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성심병원에서 환자 엘리베이터 이송 맡은 김창원 씨

기사입력 2019-06-28 08:51 기사수정 2019-06-28 08:51

“지금 나르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생명”

(이준호 기자 jhlee@)
(이준호 기자 jhlee@)
2분에 한 번씩 접객을 하는 직업이 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 하지만 그의 업장은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손바닥만 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명은 이곳을 지나친 사람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것. 어찌 보면 단순한 업무이지만 사선에 선 사람들은 그가 건넨 희망의 한마디를 꼭 붙잡는다. 강동성심병원에서 만난 나누미동행팀 김창원(金昶源·70) 씨 이야기다.


병원에서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직종인 ‘이송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을 앞두었거나 막 수술을 마친 환자를 수술실과 병실로 옮기는 일을 주로 한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안전하게 환자를 이동시켜야 하므로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 맡는다.

김창원 씨의 업무는 단순하다. 호출을 받으면 이송팀이 환자와 함께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이동형 침대의 승하차를 돕는 일이다. 시간을 때우려고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바라보면 예사롭게 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김 씨의 소속은 강동성심병원 ‘나누미(美) 동행팀’. 병원 사회사업팀과 강동노인복지관이 주도해 진행하는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목적으로 지난 3월부터 운영 중이다.

▲엘리베이터나 중앙수술실 등이 김창원 씨가 환자를 만나 응원하는 주요 장소다. 그는 “수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이준호 기자 jhlee@)
▲엘리베이터나 중앙수술실 등이 김창원 씨가 환자를 만나 응원하는 주요 장소다. 그는 “수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이준호 기자 jhlee@)

2분마다 울리는 호출음

까톡! 정적을 깨는 소리와 함께 그의 휴대전화에 암호 같은 메시지 ‘3 12 ㅎ’가 뜬다. 대부분의 업무 요청은 이렇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이뤄진다. 바쁠 때는 2~3분 간격으로 계속 울려댄다.

“3층에서 12층으로 이동하는 환자가 있다는 뜻이죠. 다들 바쁘니까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간단한 메시지로 주고받습니다. 환자가 이동하는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아요. 수술 전에는 걱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수술 후에는 가능한 한 빨리 회복실로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이 호출음으로 전달받은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기다렸다가 이송팀과 환자를 태우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겁니다.”

그와 이동하는 중에 문득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 주변을 둘러보자 그가 핸드폰을 들어 보인다.

“환자분들을 대해보니 대부분 긴장하시더라고요. 큰일(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어찌 긴장이 안 되겠어요. 그래서 제가 유튜브에서 찾아봤죠. 환자의 회복에 좋은 추천 음악들이 있더라고요. 스무 곡 정도 다운받아 늘 틀고 다닙니다. 힘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요.”

이보다 환자들에게 더 힘이 되는 것은 그의 응원의 말이다. 강동성심병원 사회사업팀 관계자는 그가 건네는 여러 가지 위로의 말들이 큰 위로가 되고 있다면서, 실제로 많은 환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또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는 소통에도 능숙하고 적극적이어서 병원 직원들이 그의 계약 종료를 걱정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환자들과 소통할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이 환자의 감정 상태라고 말했다.

“무척 조심스럽죠. 처음 얼마간은 눈치를 많이 봤어요.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걸어야 하니까요. 이제는 환자의 이동 목적을 잘 알아서 ‘수술 잘될 겁니다’, ‘치료 잘 받으셔요’, ‘수고하셨어요’, ‘쾌유를 빕니다’ 등등 상황에 따른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여유가 있으면 조금 길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요. 간혹 환자분들이 제게 감사 표시를 할 땐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이 나이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어요.”

그는 자신의 업무가 비록 단순한 일이긴 하지만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쉽게 권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점 때문이에요. 엘리베이터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고, 동선도 고려해야 해요. 한꺼번에 들어온 요청을 차례대로 처리하는 게 좋을지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나을지 빨리 판단해야 하고요.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요청 들어온 순서대로 처리하다 애를 먹기도 했죠. 지금은 요령이 생겨 운행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잘 해나가고 있어요.”


국가부도의 날에 나온 은행맨

(이준호 기자 jhlee@)
(이준호 기자 jhlee@)
김 씨는 외환위기 전까지는 꽤 잘나가던 은행맨 출신. 당시 5대 은행으로 불리던 곳에서 지점장까지 했다. 그러다 문제의 ‘국가부도의 날’이 도래하면서 실적에 시달리게 됐고 결국 은행을 나와야만 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본점에서 독려가 심했죠. 예금을 가져오라 하는데, 당시에 저축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어요. 결국 25년 만에 은행을 나와야 했어요. 다행히 안전용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아 10년 넘게 일할 수 있었어요.”

그는 젊은 직원들과 즐겁게 소통하고, 스마트폰도 자유롭게 다룬다. 컴퓨터에 해박하고 온라인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퇴직 후 선택한 직업도 컴퓨터 수리. PC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에 워낙 관심이 많아 몇 년 전까지도 관련 일을 해왔다. ‘K삿갓’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그의 블로그에는 그가 만든 영상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들이 올라와 있는데, 800여 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인기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는데 어른들 앞에서 노래를 곧잘 불렀어요. 명국환 씨의 ‘방랑시인 김삿갓’이 애창곡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부르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레 김삿갓에 대한 동경도 생겼고요. 닉네임을 만들 때 그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게 실례 같아 K삿갓으로 지었어요.(웃음)”

그는 강동성심병원에서 나누미동행팀을 모집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최근 흥미가 생겨 드나들던 기원에서 지인의 추천을 받은 것이다. 막걸릿값 벌어볼 생각 없냐는 제안에 솔깃했다.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반가웠죠. 병원이 마침 집 근처라서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용돈이나 벌어야겠다 했는데, 환자를 자주 대하다 보니 이제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제가 옮기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생명이니까요.”

근무시간은 일주일에 30시간.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근무하는데 금요일은 격주로 일한다. 급여는 월 27만 원 정도. 근무시간 내내 앉아 있을 틈 없이 계속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체력적으로 문제없냐고 물었더니 끄떡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직은 문제없어요.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해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즐거워요. 첫 월급을 탄 뒤 친구들에게 기분 좋게 막걸리 한턱 낼 수 있었던 것도 이 일을 통해 얻은 행복이에요.”

최근 김 씨는 또 다른 공부에 한창이다. 바로 마술. 인터넷에 게재된 영상과 게시물을 통해 여러 가지 마술 기법을 익히는 중이다. 여생에 꿈 하나 더 갖기 위해서다.

“마술이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주변 노인복지관이나 노인생활시설을 돌며 공연을 하고 싶어요. 계속 같은 공간에 계시면 적적하잖아요. 유명 마술사에 비하면 보잘것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만족할 것 같아요. 병원 일과 마술 공연 모두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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