직하고 그림을 그린다고 하였다. 처음엔 취미로 그러는가 보다 했는데 점점 빠져드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미술 분야에 정평이 나 있는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시회를 여는 등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거였다. 아마추어인가 싶었는데 그 그림을 보고 국내의 굴지 회사에서 소장용으로 그림을 사 갔다 한다. 우리 집안에 그런 DNA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이런 있을 수 있을까?

어느 날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묻는 말에 놀라운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때 형님이 그리는 그림을 보고 감동을 하여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필자는 그저 이웃집 또래의 그림을 따라서 그렸던 것뿐인데 동생한테는 그것이 평생 마음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천주교 황창현 신부가 어느 강의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미국 교포들 초청으로 미국 서부의 한 성당에서 강연하게 되었는데 강연이 끝나고 문을 나서자 한 아가씨가 “신부님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더란다. “저를 잘 아시나요?” 하니 “그럼요 제가 미국으로 오기 전 어렸을 때 한국에서 성당에 다녔는데 그날 신부님이 우리 교회에 방문하시고 저를 보시고 그러셨잖아요. 제 손을 만져 보시더니 ‘너는 손이 크니 손재주가 있겠다. 커서 의사가 되어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하고요. 그 뒤로 저는 의사가 될 생각으로 공부해서 지금 미국에서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감사해요. 신부님!” 신부님은 전혀 기억도 없었는데 그 어린아이가 그때 한 말을 듣고 현재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다니 너무도 놀랐다고 한다.

동생의 어릴 때 그 느낌이 결국 50이 된 나이에 화가의 길을 걷는 것이나, 신부님의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어린 소녀를 의사의 길을 걷게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마음의 밭에 뿌려지는 씨앗 한 알이 한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앞길은 아무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산다는 보장도 없다. 공부는 뒤떨어졌어도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다. 단지 어린 마음에 어떠한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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